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2분과 특별연구발표 후기] “근세 조선의 형성” – 조선시대 시대구분론을 다시 본 그 현장에 가다.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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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2분과 특별연구발표(최이돈, “조선시대 성격 논쟁의 검토”) 후기

“근세 조선의 형성”

– 조선시대 시대구분론을 다시 본 그 현장에 가다 –

 

나영훈(중세2분과)

 

최이돈 선생님의 열정적인 손짓과 고조되는 목소리는 80년대,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던 조선전기 신분사 논쟁을 설명하며 더욱 높아졌다.

1970년대 후반 한영우 선생님의 ‘조선초기의 사회계층과 사회이동에 관한 시론’은 그간 조선전기 사회가 4개의 신분제, 즉 양반과 중인, 양인, 천인으로 구분되었다는 통설에 전면 반박을 가하면서 시작되었다. 한영우 선생님은 조선전기 사회가 법제적으로 양인과 천인 단 두 가지 신분밖에 없다는 양천제설을 제기하였다. 이 논쟁은 기존 4신분제를 주장하던 이성무 선생님과 새로이 양천제설을 지지하였던 유승원 선생님의 개입으로 한층 고조되었다. 당시의 신분제 논쟁은 이후 지속되지 못하고 양자가 병존하는 상황에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이돈 교수님의 이번 발표, “근세 조선의 형성-나의 책을 말하다-”는 어찌보면 해묵은 논쟁인 80년대 신분제 논쟁에 불을 지피는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 성격의 규명과 같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조선시대 역사 연구의 현실에 큰 화두를 던진 것이었다.

최이돈 선생님은 아주 명료하고 단호하게 조선전기 역사상을 “근세”라고 규정하는데 머뭇거리지 않았다.

1994년 “조선전기 사림정치구조 연구” 발표 이후, 25년만인 2017년 그간의 연구를 모아 한 번에 5권의 책을 발간하였다. “조선중기 사림정치”, “조선전기 신분구조”, “조선전기 특권신분”, “조선초기 과전법”, “조선전기 공공통치” 등이 그것이다. 이들 5권의 책은 정치(사림정치)와 사회(신분), 경제(과전법)에서 다시 정치(공론)로 이어지는 서술구도 속에서 조선전기가 근세적 특징을 담보한 국가라고 말한다.

사실 5권의 책을 한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요약해 발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이돈 선생님은 몇 가지 주요한 특징을 제시하며, 조선은 ‘중세’적 성격을 지닌 고려시대보다 여러 분야에서 발전되었으면서 한편으로 ‘근대’에는 미치지 못한 시기로서 ‘근세’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신분사적으로 ‘혈통’에 기반한 시기였던 고려시대와 달리, ‘혈통’과 함께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 시기로서 조선은 중세의 혈통제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백성의 지위도 상승해서, 고려시기 1/4 이었던 부세 역시 1/20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백성의 경제적 여건이 좋아졌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라 보았다. 또한 국가가 부담할 세율이 줄었는데 국가재정이 유사하다면, 이는 농업생산력의 증가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면서 조선전기가 이전보다 농업 발달의 측면이 있다고 했다. 또한 과전법은 전국단위의 수조권을 걷던 고려시대와 달리, 경기에만 수조권을 인정하고 그 외의 지역은 사적 소유를 인정했다는 점에서도 조선이 발전되었다고 보았다. 여기에 더해 백성의 신분적 지위도 상승하여 ‘능력’을 기반으로 관직을 성취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였고, 이러한 백성의 지위 상승은 공공통치의 이념 속에서 정치에도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사림은 특권신분이 아닌 백성의 상위계층으로서, 이들은 백성의 여론인 공론을 주창하며 백성들이 참정권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즉, 신분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일련의 발전상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바로 조선이 ‘근세’로 구분될 수 있는 이유라고 주장하였다.

짧은 시간의 발표였지만 큰 주제를 던지셨던 만큼 토론 역시 치열하였다. 세 분의 관련 분야 전공자들이 2시간 30분 동안 토론을 이어갔다. 사실 여러 질문이 오고 갔기 때문에 모든 질문과 답변을 소개할 순 없고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추려보자.

