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 참관기] 근현대사기념관 학술회의 《신간회, 식민지 조선의 ‘정치’와 운동》_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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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9월(통권 21호)

[학술회의 참관기] 

 

2021년 근현대사기념관 학술회의

《신간회, 식민지 조선의 ‘정치’와 운동》

 

김진영(근대사분과)

 

1. 들어가며

2021년 9월 3일 13시부터 18시까지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신간회, 식민지 조선의 ‘정치’와 운동”이란 주제로 2021년 근현대사기념관 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날 한국역사연구회 근대사분과 한국사회주의연구반 소속 6명의 연구자가 발표자로 나섰다. 한역연 웹진 연구반 탐방에서도 소개되었듯이, 한국사회주의연구반은 다양한 분야와 세대의 연구자가 모인 학습공동체이다. 매월 세미나 과정에서 반원은 서로의 다채로운 관점과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여기서 드러나는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한국에서의 사회주의란 거대한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같은 연구반 소속으로써 필자는 오늘 학술회의를 참관하면서, 이러한 연구반의 특색이 각 발표 주제에 잘 녹아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간회라는 통일된 구심점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각자의 전문 분야 및 관심사에 따라 식민지 조선의 ‘정치’와 운동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날 신간회의 결성에서부터 해산 그리고 구체적인 부문 운동으로써 재만동포옹호운동과 소위 ‘자매단체’로 알려진 근우회와의 관계까지 다양한 주제 및 문제의식을 포괄한 총 6편의 흥미로운 발표 및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핵심적인 주장과 그에 대한 논쟁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2. 발표 및 토론

첫 번째 발표자이신 전상숙 선생님은 “일본 정당정치기 사이토총독의 ‘문화정치’와 신간회”라는 제목의 글에서 문화정치기 합법적 정치운동단체인 신간회가 등장할 수 있었던 계기로써 정치 참여 공간의 형성 문제에 주목하여, 궁극적으로 “’일제하 식민지 조선인의 삶과 정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였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대하여 토론자인 김민철 선생님도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 식민지 조선에서 새롭게 열린 ‘정치’ 공간의 형성 배경으로 크게 민족자결주의적인 세계사적 흐름과 일본제국의 내지연장주의 대 조선특수성론으로 대표되는 정당(문관)—군벌 간 대립 구도 그리고 조선인의 운동 및 대응 양상이라는 분석을 제시하였다. 이에 근거하여 그는 크게 2가지 질문을 제기하였다. 우선 일본 정당 세력이 실제로 식민지 문제에 무관심하였는지, 그랬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었겠는지 좀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정당 세력의 이러한 현상적인 모습은 군벌과의 세력 구도상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이 그의 주장이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非군벌 출신인 하라 수상은 ‘특이’하게도 식민지 문제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이에 관한 추가 설명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역시 같은 구도에서 그는 군벌 출신 다나카 수상이 제기한 식민지의 ‘직접 관리’론은 정당 세력이 주장한 내지연장주의와 형태상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앞서 설정한 정당(문관) 대 군벌 간 이권 투쟁이란 시각이 적절한 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두 번째로 윤효정 선생님은 “신간회의 ‘민족동권’ 운동과 식민 지배 체제의 균열적 성격—재만동포옹호운동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였다. 그는 민족주의 혹은 사회주의와는 다른 민족협동전선만의 고유성에 주목하여, 이러한 사상적 지형 아래서 전개된 운동 행위의 성격에 관하여 재만동포옹호운동이라는 구체적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재만동포옹호운동은 국내 화교 배척 진정 운동을 벌이는 한편, 일본 국적법에 따른 재만 동포의 입적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 운동이 민족협동전선의 독특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제국의 법체계인 ‘민족동권’에 근거한 역발상 전략으로 식민지배체제의 균열을 초래하였다고 평가하였다.

