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언 디아스포라 역사학자 인터뷰]<일본 조선대학교 강성은 님③> 재일조선인을 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쓰다_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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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0년 8월(통권 8호)

[코리언 디아스포라 역사학자 인터뷰]

<일본 조선대학교 강성은 님③> 재일조선인을 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쓰다

 

홍종욱(근대사분과)

한역연 웹진 <역사랑> 창간 기획으로 코리언 디아스포라 역사학자 인터뷰를 연재한다. 면담자 홍종욱은 연구과제 ‘북한 역사학의 성립과 전개’의 일환으로 재일 조선인 및 중국 조선족 역사학자에 대한 구술 조사를 벌였다. 구술은 북한 역사학에 초점을 맞추지만, 동아시아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삶과 학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 2018S1A5A8026779)

 

구술자: 강성은(康成銀, 조선대학교 조선문제연구센터 연구고문)

면담자: 홍종욱(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장문석(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면담일: 2020.1.6. / 면담장소: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녹취: 류기현(서울대 국사학과), 이상현(히토쓰바시대학 언어사회연구과) / 정리: 홍종욱

 

<정태헌 선생님과 약탈 문화재 실태 조사를 벌이다>

면담자: 한국 학계와 교류도 많이 하셨죠?

구술자: 박사논문은 2001년이었죠. 일본 글로 낸 게 2005년이지요. 일본 글로 책이 나오기 이전에 정태헌 선생하고 공동연구가 제기되었어요.

면담자: 고려대학교 정태현 선생님이요.

구술자: 강만길 선생이 남북역사학자 협의회 남측 위원회 위원장 했지요. 집행위원장이 정태헌 씨, 사무국장. 나는 강만길 선생하고 이전부터 상당히 잘 지냈습니다, 의사소통도 잘 되고. 저는 원래 북하고 남하고 해외 학자들이 3자가 하나가 되어서 같이 연구한다는 생각 가지고 있어서,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 왜 해외동포가 안 들어가는가, 내가 조국에 사회과학원에 제기를 했어요. 이해를 해 주는데 답이 없어요. 그래서 강만길 선생한테 내가 그걸 제기를 했지요, 왜 해외동포 빼는가라고, 해외동포가 들어간다면 조선대학교 교원이 들어가야겠다고. 강만길 선생이 조국에 제의를 해준 거 같아요, 그런데 실현이 안됐죠. 그래서 강만길 선생이 주체적인 판단으로, 총련 중앙 허종만 책임부의장에게 사연을 말하고 3자가 못한다면, 남측 고려대학교하고 조선대학 공동연구를 제기했어요. 책임부의장이 오케이 해줬어요. 그래서 한번 조선대학에 강만길 선생하고 정태헌 선생 오셔서 처음으로 만났죠. 강만길 선생은 이전부터 대학에도 몇 번 오셨고 내가 압니다. 정태헌은 그 때 처음으로 보고, 남측 공동연구자는 정태헌, 조선대학에서는 나, 이렇게 공동연구를 한다고 조인서 썼어요.

<사진 1> 강만길 선생(왼쪽에서 3번째)과 정태헌 선생(4번째). 2005년 조선대학교에서. (구술자 주)

면담자: 공동연구 주제는 뭘로 하셨나요?

구술자: 정태헌 선생이야 왜정시기 재정관계가 전문이지요. 내가 이때까지 쓴 논문은 아까 말한 대로라 공통점이 없어요. 뭘 하는가 고민 하다가, 그저 연구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조금 임팩트를 줘야겠다. 그러니까 일제의 과거 죄행과 관련되는 거 하는 게 좋겠다. 그래 약탈문화재를 하면 어떤가. 약탈문화재에 대해서 연구는 많이 됐는데, 약탈한 문화재가 일본 어디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연구가 없었어요. 그런데 문화재를 반환한다 할 때, 언제 어디서 약탈해서, 일본의 어디 어디에 있는가, 이 경로를 밝히지 않으면 약탈문화재라고 판단 안 되지요. 그래 그걸 하자. 약탈문화재의 범위가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가 하다가, 통감부 때 생겨 총독부로 이어진 고적조사위원회에 한정해서 하자. 보고서가 있고 자료 자체는 괜찮기 때문에. 문제는 그 문화재가 일본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게 첫째로 밝혀야 돼요. 그때 발굴보고서는 다 읽었어요. 내가 갑자기 고고학자 돼버렸습니다. 공동연구 기간이 1년 밖에 없었어요. 1년 동안에 해치워야 해요. 그러니까 정식으로 말하면 2005년 8월경부터 시작했어요. 내가 을사오조약 책을 낸 것이 11월 달이니까, 동시 병행했어요. 그래서 도쿄대학, 교토대학, 규슈대학. 도쿄국립박물관, 오사카부립박물관, 교토 등등 거의 다 돌았어요.

