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100년』(2019,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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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을 말한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총서 서평

『3.1 운동 100년』(2019, 휴머니스트)

 

임경석(근대사분과)

 

1.

원고 청탁이 왔다. 우리연구회 미디어위원회로부터 온 요청이었다. 3.1운동 백주년을 기념하여 우리연구회가 간행한 총서 전5권에 대한 서평을 써 달랜다. 웹진에 실을 예정이고, 형식과 내용, 분량을 자유롭게 해도 좋다고 한다. 나에게 원고를 요청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70주년 공동연구팀의 일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70주년 기념논문집과 100주년 총서, 두 기획을 비교하면서 써달라는 주문이었다. 공사 양 방면으로 좀 바쁜 시기였지만 기꺼이 응하기로 했다. 70주년팀의 일원이라는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단행본 다섯 권짜리 거질이었다. 게다가 단일한 서사로 묶인 장편이 아니라 수십 편의 독립적인 논문을 묶어놓은 책들이었다. 논문 한편 읽을 때마다 메모하고 생각하고 숨을 골라야 했다. 마감 시간에 맞춰 다 읽기는 무리였다. 두 번이나 마감시간을 넘긴 뒤에야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본격 서평이 아니라 마음 가는 대로 펜을 굴리는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서평’에서 ‘소감’으로, 글 제목을 바꿨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애구. 처음부터 그럴 걸.

 

2.

다시 말하지만 3.1운동 백주년 총서는 전5권의 논문집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오래된 전통을 잇고 있는 셈이다. 해방 후 첫 3.1절 때부터 그랬다. 조선과학자동맹이 간행한 <조선해방과 3.1운동>은 7편의 논문을 묶은 논문집이었다. 50주년 때도 다르지 않았다. 동아일보사에서 <3.1운동50주년기념논집>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집을 냈는데, 거기에는 3.1운동의 이모저모를 다룬 75편의 논문이 실렸다. 그뿐인가. 70주년을 맞아 우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펴낸 <3.1민족해방운동연구>도 논문집이었다. 도합 13편의 논문이 실렸다. 금년에 나온 백주년총서도 그 전통을 따르고 있다. 39명의 연구자가 집필한 도합 45편의 논문을 실었다.

다섯 권의 논문집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보니 묵직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얀 벽돌 다섯 개를 올려놓은 듯하다. 한데 쌓아놨더니 높이가 한 뼘에 근접했다. 보기가 좋다. 다채로운 저작들로 가득 찬 3.1운동 연구사의 화원 속에 수십 그루의 새 꽃들이 핀 것만 같다. 이 꽃 저 꽃 완상하노라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기시감이 들었다. 1994년에 우리연구회 근대사분과가 큰 힘을 기울여서 수행한 갑오농민전쟁 백주년 기념사업의 성과물이 떠올랐다. 그때 펴낸 <1894년 농민전쟁 연구>도 다섯 권이었다.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100주년기획위원회’(이하 백주년팀) 사람들의 속마음이 읽히는 듯하다. 갑오농민전쟁 백주년 성과와 균형을 맞추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감이 간다. 적절한 판단이었던 것 같다. 논문집 쌓여 있는 모습이 역대 어느 기념 연구에 비해서도 부족함이 없이 당당하다.

 

3.

총론에 주목했다. 백주년팀의 문제의식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제목이 눈길을 끈다. “3.1운동 100주년, 새로운 역사학의 모색”이라고 제목이 달렸다. ‘새로운 역사학’이라고? 독자의 주의를 잡아채는 힘이 있다. 새롭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킬까. 우리연구회가 창립 때부터 표방해 온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지금까지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을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이라고 불렀다. 그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맑스주의 역사학’, ‘민중적 민족주의 역사학’, ‘민중사학’ 등 각기 다른 지향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한 역사학의 수립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에 기여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다들 같았다.

