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와 중국 광저우 ②_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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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광저우 답사기]

 

한국의 근대와 중국 광저우 :

불산조묘, 강유위, 홍수전, 임정구지, 사면공원, 광저우 시내

 

남기현(근대사분과)

 

1. 답사 3일차 : 동관시에서 불산시로

⑴ 샤오롱샤(小龙虾)와 석과어(石锅鱼)

답사 3일차에 대한 소감을 적기 전에 전날 저녁 늦게 호텔 뒤편 골목 가게에서 먹었던 샤오롱샤와 석과어를 잠깐 언급하려고 한다. 호텔 뒤편에는 199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홍콩영화의 한 장면에서 본 듯한 가게들이 위치해 있었다. 큰 솥 등에서 무엇인가를 끓이고 그것을 안주삼아 노상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상의를 벗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광경이 보였다. 우리 테이블 옆 현지인들이 시킨 것도 참조하고, 속사포같이 말하시는 주인아주머니의 설명을 듣고,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시는 선생님들의 활약으로 무사히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사진 1> 샤오롱샤(출처: 남기현)

첫 번째 주문한 것은 샤오롱샤(小龙虾)이다. 샤오량샤는 민물가재이다. 이것을 매콤한 소스와 향신료, 채소 등을 넣고 솥에서 볶은 음식은 중국에서 한국의 치킨만큼 인기가 있다고 한다. 중국 가이드가 이것을 좋아하는 중국 여자가 있었는데 100마리 이상을 먹어서 남자친구와 해어졌다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사진 2> 석과어(출처: 남기현)

두 번째는 석과어이다. 일종의 생선탕인데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담백하고 맛있었다. 중국술과 너무나도 잘 맞는 맛이라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석과어와 샤오롱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석과어를 선택할 것이다. 동관시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의 일과 후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기억이 많이 남는다.

 

불산조묘

답사 3일차 일정은 동관시에서 불산시로 이동하여 불산조묘, 강유위 생가를 본 후 광저우시로 이동하여 홍수전 생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지, 사면공원에 방문하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한 후 8시에 일정이 시작되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조금 넘겨 불산조묘에 도착하였다.

<사진 3> 불산조묘 입구(출처: 남기현)

불산조묘는 도교에서 숭상하고 있는 북방현천대제(北方玄天大帝)를 모시는 사당이다. 북송 때 창건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중건되면서 현재 규모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사진 4> 엽문(출처: 남기현)
<사진 5> 황비홍(출처: 남기현)

불산조묘 안에는 엽문(葉問)기념관과 황비홍(黃飛鴻)기념관이 있다. 엽문과 황비홍은 불산에서 태어난 무술가들이었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 및 책들로 만들어졌다. 엽문 영화 시리즈의 주인공 견자단, 황비홍 시리즈의 주인공인 이연걸은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하다. 황비홍의 경우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가 100편이 넘는다고 한다. 중국인들을 보호하고 중국을 침략하려는 외세, 특히 영국인들에게 맞서 싸우는 이미지를 그린 것이 흥행의 원인이었다.

<사진 6> 불산조묘 공연(출처: 여호규)

황비홍 기념관 앞에서는 하루 3번 무술 및 사자춤 공연이 진행된다. 10대 소년들이 중심이 돼서 공연이 펼쳐졌고 화려하고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장소가 야외이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에 힘든 면이 있었다.

 

강유위 생가와 박물관

불산조묘를 본 후 강유위 생가로 향했다. 강유위는 청 말의 학자이며 정치가이다. 1858년 태어났으며, 1927년에 사망했다.

<사진 7> 강유위 동상(출처: 남기현)

강유위는 변법자강운동을 전개한 인물로 유명하며, 러시아, 일본의 예에 따라서 입헌군주제를 국시(國是)로 하자고 주장했다. 광서제의 참모가 되어 개혁을 추진하였지만 서태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일본으로 망명한 후 1902년 자신의 구상을 정리한 <대동서>를 완성하였다.

<사진 8> 강유위 생가(출처: 남기현)
<사진 9> 강유위 생가 내부(출처: 방광석)

강유위 생가는 광동성 포산시 남해구 단란진 은차촌 위소촌에 있다. 강유위의 가문은 5대째 지역에서 살고 있었던 명문집안이었다. 강유위는 자신이 태어난 집을 ‘백년 묵은 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사진 10> 강유위 박물관 입구(출처: 남기현)

양계초 생가, 손문 생가와 마찬가지로 강유위 생가 근처에는 강유위기념관이 있었다. 강유위기념관은 1986년에 건립된 것인데, 문이 닫혀 있었다. 대신 강유위박물관이 최근 건립되어 개장했고 이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사진 11> 시국도(출처: 구선희)