면담자: 약탈 문화재 조사라고 하면 일본 측 여러 기관에서 협조가 좀 어려웠을 텐데요.

구술자: 보여주지 않지요. 내가 총련 사업 오래했으니까 사람과의 사업 잘 해요. 거기 관계자를 만나서 설복합니다. 편지를 내고. 그래서 내가 볼 때 연구자 중에 견실한 사람 많아요, 내 주의에 대해 찬동해 1줍니다. 가령 각 대학의 고고학연구실이나 박물관에 보존실이 있지요, 아무도 공개 못합니다. 그런데 거기 연구자나 한국의 유학생들이 도와주고 보여주었어요. 놀랬어요. 이때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많이 있어요.

면담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군요.

구술자: 당신들이 행동해야겠다고. 거의 다 협력해줍니다. 도쿄예술대학 미술관이 있어요. 거기에 1905년, 1906년에 강서 세 무덤의 모사도가 있어요. 오바(小場)라는 사람이 모사를 한 것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이걸 논문화 했지요. 강성은, 정태헌 공동 집필로서 일본 글로 조선대학교 학보에 썼어요. 우리글로서는 한국에 어떤 데에서 내달라고 했더니 정태헌이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기관지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연구상 필요한 것은 남조선, 한국에 있는 자료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총련 중앙의 승인을 받고, 1주일간 국립박물관, 부여박물관. 공주박물관, 경주박물관, 서울박물관 등, 일본에서 볼 수 없는 일제시기에 관련되는 자료를 정태헌 선생이 잘 해서 내가 가면 박물관마다 준비를 해줬어요. 정태헌 선생은 자동차로 쭉 돌아주었습니다 1주일간. 그래서 가까이 지내게 되었어요. 1년간 조선대학에서 거의 다 침식을 같이했습니다. 그 분이 그 동안에 평양을 세 번 정도 갔다 왔어요. 너무 바쁜 사람인데, 전국 각지 같이 돌아다녔습니다.

면담자: 정태헌 선생님이 일본에 1년 와 계셨죠?

구술자: 네, 조선대학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 빌렸어요. 식사는 조선대학교 식당에서 세 끼니 다 거기서 했어요.

면담자: 틈틈이 하야시 선생님이랑 신오쿠보에 있는 술집도 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웃음).

구술자: 정태헌 선생이 붙임성이 있기 때문에 누가 와도 친숙해집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죠. 조선대학 교원하고 상당히 친해져서, 조대 교원 사이에서도 정태헌 좋다하는 사람이 많아졌죠.

면담자: 약탈 문화재 조사라는 큰일을 하셨네요.

구술자: 만약 조일 국교정상화가 되고 문화재 문제가 되면 하나의 자료가 되지요. 그걸 목표로 했습니다. 고고학이지만 어떤 면에서 총독부 시기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근대사하고 통하고. 문화재에 관한 유네스코 협정 비롯한 여러 국제법 있죠? 상당히 많이 공부했습니다. 을사오조약 할 때도 국제법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일본에 국제법학자들, 외교사 하는 연구자들이 정말 잘못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 때 확인했어요.

※康成銀, 鄭泰憲, 「日本に散在する朝鮮考古遺物–朝鮮総督府の古蹟調査事業に伴う搬出遺物を中心に」, 『朝鮮大学校学報』 7, 2006 ; 강성은·정태헌, 「일제의 고분·토성 출토 유물 약탈 실태」, 『국제고려학회 서울지회 논문집』 제9호, 2007.6.30. (면담자)

 

<조선총련이 만든 역사교과서>

면담자: 교과서 편찬 때문에 북한에 갔다고 말씀 하셨는데,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북한 교과서랑 다른가요? 예를 들어 역사교과서면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따로 집필하신 겁니까?

구술자: 내가 교과서 집필을 한 것은 90년대하고 2003년, 그러니까 93년 교과서하고 2003년 교과서. 총련의 교과서는 10년에 한 번 갱신합니다.

면담자: 집필을 93년부터 하신 건 아니고 93년에 새 교과서를 사용하신 거죠?

구술자: 90년경부터 3년 정도 쭉 준비해서 93년에 초급, 중급, 고급 역사교과서. 또 한 3년 정도 매해 가다가 2003년에 새 교과서. 그걸 일본 글로 좀 썼습니다.

면담자: 네, 《통일평론》하고 《역사지리교육》에 조선학교 역사교과서에 대해 쓰신 글이 있네요.

