[학술회의 참관기] 고구려사를 논하고 ‘동아시아’를 말하다_백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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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5월(통권 29호)

[학술회의 참관기] 

 

고구려사를 논하고 동아시아를 말하다

– <고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 저작 비평회> 참관기
: 井上直樹, 2021, 『高句麗の史的展開過程と東アジア』, 塙書房 –

 

백다해(고대사분과)

 

일시: 2022년 4월 14일 (목) 19:00 ~ 22:30
장소: 비대면 진행(ZOOM)

조심스럽게 ‘다시 일상으로’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 4월, 어쩌면 올해의 마지막 비대면행사일지도 모르는-아니,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저작비평회가 열렸다. 고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반과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가 주최한 이날의 행사는 이노우에 나오키[井上直樹] 선생님의 신간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 사회의 국제관계’를 재차 논의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일본에 계시는 이노우에 선생님을 비롯해 ‘고대 동아시아’에 관심을 두고 있던 많은 연구자들이 속속 화면에 등장했다. COVID-19가 가져온 ‘유일한’ 장점인, ‘국경’과 지역을 넘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사진 1. 저작비평회 포스터

행사는 고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반 1기 반장인 여호규 선생님의 진행 아래, 이노우에 선생님의 책 소개와 지정토론, 자유토론의 순으로 진행됐다. 공동의 고민을 바탕으로 연구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연구반이 주최한 행사인 만큼 논의는 풍부했고, 열기는 뜨거웠다. 이노우에 선생님은 참석한 선학(先學) 및 동학(同學), 후학(後學)을 위해 책 전체 내용과 각 장의 문제의식을 1시간 30분 가량 꼼꼼히 설명했고, 지정토론과 자유토론이 밤 10시 30분까지 이어졌다. 쉬는 시간도 없이 꼬박 3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대장정이었다.

사실 이 책의 출간은 동아시아 국제관계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필자 개인 뿐만 아니라 고구려사, 나아가 한국고대사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武田幸男의 『高句麗史と東アジア: 「広開土王碑」研究序説』(1989)이 출간된 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관련된 연구논문은 더러 있었으나 고구려사를 전론(專論)으로 다룬 연구서는 찾기 어려웠다. “30년 만에 나온 역작”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진 2. 井上直樹, 2021, 『高句麗の史的展開過程と東アジア』, 塙書房

먼저 책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책은 4부 11장, 그리고 보론을 더해 총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고구려사 연구동향 및 향후과제를 정리했다. 제1부의 내용은 저자의 전작, 『帝国日本と「満鮮史」大陸政策と朝鮮·満州認識』(塙書房)과 본서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근대 국가의 정치적 목적·이해관계로 인해 뒤틀린 그간의 고구려사 연구를 반성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힘써왔던 저자의 그간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본격적인 내용은 제2부~제4부에서 다뤄지고 있다. 각 부는 4세기~6세기 초, 6세기 전·후반, 6세기 후반~7세기 후반을 시간의 축으로 삼아 고구려와 중국왕조, 왜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구체적으로 고구려의 서북방정세와 남방정세가 긴밀히 연동돼 있다는 인식 하에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화라는 거시적 흐름에 입각해 고구려의 국제관계를 해석해냈다. 이 책이 ‘동아시아 시각에서 접근한 국제관계사’로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사진 3. 발표 중인 이노우에 나오키 선생님
사진 4. 청중들의 모습

개인적으로는 행사 중간, “이전 세대와 제-이노우에 자신을 지칭-가 가진 문제의식은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했던 저자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관련하여 일본학계를 관통하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전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저자만의 새로운 해석이 눈에 띄었다. 예컨대, 4~5세기 ‘고구려세력권’과 대비되는 ‘왜세력권’을 상정하면서도 ‘왜세력권’이 관념적 산물임을 강조하는 대목은 일본학계의 연구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중립적 시각을 가지고 역사에 접근하고자 하는 저자의 고민이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이처럼 책의 곳곳에 저자의 고민이 묻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흐름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여전히 동아시아 세계인가’라는 문제를 두고는 여러 가지 의문과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中國皇帝를 정점으로 한 세계인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의식하면서 사적전개과정(史的展開科程)을 종합적으로 논구(論究)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음을 역설했다. 철저히 ‘동아시아세계론’의 입장에서 고구려사를 이해하고자 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의 ‘동아시아세계론’이 발표된 지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여전히’ 유효하다는 인식하에 널리 수용되고 있지만, 비판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4~7세기 ‘동아시아’를 과연 하나의 중심만이 작동하는 ‘중국적 질서’가 통용되던 시대로 간주할 수 있을지. 오히려 ‘탈중국적 질서’가 형성됐다가 반동으로 인해 ‘중국적 질서를 회복’해가는 과정으로 해당 시기를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실제 자유토론에서 나온 질의 역시 ‘동아시아세계(론)’을 비롯해 그 속에서 고구려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입장을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장시간 ‘고대 동아시아 사회’, 그 속에서 행해진 여러 정치체 간의 ‘국제관계’ 문제에 대해 숙의(熟議)를 거듭한 연구반의 내공을 두드러지는 순간이었다.

이번 저작 비평회는 일본의 최신 연구인 이노우에 선생님의 저작을 가교(架橋)로, 한국 및 일본 학계가 고구려 국제관계사는 물론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다시금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앞으로도 양국 사이에 다양한 가교가 생겨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토론자이자 참관자로서의 소임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