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일본서기』의 한국관계사상 재조명_신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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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1년 1월(통권 13호)

[학술회의 참관기] 

 

4~5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일본서기』의 한국관계사상 재조명

 

일시 : 2020년 11월 13일(금)

장소 : 한국역사연구회 회의실

신가영(고대사분과)

2020년 11월 13일 한국역사연구회 회의실에서 고대사분과 국제관계사반에서 준비한 공동연구발표회가 개최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반인 참석은 제한되고 온라인 학술회의로 진행되었는데, 필자는 함께 공부하던 반원을 응원하기 위해 사전에 허락받고 학술회의를 참관하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새로운 방법론을 시도하여 『일본서기』의 한국 관계기사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4~5세기 한일관계상을 재검토하고자 기획되었다. 이정빈 선생님과 정동준 선생님이 함께 총론을 맡았는데, 발표는 정동준 선생님이 진행하였다. 국제관계사반의 약사와 함께 이번 발표회의 기획 의도와 각 세부 발표에 대해 소개하였다.

1부는 “4~5세기 동북아 국제정세의 새로운 인식”이라는 주제로 총론과 함께 두 편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4~5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조망하기 위해 백제와 고구려사의 입장에서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대한 새로운 검토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일본서기』로 보는 4~5세기의 한일관계사상”이라는 주제로 4편의 발표가 있었다. 일본학계의 『일본서기』 연구동향과 함께 신공기·응신기·인덕기를 각각 면밀하게 검토하여 4~5세기 한일관계를 검토하였다. 『일본서기』 각 권의 맥락 속에서 논란이 되는 기사들을 살펴보았는데, 한국 관계기사만 떼어내지 않고 각 권의 전체 기사를 통독한 바탕 위에서 한국 관계기사의 의의를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던 점이 주목된다.

발표 순서대로 간략히 살펴보면, 정지은 선생님이 「4세기 백제의 부여출자 인식 수용 배경 -華北 지역 중국왕조와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백제의 건국설화를 검토하고, 동명신화가 고구려를 거치지 않고 부여 등에서 백제로 직접 수용되었을 가능성을 새롭게 제기하였다. 특히 ‘부여씨’라는 성씨에 주목하여 백제의 부여 출자 인식에 대해 검토하였다. 백제가 중국 동북방 지역, 전연과의 교섭 속에서 ‘부여’씨를 선택하였고,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 이후 동명신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다음으로 백다해 선생님은 「고구려의 北燕 진군과 對北魏關係: ‘遼海諸軍事’의 의미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북위가 435년 고구려에 책봉한 ‘도독요해제군사(都督遼海諸軍事)’에 주목하여 고구려와 북위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435년 고구려 장수왕은 북위 교섭을 재개하였는데, 그 원인을 북연과 유송의 접근에 대한 견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도독요해제군사’의 ‘요해’는 북연을 중심으로 하는 요하 일대의 유목세력을 가리키며, 북위가 북연을 멸망시킨 후 ‘요해’ 지역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력 행사를 묵인하려는 기대에서 책봉한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이러한 책봉관계를 통해 고구려와 북위가 ‘긴장 속 공존관계’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1부 발표에 대해 이장웅 선생님과 임동민 선생님이 토론을 맡았다. 이장웅 선생님은 백제 건국설화에 대해 많은 연구를 내셨는데, 이번 정지은 선생님 논고에서 다룬 백제의 건국신화와 관련한 자료의 접근과 이해에 대한 여러 질의와 제언을 해주셨다. 임동민 선생님은 발표문에 사용된 용어와 관련된 지적과 함께 ‘요해제군사’ 책봉호가 사여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한 질의를 해주셨다. 또 질의 중에 도독제군사호에 요해는 들어가고 정작 고구려는 왜 들어가지 않는지는 필자도 궁금한 내용인지라, 앞으로 백다해 선생님이 이점에 대해 보완해주실 것이라 생각된다.

