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역사도시, 서울-평양 학술대회 “2천년 역사도시 서울의 공간이동과 경관변화”_김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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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0년 11월(통권 11호)

[학술회의 참관기] 

 

2020 역사도시, 서울-평양 학술대회

「2천년 역사도시 서울의 공간이동과 경관변화」 

 

 

김헌주(근대사분과)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 터를 잡은 지도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내게 서울은 관찰대상이다. 중구, 성북구에 이어 마포구의 한강 인근에서 서울의 강바람을 맞으며 살면서 구석구석 마주치는 서울의 풍경은 늘 새롭다. 서울은 지금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도시이며, 서울과 관련된 의제는 한국 전체의 의제와 거의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여했지만 서울의 역사와 서울에 깃든 서사를 배우고 공부하는 자세로 임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2019년 서울-평양 학술대회 “평양성의 역사”의 후속 행사로 기획되었다. 평양에 이어 서울이 그 대상이 된 것인데, 학술대회의 취지에서도 남북 화해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내용 소개에 앞서, 필자는 2부 마지막 발표 개항기 서울의 도시경관 변화 토론을 맡았으며, 2부부터 직접 참관했다. 따라서 1부의 내용소개는 유투브 영상과 학술대회 자료집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행사는 기조발표, 제1부 고대도성과 행정 중심지의 입지와 경관, 제2부 고려 남경과 조선 한양의 입지와 경관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제부터 각 발표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학술대회의 서두는 한신대학교의 이남규 선생님이 열었다. 「역사도시 서울의 공간이동과 경관변화의 고고학적 이해-선사 고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크게 선사시대와 원사시대, 역사시대로 시기를 구분하여 논의를 전개했다. 신석기 후기에 내륙에서 서해안 쪽으로 이동하던 집단들이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서울 동부지역에 밀집된 것으로 추정하였고, 청동기 후기로 가면서 대모산 유적으로 대표되는 산상주거 형태가 발달했다고 주장했다. 원사시대에는 고고학적 자료의 활용을 적극 주장하면서 3세기 후반기에 풍납토성 내부지점에 대규모 방어취락이 형성된 부분에 주목했다. 역사시대에는 475년 이후에 고구려와 신라의 경영 하에 놓이게 되면서 지배 방법도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논증했고 그 흔적은 당시 산성들의 분포양상에서도 드러난다. 요컨대 남한산성-이성산성-몽촌-토성-아차산성을 잇는 지역이 당시의 중심적인 거점이었다는 것이다.

제1부의 첫 번째 발표자는 한성백제박물관의 이혁희 선생님이었다. 「백제 한성 도성의 공간구조와 도시경관」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백제 한성기 도성 지역을 ‘伯濟國의 국읍에서 고대국가 百濟의 도성으로의 정비과정’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성 도성의 변천상과 도성지역 경관변화를 총 5단계로 분류했다. 요컨대 1단계 풍납동 환호취락에서 2단계 풍납토성 단일왕성체제로 변화했다가 3단계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양성체제가 구축되었다. 4단계에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양성체제에 제방이 추가되었으며, 5단계에는 몽촌토성의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식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외대 여호규 선생님이 「고구려의 ‘남평양(南平壤)’ 건설과 운영」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최근 연구에서 고구려의 남평양 건설의 실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 발표에서는 475년 남평양의 건설을 재확인했다. 고구려는 평지성인 풍납토성을 폐기하고 한강 북안에 남평양을 건설했는데, 발표자는 아차산 일대 보루의 분포양상과 중랑천 일대의 고지형을 분석해본 바 남평양의 위치를 장안평 일대로 추정했다. 아울러 고구려는 서해 해로와 한강 수로가 만나는 결절점이며 동시에 육로의 중심지이기도 한 서울지역에 남평양을 건설하여 중부지역에 대한 지방지배를 시행하던 핵심 거점으로 삼으려 했으며, 이러한 점에서 고구려의 남평양 건설은 서울의 공간이동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1부의 마지막 발표는 계명대 사학과의 박성현 선생님이 「신라의 ‘남·북한 산성’ 축조와 경영」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다. 발표자는 신라가 한강 하류역을 점령한 뒤 어떻게 성을 쌓아 확보하고 편제했을까라는 의문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이 과정을 분석하기 위하여 당대 사료의 ‘남·북한 산성’ 용례를 분석하고 삼국사기 지리지의 북한산군(한양군)의 구조를 복원하였다. 그 결과 남·북한 산성 건설과정과 각 산성의 역할, 즉 대체로 남한산성이 더 중시되었지만 시기에 따라 북한산성이 중시되었던 점을 논증했다. 아울러 두 성을 중심으로 군현이 편성되었는데 한산하 남쪽의 한주(한산주)와 북쪽의 북한산군(한양군)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각각 고려와 조선시대로 계승되었고 따라서 현재 서울의 전신이 북한산군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2부 첫 발표인 「고려시대 남경 천도의 배경과 생활공간」은 국민대 한국역사학과의 홍영의 선생님이 맡았다. 이 글은 고려시대 남경으로의 천도 의미를 국왕권의 강화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해한다는 목적의식을 서론에서부터 전제하고 있다. 남경을 국왕권의 강화로 활용한 왕은 문종이었다. 문종은 개경을 중심으로 부도(副都)인 서경과 동경을 강화하고 동시에 남경을 설치하여 3경을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남경은 부도의 지위를 유지한 기간이 짧았고, 그 기능과 역할도 미미하다고 평가했다. 문종과 숙종 연간에 주목받은 남경이 고려말에 다시 천도론의 대상이 되었지만 역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다음으로 명지대학교의 홍순민 선생님이 「조선 한양의 주요시설과 도시경관」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자는 조선시대 한양(한성<부>)의 경관 변화를 도시건설 및 궁궐체제의 변화와 결부시켜 설명했다. 태조대에 시작된 도성 건설은 세종대에 일단락되어 왕도 한성부의 경계를 명확히 하면서 한성부의 존재와 위용을 드러내는 표상이 되었고, 이후 성종대 법궁(경복궁)과 이궁(창덕궁, 창경궁)의 양궐체제가 완성되면서 조선초기 한성부의 조시구조와 경관이 완비되었음을 실증했다. 이후 17세기 중반 인조대에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으로 인식되고 경덕궁(경희궁)이 이궁으로 불리면서 제2차 양궐체제로 변했다가, 대원군 집권기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조선초기의 양궐체제로 돌아갔다. 이렇게 왕궁을 중심으로 한 도시경관은 일제의 식민지배에 따라 광화문이 사라지면서 그 성격과 경관이 변질되고 식민통치의 중심공간이 된 과정을 풍부한 사진자료를 중심으로 잘 정리하였다.

