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 법제사의 체계적 이해_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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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11월(통권 23호)

[서평] 

 

한국 고대 법제사의 체계적 이해

– 김창석, 2020, 『왕권과 법: 한국 고대 법제의 성립과 변천』, 지식산업사 –

 

박초롱(고대사분과)

 

1. 들어가며

한국 고대사에서 법의 존재는 고조선의 8조 禁法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지만, 대개 한국 고대의 법이라고 하면 ‘율령’을 떠올리기가 쉽다. 정규교과와 개설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학습된 고구려 소수림왕과 신라 법흥왕의 율령반포와 그 의미(중앙집권적 통치체제의 지표라는)는 ‘한국 고대 법=율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 고대 법제에서‘율령’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에서 주변 각지로 전파된 법률 양식이라는 평가를 비롯해 율령에 대한 강조에는 일본학계 연구의 시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에서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주1) 더구나 그동안 ‘율령’에 논의가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그 이전의 고대법의 실상과 율령 반포까지의 전개는 제대로 해명되지 못하였다. 또 율령 반포 이후에 법제가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였다.

이러한 연구경향은 자료상의 한계에 비롯한 측면이 있다. 문헌 속에서 율령 반포 이전의 법제를 비롯해 한국 고대 율령의 구체적 실체를 가늠할만한 자료를 충분히 얻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 잇달아 발견된 〈울진 봉평 신라비〉〈포항 냉수리 신라비〉,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발견된 〈포항 중성리 신라비(이하 중성리비)〉와 〈집안고구려비(이하 집안비)〉, 그리고 신라 목간자료 등은 한국 고대사회의 법의 실체와 집행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정할만한 자료들로 평가된다. 이에 힘입어 최근에는 관련 연구가 연이으면서 율령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분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김창석의 『왕권과 법』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앞서 언급한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 법제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왕권-지배체제의 발전단계와 대응시켜 일관되게 설명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2. 책 소개

이 책은 『왕권과 법』이라는 제목과 ‘한국 고대 법제의 성립과 변천’이라는 부제를 통해 전체적인 문제의식과 차별화된 연구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선 책 제목에서 ‘왕권’과 ‘법’을 병렬한 것은 고대법의 형성과 시행에 왕권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또 반대로 고대법의 체계화 과정 속에서 왕권이 성립되었다고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또 부제에서 기존에 일반적으로 통용해온 ‘율령’이라는 용어를 대신하여 ‘법제’를 선택한 것에서는, (율령 반포 이전)한국 고대 법의 기원과 율령 반포 이후의 변화를 연속선상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전체 목차는 아래와 같다.

서론 : 동아시아 律令論에 관한 비판적 검토
제1장 고조선과 부여의 法俗
제2장 敎令法 : 삼국 초기의 법제
제3장 고구려의 王命체계와 敎·令
제4장 율령법의 기능과 성격
제5장 〈집안 고구려비〉에 나타난 守墓法의 제정과 공포
제6장 신라 중·하대 율령의 개수
제7장 復讐觀을 통해 본 고대의 법문화
결론 : 고대 법의 변천과 교령법의 의의

이 책은 저자가 한국 고대 법 문화를 주제로 2011~2018년 사이 발표한 개별 논문을 중심으로 이를 재구성·보완한 결과물이다. 우선 서론에서 이 책의 전체적인 문제의식(후술)을 밝혔다. 1장~5장은 고조선·부여에서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대 법제의 형성과 왕권-집권체제의 성장 과정을 유기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특히 4장과 5장에서는 〈중성리비〉와 〈집안비〉를 중심 자료로 삼아, 율령 반포를 전후한 시기에 구체적 법령이 한국 고대의 행정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양상을 상세히 그려내고 있다. 6장을 통해서는 율령 반포 이후 율령법의 운영과 改修에 대해 살폈으며, 여기서 신라 율령법 운영이 고려의 율령제에 미친 영향도 언급하고 있다. 7장에서는 이상에서 살핀 법제의 변화가 실제 고대인의 의식과 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탐색하였다. 결론에서는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면서 교령법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짧은 글로써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핵심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려 한다.

 

3. 문제의식과 주요 내용

(1) 연구의 발단 : ‘율령’연구의 맥락 되짚기

그동안의 연구는 대개 한국 고대의 법이 不文法(慣習法, 固有法)에서 중국의 법제인 율령을 받아들여 율령을 반포함으로서 成文法으로 전환되었다고 파악하고, 전통적인 고유법과 중국 율령을 통해 받아들인 外來法(繼受法)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여 계수법의 계통을 밝히는 것에 주목해왔다. 여기에는 고유법과 계수법을 구분하여 계수법의 계통을 찾는 일본 학계의 연구방식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 따르면, 신라 율령 자체의 성립과 체계화 과정을 내부의 논리로부터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중국 고대사회의 역사적 산물인 율령이라는 용어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를 강조하고, 한국 고대의 율령을 중국 율령 그 자체가 아닌, ‘중국식 율령의 형식을 빌려온 법체계’로 정의하였다. 이에 따르면 율령의 반포는 외래법의 유입이 아니라, 전통적 법제를 율령이라는 형식에 따라 재편한 것에 가깝다. 저자는 이처럼 한국 고대의 법제는 이전 시기의 법적 전통이 유지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확충․수정되었음을 주의해야 하며, 그 구체적인 형성·변화과정은 ‘神政法-小國法-敎令法-律令法’으로 단계화할 수 있다고 본다.