※康成銀, 「統一教科書をめざした朝鮮学校の朝鮮史教科書改訂について」, 『統一評論』 451, 2003.5 ; 康成銀, 「朝鮮学校での朝鮮史教科書の見直しと変化」, 『歴史地理教育』 662, 2003.12. (면담자)

구술자: 네, 거기에 조련 시기부터 역사교과서 편찬에 대하여 개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 교과서, 역사교과서 집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조련 시기는 교과서는 독자적으로 만들었죠. 그때 중심이 된 분이 역사 관계는 임광철 선생이라고 도쿄 조고 교장하신 분입니다. 조련 시기에 역사 관련된 책도 많이 내시고, 박경식 선생도 아마 상당히 영향 받으신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련이 강제 해산된 후로 55년에 총련이 결성되어서, 그 후 10년에 한 번씩 교과서 편찬이 있었는데, 총련의 역사 교과서는 거의 그대로 조국의 교과서를 옮겨 놓은 겁니다.

면담자: 조련과 총련의 차이가 교과서에서도 드러나는군요.

구술자: 그러니까 공화국 연구 성과가 많이 담아지고, 예를 들면 내재적인 발전론에 기초해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는 아주 좋은데, 하나는 국제적인 계기가 경시되어 있지요. 내적인 요인하고 외적인 요인 속에서 역사는 움직이는데, 중국과의 관계, 일본과의 관계, 이런 것이 거의 다 사상되어있고. 또 하나는 역시 분단이데올로기가 그러니까 정치적인 것이 많이 발현되어 있죠. 나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총련의 교육이 상당히 어렵게 된 시기가 70년대 이후입니다. 다른 부분도 70년대 이후가 모두 어렵게 되었어요. 학생 수도 줄어들었지요. 교육 내용도 너무 정치적인 것이 많다는 것이 부모님들의 의견이었습니다. 나도 그런 생각이어서, 역시 공화국의 교과서는 아니기 때문에 총련의 독자적인 교과서를 만들어야겠다고 의견을 많이 제기했고, 그러하다가 내가 93년도 교과서부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90년부터 교과서 집필로서 가게 되었죠.

면담자: 총련 교과서지만 일단 집필은 북한과 협의를 하는군요.

구술자: 네, 그때 교과서 집필단위가 사회, 국어, 리과, 역사 이렇게 되는데, 역사 분과는 내가 책임자로 초급부 선생, 중급부 교원, 고급부 선생 이렇게 네 명이 갔습니다. 조국에서도 의논하는 집단이 있어요, 그 협의 밑에서 다 집필을 합니다. 아무래도 그 분들이 총련의 교과서를 많이 오랫동안 관여한 분들이니까 총련의 실정에 맞게 쓴다는 관점이 되어 있고 상당히 교과서 집필자로서 익숙된 분들이지요.

면담자: 그렇군요. 사회과학원 선생님들인가요?

구술자: 사회과학원보다도 김형직 사대 교원들입니다.

면담자: 아, 교과서니까 역시 사범대학 교원들이군요.

구술자: 뭐 그래도 연구자이긴 한데, 사회과학원 동지들은 거의 동원 안 되고, 주로 대학 교원들이 동원되지요. 의견은 아무래도 차이가 나오지요. 의견 교환은 합니다. 서로서로 난처한 게 많지요. 정치적으로 참 미묘한 문제들이 많이 나오지요. 너무 갈등이 심하면 안 되지만, 주장하는 것은 주장해야 하고, 내가 물러서지 않기 때문에 저쪽에서도 상당히 어려워하면서도 이해를 해 주고요.

면담자: 흥미롭습니다. 구체적인 쟁점을 좀 여쭤봐도 될까요?

구술자: 93년도 교과서는 주로 고대사, 중세사를 개정하는 데 많이 힘을 돌렸습니다. 하나는 삼국 시기는 고구려사 편향이 강한데, 백제, 신라도 많이 분량이 있어야겠다. 그리고 조선왕조 오백년을 공화국에서 리조, 리조 사회라고 하는데. 리조 사회라는 표현은 옳지 않고, 리조 오백년을 망국사의 역사가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발전의 역사로, 오백년의 역사를 발전적인 각도에서 집필한다, 주로 그러한 데다가 힘을 들였습니다.

면담자: 일본과 한국 역사학의 성과와 북한 역사학의 성과를 합치는 느낌이네요.

구술자: 네. 2003년도 교과서는 근대사를 주로 고쳤습니다. 어려운 것은 뭐냐 하면 조선 역사교과서는 공화국도 그렇고 총련 교과서도 그렇고 근대사는 3·1운동에서 그칩니다. 3·1운동 이후는 김일성 원수의 혁명 역사 과목이 있습니다. 이른바 현대사인데, 김일성 원수 혁명 역사라는 과목에서 3·1운동 이후를 쭉 합니다. 수령님의 영도사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그 외에 근대사, 현대사의 인물들, 사건들, 단체가 거의 안 나오지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70년대부터 학부모들 의견 많이 나오지요. 당연한 것입니다. 나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해서 의견 많이 제기했고.