2부 세 번째 발표는 KAIST 인문사회과학부의 고동환 선생님이 「조선시대 한양의 경제활동과 공간 확장」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했다. 오랜 기간 조선후기 상업사 연구에 매진해온 발표자는 상업적 발달과 도시공간 확장을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즉 계획도시로 건설된 왕도 한양은 조선초기에는 도성 안이 핵심이었는데 반해, 17세기 후반 이후 상업도시로 변모하면서 한양의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고 그 인구들이 대부분 성밖에 거주하면서 서울의 공간을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도성의 공간을 확장시켰을 뿐 아니라 질적인 성격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시전의 수가 대폭 증가하고 주점, 음식점, 기방, 색주가 등이 번창하였고 마포, 서강, 용산, 양화진, 뚝섬 등은 전국적 시장권을 포괄하는 경제적 중심지로 성장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2부의 마지막 발표는 서울시립대학교의 박준형 선생님이 맡았다. 개항기 서울 거리의 표상이 전국인민→전차→서울사람 순으로 변해온 과정을 독립신문과 동아일보 등의 문헌사료와 당대의 거리 풍경을 보여주는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증명했다. 전국인민이라는 ‘개념’, 전차라는 ‘사물’, 서울사람이라는 ‘존재’ 등 각기 다른 층위의 분석대상을 공간(거리)과 연관지어 수미일관한 논리로 정리해냈다는 점은 이 연구의 특징적인 측면이라 하겠다. 발표자는 결론 부분에서 서울의 외부, 즉 지방사람의 소외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서울 내부에서 소외당한 주변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즉 “‘전국인민의 서울’이라 함은 서울 바깥의 사람들이 제 위치에서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서울의 또 다른 표상일 수 있다.”는 문장은 저자의 문제의식을 정리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관련 발표들에 대한 토론의 내용은 지면상 전부 소개할 수 없지만 종합토론(사회 이영호)에서는 2천년 역사도시 서울의 출발점과 기원 문제, 한강유역에서 백제가 출발한 이후 고구려·신라·고려의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거점 이동에 관한 문제,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운영한 도시운영의 원리와 역사적 성격, 근대사회에서의 서울의 경관과 주체적 시선의 문제 등에 대해 활발한 질의응답과 제언이 있었다.

8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지만, 정말 알찬 학술대회였다. 하루만에 서울의 역사를 모두 정리하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다. 관련한 자료는 유튜브 ‘2020 역사도시, 서울-평양 학술대회’로 검색하시면 볼 수 있으니 관심있으신 연구자 및 시민 여러분께서도 시청하시길 권한다. 여기서 다 쓸 수는 없지만 학술대회가 끝난 후 이어진 뒷풀이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나누었던 대화들도 너무 인상깊고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학술대회를 준비하는데 애써주신 여호규 회장님 이하 관계자분들, 실무를 담당하시느라 중간에서 너무나 고생하셨던 정지은 선생님 이하 실무진 여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