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 참관기] 개경에서 한경으로의 변화와 그 계승관계_이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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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2년 4월(통권 28호)

[학술회의 참관기] 

 

개경에서 한경으로의 변화와 그 계승관계

 

이민기(중세1분과)

 

일시: 2022년 3월 25일(금) 13:00~18:00
장소: 줌

‘개경에 간다!’라는 문장만큼 고려시대 전공자를 설레게 하는 문장이 또 있을까? 고려시대를 공부하는 필자에게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이다. 석사과정을 수학할 때 ‘자기 전공시대 도읍지 못 가는 사람 손들어 봐!’라고 선배들이 놀렸을 때 고구려 전공하는 동학과 필자만 손을 못든 기억이 있다. 발해를 전공하는 동학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고려시대를 공부하는 필자에게 개경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다.

2022년 3월 25일 한국역사연구회는 고려의 도읍 개경과 조선의 도읍 한경(한양)의 변화와 특징을 비교하고, 조선시대 개성 사람들의 생활을 다룬 학술대회를 줌으로 개최하였다. COVID-19의 재확산으로 인해 본 학술대회는 모두 줌으로 진행되었다. 개경과 개성에 관심있는 전공자들이 모여서 발표를 진행하였다. 고려시대 개경부터 조선시대 개성에 이르는 ‘개경 연구’의 현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학술대회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부는 이바른 선생님의 사회 아래 3개의 발표가 진행되었고, 2부는 고태우 선생님의 사회로 3개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다채로운 개경과 이상적인 한양

1부의 가장 큰 특징은 고려의 수도 개경과 조선의 수도 한경(한양)을 비교·분석하여 그 변천과 특이성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다는 점이다. 신안식 선생님의 ‘개경 도성과 한경 도성으로의 변화’에서 개경과 한경의 공간, 도성 성곽의 구조와 축조 방식을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의 한경 건설은 고려의 개경이 그 모범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각 왕조의 독자적인 세계관이 투영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도성의 특징들을 연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의 구축 필요성과 개경과 한경 성곽의 특징인 토성과 석성 건설의 비교분석 필요성을 제언하셨다.

뒤이어 홍영의 선생님의 ‘개경과 한경의 행정체제와 영역 편제의 특징’에서 개경과 한양의 국도로서 위상 및 행정 체제와 기능을 발표하였다. 앞선 발표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한경(한경)은 고려시대 개경을 모범으로 기획되었음을 주장하였다. 이후 고려시대 개경과 서경(평양)의 양경제가 조선시대 한성부와 개성부의 관계에서 일정한 모델이 되었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개경 책임관은 서경 책임관보다 품계는 낮고 위상은 훨씬 높았지만, 조선의 경우 한성부와 개성부는 경관직으로서 관제상으로는 거의 동등했지만 실제로는 한성부가 개성부를 압도한 양상을 지적하였다. 또한 도성의 주변 지역으로서 개경의 사교 운영과 조선 한경의 성저십리 운영 비교 및 산성으로 둘러싸인 도성과 개방적으로 운영된 방리제의 큰 틀이 고려의 도성운영이 조선으로 이어졌음을 주장하였다.

강호선 선생님의 ‘개경과 한양의 사찰-도성사찰의 역할과 의미’에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도성 사찰의 변화를 발표하였다. 고려와 조선의 도성 안 사찰은 국왕과 관련된 불사를 개최하고, 도성민들의 신앙의 공간이면서 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주장하였다. 특히 높고 화려한 왕실 원찰은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각 도시의 경관을 구성했을 것이라는 점에는 흥미로웠다. 더욱이 조선의 한양은 지난 고려사회를 비판하며 개혁을 주도한 고려말 조선초 성리학자들의 이상을 구현하는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고려에서 도성 사찰은 국왕의 통치에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었으나, 조선 한양의 사찰은 국왕의 통치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연산군 당시 훼철된 도성 내 사찰은 더 이상 다시 재건되거나 운영하지 않았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1부 발표를 듣고 느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각 발표가 유기적인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는 점이다. 개경의 공간과 편제 및 종교를 오랜시간 동안 연구해온 연구자들의 내공이 느껴지는 점이다. 공간의 구획과 공간의 구분을 위한 행정적인 설정, 나아가 각 종교적인 시설에서 도시의 경관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개경과 한경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명하게 도출하여 청중이 충분히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돋보였다. 이러한 점들이 각 연구자들의 발표가 유기적으로 이해가 될 수 있었던 점이다. 나아가 발표시간 25분을 정확히 지키는 미덕까지 더해져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개성사람들의 한양과 관계 맺기

