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과 ‘혐오’의 홍수 속에서: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의 글쓰기_이승호

0
788
Print Friendly, PDF & Email

 

웹진 ‘역사랑’ 2021년 4월(통권 16호)

[서평]

 

‘애국’과 ‘혐오’의 홍수 속에서

: 『달콤 살벌한 한ㆍ중 관계사』의 글쓰기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시민강좌팀 기획, 『달콤 살벌한 한ㆍ중 관계사』, 서해문집, 2020)

 

이승호(고대사분과) 

 

시민강좌를 열고 싶어 책을 썼지만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서해문집, 2020.10)는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이하 만인만색) 시민강좌팀에서 기획·집필한 책이다. 서평에 앞서 잠시 만인만색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만인만색은 박근혜 정부 당시 벌어진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2016년 1월에 결성된 역사·역사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신진 연구자 모임이다. 그리고 이 책을 집필한 시민강좌팀은 만인만색 구성원들 가운데서도 시민강좌를 비롯한 강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구자들과 시민 사회 간의 다양한 소통 방식을 모색하는 모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집필할 당시 시민강좌팀은 한·중 관계사를 주제로 시민강좌를 기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강사진에게 좀처럼 강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팀장을 맡고 있었던 필자는 여러 번 팀 회의를 거치며 작성한 강의 기획안을 들고 각 지역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평생학습관, 도서관 등을 찾아다녔다. 물론 ‘교수’도 ‘박사’도 아니었던 우리에게 선뜻 강의 기회를 주는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예상은 했지만, 대중강좌의 진입 장벽은 높았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강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손으로 강좌를 기획·운영하겠다’는 시민강좌팀의 의지가 담겨 있다. 기획한 강좌의 강의안을 다듬어 책으로 내고, 출간된 책을 발판 삼아 북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시민강좌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물론 책이 출간될 즈음 우리가 COVID-19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이 책은 순전히 대중강좌를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그런 만큼 고대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별 전공자로 필진을 구성하였고, 처음부터 시대와 주제를 아우르는 커다란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COVID-19 확산과 함께 한국 사회 깊숙이 내재되어 있던 중국에 대한 혐오적 감정들이 터져 나오면서, 원고를 집필하던 필진들의 문제의식도 일정한 방향성을 갖추어가기 시작하였다. 왜 지금 다시 한·중 관계의 역사를 독자 일반에게 전달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서술되어야 하는가. 이후 시민강좌팀장을 맡아 책 출간까지 책임졌던 김세림 선생이 쓴 총론격의 머리말은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의 핵심을 보여준다.

“COVID-19가 처음 발병할 당시만 해도 우리는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 아래 그 전염병의 성격을 발원지의 특성에 기대어 규정했다. 그리고는 그 지역 시장이 얼마나 비위생적인지 연신 보도해 가며 그들의 ‘비근대성’을 우리와 구별 짓고 혐오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우리는 중국을 혐오하고 조롱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 모순된 인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선망은 순식간에 혐오로 바뀌고, 또 새로운 계기로 연대가 형성되며, 피로 맺은 연대는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 나는 미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 지금 한국과 중국은 어떠한 파도 위에 올라있는가?”

COVID-19의 진원지에 대한 관심이 이제는 방역과 백신으로 옮겨간 지금. 그리고 설민석을 중심으로 전개된 일련의 소동도 잠잠해진 지금. 어쩌면 이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중국의 달콤 살벌했던 2천년

 

· 머리말 [김세림]
· 나뭇조각에 아로새긴 ‘공자님 말씀’ [오택현]
· 도당 유학생, 한중 우호의 상징 [이유진]
· 골목대장 고려의 줄다리기 [현수진]
· 제국의 파도 앞에 선 고려의 국왕 [안선규]
· 특명! 명 사신을 접대하라 [신동훈]
· 오랑캐가 금수보단 낫잖아 [이명제]
· 혐오의 시대, 연대의 기억 [정종원]
·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고, 가정과 나라를 지키자 [김지훈]
· ‘피로 맺은 우의’, 그 이후 [문미라]

목차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각 시대를 전공하고 있는 9명의 필진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중 관계의 변천 과정 속에서 흥미로운,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기에는 정말 쉽지 않고 설명하기도 만만치 않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책의 내용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다소 장황할 수도 있지만 각 글의 핵심 문장을 인용하고 논지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소개를 해보고자 한다.