그러나 백주년팀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이라는 깃발이 시류에 맞지 않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 깃발 아래에 서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백주년팀은 한국 역사학이 전환의 시대를 맞았다고 보고 있다. 한국근대사를 바라보던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탈 대 저항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은 해체됐으며, ‘민족 대 반민족의 프레임’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오래도록 역사의 주체는 민족이었고 때론 민중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고 한다. “민족이나 민중을 단일한 집합 주체로 보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과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의 운동성에 주목하는 한편, 장애인과 성소수자 등 역사 속에서 배제된 주체를 찾아 그들의 삶을 복원”하겠다고 표명했다. 새로운 역사학에는 ‘단일한 대오’도 ‘단일한 깃발’도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움직임이 오늘날 한국 역사학의 주된 흐름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아하! 새로운 역사학이란 곧 탈근대주의역사학임을 알겠다. 1990년대에 대두하기 시작한 그 연구경향이 어느덧 한국역사연구회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았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역사 연구자들의 내면세계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음이 실감난다.

되돌아가보자. 70주년팀의 문제의식은 백주년팀의 그것과 달랐다. 그들은 관변 역사학자들이 구축한 3.1운동 역사상에 의문을 표명하는 것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3.1운동이 분수령적 의의를 갖는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이 운동을 계기로 하여 민중이 민족해방운동의 주도권을 점차 장악하기 시작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아가 이러한 공동연구의 의의를 현실의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의 과제와 연계시키고 있었다.

70주년팀과 백주년팀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을까? 어느 정도까지는 세대 간의 차이일 수 있겠다. 70주년 논문집을 밑줄치고 읽은 대학원생, 그 존재조차 몰랐던 중학생과 유치원생이었던 이들이 백주년 총서의 필자가 됐으니 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으니, 역사연구자들의 문제의식에 변화가 있는 것도 기이한 일은 아니다. 30년 동안 국내외 정치와 사상계의 변동이 얼마나 심했던가. 동유럽과 소련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됐고, 미국의 단일 헤게모니 하에서 온 지구가 갖은 소란을 겪었다. 그뿐인가. 제3세계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은 경제성장을 거듭하여 어느덧 GDP 순위 제2위에 올랐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70주년과 100주년의 문제의식이 차이 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닐 것이다. 우리연구회 내부에 잠재해 있던 이질적 성향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겠다.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응하여 두 개의 상이한 방향으로 분화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흥미롭다. 맑스주의 역사학과 민중적민족주의 역사학을 한편으로 하고, 탈근대주의 역사학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대 흐름이 한역연 근대사 분과 내에 공존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이가 생겨난 경위와 그 원인을 탐구하는 것은 21세기 사학사의 중요 주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4.

3.1운동 연구사에는 이러저러한 논쟁점들이 형성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뜨거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민족대표 평가 문제일 것이다. 이 문제는 긴 논쟁사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해서 백주년팀은 어떠한 견해를 갖고 있는가? 깊은 관심을 끈다. 최신 연구 성과들은 오래된 묵은 논쟁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갖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대표 평가 문제란 3.1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민족대표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했는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이는 3.1운동 주도세력 논쟁이기도 하다. 누가 3.1운동을 이끌었는가를 놓고서 상이한 견해가 제기되어 왔다. 해방 후 처음 맞는 1946년 3.1절 당시에 이미 세 개의 견해가 나왔다. ‘민족대표 주도론’과 ‘민중 주도론’, ‘민족대표 역할론’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견해는 이후 3.1운동 연구사의 전개과정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50주년에는 동아일보와 <역사학보>가 겨뤘다. 둘은 ‘민족대표 주도론’과 ‘민중 주도론’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70주년에는 한겨레신문사와 동아⋅조선일보사 사이에서 동일한 논쟁이 전개됐다. 재일본 역사학자 박경식과 강재언은 ‘민족대표 역할론’과 ‘민중 주도론’의 관점에 서서 이 논쟁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바 있다.

