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인 듯 섬이 아닌 신안군 답사기 ②] 비금도, 도초도 둘러보기_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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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2월(통권 14호)

[섬인 듯 섬이 아닌 신안군 답사기

비금도, 도초도 둘러보기

 

남기현(근대사분과)

 

신안군 답사 2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의 일정은 암태도로 이동하여 암태항에서 배를 타고 비금도 가산항으로 이동한 후 비금도 및 도초도 일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배를 타는 시간을 고려하여 자은분계해변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자은분계해변수림대생태공원 : 해변, 소나숲길, 응암산, 여인송 전설

안내판을 보니 분계해변 주변은 생태공원 형태로 조성되어 있었다. 해변 뒤편으로는 소나무숲길이 조성되어 있었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해발 122m 높이의 응암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바다, 소나무, 산, 한 가지만 있어도 산책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데 세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분계해변의 소나무 숲은 조선시대에 바다로부터 주변 농경지 및 주택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분계해변의 소나무 숲은 여인송 숲이라고도 불린다. 소나무 숲 안에 여인송이라고 불리는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1> 여인송(@남기현)

여인송에는 전설이 깃들어져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사소한 다툼을 벌이고 고기잡이를 하러 나간 남편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기다렸다. 어느 날 꿈속에서 소나무에서 물구나무를 서서 보니 남편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이후 아내는 매일 소나무에 올라 남편이 돌아오는 환영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추운 겨울 소나무에서 떨어져 동사하고 말았다. 이후 남편이 돌아와 아내를 발견하게 되었고, 소나무 아래에 묻어주자 여인의 모습을 한 소나무가 자라났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연인들이 두 팔로 여인송을 감싸 안으면 백년해로 한다는 말이 퍼져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여인송을 보고 조금만 걸어가면 응암산을 오르는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응암산은 높지 않은 산이고 길도 잘 조성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다만 가파른 곳이 있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30분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자은도의 풍경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응암산에 정상에 가 볼 것을 추천한다.

<사진 2> 응암산에서 본 자은도(@남기현)

비금도 가는 길

자은분계해변수림대생태공원을 살펴 본 후 비금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암태항으로 이동했다.

<사진 3> 암태항에서 비금도 가산항으로 가는 배. 차를 수송 할 수 있는 배이다(@남기현)

가산항에 도착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금도를 상징하는 조형물들이었다. ‘비금도(飛禽島)’라고 적힌 조형물 옆에는 독수리 상이 있다. 이유를 살펴보니 비금도의 상징이 독수리라고 한다.

<사진 4> 비금도와 독수리 상(@남기현)

천일염의 상징 : 비금도 대동염전

독수리 상 옆에는 ‘수레차 돌리는 사람’이라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박삼만이다. 비금도는 해방 이후 한국인에 의해 최초로 천일염 생산에 성공한 곳이다. 평양에서 염전기술을 익힌 박삼만은 해방이후 고향인 비금도로 돌아와 천일염을 생산하는 데 앞장섰다. 박삼만은 송봉훈 등 마을 주민들과 조합을 구성하고 염전 개발을 추진했다. 그 결과 대동염전이라는 거대한 염전이 조성되었다. 2007년 등록문화제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사진 5> 수레 차 돌리는 박삼만과 대동염전
(신안군 문화관광 http://tour.shinan.go.kr/home/tour/island_tour/bigeum/place/place_06/page.wscms)

가산항을 벗어나자마자 1백 ha가 넘는 대동염전을 볼 수 있다. 함께 답사에 참여한 선생님으로부터 천일염과 정제염의 차이, 근대 염업의 발전에 대한 소개를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인하대학교에서 근대염업과 관련된 박사논문(류창호, <한국 근대염업의 네트워크와 그 특성>)이 발표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진 6> 대동염전(@남기현)

석장승이 지키고 있는 도초도 고란마을, 그리고 수국공원

대동염전을 지나 하루를 머물 숙소로 향했다. 한옥 형식으로 된 곳으로 비금도에서 생산된 천일염도 파는 장소였다. 짐을 푼 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도초도로 향했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1996년에 개통된 서남문대교를 통해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다. 독특한 모양이 있는 석장승이 있는 고란리를 목적지로 정했다. 도초도를 둘러보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넓은 토지였다. 농촌지역이 형성되었고, 소작료를 과도하게 받으려는 문재철과 같은 지주가 있었기 때문에 일제시기 도초도에서도 소작쟁의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란리는 도초도 내에서도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7> 고란리 전경(@남기현)

고란리에 형성된 마을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피난 온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형성된 부락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 만들어진 신당의 기운이 강해서 사람들이 어려워했는데, 한 승려의 추천으로 나무로 된 장승을 세워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당은 사라지게 되었고, 나무로 된 장승은 1938년 석장승으로 다시 만들어지게 되었다.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8> 고란리 석장승(@남기현)

고란리 마을과 석장승을 보고 수국공원으로 향했다. 도초도 수국공원에는 약 100여종에 달하는 수국 200만 송이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7~8월이 되면 여름 꽃인 수국이 피고, 이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답사 시점에는 이미 수국이 진 상태였다. 여름에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사진 9> 수국공원(@남기현)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 하트(하누넘)해변

목표지는 하트해변이었다. 하트해변의 정식 명칭은 하누넘해변이다. 하누넘이란 산 너머 가면 하늘과 바다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트해변이라는 명칭은 해변의 모양이 하트여서 붙여진 명칭이다. 하트해변을 찾아가는 길은 약간 험했다. 선왕산을 끼고 도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왜 하트해변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왕산 주변을 돌아 하트해변을 홍보하는 곳에 올라가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진 10> 하트해변(@남기현)

신기하게도 해변 모양이 하트모양이었다. 하트가 사랑의 상징이라는 것을 살려 하트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었고 도로에도 하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트해변을 소개한 ‘비금도 하트해변 사랑의 마법’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하누가 배 타러 나갔는데 풍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너미가 하루하루 하트를 만들었고 지금도 하트해변에 누워서 억겁의 세월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트해변을 사랑의 상징으로 만들어낸 것인데, 직업의 특성상(?) 그대로 받아들이기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하트가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였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트해변은 이러한 생각이 잠깐만 스치게 할 정도로 독특하고 멋진 풍경을 보여주었다. 가족들과 함께 꼭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11> 하트해변(@남기현)

명불허전, 명사십리!

오늘의 마지막 답사코스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이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을 가는 도중 이세돌바둑기념관을 볼 수 있었다. 바둑기사 이세돌이 태어난 곳이 비금도라고 한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을 들어가는 입구에서 대형 바람개비를 볼 수 있었다. 풍력시설이 만들어질 넓은 곳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12> 풍력발전기와 명사십리(@남기현)

이 물음은 명사십리해수욕장을 직접 보자마자 해결할 수 있었다. 모래사장 같지 않은, 발이 빠지지 않는, 자전거, 자동차들이 다닐 수 있는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마침 방문했던 시간이 해가 지는 시점이어서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을 보니 눈의 시력이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 역시 꼭 가족과 함께 다시 와볼 생각이다.

<사진 13> 명사십리(@남기현)

명사십리해수욕장을 끝으로 2일차 답사가 종료되었다. 아쉽지만 내일이 마지막 날인데, 내일 답사도 오늘만큼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