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략적 글쓰기_옥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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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8월(통권 20호)

[서평] 

 

‘평화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략적 글쓰기

(김태우 지음, 『냉전의 마녀들: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창비, 2021)

 

옥창준(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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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방탄소년단이 코리안소사이어티의 밴플리트(Van Fleet)상을 수상했다. 음악과 메시지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키고 한국-미국 관계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상 소감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연결과 연대의 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리더 RM은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our two nations)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이 말한 이 연결의 힘은 현실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RM의 한 마디가 동아시아에서 일대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이 ‘양국’이라는 표현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의 희생을 무시한 발언이라는 이유로 분노를 표현했으며, 팬클럽 탈퇴와 방탄소년단을 광고 모델로 한 한국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처럼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 ‘항미원조전쟁(抗米援朝戰爭)’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은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었다. 이 사건은 중국 외교부 대변인까지 개입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종식된 지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동아시아에서 냉전적 인식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RM의 발언을 처음 접한 필자는 발언의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한국-미국 양국만의 경험으로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것은 방탄소년단(그리고 한국전쟁)의 세계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된 중국의 일부 네티즌(網紅)들의 비판 역시 또 다른 자국 중심주의라는 점에서 아쉽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는 냉전사 연구가 냉전의 해체 이후 30년 간 꾸준히 축적되어 왔지만 현실에서 과연 무엇이 얼마나 변했는가라는 자괴감으로도 이어졌다. 최근의 냉전사 연구는 냉전적 패러다임을 넘어서 냉전의 다양한 실제 모습에 천착한다. ‘냉전’의 서사를 정당화하기보다는, 냉전을 하나의 역사적 시대로 보고 냉전기에 이루어진 다양한 현상들에 있는 그대로 접근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중 경쟁과 갈등,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여전히 남아있는 냉전적 유산으로 인해 냉전사 연구의 축적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차원에서 ‘냉전적’ 인식은 여전히 강고하게 자리한다. 냉전사가 단순히 학계의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그치지 않고, 대중적 차원의 인식 지평을 넓혀나가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교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태우의 신간 『냉전의 마녀들: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은 냉전사 연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냉전사 연구의 성과와 문제의식을 담아낸 학술서는 많았지만, 이를 서사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책은 거의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소개 글에서 저자는 “미래 한반도 거주민들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학의 내용과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다고 적었다.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매우 훌륭하게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제시해냈다.

이미 저자는 전작인 『폭격: 미공군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2013)을 통해서 기존의 냉전적 패러다임에서는 잘 포착되지 않았던 미군의 폭격 문제를 전면화했다. 냉전적 연구지형에서 볼 때 다소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는’ 주제 선정이라 할 수 있었다. 『폭격』처럼 선을 넘는 연구들이 축적되면서 냉전사/한국전쟁사 연구는 더 풍성해질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전쟁의 기원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냉전의 마녀들』은 한국전쟁기의 국제민주여성연맹(Women’s International Democratic Federation, 이하 ‘국제여맹’)으로 대표되는 여성주의 평화운동의 활동을 다룬다. 이를 통해 저자는 냉전이 열전으로 격화되었던 한국전쟁기에도 평화를 향한 연결과 연대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주제의 새로움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더 주목하고자 하는 건 저자의 ‘전략적’인 글쓰기 방식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냉전사/한국전쟁사를 ‘평화사’로 전환하기 위해 중층적이면서 전략적인 글쓰기를 책 전반에 매우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우선 제목을 보자. ‘냉전의 마녀들’은 당시에 국제여맹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기보다는, 현재의 독자들을 겨냥한 영리한 제목 선정이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책이 냉전의 이념 지형에서 ‘마녀’로 낙인찍혀버린 인사들의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마녀들’은 바로 1951년 한반도로 온 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이다.

국제여맹 조사위원회는 한국전쟁기 북한 지역을 조사했던 최초의 외부 조사단이라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 조직 구성과 내용 등이 학계와 대중에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이들의 조사 결과가 『우리는 고발한다』(We Accuse)라는 소책자로 다양한 언어로 발간되었지만, 이 보고서의 내용은 소련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여성단체의 정치선전물 취급을 당하면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8-9쪽). 저자 자신도 약 20년 전 이 보고서를 처음 접했지만, 당시에는 굳이 이 보고서를 ‘학문적’으로 검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9쪽).

