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 주한미군의 ‘기지생활권’ 형성과 ‘지역사회관계’의 변화(1945~1971년)_금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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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12월(통권 24호)

[나의 학위논문] 

 

주한미군의 ‘기지생활권’ 형성과

‘지역사회관계’의 변화 (1945~1971년)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1.08)

 

금보운(현대사분과)

* 함께 읽기 : 이재홍_연구반 탐방기(현대사분과 정치사회사반)

 

군사기지는 민간인 출입도 금지되어 있고, 공간 자체도 분리되어 있어서 폐쇄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장기적으로, 또 일상적으로 주변 민간인 생활공간과 마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외국군으로서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은 안정적인 주둔을 위해 기지의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면서도 개방함으로써 기지 주변 지역 역시 기지운영의 범위에 포함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한국 정부 수립의 역사보다 긴 시간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적용된 냉전과 분단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로 보고, 고정된 기지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과 형성한 상호관계를 분석하였다. 이때 미군과 기지 주변 지역의 관계가 안보 유지를 목적으로 한국 정부가 수용한 미군의 권한을 매개로 수립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분단하 안보정책이 개인의 생활공간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으로 주목하였다.

 

공간과 권한의 범위

미군기지 주변의 생활공간은 주민들이 생계수단을 찾아 형성되고, 자연스럽게 미군과 접하며 경제적 이득을 얻거나 문화적 영향을 받았던 공간만이 아니었다. 미군이 기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위협요인을 관리했던 정책대상이기도 했다. 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고려했던 요소는 미군이 보유한 공간으로서 기지와 기지운영에 요구되는 권한이었다. 미군이 보유하던 공간을 기준으로 권한이 적용되었고, 미군에 의한 원조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해도 일상생활에 대한 관리와 행정적인 개입은 주권 정부의 역할에 상응했기에 권한의 규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해방 이후 미군이 주둔하며 공간을 점유하는 양상과 한국 정부의 미군 권한의 인식을 시기적으로 비교했다. 궁극적으로 미군이 평시 장기주둔을 계기로 주변 지역과의 관계를 수립하였으며, 한국 정부가 주변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미군 권한의 범위를 간과함으로써 주한미군과 주변 지역의 관계가 정책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근간이 마련되었음을 확인했다.

 

기지운영과 ‘지역사회’

미군의 정책하에서 기지 주변 지역은 ‘커뮤니티’(community) 즉 지역사회라고 규정되었는데, ‘기지 주변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을 받은 공간’, ‘부정적인 인식이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곳’으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았다. 즉 미군이 비판이나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주둔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정책이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었던 것은 아니었고, 미군의 주둔 목적과 피주둔국과의 관계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었다.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주둔한 미군 중 평시 장기주둔의 사례로서 오키나와, 필리핀과 비교할 수 있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이 시기 점령 지위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필리핀 주둔 미군은 기지 안에서 보장된 권한을 기지 외부에서 행사하지 못하도록 제한받았다.

 

경계하는 유대(紐帶)의 ‘지역사회관계’

주한미군이 평시 장기주둔을 하며 고정된 기지 주변의 민간인 생활공간을 주목할 때 안정적인 기지운영을 목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그 근간에는 경계심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주한미군이 기지 주변 지역을 인지할 때 경계심을 적용했다는 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미군이 주변 지역을 관리하고, 구호 활동과 경찰권 행사 등 정부가 수행하는 임무를 지원하고,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발휘하면서도 주권 정부의 활동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미군은 한국에 파견된 병사에게 한국의 안보적 상황 및 위생·환경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이를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오리엔테이션에 포함했고, 정기적으로 정훈을 실시하며 안보교육을 전개하기도 했다. 특히 미군 헌병은 지역주민들이 기지에 위협이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생계를 규제하고, 일상적인 감시활동을 전개했다.

주한미군은 지역사회를 경계하면서도 지역사회 구성원의 층위에 따른 관계를 형성하며 지역사회 운영에 개입하고, 생활상을 관리했다. 그 대상은 기지 외부의 지역사회 주민과 기지 내부의 한국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기지 외부의 지역주민들은 층위별로 구분되어 각 대상의 나이와 지위에 상응하는 유대를 형성했다. 또한, 원조를 통해 생활환경 개선에 개입하면서 미군기지의 안정적인 운영이 지역사회의 안위와 연계되어 있다는 인식을 형성하고자 했다. 행정적 측면에서 지역 관료와 주민들을 포함한 회의체를 형성했고, 경제적 측면에서 기지의 비용 감축 정책과 연계하여 지역사회를 활용하기도 했다. 기지 내부 구성원은 직접 고용된 한국인들이 있는데, 미군은 이들을 중간관리인으로 육성하여 같은 한국인 고용자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거나, ‘지역사회관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하는 등 인종적 측면에서 기지운영에 활용하였다. 이처럼 주한미군이 기지운영을 위해 전개한 지역사회 정책은 기지 내외부를 연결하는 ‘지역사회관계’를 기반으로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했다. 즉 미군 기지 주변 지역은 사회·문화· 행정·경제적 측면에서 미군기지 운영을 매개로 관계가 형성된 이른바 ‘기지생활권’이 된 것이다.