“공자님 ‘말씀’에서 시작된 유학의 가르침은 작은 나뭇조각에 적혀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졌고, 그렇게 동아시아 세계는 2500여 년에 걸쳐 ‘공자님 말씀’을 우러르게 됐다.”

먼저 「나뭇조각에 아로새긴 ‘공자님 말씀’」을 쓴 오택현은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공자의 입으로부터 시작된 유교사상이 한반도로 전해지는 최초의 시점에 주목한다. 또 고대 삼국이 ‘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나가는 과정에 있어 이러한 수용 과정이 필수적인 요소였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반도 주민들 머릿속에 자리를 잡게 된 유교사상이 실상은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상기시킨다. 다만, 전근대 한반도의 대다수 주민에게 있어 ‘공자’니 ‘논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관심을 끌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우리가 영어에 능숙하지 못해도 일상생활에 영단어 몇 가지를 섞어 사용하듯이, 조선 후기 ‘공자’나 ‘논어’ 그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텍스트로서의 논어가 일반 대중의 일상 속에 깊숙이 내재하게 된 시점은 오히려 근대 이후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두품 출신 도당 유학생은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유학을 택했고, 화려한 미래를 꿈꾸며 신라로 돌아왔지만 문한직·근시직·외직 등으로밖에 나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정치 운영의 핵심에서 소외됐다.”

「도당 유학생, 한중 우호의 상징」을 쓴 이유진은 ‘최초의 한류 스타’였다고도 칭해지는 최치원을 중심으로 도당(渡唐) 유학생의 시대적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골품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당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지식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직면했을 절망감이 글을 통해 담담히 전해진다. 신라 사회가 도당 유학생에게 기대한 것은 신분제 질서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당으로부터 예·악과 문장을 배워 외교 업무를 맡고 종신토록 글을 쓰는 문한직에 종사하는 것이었다. 많은 지식인들이 부푼 꿈을 안고 당으로부터 선진적인 지식을 습득해 돌아왔지만, 모순된 신분구조 속에 파묻혀 그저 구체제를 유지하는 톱니바퀴가 되기를 강요당했다.

“요와 송을 모두 천자국으로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던 나라, 그것이 바로 고려였다.” … “고려인은 고려의 군주를 천자, 그중에서도 ‘해동’, 즉 바다 동쪽을 통치하는 천자로 인식했다. 그들의 인식 속에서 고려 천자는 고려를 중심으로 한 천하를 다스리는 존재였다.”

「골목대장 고려의 줄다리기」를 쓴 현수진은 10~12세기에 걸친 동아시아 정세 변동 속에서 복수의 ‘천자국’을 바라보는 고려인의 시선과 인식에 주목한다. 고려와 송을 ‘문명’으로 거란이 세운 요나 여진이 세운 금을 ‘야만’으로 묘사해 왔던 그동안의 대중적 서사를 비틀고, 요의 연호를 사용하며 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던, 그리고 한때 고려의 신하를 자처하였던 여진이 세운 금에게까지 사대하였던 고려의 능수능란한 처세를 보여준다. 이처럼 대외적으로는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한반도를 축으로 하는 자신들만의 작은 천하를 구축하였던 골목대장 고려의 모습은 자못 현대적 감수성마저 느끼게 한다.

“원에 시호를 요청하는 선택은 충선왕의 구상을 완성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는 원의 규정을 통해 왕가의 지위를 결정하고자 했다”

「제국의 파도 앞에 선 고려의 국왕」을 쓴 안선규는 ‘원 간섭기’ 100여 년의 정세 속에서 고려 왕실의 순응과 역류, 역전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불안한 입지를 다잡기 위해 원 황실의 권위를 이용했던 충선왕의 ‘순응’. 원 황실을 거스르면서까지 고려 왕실의 독자적 위상을 확보하려 했던 공민왕의 ‘역류’. 그리고 원·명 교체기라는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낸 상황의 ‘역전’. 이 글은 역동적으로 오르내리는 역사 속 파도의 높낮이를 ‘선택이 낳은 결과와 그로 인해 촉발된 모순을 해결해가는 과정’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마치 ‘역사는 매순간 가장 최선이었을 선택이 가져온 결과’라고 말하는 듯.

“명 사신에 대한 조선의 접대는 명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특명! 명 사신을 접대하라」를 쓴 신동훈은 조선 정부가 명 사신을 접대하는 과정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부디 명이 자신들의 예상 범위 안에서 움직여 주기를 바랐던 조선 정부는 최선을 다해 명의 사신을 접대하였다. 사신단 숙소에서 열린 연회부터 한강 뱃놀이, 그리고 총수산 계곡까지 명 사신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조선 팔도 어디서든 연회와 이벤트를 기획해야만 했다. 최대한 예를 다해, 때로는 예를 넘어서더라도 명의 마음을 얻어 명 또한 적어도 ‘예’의 범주 안에서 자신들을 대우해주기 바랐던 조선 지배층의 절절한 마음이 글을 통해 전해졌다.

