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에서 일본까지, 음악으로 소통한 한국 고대 사회를 복원하다_임평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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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9월(통권 21호)

[서평] 

 

서역에서 일본까지, 음악으로 소통한 한국 고대 사회를 복원하다.

(전덕재 지음, 『한국 고대 음악과 고려악』, 학연문화사, 2020)

 

임평섭(고대사분과)

 

1. 고대 한국인과 일본인은 어떤 음악을 즐겼을까?

2018년 동남아시아를 답사하며 1년간 현지에서 체류하였다. 이 시간은 내게 신선한 문화충격을 안겨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의 모나스 광장을 걷던 중,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봤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 소녀는 자신이 BTS의 팬이고, 한국인을 만난 것이 기쁘다며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은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비행기 연착으로 밤샌 일이 있었다.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한국어로 적힌 피켓과 선물 꾸러미를 들고 밤새 왔다 갔다 하는 광경을 봤다. 알고 보니 콘서트 일정으로 태국을 방문한 슈퍼주니어를 보러 온 팬들이었다.

상기의 내용은 외국에서 한국 문화의 파급력에 자긍심을 느꼈다는 애국적인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외국인이 한국의 음악과 문화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희로애락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저 먼 고대 시기에 살았던 이들은 어떤 음악을 즐겼을까? 그리고 고대인들의 삶에서 음악이란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었을까? 클릭 한 번으로 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쉽게 즐기는 지금과는 달리 1,500년 전의 고대 사회를 상상해보면 문화 교류나 전파가 제한적이며 매우 더디었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곤 한다. 과연 고대 사회는 닫힌 세계였을까?

2020년 11월에 발간한 『한국 고대 음악과 고려악』은 위의 의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제공한다. 이 책의 내용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한국 고대국가의 음악에 대하여 다루었고, 2부는 한국 고대의 음악이 일본에 전래되어 정립한 ‘고려악’에 대해 탐구하였다. 저자 스스로 ‘음악에는 숙맥’이라는 고백으로 시작한 한국 고대의 음악 연구는 한국과 중국을 넘어 서역, 마지막으로 일본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9세기 후반에 정립된 ‘향악(鄕樂)’이 고려, 조선을 거쳐 근대에 이르러 ‘국악(國樂)’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방대함을 세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해당 저서가 가지는 특징과 주목해서 살펴볼 내용,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성과를 밝히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2.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한국과 일본의 고대 음악을 탐구하다.

『한국 고대 음악과 고려악』이 가지는 가장 큰 성과는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고대 음악 연구라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고대 음악 연구는 역사학계의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주제였다. 관련 주제로 출판된 단행본의 저자들이 대다수 음악학을 전공했다는 점 또한 역사학계의 무관심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학자에 의해 출간된 한국 고대 음악사는 매우 반가운 연구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한국 고대의 음악을 복원하고, 우리 음악의 원류를 추적하는 여정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문헌자료의 적절한 활용과 합리적인 해석을 토대로 한국과 일본의 고대 음악을 정교하게 복원하였다. 가령 대가야 음악에 대한 기존의 음악사 연구는 주로 ‘가야금’이라는 악기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였다면, 이 책은 가야금과 관련한 사료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음악을 매개로 한 고대인들의 일상을 보다 정교하게 복원해 내는 원천이 되었다. 또한 일본의 고려악을 분석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출간된 일본의 악서(樂書)를 전부 검토하면서 합리적인 해석을 도출하고 있다. 한국에서 입수하기 어려운 고문서들을 구하고, 이것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비교 대조하는 작업은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무척이나 지난한 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저자의 꼼꼼함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책이 가지는 또 다른 의의는 삼국과 발해의 음악에 대한 균형 있는 복원을 시도한 점이다. 이는 한국 고대 음악 관련 사료가 매우 영성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 악지를 보면 대다수가 신라음악과 관련하지만, 이조차도 단편적인 내용만을 전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 음악의 경우는 그 내용이 더욱 부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삼국사기』, 『고려사』, 중국사서, 『일본서기』, 『속일본기』 등 문헌자료에 더해 고구려 고분벽화, 악곡 관련 기록, 개인 문집 등 풍부한 자료에 기반한 대안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고대 음악을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며 부족한 내용을 메우기 위한 저자의 주도면밀한 연구가 살펴진다.

