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지 않지만 쉽지도 않은 고민을 시작하다 – ‘언어’로 구현되는 사료의 특성을 생각하며- (제 9회 한국사교실 참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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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지만 쉽지도 않은 고민을 시작하다
– ‘언어’로 구현되는 사료의 특성을 생각하며 –

(제9회 예비-초보 전문가를 위한 한국사교실 참여 후기)

 

윤광언(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석사과정)

 

한국역사연구회(이하 한역연)에서 한국사교실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작년 이 무렵이었습니다. 학과 단체카톡방에 제8회 한국사교실 홍보글이 올라온 것을 보고 참석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들었으나, 개인적인 사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그동안 지면으로나마 뵈었던 선생님들이 계신 적도 있고, 선생님들께서 성과를 내시는 데 구심점이 되었던 한역연, 바로 그곳에 드디어 가본다는 기대감 반, 긴장감 반으로 올해의 한국사교실 신청 공지를 기다리던 겨울이었습니다.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손꼽아 기다리던 제 9회 한국사교실에서는 작년에 재미있게 읽었던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의 저자, 장지연 선생님도 뵐 수 있었습니다.

“한국사는 어떤 언어체계 속에서 구성되는가”라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선생님께서는 초학자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여 설명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이때 기록자는 어떤 언어의 어떤 문자를 빌릴 것이냐를 선택, 나름대로 ‘과거 그 자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도 강조하셨듯이, ‘언어적 전환’은 “그러므로 모든 역사적 기술은 언어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진실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아가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구자들에게 ‘언어적 전환’은 “다른 언어, 문자로 된 기록이 다른 역사적 실재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연구를 진행해 소정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의 추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피기록자의 행위와 저술에도 피기록자의 언어적 구성에 따른 그의 의도가 남고, 이를 기록자가 재구성해 사서에 남기는 과정에도 언어적 구성이 이루어집니다. 배울 것이 많은 초학자의 섣부른 추측입니다만, 아직 ‘언어적 전환’을 고려하는 편이 시야의 확장과 연구의 심화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기에, 지금까지도 관심과 연구가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선생님께서 수업 중 말씀하셨듯이, 조선 이전의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에크리튀르’(=쓰기와 관련된 제반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글이 쓰이기 시작한 후로 사람들의 언어생활은 더욱 다채로워졌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더라도 어휘에 대한 민감함은 사람마다 판이한데, 옛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기록으로 남길지, 남긴다면 어떤 식으로 기술하여 남길 지까지도 인식을 달리 합니다. 시대에 따라 특정 언어가 가지는 위상마저 차이가 있었고, 향찰, 한글, 한문으로 쓰여진 각각의 기록은 담아낸 생활상 또한 달랐습니다. 전통적으로 중시해온, 고전 한문으로 쓰여진 사료를 보더라도, 단어의 의미 변천과 뉘앙스의 차이 등 후대인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요소가 있어 사료를 오독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습니다.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반인이 남기는 사료는 방대하나 보존되는 것이 적고, 지배층이 남기는 사료는 희소하나 보존되는 것이 많다. 때문에 몇 안 되게 전해지는 ‘일반적인’ 모습을 후대인들은 ‘특이한’ 모습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항상 고민해야 한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문서를 살펴보며 조선 사람들의 삶을 알아가고자 하는 제게는, 몽골사 연구에서의 페르시아어 자료처럼 존재해왔으나 주목받지 못해온 사료를 잘 살필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장지연 선생님의 말씀과도 상통하는 이야기였다고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두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바를 따르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따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전제 조건, 즉 시각과 관심 분야를 넓히는 한편 사료 구성의 다층위성과 다양성을 유념하며, 그려진 역사상과 서술 방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짧지만 초학자에게 도움이 되는 교훈을 적지 않게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란 뭘까’라는 의문에 나름의 답을 구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정작 공부를 하는 방법과 자세를, 그리고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자 연구의 대상인 사료가 ‘언어’를 골격으로 삼으며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를 깨닫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후배로서 선배의 전례에서 배워 앞으로의 정진을 다짐함으로써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한역연의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