잊혀진 자료를 새롭게 읽어낼 수 있었던 저자의 지적 동력은 2010년 이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해외 여성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된 국제여맹에 대한 역사적 연구들을 통해서였다. 이들 연구들은 국제여맹을 냉전과 이데올로기의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고, 역사의 시각으로 차분히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친소련이나 친공적이냐는 정치적인 혹은 이데올로기의 평가를 넘어서, 국제여맹의 실제 활동의 다양성에 주목했다(13쪽).

1945년 11월 창설된 국제여맹은 제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었다. 전쟁과 파시즘이 여성과 아이들의 일상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하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여성들이 평화와 반파시즘을 열망하기 시작한 것이다(56쪽).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국제여맹은 진보적 좌파 여성주의에 공명하는 단체들을 전반적으로 아우르고 연결하는 상위의 우산 조직으로 자리매김한다(58쪽). 이 조직 안에서 반파시즘, 반식민주의, 반인종주의 등의 진보적 의제가 활발히 논의되었다. 이는 기존 자유주의 여성운동이나 사회주의 여성운동에서 잘 논의되지 않던 새로운 의제였다(60쪽).

특히 국제여맹의 활동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반식민주의 활동이었다. 국제여맹 활동가들은 유럽의 반파시즘과 아시아-아프리카의 반식민주의가 서로 연결된 문제라고 보았다. 그렇기에 국제여맹은 식민지 여성들의 반식민주의 운동과 연대하고, 이들에 대한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전쟁 조사위원회의 파견 이전에도 1946년 남아메리카에서의 여성의 삶을 조사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에 조사단을 파견했고, 1947년에는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의 식민통치 하의 동남아시아 지역의 여성들의 삶을 조사하기 위한 진상조사단을 꾸리기도 했다(68-69쪽). 이처럼 국제여맹은 소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었다(69쪽). 오히려 1951년 국제여맹이 본부를 프랑스 파리에서 동독의 베를린으로 옮기게 된 연유 역시 프랑스의 베트남 침공을 강하게 비판하는 반전, 반식민주의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이었다(71쪽).

이와 같은 해외 역사학계의 성과에 기초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운다. 국제여맹 조사위원회가 공산당의 지도를 받는 일괴암(monolith)적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배경을 지닌 여성들로 구성되었다면 이들은 현지 조사 중에서 당연히 여러 차례 내부 논쟁을 거쳤을 것이며, 『우리는 고발한다』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적 기록과 후일담을 남겨두었을 것이라 추측했다(14쪽). 이 작업가설은 『냉전의 마녀들』의 주된 서사로 자리매김한다.

먼저 저자는 ‘마녀’들이 모두 공산주의자(마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노동당 활동가 모니카 펠턴(Monica Felton)과 덴마크의 보수주의자이자 끝까지 조사위원단 내에서 ‘독립적 참관인’ 지위를 고집했던 카테 플레론(Kate Fleron)을 『냉전의 마녀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로 배치하는 것은 저자의 전략상 자연스러운 포석이다.

특히 모니카 펠턴의 한반도행을 두고 저자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다. 그녀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냉전이 격화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회의 진보적 변화가 역행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30쪽). 펠턴은 그 이전에 국제여맹 영국 지부와 전혀 관련이 없었지만, 국내의 사회보장 계획을 퇴보시키고 영국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며 국방비를 증액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반도를 직접 가보고자 했다. 즉 이는 아시아 여성에 대한 개인적인 동정심, 인류애적 평화의식, 혹은 친소련, 친공산주의적 성향에서 나온 것이 아닌 노동당원으로서의 책무 의식에 기초했다(36쪽).

이처럼 모니카 펠턴은 친소련적, 친공산주의 활동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펠턴의 시선은 묘하게 저자의 시선과 포개진다. 한반도로 가기 전 조사위원단이 소련의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펠턴은 모스크바를 모든 사람이 웃고 있는 ‘뚜렷한 행복의 도시’라 기록했다(101쪽). 이와 같은 기록에 대해 저자는 최근의 소련문화사 연구를 제시하면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의식적으로 소비에트식 웃음을 민중에게 의식적으로 전파하고 했다는 사실을 전한다(107쪽). 그리고 펠턴 역시도 공산주의 국가의 길들이기와 세뇌 등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대목을 추후 서술한다(113쪽).

