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 참관기] 제2회 저작비평회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_김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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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9월(통권 21호)

[학술회의 참관기] 

 

식민주의와 능력주의의 교차점에 관한 논의

–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저작비평회에 관한 단상 –

 

김헌주(근대사분과)

 

 

일시 : 2021년 7월 15일(목) 15:00 ~ 18:00
장소 : 비대면 진행(ZOOM)

처음 이 저작을 접하고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 농정에 관한 일련의 연구를 진행했고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최일선에 서 있었던 저자의 연구 이력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상업학교의 민족차별을 분석한 이 연구가 약간은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왜 학교, 민족차별의 키워드에 주목했는지 궁금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근대사 연구 필드에 있으면서도 저자가 최근에 지속적으로 강경상업학교 학적부 분석을 통한 일련의 연구논문을 발표한 사실을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해당 연구의 궤적을 이해했고, 이 연구가 기존의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연장선상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먼저 필자의 변을 들어보자. 저자인 정연태 교수는 당일에 본 저작을 쓴 계기와 핵심 내용을 요약한 발제문을 써왔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식민지 민족차별 문제의 중요성에 비해 체계적인 연구성과가 저조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민족적 정서에 안주해 민족차별은 당연한 현상으로 간주했고, 그 현상을 객관적으로 해부하고 체계적으로 구성하려는 노력은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점을 1990년대 말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 참여한 이후에 자각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정치적인 민주화를 넘어 일상의 민주화를 지향하는 현대 한국사회의 차별 문제를 성찰하는 의미도 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식민지 민족차별을 법적·구조적·관행적 세 층위로 유형화했는데, 이 세 차별이 상호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지지·강화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본서의 핵심축이다. 예컨대 민족차별의 토대인 민족 간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따른 위계관계와 민족차별 의식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 구조 위에서는 법적 민족차별에 대한 개선이 있더라도 민족차별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구조를 다음과 같이 유형화했다.

상기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자료로 일제시대 중등 상업학교인 강경상업학교의 학적부와 동창회 명부, 졸업생 면담 구술자료 등을 활용했다. 토론자 이경숙 교수의 표현대로 “강경상업학교 학생 1,489명의 학적부 한 장 한 장을 뒤적이고 그 속에 담긴 수많은 기재사항들을 분류하고 통계처리하면서 사항들 간에 상호연관지어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 전모를 밝힌” 점은 본 저작의 중요한 성과라고 하겠다.

결론에서는 식민지 민족차별 문제 성찰에서 오늘날의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차별문제를 극복하자고 제언한다. 차별적 법제를 철폐하고,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위계관계를 개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차별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과 생활 세계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차별적인 의식·관행과 문화풍토 자체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에서도 풍부한 논의가 이어졌다. 먼저 한국 근현대 민족운동사와 일제시대 교육사에 관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김정인 교수는 주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 저작을 비평했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

우선 ‘민족차별’이 ‘차별’의 한 부분임을 전제했다. 차별은 인종, 성, 지역, 학력 등 다양한 요소로 구분되는데 민족차별은 인종 차별에 포함되는 범주라고 보았다. 그런 차원에서 조선인 엘리트 학생이 민족 차별의식을 가졌지만, 반차별의식까지 보유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식민지 조선의 학생들이 성차별과 임금차별에서 어떤 인식을 가졌는가란 의문이다. 예컨대 3.1운동에 당시 경신학교 3학년이었던 조용석은 신문조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선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다. 또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의 대우에 차이가 있다. 또 일본 사람과 조선 사람이 받고 있는 교육의 정도에도 차별이 있다. 이와 같은 것을 항상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독립을 하면 그런 불만이 없어질 것이므로 독립을 희망하는 것이다.”