2부 첫 번째 발표는 박찬우 선생님과 신카이 사키코 선생님이 「최근 일본학계의 『日本書紀』 연구동향과 神功·應神·仁德紀」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일본학계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서기』를 분석하고 있다. 두 선생님은 최근의 일본학계의 『일본서기』 연구 동향과 쟁점을 출전론, 텍스트론(작품론), 구분론으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이와 함께 최근의 고고학 성과도 함께 정리하였는데, 도래인 관련 유적과 목간 등에 대한 비교·검토를 통해 『일본서기』를 상대화하거나 재평가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일본학계의 신공·응신·인덕기에 대한 연구경향과 한국 관계기사에 대한 여러 논의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이어서 위가야 선생님이 「『日本書紀』 神功紀와 백제 관계기사의 재검토」라는 발표를 진행하였다. 『일본서기』 신공기의 구성을 통해 특징을 분석하고, 백제 관계기사의 실상에 대해 접근하고자 하였다. 먼저 신공 49년조에 가라 7국과 남만 평정 기사가 배치된 이유를 살펴보았다. 신공 49년조의 경우 본래 백제의 마한 정벌을 전하는 기사였으나, 『일본서기』의 편찬과정에서 편찬 의도에 따라 신라와 가야 정벌 관련 기록이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신공 49년 기사에서 전하는 남만 침미다례에 대한 백제의 군사행동의 목적은 교역권의 장악에 있었고, 이를 통해 보면 당시 백제가 중국-백제-마한-신라(진한)-가야(변한)-왜 사이의 교역망을 주도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다음으로 장미애 선생님은 「『日本書紀』 應神紀와 5세기 백제-왜 관계」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일본서기』 응신기의 구성을 통해 특징을 분석하였는데, 응신기는 시조로서의 성격, 삼국(특히 백제)과의 관계, 그리고 이주민의 기원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특징이 있다고 한다. 한반도 세력과의 관계, 이주민의 기원 모두 시조로서의 성격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응신기에는 백제에서 왜로의 기술·문화의 전수는 보이지만, 왜에서 백제로의 군사활동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광개토왕비」와 『삼국사기』에 보이는 왜의 군사활동 양상과 대조적이기에 이 시기 왜의 활동의 실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전지의 파견을 중심으로 5세기 백제와 왜 관계의 특징을 파악하였다. 전지의 파견이 백제와 왜 양국 관계의 시초이며, 이러한 점에서 응신기가 가지는 시조적 성격을 일정 정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발표는 정동준 선생님이 「『日本書紀』 仁德紀와 4∼5세기 백제의 지방통치 연구 재검토」라는 제목으로 진행하였다. 『일본서기』 인덕기의 구성을 통해 특징을 분석하고, 인덕 41년조를 중심으로 편찬과정과 사실성을 재검토하였다. 인덕천황은 인자한 성제(聖帝), 위엄 있는 군주라는 2가지 모습으로 구성된 특징이 있는데, 작위적 요소가 전체에 걸쳐 있고, 사실에 근거하였다고 판단되는 기사도 편찬 당시의 관념이 투영되어 있다고 한다. 인덕 41년조는 43년조의 타카카이베[鷹甘部] 기원설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며, 그 전거는 삼국 관계에 종사한 씨족의 전승으로 파악하였다. 41년조의 지방통치 관련 기사는 역사적으로 존재한 사실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설화라 추정하더라도 4~5세기의 특정 시기와 관련지어 사료로서 활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인덕기를 근거로 역사적 사실을 도출하기 어렵다고 파악하였다.

이어서 2부 종합토론이 진행되었는데, 토론시간이 짧은 게 아쉬울 정도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다. 좌장은 이근우 선생님께서 맡고 토론은 박재용, 정순일, 서보경, 홍성화 선생님께서 맡았다. 모두 고대한일관계사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서 『일본서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의견을 주셨다. 발표문에서 다루지 못한 일본학계의 연구 동향을 비롯하여 고대한일관계의 주요 쟁점인 신공황후의 삼한 정벌, 칠지도, 씨족 가계 전승 등에 대한 활발한 질의응답과 제언이 있었다. 특히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다.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일본학계의 『일본서기』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었다. 『일본서기』는 고대 한일관계만이 아니라 한국고대사 연구에서도 필수적인 사서이다. 하지만 『일본서기』라는 사서의 특성과 한계로 인해 사료비판과 활용이 쉽지 않다. 앞으로 일본학계의 『일본서기』 연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지, 아니면 이를 넘어서는 연구를 어떤 방향에서 시작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올해가 『일본서기』가 편찬된지 1300년 된다고 하니 더욱 뜻깊은 학술회의가 아니었나 싶다.

정동준 선생님이 총론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번 학술회의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준비한 첫 연구발표회였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함께 모여 충분한 시간 동안 숙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한계가 있었지만, 새로운 방법론의 시도라는 측면에서 연구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 중인 2번째 연구발표회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