펠턴이 한국전쟁의 진실을 백지 상태에서부터 추적해올라가야 한다고 보았다면, 사회주의 진영에서 온 조사위원들은 한국전쟁의 진실은 침략 세력인 미군의 잔인성을 폭로하는 데 있다고 보고 있었다. 진실을 이처럼 서로 다르게 보고 있었던 두 진영은 한반도로 입국하기 전 노라 로드(Nora Rodd)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전면적으로 충돌했다. 캐나다공산당원 출신이었던 노라 로드 위원장이 중국에서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의 행위를 폭로하기 위해 한반도로 간다”고 발언했는데, 모니카 펠턴과 카테 플레론이 이는 위원장 개인의 입장이지, 조사위원단 전체의 입장인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면서 위원장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114쪽). 소련의 마리아 옵샨니코바(Maria Ovsyannikova)는 이와 같은 행보를 두고 한반도와 아시아 여성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비판했다(116쪽). 한반도로 들어가기 전에 국제여맹 조사위원회는 “서로를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낯선 이방인들의 집합소”에 불과했다(122쪽).

이처럼 다양한 국적과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지닌 인사들이 보고서를 함께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마주한 북한 지역의 처참한 현실 때문이었다. 즉 정치적 입장의 다양성은 그런 의미에서 처참한 현실의 무게를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된다. 저자는 『우리는 고발한다』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과연 정치적 선전물에 불과한 것인지, 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를 세밀하게 검증하는 글쓰기 전략을 취한다.

조사위원단의 첫 방문지는 중국에 접경한 북한의 도시 신의주였다. 특히 신의주를 처참히 파괴한 것은 1950년 11월 8일 밤부터 진행된 미공군의 공중 폭격이었다. 이는 당대 미공군 문서를 통해서도 교차 검증이 되는 내용이다. 1950년 11월 이전까지 미국은 세계의 평화 여론을 의식하며 인구 밀집 지역을 향한 무차별 폭격을 수행하지 않았다(138-139쪽). 그러나 1950년 중국인민지원군의 참전 이후 전세가 변화하면서 미공군은 전략을 바꾸어 무차별 폭격을 감행한다(140쪽). 그 결과 신의주는 처참히 파괴되었고, 이쪽보다 나은 저쪽이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신의주는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148쪽).

이후 조사위원단은 4개조로 흩어졌다. 한정된 시간 내에 더 넓은 지역을 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들은 보고서의 신뢰성을 위해 특정 지역의 현장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만 해당 지역 보고서 집필에 관여할 수 있다는 원칙을 도출해낸다(191쪽). 여러 조로 나뉘어진 ‘조사위원’들이 수집하고 정리한 정보로 ‘조사위원단’의 공식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조사위원들이 보고서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모니카 펠턴과 그 일행의 행선지는 황해도의 안악과 신천이었다. 이들은 여기에서 학살을 눈으로 확인하고 여러 증언을 청취했지만, 조사위원들이 혼란을 느낀 것은 바로 가해 주체의 문제였다. 조사위원들이 만나서 청취한 모든 증언들이 학살과 가혹행위의 주체로 미군만을 지칭하고 있었던 것이다(204쪽). 조사위원들이 귀를 기울였던 현지의 증언은 학살 가해자로서 황해도에 뿌리를 둔 우익치안대의 존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205쪽). 심지어 황해도 출신 월남 피란민도 모두 언급하고 있는 우익치안대를 누락했다는 점은 조사단의 활동의 정치성을 의심할 수 있게 하는 사례였다.

조사위원들은 구술 증언의 약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사위원들은 사전 선발된 면담 대기자의 증언을 지속적으로 검증하고자 했다(216쪽). 조사 기간 내내 줄곧 펠턴은 너무 분명하고 논리적인 목소리 큰 여성보다, 무리 주변에서 겉돌고 있는 노인, 어린이, 목 놓아 울기만 하는 젊은 여성 등과의 인터뷰를 선호했다. 이렇게 수집된 처참한 증언과 내용이 공식 보고서인 『우리는 고발한다』에 수록된다.