요컨대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로서의 조선인 학생의 의식이 반차별과 평등에 이르렀다기보다는 민족의식에 경도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저자가 결론에서 제시한 식민지 민족차별에서 나아가 소수자 일반까지 성찰하자는 결론에 대한 강하게 동의한다는 언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 저작 전반에 강하게 흐르고 있는 ‘민족차별의 강조’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식민지기 민족차별 문제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해자의 차별의식이 아니라 차별의 피해자로서 한국인에게는 어떤 ‘트라우마’가 남았는가”에 주목하고 이것을 탐색한 이후에야 진정한 성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피해자 의식’에 대한 분석과 치유가 필요하며, 그 토대 위에서 식민지시기 민족차별에 관한 연구는 보편가치 지향의 과거사 ‘극복’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다음으로 일제시기 교육사 전공자인 이경숙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해당 주제를 오랫동안 천착한 저자답게 각론에서 많은 논의지점이 있었다. 우선 민족차별의 대상으로서 학교의 한계점에 대해 지적했다. 요컨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민족차별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고, 학생들이 일본인보다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차별받는 그 구조를 능력주의로 치환할 가능성도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학교 교육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역사학과 교육학의 차이를 논하고 교육학적 관점에서의 학교 분석 방법론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식민지 학교 교육의 목적(예컨대 동화), 학적부의 목적과 해석, 교사와 학생 및 학부모 등 다양한 주체의 기록물 등 분석(학생의 대응 전략, 학교를 출세의 장, 강상규의 이중적 불온)을 통해 현재 학교의 문제까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세 번째는 성적과 학생들의 동기인데,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학업 동기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요컨대 일본인의 교육은 출세가 보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선인 학생과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제시한 법적·구조적·관행적 민족차별에 대한 부분이다. 이 세 가지는 보편적 특성인가 그렇지 않으면 일제식민지만의 특성인가에 대한 의문, 구조적 차별과 법적·관행적 차별 구분의 모호성 문제, 관행적 민족차별에서 관행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점을 제시했다.

저자는 두 토론자의 질문들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답변했는데, 지면 관계상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대신 사회자이자 참관자의 입장에서 몇 가지 감상을 남긴다. 우선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학적부 자료에 대한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토론자인 이경숙 교수의 첨언이었다. 사실 식민지 시기 교육사 및 학교 관련 자료에는 무지했기 때문인지 해당 자료가 가지는 무게, 좀 더 쉽게 말하면 1,489명의 학적부를 분석했다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발표자와 토론자의 자료에 관한 상세한 분석과 심도 있는 논의를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학적부 실물 자료를 화면으로 보여주고 학적부 기재 형식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토론자가 그 부분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던 장면은 역사학의 정체성이 ‘사료’에 있다는 당연한 명제를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또 주목할 부분은 민족차별을 당한 한국인 학생들의 엘리트성/능력주의에 관한 논의였다. 주로 김정인 교수의 첫 번째 토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 부분이었지만 발표자와 두 토론자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비평회가 끝나고 참관기를 쓰는 과정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나는 이 질문이 바로 한국의 ‘장기 식민지 근대’를 관통하는 핵심 의제라고 느꼈다. 현재 한국사회의 핵심 의제 중 하나가 바로 능력주의이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한국의 사회적 에너지는 자식들을 ‘스카이 캐슬’에 진입시키는데 집중되었다. 그 결과 일면 평등해보이는 ‘시험공화국’이 되었지만 동시에 고위공직자의 각종 입시비리가 대두되면서 ‘공정하지 못한’ 사회를 비판하는 공정 담론이 화두가 되었고, 그 속에서 능력주의가 대두되었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각 주체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한 순수한 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힘들다는 비판적 의미로 창안된 개념이지만 한국에서는 문자 그대로 해석되곤 한다. 그리고 부모세대처럼 자산을 축적하기 힘들어진 저성장 시대의 청년들이 유일하게 남은 성취인 학벌(학력)을 전리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이 상황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비평회에서 나온 차별 전반에 대한 성찰과 극복의 과정은 지난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 저작은 아직 진행형이다. 민족차별을 넘어 현실의 차별을 극복하자는 저작의 결론은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할 과제를 던져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