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후기 이제현의 정치사상 연구 _ 김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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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0년 10월(통권 10호)

[나의 논문을 말한다] 

 

고려후기 이제현의 정치사상 연구

(2019. 12. <<역사학보>> 244)

 

 

김민우(중세1분과)

 

막연하게 ‘고려후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원에 입학한 필자가 이제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고려사>>에 실린 한 줄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제현은> 성리학을 즐기지 않아서 定力이 없고 공자와 맹자를 헛되이 말하였으며, 心術은 단정하지 못하여 일을 할 때 이치에 심히 맞지 않았기에 識者<그것을> 단점으로 여겼다.(<<고려사>> 110, 열전23, 이제현).”

이 문장은 <<고려사>> 이제현 열전에서 가장 이질적이다. 이제현 열전에서 그의 생애는 긍정적인 서술이 가득하고, 해당 기사의 바로 앞에는 당시 사람들이 귀천에 상관없이 그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료에서 비롯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것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이제현의 삶과 사상이 어떠했기에 이러한 모순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는가? 이것이 본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국보 제110호 이제현 초상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한 사람의 삶과 사상을 살펴보는 작업은 첫 논문을 준비하던 필자에게는 벅찬 과제여서 연구주제를 보다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차분히 이제현의 저술을 분류하고 살펴보았다. 이에 이제현이 고려왕조와 고려국왕의 정통성, 君臣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저술을 다수 남겼으며, 이를 통해 그의 정통론, 군주론, 신료론을 살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정치사상으로 종합하여 검토한 것이 필자의 석사학위논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논문은 그 학위논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선행연구를 통해 이제현의 정치사상에는 전통적인 요소와 새롭게 수용한 성리학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 당시 성리학 수용과 더불어 변화하기 시작한 고려 사상계의 흐름 속에서 이제현은 그 시작점에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 등이 밝혀졌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생각하기에, 선행연구는 고려말 사대부의 정치사상을 하나의 완성형 혹은 전형으로 보고 이제현의 정치사상을 분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현의 정치사상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되는 성리학적 관념은 강조되는 반면, 그 외의 요소는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거나 고려하더라도 그것을 한계로서 이해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외에도 이제현이 교유한 원 성리학자들의 견해가 그의 정치사상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검토도 연구에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본 논문은 종래의 연구를 보완하고, 그의 정치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우선 이제현의 정통론을 검토하였다. 이제현은 고려국왕의 권위와 권력이 실추되며 신료들의 찬탈적 행위가 만연하고, 이것이 고려왕조의 존속을 위협하는 시도까지 연결되었던 현실을 경험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배경 위에서 이제현이 왕조와 군주의 정당성을 고취하고 신료의 찬탈적 행위를 방지할 논리로 정통론을 구상하였다고 보았다. 그의 정통론은 천명과 인심을 정통의 기준으로 삼고 찬탈을 엄금하는 내용이며, 元明善의 정통관념과도 공통점이 발견된다. 다만 천명과 인심으로 왕조의 존속과 군주의 즉위를 강조하는 관념은 고려 지배층이 이전부터 가졌던 것이기도 하였다. 즉 이제현의 정통론은 고려 지배층의 전통적인 인식 위에 원 성리학자의 견해를 충돌 없이 수용한 것이었다. 이는 기존의 高麗-元관계를 긍정하며 고려왕조의 존속을 주장하는 그의 의도에도 부합하였다.

다음으로 이제현의 군주론을 검토하였다. 그는 성리학이 긍정하는 군주의 덕목을 二帝三王을 통해 일부 표출하였는데, 그것은 원 성리학자의 견해와 유사하였다. 다만 군주의 내면적인 덕성과 함께 구체적인 통치행위도 병기하여 그의 이제삼왕 인식이 철저히 성리학에 입각한 것이나 원 성리학자들의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고려국왕을 평가하며 군주의 덕목을 제시하였는데, 이때 군주 내면의 덕성보다 군주의 주도적인 정치행위가 강조되었다. 이는 그가 군주가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고려전기 지배층의 관념을 계승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제현은 성리학적 군주수신론을 제기하였지만, 고려전기적 군주수신론도 여전히 존중하고 있었다. 이러한 군주론은 고려전기적 관념 위에서 성리학적 인식을 수용하였다는 특징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제현의 신료론을 검토하였다. 그는 군신의 상하관계를 긍정하며 신료는 간언으로 군주를 보좌하고 그의 권력을 탈취하지 않으며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만 군주가 어린 나이로 즉위하면 재상이 輔政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재상관은 고려전기 지배층의 인식과 달랐으나 목적이 제한적이었고, 그와 교유한 張養浩의 견해처럼 재상이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재상관이 일생에 지속적으로 관철된 것도 아니었다. 이제현에게는 군주와 신료가 협력하여 정치를 해야 한다는 고려전기 이래의 관념이 본질적인 것이었다. 또한 이제현은 신료의 자질로 경명행수를 긍정하였으나, 신료가 각자의 재능에 따라 직분을 충실하게 수행하면 높게 평가하였다. 이러한 신료론도 고려전기 이래의 정치이념을 계승하면서 성리학적 관념을 일부 반영한 것이었다.

이처럼 이제현의 정치사상은 원 간섭기의 현실 속에서 왕조의 존속과 정상적인 政事 시행을 바랐던 그의 고민이 담겨 있었고, 고려전기 이래의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필요에 따라 성리학의 요소를 선택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그의 정치사상이 신학문을 흡수하는 가운데 여전히 고려의 전통적인 관념을 유지하며 아직은 성리학을 최우선적인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던 14세기 고려 지식인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이상의 결론을 얻었으나 첫 논문이라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았다. 우선 본고는 이제현과 고려전기의 유학자 및 원 성리학자들의 저술을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았지만, 여기서 나아가 그들의 사상의 구체적인 이론이나 경향성, 그것을 취사선택한 이제현 사상의 내용과 특징을 심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제현과 교유한 원 성리학자들의 저술도 보다 많이 검토하고, 더욱 집중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주어진 많은 과제가 있지만 하나씩 공부해가며 해결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