토론자인 조한성 선생님 또한 대체로 동의하는 가운데, 크게 4가지 정도의 세부적 논의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우선 그는 재만동포옹호동맹 중앙 임원의 인적 구성 비율에 근거하여 그 주도권이 서상파에게 있었던 것으로 서술한 것에 대하여, 이것이 다른 계파와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판단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발표자가 신간회 외부에 별도로 옹호동맹이 조직된 것을 서상파와 ML파 간 대립의 산물로 이해한 점에 대하여, 그는 오히려 재만동포옹호운동이 지녔던 대중적 성격에 주목하여 신간회(서상파)가 기존까지 외곽에 존재하던 기타 세력을 통합하는 계기로 활용했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밖에도 그는 천도교청년당의 신간회 합류와 상공단체의 지방동맹 참가가 서상파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분석에 대하여 다소 일면적이라는 비판을 하였고, 서상파와 ML파의 조직 운동 방식의 차이로써 본문에서 주목한 일본의 사례에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일본에서의 재만동포옹호운동이 조선공산당 일본부의 지도 하에 있는 여러 단체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다음 세 번째 박종린 선생님은 “‘청산론’ 재고”라는 주제 하에 ‘청산론’의 역사적 정리를 위한 첫발로써, 우선 1927년 11월~1928년 1월간 안광천과 신일용을 주요 논자로 하는 지상 논쟁을 정리하였다. 이는 추후 ‘청산론’이라는 호칭 자체 뿐만 아니라 논쟁 기간의 설정, 청산론자의 범위 및 논자 간 주장의 차이 그리고 조직 이론으로서 ‘청산론’의 위상 문제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이현주 선생님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동감하면서도, 동시에 논쟁사가 지닌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과 논자 간 구체적인 인식에 관하여 여러 제언과 질문을 제공하였다. 우선 조선공산당 사회운동사를 일월회 중심으로 풀어 쓴 기사에 대하여 격한 어조로 성토하며 1927년 이전 조선의 사회운동사가 모두 ‘정치운동’이었다고 일갈하였던 권태석의 의도, 신일용이 제기한 ‘특수조선’론 및 ‘계급표지 철거’론의 적용 범위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다음으로 그는 권태석과 신일용의 관계 그리고 안광천이 호명한 상공 부르주아지의 구체적인 범위 및 그 평가 양상이 변화한 이유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을 넘어, 전체 운동론에 관한 질문도 이어졌다. 국내 운동의 방향성에 관한 서울파와 일월회 및 조선공산당 간 노선 차이가 드러난 사례로써 신일용의 중국국민혁명론 비판에 대한 안광천의 답변(대응 논리)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와, 일월회 및 조선공산당이 헤게모니 전취론을 주창한 까닭과 그것의 역사적 평가에 관한 논의가 오갔다.

중간 휴식 후 진행된 네 번째 발표에서 김정인 선생님은 “근우회와 신간회 연대의 성격 검토”라는 제목으로 기존 ‘자매단체’라는 관습적 표현으로 설명되던 근우회와 신간회의 연대 관계를 비판적으로 재고찰하였다. 그에 따르면 당시 팽배한 위계적 하향식 운동 조직 원리 탓에 양자간 민주적인 수평적 연대 문화가 부재하였고, 각 단체는 “느슨한 연대로 각립”하였다고 한다.

토론자로 나선 장원아 선생님도 “당대의 사회적 환경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어떤 젠더권력구조 속에서 어떻게 행위하는지 관심을 갖고 근우회에 대해 살폈던 입장”에서 발표자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하는 가운데,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하였다. 우선 그는 ‘자매단체’라는 표현이 등장한 시기와 호명 주체 그리고 발화의 의도에 관하여 좀 더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였다. 다음으로 그는 기독계—사회주의계 여성운동의 연대체라는 분석 구도에 내재한 이분법적 시각을 지적하며, 이런 시야로 포착하지 못하는 기타 세력의 존재와 더불어 서로 다른 두 집단이 연대할 수 있었던 조건에 관하여 주목할 것을 주문하였다. 근우회와 신간회의 물적 인적 연대 성격에 관한 질문에서도 그는 타 부문 운동과의 비교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간부 인선이나 활동 반경에 교집합이 없는 것은 오히려 전체 사회 운동을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양 단체가 느슨한 연대로 각립한 요인으로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운동문화가 부재”한 것으로 본 발표자의 주장에 대하여, 그는 연대의 수준과 연대의 조건이 미성숙한 당시 제반 상황 그리고 근우회가 주도한 별건곤 불매운동 사레에서 볼 수 있는 대등한 연대의 가능성이라는 몇 가지 층위에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다섯 번째 발표인 홍종욱 선생님의 “신간회 해소와 사회주의 운동의 민중적 전환”은 1930년대 대중 사회의 형성이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대응 양상에 관하여 “민중적 전환”이란 개념으로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기존 사회주의 운동 내부로부터 합법적 공간을 토대로 한 사회개량주의적 진출(혹은 전향)이 활성화됨에 따라, 그 대척점으로써 혁명적 투쟁 열기 또한 고조되며 상호 대립을 낳았다. 신간회 해소로부터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 운동이 겪은 방향전환 논쟁은 결국 동아시아, 더 나아가서 “대중의 진출”이란 당대의 시대적 경향과 조응하며 민중을 누가 전유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1930년대 새로이 등장한 대중 사회의 영향을 살핀 발표자의 노력에 토론자인 최규진 선생님도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거대 담론이 놓치기 쉬운 세부적 사항에 관한 약간의 첨언을 잊지 않았다. 첫째로 식민지 조선의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선진적 노동자 결집론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지 않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둘째로는 호황과 불황기 투쟁 양상 및 성격이 상이함에 착안하여, 원산 총파업과 광주학생운동 같은 대투쟁 후에 전개되는 운동 정세의 변화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셋째는 계급연합조직으로서 신간회의 의의 및 한계가 명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음 넷째로 공장위원회 그리고 파업위원회의 성격과 평가에 있어 모순을 지적하였다. 즉 이들 조직이 “개량주의와 혁명주의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평가는 실제 위원회의 설립 취지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의 反개량주의적 지향이라는 본문의 서술과도 배치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자에게 있어 민족해방운동이 갖는 의미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1930년 전후 합법적 정치운동의 퇴조와 신간회를 둘러싼 민족주의 세력의 동향”이란 주제로 윤덕영 선생님의 발표가 있었다. 그는 합법적 운동 경향과 타협적 자치 운동을 동일시하는 기존 견해에 대하여, 신간회 주도 세력이 스스로 비타협—좌익민족전선을 견지했음에도 합법적인 표면대중운동단체를 표방한 점에 착안하여 합법 공간에서도 비타협적 투쟁이 전개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당시 민족주의 운동의 전개 양상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연구적 성과를 인정하는 가운데, 토론자인 성주현 선생님은 일부 세부적 사항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첫째는 1930년대 전후 민족주의 계열의 합법적 정치 운동이 퇴조한 것과 관련하여, 식민지 조선의 지방제도 개정 그리고 일본 제2차 중의원 보통선거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는지에 관한 점이었다. 둘째로는 사이토 총독이 식민지 조선에서 참정권을 실현시키고자 애쓴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셋째로 일본 무산정당 운동이 사회주의 및 민족주의 계열에 미친 영향을 질문하였다. 넷째는 천도교 내부의 분열 요인에 관하여 박인호의 인정을 둘러 싼 교리적 측면의 투쟁과 함께, 운동적 측면에서 자치 운동의 문제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 점에서 최린이 언급한 ‘실제 운동’의 함의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친일과 반일의 구도를 넘어, 발표자가 생각하는 자치 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평가는 무엇인지 질문하였다.