강유위박물관에는 강유위의 생애, 저서 등과 함께 강유위가 살았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전시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중국의 당시 상황을 표현한 <시국도>가 눈에 띄었다. 이 그림은 책으로 봤을 때도 느꼈지만 당시 상황을 너무나도 명료하게 보여주는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2. 답사 3일차 : 불산시에서 광저우시로

홍수전 생가와 기념관

점심을 먹고 버스로 광저우 시 외곽인 화도구로 향했다. 목적지는 홍수전 생가와 기념관이었다. 손문, 양계초, 임칙서, 강유위로 이어지는 중국 근대 개혁가, 혁명가들의 생가 방문 일정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사진 12> 홍수전기념관 태평천국운동 그림(출처: 남기현)

홍수전은 광동성 화현(花縣)으로 이주해온 중농(中農)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1851년 부패한 청 조정과 이를 돕는 사람들을 타도하고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로 거병하였다. 이것을 태평천국운동이라고 한다. 당시 지방 관리들의 폭정에 시달리던 많은 농민들은 태평천국운동에 가담하였다. 20만이 넘는 대군이 된 태평천국군은 남경을 점령하고 새로운 국가 건설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청 정부군이 남경을 함락하면서 태평천국운동은 실패하고 말았다. 홍수전은 남경이 함락되기 1개월 전에 병사했다.

<사진 13> 홍수전 생가 입구(출처: 이상호)

홍수전 생가 주변에는 역시 다른 개혁가, 혁명가들의 생가와 마찬가지로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홍수전기념관에는 홍수전과 태평천국운동에 관한 자료,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넓은 부지에 많은 것을 전시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홍수전과 태평천국운동을 묘사한 그림이 마치 삼국지, 수호지 등의 영화, 만화 등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인물들 역시 삼국지 게임 등에서 본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 14> 홍수전 생가(출처: 도면회)

홍수전은 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홍수전 생가와 함께 주변을 농촌마을로 재현해 놓은 것이 인상 깊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광저우 구지

홍수전 생가 및 기념관을 떠나 광저우 시내로 들어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광저우 청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사진 15> 대한민국임시정부 광저우 구지(출처: 도면회)

1938년 중일전쟁이 본격화되고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남경이 함락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근거지를 광저우로 옮겼다. 김구는 <백범일지>에서 이준식, 채원개 두 사람의 주선으로 광저우에 있는 ‘동산백원’에서 2개월간 머물렀다고 회고했다. 광저우임시정부청사 건물은 당초 멸실된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1996년 주광저우총영사관이 광저우시 문화국과 협조하여 청사의 소재지를 확인했다고 한다.

<사진 16> 대한민국임시정부 광저우 구지(출처: 한성민)

대한민국임시정부 광저우청사 건물로 알려진 곳이 두 곳이어서 실제 건물을 찾기가 약간 어려웠다. 현재 옛 광저우청사는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었다. 상해와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를 제외하고 다른 지역에 위치했던 임시정부청사는 현재 흔적이 없어지거나 보존이 어려운 실정에서 광저우청사 건물이 남아있다는 것 만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면공원(沙面公園)

대한민국임시정부 광저우청사를 보고나니 어느덧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서둘러 사면공원을 보기 위해 움직였다.

<사진 17> 사면공원 안내도(출처: 임경석)

사면(沙面)은 18세기 중엽까지 사주(沙州)라고 불리는 조그만 모래톱이었다. 하지만 제2차 아편전쟁 기간 중 승기를 잡은 영국은 광저우의 공격과 수비, 무역에 유리한 지역으로 사면을 주목했다. 그리고 청 관리들을 압박하여 사면 북쪽에 인공 섬을 만들고 육지와 분리시켰다. 그 후 프랑스와 함께 청 정부를 압박하여 인공 섬 사면을 조계지로 임대 받았다.

<사진 18> 사면공원 거리(출처: 심철기)

사면 전체 면적의 80%는 영국 조계지이고, 20%는 프랑스 조계지였다. 1953년 공원으로 계획되었고, 1960년에 공원이 조성되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었다. 현재 사면에는 유럽풍의 건물이 남아 있으며, 사면은 ‘중국속의 유럽’이라고 불리고 있다. 사면공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사면공원을 여유롭게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혹시 광저우에 다시 오게 된다면 사면공원과 지금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아 있는 13행이 있었던 장소를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19> 사면공원 내 스타벅스(출처: 도면회)

사면공원 내 명소 중 하나는 민트색으로 된 유럽풍 건물이다. 이 건물은 현재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 사면공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건물의 형태, 색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가면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면서 아무 생각 안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곤 한다. 스타벅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사면공원에 있는 스타벅스는 그런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20> 사면공원에서 다함께 한 컷(출처: 도면회)

사면공원을 마지막으로 3일차 답사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내일은 광저우 시내 답사가 기획되어 있다. 3일간 중국 근대 개혁가, 혁명가들의 생가를 위주로 답사를 했다면 내일은 혁명의 장소가 된 광저우 시내,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황포군관학교를 방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