(2) 한국 고대 법제의 발전 단계 설정 : 신정법-소국법-교령법-율령법

신정법은 신정정치의 시기(청동기시대) 통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사법시스템을 의미하며, 神判法으로서 제의과정에서 시행된 처형과 사면, 주술적 처벌을 포함한다. 소국법은 소국단위의 자체규범으로서 신정법의 전통이 일부 존속하지만 俗法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소국법은 여전히 종교적이고 집단적이라는 점에서 국지성을 갖는데, 이를 일부 극복한 것이 다음 단계의 교령법이라 할 수 있다. 교령법은 부체제 아래에서 敎를 법적 효력의 근원으로 하고, 令이라고 하는 구체적 실행명령을 통해 현실에 시행되는 법제를 의미한다. 국가의 중요정책이나 대처가 諸部의 ‘共論’을 거쳐 ‘교’로 내려지는데, 집권화의 진전에 따라 敎의 주체는 점차 국왕을 단일 주체로 하게 된다. 교령법은 본질적으로는 특정사안이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표된 단행법적 성격을 가지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장기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는 것들이 있었다. 율령법은 이러한 기성의 교령과 판례들을 종합하여 사안별로 분류하고 이를 한 수준 높게 추상화·일반화시킴으로서 법률 조항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국은 중국식 율령의 형식, 즉 형률과 행정령의 구분과 같은 방식을 참고하였다. ‘杖刑’처럼 중국 율령의 구체적 내용도 일부 수용되었음이 확인되지만, 삼국이 반포한 율령의 기본은 신정법 이래의 전통적 법이었을 것이다.

(3) 한국 고대 법제의 중핵인 교령법 : ‘율령법’의 내용을 마련하고, 율령제를 보완하다

교령은 본래 중국에서 황제보다 하위의 신분·직급이 사용하던 명령방식으로, 황제의 制·詔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漢대 이후 책봉-조공관계를 맺은 주변국에 수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2세기 고구려가 먼저를 이를 수용한 후 제도화하였고 이후 내물~실성대에 신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령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체제 정치구조에 대응하는 법제로서, 諸部의 共論에 따라 내려진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동시에 교령법에 따른 조치는 각 부가 행사해온 사법권을 부정하고 강제로 집행되었다. 즉, 교령법은 부체제 시기의 법제이면서도, 각 부가 자체적으로 행사하던 사법권을 잠식하여 왕권에 집중시킴으로서 부체제를 해체하고 집권체제로 이행하는 흐름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한편 교령은 율령법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율령 반포 이후에도 계속해서 내려지면서 법적 효력을 유지하였다. 신라 중대 이후‘격·식’이 수용되기 전까지, 교령은 格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면서 율령을 보완하였고, 율령과 교령이 상치될 경우에는 교령이 우선되었다. 저자는 삼국시기에 율령이 다시 반포되지 않았던 이유를 이와 같은 율령과 교령의 상호관계에서 찾았다. 앞서 시행된 법제가 기층에서 존속하며 이후의 법제에서도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한국 고대 법제의 특징이 율령 반포 이후로도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4. 나오며

이상을 통해 『왕권과 법』의 중심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제시한 모델이 도식적이라는 평가를 제기하거나, 〈중성리비〉와 〈집안비〉의 해석과 관련하여 반론을 제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그간 다소 막연했던 한국 고대 법제의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첫 번째 시도이자, 법제의 발달과 집권체제의 정비의 긴밀한 관계를 밝힌 의욕적 저작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저자가 구상한 법제의 발전단계는 한반도 삼국에 공통되는 모델로서, 이 책의 서론에서 언급된 것처럼 중국과 일본 법제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데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의 연구사적 의의는 한국사의 범주를 넘어선다. 아울러 저자가 서론에서 그간의 율령 연구가 일본학계의 시각에 크게 의존해온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 점은, 고대사 연구에 있어‘율령’외의 분야를 연구할 때에도 경청해야할 바라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것에 그쳤다. 미처 다루지 못한 책의 나머지 내용을 비롯하여, 상세한 서평은 별고를 기약한다.

 

<미주>

주1) 율령은 전근대 중국의 법률을 통칭하는 것으로서, 이후 한국·일본·베트남 등지에 전파되어 국가통치의 기본법으로 기능했다고 일컬어진다. 일본 학계에서는 율령국가가 고대국가의 완성단계로 설정되어 있으며, ‘동아시아세계론’에서 한자, 유학, (한역)불교와 함께 동아시아세계가 공유하는 문화지표 중 하나로 지목하기도 하였다. 즉 율령을 고대국가 발전을 가늠하는 지표이자, 동아시아 세계의 범주를 설정할 수 있는 보편적 문화요소로 중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