 

3. 종합토론

학술회의 말미에는 신간회 식민지 조선에서 발견되는 ‘정치’와 운동의 상호관계 그리고 개념 문제에 천착하여 종합토론이 진행되었다. 좌장인 임경석 선생님의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는 학술대회의 주제 중 하나였던 ‘정치’의 개념과 이로부터 ‘정치’(운동)단체로서 신간회를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다뤄졌다. 우선 임경석 선생님은 오늘 발표에서 언급된 ‘정치’란 용례는 1937년부터 1931년 사이 식민지 조선이라고 하는 한정된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식민지 통치 권력에 합법적으로 참여하여 그 권력의 일부를 향유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관하여 전상숙 선생님은 사전적 혹은 정치학적 개념으로써의 정치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로, 합법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 조선인의 포괄적인 권리 행사 행위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런 역사상은 도부면협의회로 진출하려는 당대 의회주의 전술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는 임경석 선생님의 지적에 대하여 윤덕영, 박종린 선생님은 이견을 제시하였다. 우선 윤덕영 선생님은 신간회 주도 세력이 지방의회가 자신들의 요구사항과 달리 형식적 기구로 설치되자 곧 무관심해졌다고 주장하였다. 토론 말미에 그는 지방의회와 같은 합법 조직을 대신하여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 바로 신간회였다고 부연 설명하였다. 박종린 선생님 역시 당시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자 내부에서도 ‘정치’(운동)에 관하여 수많은 이견이 존재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에서 신간회를 당적 형태로 개조하여 대중 운동을 조직한다고 하는 일본식 무산정당운동류의 ‘정치’(운동)은 모색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하였다.

다음으로 ‘정치’(운동)단체로서 신간회의 성격에 관하여 토론이 이어졌다. 우선 홍종욱 선생님은 식민지 시기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열망을 대변하던 단체 혹은 그러한 운동의 정점에 신간회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일본제국과 식민지 조선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부르주아 의회주의는 파쇼적 권위주의 체제의 대두에 따라 도전을 받게 되었고, 이러한 시대적 대세에 따라 신간회 운동도 자연스레 쇠퇴하고 사회 모순의 해결을 식민권력에 의존하는 형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토론자였던 김민철 선생님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식민지 시기 합법적인 열린 공간의 최대치이지 임계점이 신간회였다고 보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신간회 조직을 여기에 참여한 각 정파 세력이 어떻게 활용하였는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윤효정 선생님은 당시 민중이 추구하던 권리 획득 운동의 민족통일전선적 집행기구로써 신간회를 정의하고, 신간회 운동의 결과 과거 일진회식의 친일적인 체제 내화 경향이 일정 수준 방지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4. 나가며

이날 발표와 토론은 식민지 시기 정치와 운동에 관하여 신간회의 결성에서부터 활동 그리고 해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에 입각한 논의를 다루었다. 이로써 식민지 시기 ‘정치'(운동)의 함의와 ‘정치’(운동)단체로서 신간회 활동의 역사적 재평가라고 하는 기획의 의의가 잘 드러날 수 있었다. 물론 이번 학술회의에서 식민지 시기 ‘정치’와 신간회의 성격에 관하여 완전한 합의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에 관한 추후 논의의 기반이 될 공통의 역사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써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