우선, 가톨릭대학교의 신동훈 선생님은 신분제와 관련한 질문을 제기했다. 최이돈 선생님은 혈통과 능력이 함께 중시되는 조선전기 신분제를 제시하며 혈통을 기반으로 한 ‘특권신분’은 2품 이상 대신으로 한정되었고, 이들은 세습적 지위를 영위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동훈 선생님은 최이돈 교수님이 제기한 ‘특권신분’ 역시도 자격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했고, 그 이후의 혜택도 음서에 불과하여 영구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하였다. 즉, 이들을 특권신분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최이돈 선생님은 이에 대해 2품 이상 대신을 특권신분으로 제시한 것은 이들이 음서와 세록전을 통해 관직과 토지를 대대로 계승하는 혈통에 기반한 귀속적 성격을 가졌고, 음서는 물론 낮은 관직을 수여하지만 이들이 이른 나이에 경쟁자들보다 빨리 관직을 획득해 또 고위관직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신분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이민우 선생님은 조선전기 과전법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최이돈 선생님은 고려시대 전시과에서 조선전기 과전법으로의 이행으로 국가의 수조권적 지배가 축소되고, 그만큼 지배층의 기득권 역시 축소되었다고 제시하며, ‘경제외적 강제’가 완화된 시기라는 점에서 조선을 중세보다 발전적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대해 이민우 선생님은 과전법으로 시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무리한 설정일 수 있다고 반박하였다. 즉,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시기에는 이전과는 달리 노비가 급격히 증가하며 농업에 종사했고, 이에 농장이 확산되었다. 조선전기의 농장은 수조권적 지배를 했던 고려와 마찬가지로 지배층의 ‘경제외적 강조’가 이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조선이 ‘경제외적 강제’가 완화된 근세적 성격을 지닌 국가로 이해할 수 있는가? 반대로 중세적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즉, 과전법의 해명만으로 경제적 분야에서 조선을 근세라고 설정하기에는 무리이며 보다 다양한 경제적 분야의 폭넓은 연구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이돈 선생님은 이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며, 경제사 분야에서 해당 연구의 진척이 필요하다고 동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총신대학교의 송웅섭 선생님은 정치적 방면에서 토론을 제기하였다. 송웅섭 선생님은 최이돈 선생님의 2권의 책, 조선중기 사림정치와 조선전기 공공통치의 핵심 키워드인, ‘사림’과 ‘공론’에 대해 완전히 다른 정의를 하며 최이돈 선생님의 견해를 비판했다. 송웅섭 선생님은 그간의 ‘사림’ 이해가 이들을 재지사족과 등치시키면서, 사림의 등장으로 언론이 활성화되고 낭관권이 형성되며, 이어 공론층이 등장하고 권력구조가 변동되면서 사림정치가 발생하는 결과로 붕당정치가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이 설명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송웅섭 선생님은 사림은 재지사족이 아니며 정치와 경세에 있어 학식과 식견을 갖춘 인사들로서 특권층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최이돈 선생님은 사림을 재지사족에 등치시키지 않는 이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다만 최이돈 선생님은 사림을 특권층이 아닌 백성의 상위계층으로서 일면 백성과 거의 동등한 계층으로 이해하였다고 설명한다.

사실 실제 발표현장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논의들이 개진되었다. 물론 서로 간에 반론과 재반론이 거듭된 치열한 토론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대부분 최이돈 선생님이 자신이 생각한 ‘조선근세론’의 여러 근거들을 제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토론자들과 청중들은 더 많은 반론을 제기할 여력이 보였지만 늦은 시간 오랜 공방에 약간 피로해진 느낌도 있었다. 무엇보다 조선전기 정치, 경제, 사회신분을 넘나들며 펼치는 최이돈 선생님의 조선근세론을 비판적으로 토론하기에는 주어진 환경이 열악했다고 해야 할까. 한 자리에서 한 번에 치열하게 토론할 분위기의 자리는 아니었다. 사실 이와 같은 거대담론은 며칠에 걸쳐 여러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모여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될 때 훨씬 더 의미있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조선전기의 시대구분론을 듣고 생각해본 자리였다는 점에서, 사실 여러 객관적인 주장과 근거들은 차치하더라도 많은 공부를 했던 자리였다. 말미에 최이돈 교수님의 말처럼, 조선시대 신분제 논쟁과 같은 수준 높은 논쟁이 흔하지 않은 학계의 분위기에서, 이번 최이돈 교수님의 ‘조선근세론’이 논쟁의 불을 지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