그러나 뜻밖에도 백주년팀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이 사안을 독자적으로 분석한 논문은 없으며, 부분적으로 이에 대해 언급한 글도 찾기 어려웠다. 부재(不在)에도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당사자의 표현을 빌어서 왜 그랬는지 확인해 보자. 제3권 머리말에는 이 의문을 풀만한 단서가 있다. 그에 따르면, 백주년팀은 권력과 정치를 다루되 지배 대 저항을 중심축으로 하는 기존의 서사구조를 배제했다고 한다. 그 대신에 백주년 팀이 추구하는 바는 다양한 주체의 대안적 서사를 구성한다는 데에 있다. 보기를 들면, ‘다양한 목격자’의 시선을 발굴하거나, 운동사의 관점이 아니라 정치사의 관점에서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 등을 택하고 있다. 요컨대 수십년간 전개되어 온 3.1운동 주도세력 논쟁은 백주년 팀에게는 더 이상 매력적인 문제로 간주되지 않은 듯하다. 아쉽다. 어떤 이유에서건 오래된 논쟁점에 관한 논의를 회피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5.

민족대표 평가 문제와 더불어 3.1운동 연구사를 뜨겁게 달궈온 또 하나의 논쟁점이 있다. 바로 3.1운동 계승논쟁이다. 3.1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인가, 아니면 민중운동인가 하는 논쟁이다. 임시정부 법통론이 역사적 사실에 배치된다고 보는 점에 대해서는 70주년팀과 백주년팀이 공통된다. 둘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다만 임시정부법통론의 내포와 외연에 대해서는 좀더 엄격한 재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

백주년팀에 따르면, “3.1운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립됐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이 곧 ‘임정법통성’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3.1운동의 계승자로서의 임시정부’라는 인식, 그것이 곧 임정법통성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임정법통성 개념을 잘못 설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임시정부가 3.1운동의 와중에 그 소산으로서 성립된 것은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요점은 다른 데 있다. 이른바 임정법통론이란 두 가지 골자로 이뤄져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일제 식민지 전 시기에 걸쳐서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중심기관으로서 역할해 왔고, 1948년에 수립된 한국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백주년팀이 말하는 임정법통론 혹은 임정법통성의 내용에 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임정 법통성이 항상 우파의 논리로 작동했다는 백주년팀의 판단도 문제가 된다. 이 판단은 사실에 배치된다. 보기를 들어 1921-23년 국민대표회 운동이 진행되던 시기에 임시정부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자는 입장을 제시했던 개조론에 주목하자. 개조론을 주장했던 주체가 고려공산당 상해파였음에 유의해야 한다. 민족통일전선론을 채택한 사회주의 세력은 임시정부의 존재 의의를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6.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백주년 팀에게 걸었던 기대감이 있었다. 3.1운동 연구의 과제 가운데 하나는 역사상의 박제화를 극복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 왔다. 3.1운동에 관한 일반적 이미지는 딱딱하게 고정화되어 있다. 민족자결주의, 민족대표 33인, 파고다공원, 방방곡곡의 만세시위, 장날의 태극기, 유관순의 희생 등의 서사로 이뤄진 상투적인 이미지가 매년 3.1절마다 되풀이되어 왔다. 이 낡은 역사상을 해체하고 새로운 활력있는 역사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3.1운동은 실제로는 복잡하고 드라마틱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주는 역사이다. 제어할 수 없는 분노와 먹먹한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그 진실을 제대로 형상화하는 것은 우리 역사연구자에게 주어진 소임이다.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나는 백주년 총서 속에서 그러한 형상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글을 다수 읽었다. 그처럼 흥미로운 글을 쓰는 연구자들이라면 얼마 안 있어 활력있는 3.1운동 역사상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논문으로는 역부족이다. 3.1운동이 워낙 거대한 대상이니만큼 그를 형상화하는 역사 글쓰기도 장편이어야 한다.

2019년에는 3.1운동을 다룬 개성있는 단독 저서들도 적지 않게 출간됐다. 박제화된 낡은 역사상을 해체하는 데에 이 단행본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만세열전>, <3월1일의 밤>, <1919,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등이 주목된다. 우리연구회 백주년팀 구성원들도 가일층 연구에 전념하여 활력있는 새 역사상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가까운 장래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