그러나 펠턴은 자신의 개인 출간물인 『내가 그곳에 간 이유』(That’s Why I Went, 1953)에서 학살 장면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피했다. 저자는 이 장면을 펠턴이 영국 독자들이 글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서술을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220-221쪽). 이렇게 증언의 신뢰성 그리고 독자들이 이 증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세심하게 신경쓰던 펠턴은 그렇다면 왜 우익치안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저자는 증언자들이 우익치안대의 존재를 조사위원들에게 알렸으나, 중간에서 통역자가 정보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논한다(228쪽). 무작위로 선정되는 구술자를 통제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중간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통역자를 통제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이다(234쪽). 저자의 심증은 『우리는 고발한다』와 보고서 조선어판과의 비교를 통해서 좀 더 구체화된다. 북한 정권은 보고서를 조선어로 번역하면서, 의도적인 누락과 오역, 내용 추가를 통해 보고서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조해나갔다. 북한은 외부 세력인 미군의 가학성을 강조하고자 했으며, 내부의 적인 우익치안대의 존재를 은폐하고자 했다. 북한 출신 청년들이 우익치안대를 조직하여 정권에 반대하며 학살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대내외적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지는 일은 북한 정권 입장에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240쪽). 즉 다국적 조사위원들의 세심한 조사, 그리고 조사위원들을 믿고 발화해준 증인들의 발언은 ‘통역’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사실이 조사위원단이 『우리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발간한 최종보고서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었다. 보고서의 발간 직후 이를 둘러싼 논쟁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철저한 외면만이 남았다. 보고서에 담긴 여성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되고, 보고서를 작성한 조사위원들은 노골적으로 탄압을 받았다(295쪽). 미 국무부는 이 보고서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고 국제여맹을 그저 공산당 전선 조직이라고 낙인찍는 전략을 취했다. 이 낙인은 냉전적 진영 논리 속에서 강력한 힘을 지녔다. 국제여맹은 한반도에 조사위원회를 보낸 것이 결정적인 문제가 되어 국제연합 내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후 개인적인 차원에서 고통을 엮은 조사위원들도 많았다.

일례로 모니카 펠턴 역시 귀국 일정이 지체됨에 따라 청문회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직위에서 해제되고 말았다. 직위 해제 이후 펠턴은 “국외의 적과 내통하고 적의 선전 캠페인을 국내에 확산시켰다”는 이유로 처벌되어야 한다는 여론에 직면했다(302쪽). 결국 펠턴은 자의반 타의반 영국을 떠나 인도의 마드라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드라스로 간 펠턴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인도 평화운동가와 여성운동가의 전기를 집필해나갔다(305쪽). 타협할 수 없는 ‘진실’을 알고 있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조사위원들은 개인적 저항을 지속해나갔다(316쪽). 조사단의 활동은 끝이 났지만, 이제 개인의 자격으로 돌아간 조사위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전쟁에서 시체가 매일 쌓여나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정당한 전쟁이라도 이렇게까지 모든 도시와 농촌을 불사르고 군사적 목표로 간주하기 어려운 지역까지 폭탄을 투하하는 일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독립적 참관인이었던 카테 플레론도 귀국 후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다. “침략자는 처벌받아야 한다는 완벽한 정의뿐만 아니라 전쟁의 지속과 형식에 대해서도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318쪽). 저자가 카테 플레론의 행적을 추적하며 당대 덴마크 언론에서 발굴해낸 이 글은 조사위원들이 냉전적 패러다임에 구속되지 않고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을 간명하게 집약한다.

저자는 미국의 중국사 연구자인 레이 황(Ray Huang)과 조너선 스펜스(Jonathan D. Spence)와 같은 글쓰기의 모험을 시도했다고 밝히고 있다(19쪽). 그러나 이 모험은 아무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역사소설이었다면 전체 서사를 짠 후, 전문가의 감수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소설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 이는 1차 자료를 꼼꼼하게 읽고 그 자료의 서사를 저자 자신이 정리하고, 매우 세심한 전략적 의도 아래 재배치한 형태이다. 당연히 상당한 품과 공력이 들었을 것이다. 저자 자신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대화가 ‘1차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21쪽)

하지만 이제 누군가가 『냉전의 마녀들』을 전범(典範)으로 삼은 글쓰기에 도전해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노력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 언급했던 RM의 말을 다시 빌려본다. 국제여맹 조사위원단이 한반도를 방문한지 딱 70년이 지난 2021년, 우리 앞에 등장한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이면에 감추어져 있던 고통의 역사와 희생된 수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치열하게 ‘기록’했던 연결과 연대의 힘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