3. 음악을 매개로 개방적이며 역동적인 고대 사회를 그려내다.

그림 1. 서역계 인물이 다수 등장하는 장천1호분의 백희기악도(百戱伎樂圖)

『한국 고대 음악과 고려악』의 내용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한국과 일본 고대 음악에 끼친 서역 음악의 영향을 강조한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백희잡기와 신라의 향악, 그리고 일본의 고려악에 반영된 서역 음악의 직⋅간접적인 영향은 고대 사회의 개방성과 함께 다양한 문화권 간 교류를 보여준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코가 높다란(高鼻) 서역계 인물들이 백희잡기를 공연하며 유랑생활을 했다고 해석한 부분(51쪽)은 역동적인 고대 사회를 상상하게끔 한다. 또한 삼국이 동일한 서역 문화를 수용했지만, 고구려의 박견(狛犬)과 신라의 신라박(新羅狛)과 같이 변용된 측면 또한 있다는 점은 저자의 역사문화론적 시각을 잘 보여준다. 기존에 한국고대사 연구는 삼국의 문화에 영향을 미친 중국 문화를 강조하는 데 반해, 서역 문화의 전파나 중국 문화에 내재한 서역 문화의 영향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진 측면이 있었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 중국의 고대 음악을 검토하면서 서역 문화의 수용과 함께 각국의 사정에 맞게끔 변용한 측면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고대사학계에 신선한 문제의식을 던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림 2. 『삼국사기』 「잡지」 중 ‘향악(鄕樂)’
그림 3. 향악을 계승한 고려시대 ‘속악(俗樂)’(『고려사』 「악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향악(鄕樂)’의 정립과 계승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신라의 삼국 통일 이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이 개별적으로 음악을 향유했지만 통일 이후에는 향악이란 범주로 통합 정리되었다. 9세기 경에 정립한 향악은 고려, 조선에도 계승되어 우리의 음악으로 간주하였다. 이후 향악은 근대기에 유입된 서양음악에 대비된 국악(國樂)으로 정리되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음악’인 국악이 고대 시기의 음악에 원류를 두고 있음을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분석이다. 이것은 한국 고대 음악이 외국의 음악과 융합되고 또다시 우리의 음악을 창출해내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저자는 고대 사회가 외부 문화를 수용하면서 변용과 통합을 끊임없이 이루어내는 역동적인 곳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림 4. 고려악 중 신말갈(新靺鞨; 발해악)
그림 5. 신라에서 전래된 사자춤, 신라박(新羅狛)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한국 고대 음악의 복원과 함께 중요한 한 축인 고려악 연구는 상당히 흥미롭다. 저자가 본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고려악은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진행되어 있지 않은 주제 중 하나이다(26쪽). 이를 고려하여 본서의 1부에서는 삼국과 발해의 음악을 복원하고, 2부에서는 한국 고대의 음악이 일본에 전파되어 고려악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고려악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한국 고대 음악이 일본 문화에 끼친 ‘우수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문화 전파의 측면에 주목한 점이 돋보인다. 삼국과 발해의 음악이 일본의 고대 음악에 수용되었지만, 이것이 그대로 활용된 것이 아니라 일본 고유의 풍토에 맞춰 변용되었다는 사실은 일방적인 문화 수용을 강조하던 기존의 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

4. 고대 사회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살아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 음악의 원류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이를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고대 음악을 집요하게 탐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가 소통하는 고대 사회를 복원하였다. 고대 사회는 ‘외국 문화를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적인 닫힌 세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해 ‘우리 것’으로 녹여내는 열린 세계라는 점이 이 책에서 밝힌 중요한 메시지다. 저자의 이와 같은 시각은 서역, 중국, 동남아, 일본 등 다양한 집단과 교류를 주고받으며 정립된 한국 음악의 원류를 강조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다시 말해,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함께 공존하고 마주한 고대 사회가 지금만큼이나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였던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사회의 진통과 난민 문제로 논쟁이 치열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고대 사회로부터 전달된 저자의 메시지는 아직도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