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회의 참관기] 한국의 교통물류 중심지, 경기·인천_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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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5월(통권 17호)

[학술회의 참관기]

 

한국의 교통물류 중심지, 경기·인천

 

김우진(중세2분과) 

 

일시: 2021년 4월 24일(토) 10:00~18:00
장소: 경기도 박물관 대강당

 

4월 24일, 한국역사연구회는 경기문화재단·인천문화재단과 함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던 경기·인천 지역을 대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COVID-19의 재확산으로 인해 본 학술대회는 발표자와 토론자 그리고 행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만이 참석하여 진행되었다. 대신 입구에서는 발열 체크와 QR 체크인을 시행하였고,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끼고 일정한 거리를 두어 착석하였으며, 식음료 섭취를 금지하는 등 철저한 관리과 통제가 이루어졌다. 아울러 참석자 이외에 참관을 원하는 분들의 경우 YouTube 채널 ‘인천문화재단IFAC’에서 실시간으로 시청이 가능했다. 이렇게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식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소통과 집중을 유도하여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동시에 먼 지역에 있는 분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본 학술대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전과 오후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오전 섹션에서는 조준호 선생님의 사회 아래, 김정인 회장님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님의 환영사, 최병국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님의 축사가 이어진 후 기조강연과 함께 고대에서 고려 시대까지 5개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점심은 장소를 이동해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도시락으로 대신하였고, 오후 1시 30분부터 정학수 선생님의 사회 속에, 오후 섹션이 재개하여 조선 시대에서 현대까지 6개의 발표가 이어졌다. 총 11개의 발표가 짧은 시간에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발표자는 15분, 토론자는 10분의 시간이 배정되었으며, 시간관계상 답변은 종합토론 시간에 이루어졌다.

세부 발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고동환 선생님은 기조강연에서 한국 교통물류사에서 경기·인천 지역이 가지는 전체적 위상과 역사적 의의를 제기하였다. 조선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역도망, 대로망을 구축함으로써 전국의 물자를 서울로 쉽게 수송하여 수취하였고, 경도-사도체제가 완성되면서 서울과 경기도 지역간의 긴밀한 연계가 확립되었으며, 인천 개항과 1899년 경인철도의 개통으로 경기도의 육로와 수로가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는 개괄적인 설명이었다.

다음으로 고대는 2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임동민 선생님은 고대 항로를 활용 목적에 따라 정치‧군사‧외교 측면의 ‘교섭 항로’, 경제‧문화‧사상 측면의 ‘교류 항로’로 구분한 후, 1기 연안항로 중심 시기(~4세기 초), 2기 횡단항로 중심 시기(~9세기), 3기 횡단항로와 사단항로 병용 시기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시기마다 삼국이 고대 경기만을 중심으로 한 연안항로의 경영 실태를 분석하여 그 역할과 위상을 검토하였다. 박성현 선생님은 신라 통일기 한주(漢州)의 물자 이동과 조운(漕運)에 관하여 하남시 선동에서 출토된 명문 기와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한주에 기와와 같이 무거운 물자를 각 군현에서 주치로 운반할 수 있는 수운 체계가 존재했고, 각 주에서 수취한 조세를 왕도까지 보내는 방식에 대해 파악하였다.

이어서 고려시대는 강도 시기를 중심으로 교통물류와 관련하여 2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문경호 선생님은 강도 천도 이후 고려 왕과 고위 관료들이 여전히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나갔고, 주택문제와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간 및 굴포 공사를 실시했음을 밝혔다. 한혜선 선생님은 강화도에 조달된 도자기를 분석하여 몽고와의 전쟁 상황에서도 해상 운송체제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상의 연구들은 고려가 수도를 옮길 정도로 위기 상황이었으나, 충청도·전라도 등 남부지역으로 연결되는 기존의 해양 교통과 조운 시스템이 유지되어, 강화도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편 조선시대는 전기 1편, 후기 1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김창회 선생님은 건국 이후 수도의 성장에 따라 한양을 소비처로 하는 근·원교의 농업이 이루어졌는데, 연산군대의 흉년·재정 낭비·금표 설치로 인해 한성부·경기의 농작물 생산 기반과 유통망이 파괴되어 중종반정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는 신선한 시각적 변화를 주었다. 김우진 선생님은 18세기 황당선(荒唐船)으로 인해 도성 인근의 주요 해로가 위협받고, 변모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변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시행된 서해안 방어체제의 강화와 조운로의 확보 등 다양한 조치를 확인하면서 강화도의 위상이 변화하는 양상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근현대의 경우 개항기 1편, 일제시대 2편, 해방 후 1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김기성 선생님은 인천의 개항 이후, 미곡이 일본으로 대량 수출되면서 나타나는 미곡 유통 상황과 함께 이전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의 유통망이 공존하던 현상을 심도있게 살펴보았다. 양지혜 선생님은 중일전쟁 이후, 중국 대륙과 한반도·일본을 잇는 ‘황해호수화’라는 새로운 지리적 구상이 조성되면서, ‘황해’의 중심지로 부상한 인천항과 그 연안의 변용을 주목하고, 이를 통해 일본제국의 총력전의 영향을 확인하였다. 김명수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인천미두취인소의 비공식적 부속기관이었던 미구락부(米俱樂部)와 외상거래의 일종인 연시장(延市場)에 대해 ‘인취문제(仁取問題)’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일제강점기 미곡거래소 문제를 부각하고 조선총독부 산업정책의 특징을 밝혔다. 끝으로 박광명 선생님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인천항의 피해 상황과 전후 복구사업의 전개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1966년 본격적으로 인천항을 개발하기 이전의 모습을 복원하였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속행된 종합토론은 기조강연을 담당하셨던 고동환 선생님께서 좌장을 맡아주셨다. 종합토론 역시 1시간 내외라는 시간적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10명의 발표자들은 각각 3분~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활용하여 미흡하지만 최선을 다해 답변했다. 그리고 끝으로 플로워에 계신 선생님들과 함께 본 학술대회를 마치면서, 해상지배세력과 국가의 관계 설정, 수륙 전체의 네트워크 속의 경기·인천의 양상, 군산·목포·부산 등 타지역과의 비교, 국방사·도시사·경제사 측면에서의 경기·인천 등 지역사 연구와 일반 역사 연구와의 연계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이상의 발표과 토론은 사회자 선생님들의 철저한 시간 관리 속에 원래의 계획에서 큰 차질없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비록 제한된 발표, 토론, 답변 시간으로 인해 심도 높은 논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와 인천지역에 대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흐름과 위상의 변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차후에도 다른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진행되어 상호 통합할 수 있다면, 한반도 전체의 교통물류를 다각적이고도 통사적인 시각에서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본 학술대회는 그 첫걸음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 본 학술대회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최측과 실무진 선생님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