“우리는 서양의 학문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수많은 현실주의자가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랑캐가 금수보단 낫잖아」를 쓴 이명제는 청이라는 창구를 통해 서양의 문물을 접하였던 조선 지식사회의 반응과 대응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청을 ‘중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이적’으로 배척하였던 조선 지식사회가 ‘서양’이라는 ‘금수’와 직면하게 되면서 ‘이적’과는 묘한 연대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저자는 이와 같은 ‘금수’에 대한 조선의 적대감 형성이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서양 문화를 강요했던, 보다 구체적으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 숭배로 규정하였던 로마 교황청의 결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서양 세력의 정치적·경제적 야욕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중 양국은 모두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고통받는 피해자였지만, 서로 혐오하고 자신들은 저렇게 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피해자의 동류 혐오는 이렇게 형성됐다.”

「혐오의 시대, 연대의 기억」을 쓴 정종원은 몰락하는 서로를 향한 혐오의 시선에 주목한다. 근대 열강의 침략 앞에 조선과 중국의 개혁 세력은 서로에 대한 혐오를 동력 삼아 개혁을 추진하고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국 인민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서로를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한·중은 당면한 위기의 원인이 내부의 나태가 아니라 침략 세력에 있음을 점차 인식하게 된다. 신해혁명과 3.1운동을 거치며 서로가 각기 침략에 맞서 분투하는 주체임을 깨닫고, 그 인식 위에서 연대가 성립하였다. 저자는 중국에 대한 혐오 감정이 팽배한 지금 한국전쟁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연대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까지 와서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과 적으로 싸운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각인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고, 가정과 나라를 지키자」를 쓴 김지훈은 중국이 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막 장기간의 내전을 끝마쳤던 중화인민공화국이 전쟁의 상흔이 치유되기도 전에 다시 한반도에 대규모 군사 파견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혁명의 연대의식’, ‘순망치한의 위기의식’, ‘국제적 위상 제고를 위한 선택’. 통일을 목전에 두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해 1.4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쉽게 이야기되어 왔던 대중적 서사에서 지금까지 빠져 있었던 퍼즐, 왜 중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는가라는 당연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았던 의문에 대해 중국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글이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악화된 문화대혁명 시기 북중 관계는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게 해주었고, 북한과의 인위적 단절은 북한과 중국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던 연변 조선족의 모호한 ‘국가관’을 청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피로 맺은 우의’, 그 이후」를 쓴 문미라는 중국 조선족 사회의 정체성 변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혈맹의 전우애로 맺어져 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파국을 향해 달려갈 무렵, 중간지대에 처한 변경 조선족 사회의 고난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과 중국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던 조선족이 명실상부한 ‘중국인’이 되었던 기점, 그것은 바로 문화대혁명이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민족 정체성과 국가관에 대한 수정을 폭력적으로 강요당하였고, 그 과정에서 ‘민족’은 탈락하고 ‘중국인’으로서 확고한 국가관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글은 조선족에 대한 혐오의 시선이 팽배한 지금 한국 사회에 묻고 있다. 중국인이 된 그들을 증오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듣기 좋은 역사’와 ‘혐오적 시선’의 홍수 속에서

 

한국의 역사학계는 오랫동안 역사 대중화에 노력해 왔다. 대중적인 역사서 집필도 여러 번 시도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일반 독자의 시선을 잡았던 것은 쉽고 재미있으며 제도권 교육과 연계되어 있는 대중서, 곧 설민석 등의 책이었다. ‘민족주의’와 ‘애국’의 가치를 강조하며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자는 외침 속에 연구자들이 밤새 머리를 쥐어뜯으며 힘겹게 써 내려갔던 여러 역사책은 대중서를 표방하면서도 대중에게 외면당해 왔다.