 

‘차별적 포섭’과 ‘기지생활권’

미군이 정책적으로 ‘지역사회관계’를 형성하기는 했지만, 정책을 수행하는 미군 병사를 비롯하여 정책대상이 된 주민들, 그리고 한국 사회와 정부 모두의 ‘지역사회관계’에 대한 인식이 미군의 정책 방향과 조응하지는 않았다. 미군은 자신이 시행한 ‘지역사회관계’ 정책이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강조했음에도 결과적으로 미군의 존재가 지역사회 내에서 부정적으로 수용되기도 했음을 인지하였고, 인종적 편견과 경계심은 정책적 균열을 드러냈다. 주민들 역시 미군을 통해 경험한 새로운 문화에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미군기지와 인접한 지역의 낙후성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각하고 있었다. ‘지역사회관계’ 형성의 근본적인 목적이 주민들의 생활복지가 아닌 안정적인 기지운영이었던 만큼 미군이 내세운 ‘우호적 관계’는 인종적 차별과 편견을 반영한 모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지역사회관계’는 단지 미군과 기지 주변 지역주민의 상호관계로만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 공간에 대한 한국 사회와 정부의 인식도 적용되며 구성되었다. 기지 주변 지역 외의 사회적 인식은 미군 주둔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미군기지 주변 지역을 행정구역과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분리했다. 미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미군에 의존하여 생계를 잇는 주변의 거주공간에까지 차별적 인식을 적용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이 지역사회에 대한 정책을 적용하며 개입할 때 안보 목적을 내세워 이를 묵인하였다. 1960년대 후반 미군이 감군론과 함께 ‘기지경제담론’에 편승하여 지역사회에 관심을 보였지만, 안보위기를 강조하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임시적 대응이었다. 즉 미군기지 주변 지역의 생활공간은 주한미군의 주둔과 안보적 당위성을 기반으로 미군과 지역주민, 한국 사회와 정부의 인식 속에서 구성된 공간이었다.

한국 정부가 미군기지 주변 지역에 대해 무관심하며, 한국 사회도 이 공간을 배제하는 동안 미군 역시 1971년 미군 감군과 함께 지역사회에 대한 개입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기지운영 정책 변화에 따른 것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직접적 개입보다 지역주민을 활용한 관리 방식으로 기지와 지역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이는 미군이 기지의 운영을 목적으로 생활에 개입하고, 구성원과 관계를 맺으며 형성했던 공간을 기지운영 정책에 따라 배제하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의 무관심과 한국사회의 배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발생한 미군의 개입완화는 결과적으로 미군에 의해 형성된 지역사회가 정부와 미군 모두로부터 이중적으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 같은 미군의 기지운영 정책에 따른 ‘지역사회관계’의 변화는 기지 주변 지역을 ‘기지생활권’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즉 미군의 영향을 받은 생활양식을 포괄하면서도 미군의 경계심을 기반으로 한 우호적 관계의 한계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기지 주변에 남겨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 ‘차별적 포섭’이 적용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분단경계 내의 또 다른 경계

기지와 권한의 문제를 다루면서 고민했던 것은 분단국가 주권의 성격이었다. 주권은 서구 국가들이 약속한 개념으로 근대국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보면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군의 주둔을 허용한 한국의 주권은 불완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군이 기지운영을 목적으로 관리하고, 운영에 개입했던 민간공간은 분단국가 주권의 불완전한 성격이 발현된 분단경계 내의 ‘경계지’였다. 1945년부터 미군의 감군과 함께 주변 지역에 대한 정책이 변화하는 1971년은 이러한 ‘경계지’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 공간이 갖는 모순을 확인하는 것은 분단시대를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방향을 역사 속에서 찾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박사학위 논문은 미군 기지 주변의 공간에 주목하여 미군의 권한 적용과 한국 사회 및 정부의 인식이 공간의 성격과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각론적 분석은 논문의 한계이자 향후 연구의 방향으로 남겨두었다. 논문을 완성한 후 반환이 예정된 용산 미군기지 중 일부가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한국 속의 미국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포토존으로 등극한 미군기지를 보며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보았던 미군 기지개방 축제의 한국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출입이 제한되었던 공간에 대한 호기심과 이국적인 풍경에 대한 감상은 각 시대를 이해할 때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미군기지를 향한 관심이 그 공간의 역사성을 보존하는 데에 근거로 작용할 수 있음에 반가우면서도, 공간과 함께 형성된 사람들의 기억을 함께 전달하고 싶다는 의지가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구성하는 주체와 그 성격은 시대를 반영하며 형성된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운영되는 기지이건, 반환되어 향후 활용을 기다리는 부지이건 이를 조명하여 기억해야 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은 역사학의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