면담자: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습니다. 북에서 나온 조선통사나 조선전사를 보더라도 1920~30년대 이후는 김일성 중심의 서술이 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역사 서술과는 많이 다르죠.

구술자: 2003년도 교과서에서 우선 제기를 한 것은 김일성 원수 혁명 역사 과목을 조선 역사 과목으로 고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조선 역사로서 일괄해서 쓴다, 그 속에 항일 빨치산 비롯해서 이른바 수령님의 역사를 포함시킨다. 당연한 내용이지요. 그런데 조국에서는 상당히 난처해합니다. 조국의 사상 사업의 하나의 기둥입니다. 총련에서도 저 같은 생각을 표면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없지요. 다만 교육 현장에서는 다 이해를 해줍니다. 타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위에서 판단하기는 어려우니까, 현장의 집필하는 내 자신이 그걸 해야겠다, 그래서 조국에 가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해방까지를 조선 역사라는 과목으로 일괄하고, 8·15 해방 후는 조선 현대사로 이름 바꿔 썼습니다. 그러니까 3·1운동 이후를 조선 역사로서 기본적으로 그 시기에 다뤄야 할 인물, 사건, 단체, 거의 다 넣었습니다. 상당히 지지 받았습니다. 동포들은 좋아했고. 현장 교원들도 좋아했습니다. 응당 3·1운동 이후에 민족주의 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이 있는데, 그것도 평가를 옳게 하자. 기본적으로 수령님의 혁명 활동 이외에 초기 공산주의 운동, 민족주의 운동 평가는 낮지요. 그런데 그것 역시 옳지 않다는 겁니다. 제대로 등장시켜야겠다. 그래서 박헌영의 콤그룹도 등장시켰습니다. 응당 그건 국내 조직으로서 다루어야 한다.

면담자: 박헌영의 경성 콤그룹이 총련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군요.

구술자: 박헌영 이름은 없습니다. 콤그룹이라고 나옵니다. 조국 동지들이 난처해합니다. 그런데 회고록에 거의 다 나와 있어요.

면담자: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말씀이시죠.

구술자: 뭐가 문제가 되면, 회고록에 이렇게 나와 있는데 왜 안돼요? 그럼 오케이죠. 콤그룹도 회고록에 나와 있어요. 회고록은 콤그룹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이 아니에요. 콤그룹도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하나의 그루빠로서 옳게 평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회고록은 상당히 기존 학계 연구 성과를 수용해서 유연한 평가가 되어 있죠. 그거 있었기 때문에 교과서도 만들 수 있었어요. 만약 없으면 통과되기 힘들죠. 그래서 조국의 사회과학원 리종현 선생께 교과서 원고를 쭉 보이고 의견을 받았는데, 참 좋다고 공화국도 이런 거 반영해야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그 날이 옵니다라고 하니까, 그렇지 우리 역사가들은 먼 장래를 내다보고 일하는 사람이니까 하셨는데, 지금은 돌아가셨죠. 남쪽의 연구자들한테 보이니까 남쪽의 교과서에서는 도저히 보지 못하는 교과서라고 합니다.

<사진 2>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허종호 선생과 함께. 2011년 조국에서. (구술자 주)

면담자: 2007년에 노무현 정부 때 남하고 북이 관계가 좋을 때 공동으로 편찬을 준비한 역사용어사전이란 게 있는데, 출판은 안 됐지만 원고는 다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항목이 단군부터 시작해서 3·1운동에서 끝납니다. 그 뒤는 남북이 공동으로 쓸 수가 없는 거죠. 그런 점에서 선생님이 주도해서 3·1운동 이후까지 쓰신 총련의 역사 교과서가 의의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구술자: 교과서를 둘러싸고도 조국과 총련 사이에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아무튼 2003년에 제가 목표를 하고 있었던 것이 100이라면 50정도 밖에 달성 못했습니다. 나머지 50은 당시에 그 이상 깊이 하면 아무래도 교과서 완성하기가 힘들다, 10년 후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 후면 2013년인데, 그때 교과서 개정이 안 되고 오늘까지 그대로 와있습니다.

면담자: 아, 그렇군요.

구술자: 교과서 편찬하려면 돈 필요합니다. 집필자들 공화국에 자주 가야지요. 그거 다 총련이 돈을 부담하기 때문에. 지금 교과서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고쳐야 할 곳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걸 내가 죽을 때까지 마지막으로 좀 하고 싶고요. 그래서 총련의 교과서, 좀 더 좋은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게 하나의 소원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