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 참관기] 동학농민전쟁의 민족운동사적 성격 검토_윤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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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6월(통권 18호)

[학술회의 참관기]

 

동학농민전쟁의 민족운동사적 성격 검토

 

윤민혁(근대사분과)

일시 : 2021년 5월 20일(목) 10:00~17:00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

5월 20일 한국역사연구회는 보훈처 후원으로 <동학농민전쟁의 민족운동사적 성격 검토>라는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조선후기, 구한말 사회변동에 관심이 생겼던 탓에 이와 관련된 운동을 다룬 이 학술회의에 끌렸다. 하지만 학술회의가 끝난 뒤,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이 불러온 후폭풍을 떠올렸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유공자 서훈이 갖는 의미를 새삼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가 동학농민전쟁이 갖는 민족운동사적 성격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다양한 관점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조선 말 일본의 국권침탈과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검토한 심철기 선생님, 동학농민군과 의병의 연속성에 대해 다룬 김헌주 선생님, 동학농민전쟁 전개과정에 나타난 일본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항거를 다룬 배항섭 선생님, 그리고 동학농민군 서훈과 관련하여 독립유공자 서훈 관련 법령을 정리한 유바다 선생님의 발표가 있었다.

심철기 선생님은 「일제의 국권침탈과 동학농민전쟁 제2차 봉기」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여기에서는 기존 연구를 종합적으로 검토와 향후 연구과제의 제시가 이루어졌다. 특히 제1차, 제2차 봉기의 성격규정이 보다 엄밀해질 필요하고, 이와 관련하여 제2차 봉기 단계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 즉 농민전쟁으로 규정되어 온 위상의 재정립, 군사조직으로서의 운영, 그리고 항일운동, 국권회복운동으로의 성격 규정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김헌주 선생님은 「동학농민운동은 의병운동으로 계승되었는가?-운동주체와 지향을 중심으로」라는 발표에서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운동의 연속성을 검토했다. 무엇보다 한국 근현대사의 전개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사회운동의 시원으로 규정하는 기존 인식에 의문을 던지고 그것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 실제로 김구 등 소수를 제외하면 동학농민운동 유공자와 의병 참여자 간의 인적 연속성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동학농민군과 의병의 지향점 역시 달랐다는 점에서 양자 간 연속성, 즉 한국 사회운동의 연원으로서 동학농민운동의 위상은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배항섭 선생님은 동학농민군의 1,2차 봉기 과정에서 변화한 일본 인식에 대해 다루었다. 1차 봉기 시기 동학농민운동은 종교적 교의를 강조했고, 일본은 (경제적 침탈의 주체로서)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1894년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자 일본은 이제 침략자로 명확히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는 제2차 봉기로 이어졌다. 이 국면에서는 동학농민군의 구호 역시 달라져 있었다. 제1차 봉기 당시 백성의 존재를 강조했던 것에서 제2차 봉기에는 ‘나라가 없으면 백성이 어찌 편히 살겠는가’라는 국가주의적 구호로 변모했다. 요컨대 제1차 봉기 단계에서 종교적 교의에 기반한 민중운동으로서의 일본과의 물리적 충돌을 지양했던 동학농민운동은 경복궁 점령이라는 국권침탈행위를 기점으로 국권수호운동 세력으로 전환하면서 직접적인 무장항쟁으로 나아갔다.

마지막 발표는 유바다 선생님의 「동학농민군의 명예회복과 예우에 대한 법률적 검토」였다. 먼저 독립유공자 서훈에 관한 법률이 구체화된 역사적 과정을 검토했다. 정부수립 초기 독립유공자 서훈의 기준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의병을 기준으로 선정했던 것과 일치한다는 점을 소개했다. 기존 독립유공자 서훈의 조건은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한 이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이 밝혀질 수 있었고, 이는 다시 동학농민전쟁이 국권의 ‘회복’을 위한 활동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여기에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독립운동의 기준으로서 ‘국권침탈’의 시점을 언제로 잡을 것인가, ‘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갑오개혁’의 인식에서 나타나는 착종 문제,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 동학에서 6월항쟁까지의 계보 문제, 제2차 농민봉기의 성격 규정 등 발표에서 제기된 쟁점들이 모두 망라되었다. 특히 논의가 독립유공자 서훈과 관계되면서,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구분 문제 역시 제기되었다. 이들 쟁점은 활발하면서도 때때로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이번 학술회의는 조선후기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과 이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운동을 어떻게 역사적으로 의미화하는가의 문제와 닿아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또한 독립유공자 서훈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역사적 사건과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의 고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공통의 결론이 제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활발하고, 때로는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지면서 동학농민군의 민족운동사적 의의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독립유공자 서훈이 갖는 의미를 탐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