2부의 특징은 조선시대 개성사람들의 활동상을 중심으로 학문교류와 금융네트워크, 개성상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발표했다는 점이다. ‘송도삼절’로 일컬어진 이름난 이들이 어떠한 점에서 송도와 엮어서 설명되었고, 개성상인들의 자본금융시스템이 개성-서울-평양-의주를 포괄하는 도시공간 네트워크 속에서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개성상인이 서울과 관계맺는 방식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중심으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노경희 선생님의 ‘17세기 한양 문단의 송도삼절-최립의 문장·차천로의 시·한호의 글씨’는 17세기 한양 문인들 사이에서 형성된 또 다른 송도의 이미지를 발표하였다. ‘송도삼절’, 즉 최립, 차천로, 한호의 생애와 문예활동을 자세히 검토하여, 한양문인 집단과 어떠한 취향으로 접목되었고, 나아가 송도와 한양 문인들의 문화적 접점과 간극을 고찰하였다. ‘송도삼절’ 삼인방은 16세기에서 17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외교와 국가 공부의 현장에서 활약한 문인들이었으며, 한양 문인들이 송도 출신 인물들에 대한 평가, 즉 “불우한 출신을 가진 뛰어난 실력자”라는 이미지를 발견해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 결과 한양 문인들이 ‘송도삼절’을 통해 이전 왕조 도읍 출신의 ‘불우한 처지’와 ‘쇠락한 송도’의 모습을 짝지어냄으로써 그들을 발견해 낼 수 있었던 한양 문인들의 문예에 대한 자의식과 자부심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전성호 선생님의 ‘조선 후기 개성-서울 금융네트워크 연구’에서는 서울에서 발행되고 개성에서 통용된 경환(京換) 관련 거래기록과 관련 금융 업무에서 창출된 할인 수수료 관련 거래 경환태가(京換駄價)를 분석하여 영업활동 범주에 금융업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발표하였다. 개성상인에 대한 연구는 상업 뿐만 아니라 금융업까지 있었음을 논증하였다. 이러한 점은 ‘은행 없는 회계 장부상의 자본 금융 시스템’이 개성-서울-평양-의주에 이르기까지 각 도시들이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었고, 그 속에서 금융업이 발달되었다는 점은 자못 흥미로웠다.

양정필 선생님의 ‘경성·서울에서 개성상인의 활동’에서는 조선 후기에서 해방 이후에 이르는 시기 동안 개성상인들이 한양-경성-서울과 맺는 관계들에 주목하여, 그들이 최고 정치 권력의 교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후대로 올수록 서울에서 활동하는 개성상인이 증가하였음을 발표하였다. 조선시대 개성상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선왕조에 대한 반감이 점차 줄어들었으며, 인삼을 홍삼으로 가공하여 수출하는 구조를 통해 중앙 권력과 관계맺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인삼을 매개로 하여 황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개성상인은 경성으로 진출하여 크게 성공하기도 하였으며, 해방 이후 젊은 상인들의 진출이 일어나 거부가 되기도 하고, 전쟁 이후 서울이 제2의 고향이 되기도 한 역사적인 변천을 고찰하였다. 개성상인의 활동무대가 서울로 점차 변화하면서 서울 경제계의 주인공으로 부상하였음을 고찰하였다.

2부 발표는 조선시대 개성의 문화적인 측면과 상업(특히 금융업)적 차원 및 개성상인들의 서울진출이라는 각기 주제를 각각 한양(서울)과 개성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진지하게 드러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옛 왕조의 도읍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나아가 그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 치밀하게 고찰하였다. 이른바 ‘고려의 옛 왕조 송도’에서 ‘상업의 도시 개성’으로 변화했던 개성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개경과 한경, 두 도시는 각 왕조의 중심지이기도 하면서, 각 지역이 서로를 보완하기도 했다. 개경과 한경의 사람들은 각자의 도시에 근거하기도, 서로의 도시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생활 모습을 갖추며 살아왔다. 이러한 개경과 한양의 문화적 면모는 다채롭고 복잡하다. 개별 논문들로 이러한 복잡한 맥락을 학술대회에서 유기적으로 전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탄탄한 기획력과 연구자들의 관계 맺기가 없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더불어 개경에 대한 여러 선생님들의 강렬한 열정(!)은 연구자로써 귀감이 되기도 했다. 정말 아름다운 구슬들을 발견해 내신 연구자 선생님들과 그 구슬들을 꿰어주신 여러 선생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