우리는 항상 궁금해 한다. 우리의 책이 재미가 없기 때문일까. 좀 더 쉽고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뚜렷한 문제의식과 방향성, 그리고 지금까지의 역사 서사에 대한 대안 모색 없이 그저 쉽고 재미있는 역사,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역사 대중화의 취지·목적에 부합하는가? 그러한 역사 대중화는 과연 필요한 것인가? 여러 생각들이 서로 부딪히며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학계의 역사 대중화 노력은 이러한 고뇌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설민석 혹은 그로 대표되는 일군의 ‘전달자’들은 그동안 연구자들이 넘을 수 없는 산 같은 존재였다. 설민석은 그저 대중들이 ‘듣기 좋은 역사’ 혹은 ‘듣고 싶어 하는 역사’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는 내 옆 사람의 비판에 작은 위로를 받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처럼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다. 그리고 수도 없이 제기되어 왔던 역사왜곡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설민석은 학위논문 표절 문제까지 불거지자 결국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자, 그렇다면 지금 역사학자들은 그의 자리를 대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미 잘 알듯이 ‘민족’과 ‘애국’, ‘국가주의적 역사서술’은 근대로부터 이어져 온 역사교육의 산물이다. 물론 연구자들의 부단한 노력 속에 교과서의 역사 서술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행 교과서가 ‘국가주의적 역사서술’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학습된 역사’에 익숙한 수용자층에게 ‘설민석류’의 강의와 책이 보다 친근하고 매력적인 것은 당연하다. 결국 단순히 ‘설민석류’의 국가주의적 서사를 비판하는 데에 그칠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가치를 담은 대안적 역사 서사를 제시하는 것이 지금 연구자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그러한 가운데 최근 만인만색에서 출간한 일련의 대중서는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시도라 평하고 싶다. 즉 ‘민족주의’와 ‘애국’을 말하지 않고도 일반 독자들의 시선이 머물만한 새로운 교양 역사서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왼쪽부터 『한뼘 한국사』(2018),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2020), 『만인만색 역사공작단』(2021)

여기서 다루는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는 2천여 년에 걸친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주제로 삼고 있다. 학계에서는 흔히 ‘대중관계사(對中關係史)’로 명명되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개는 정치·외교사적 시야에서 혹은 전쟁사·투쟁적 관점에서 곧잘 서술되어 오던 역사였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역사, 민족적 자부심을 일깨우는 이야기로서 일반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왔던 역사였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한·중 관계사’는 이러한 서사에는 관심이 없다. 한국과 중국의 ‘사람들’이 무엇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교류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 내재된 ‘감정선’까지 설명하려 한다. 이 책이 가지는 대중역사서로서의 가치는 여기에 있다.

특히 이 책은 현재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중국과 조선족에 대한 혐오의 시선, 그리고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책을 읽고 그와 같은 혐오적·멸시적 시선을 거두라고 일갈하기보다 오히려 그러한 시선이 언제 어떤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고 확산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혐오가 근거하고 있는 뿌리가 실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 팽배한 타자에 대한 혐오적 시선의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하고 싶다.

이상에서 간단히 정리했지만, 책의 각 장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오랜 역사를 거쳐 형성되어 온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가 중국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새롭게 환기하도록 만든다. 오랜 시간에 걸쳐 무수히 많은 사건 속에 형성된 한·중의 관계를 살피다 보면, 그러한 상대에 대한 배타적·혐오적 감정의 필요성에 대해 분명 다시 한 번 고민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끝으로 이 모든 찬사를 뒤로하고 굳이 책의 단점을 하나 잡아내자면, 그것은 제목일 것이다. 필시 연구자들이 아닌 출판사에서 붙여주었을 이 책의 제목은 한국 역사학계가 왜 대중서 쓰기에 어려워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표상과도 같다. “달콤 살벌한 한·중 관계사”라니. 일반 독자의 시선을 어떻게든 끌어보려는 의도가 다분히 읽히지만, 분명 의도한 바를 이루지 못할 제목이지 않은가.

국수주의·민족주의적 서사 속에 내재된 폭력성과 배타성을 에둘러 비판하면서 대안적 글쓰기를 멋들어지게 보여주었지만, 결국 전근대 동아시아 교류의 역사를 한국과 중국이라는 근대 국민국가의 전사(前史)로 위치시켜버린 이 책의 제목과 구성은 여전히 민족주의 서사 속에 갇혀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기왕 이와 같은 구성으로 일반 독자의 시선을 끌고자 했다면, 차라리 보다 도발적으로 “왜 우리는 중국을 사랑했고 또 미워하는가?” 혹은 (신동훈 선생의 제안처럼) “made in china의 역사: 그 출발부터 현재까지” 정도의 제목이 나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위와 같은 비판을 등에 업고서라도 ‘설민석류’의 책과 앞뒤로 경쟁하는 장관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역시 제목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