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민족운동을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영화 ‘말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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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민족운동을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

(영화 ‘말모이’)

 

임동현(근대사분과)

 

1. 들어가며

조선어학회와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영화일지 궁금했다. 영화 <말모이>의 예고편을 봤을 때는 민족의식이 없는 주인공이 조선어학회를 돕게 되면서 민족의식을 깨닫고 조선어학회원들과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사전을 만든다는 내용처럼 보였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국뽕’ 가득한 영화는 아닐지 살짝 우려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시기 문화운동을 다뤘다는 점에서 기존의 <암살>, <밀정>과는 다른 독립운동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다. 조선어학회와 조선총독부의 말과 글을 둘러싼 갈등이 어떻게 그려질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이러한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사진1] 영화 ‘말모이’ 포스터 (네이버 영화)

 

[사진2] 영화 ‘말모이’ 스틸컷 (네이버 영화)

 

2. 영화적 각색이 주는 재미와 아쉬움

영화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사전 편찬과 창씨개명, 조선어 사용 금지 등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 분)과 일반 민중을 대표하는 ‘김판수’(유해진 분)가 만나서 서로 조금씩 변해간다는 지식인과 민중의 결합 서사를 브로맨스로 보여주었다. 조선어학회는 표준어 사정, 철자법 제정 등 지식인들 중심의 활동단체였는데, 민중과의 접점을 만들어낸 것은 재밌는 영화적 각색이었다.

‘김판수’가 조선어학회원들과 함께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민족의식 각성이 아니라 ‘류정환’과의 동지애로 설명한 부분은 예고편을 보면서 우려했던 점을 잘 비껴간 지점이라서 흥미로웠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온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사람의 한 걸음이 의미 있다’는 말도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 사업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식민지 지식인 집단과 민중과의 결합을 보여주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를 보여준다.

자칫 딱딱하거나 지루할 수 있는 조선어 사전 편찬이 가지는 의미도 ‘김판수’가 한글을 배워가는 모습을 통해서 코믹하게 잘 풀어내고 있다. 특히 한글을 배워서 신나게 간판을 읽어가던 ‘김판수’가 모든 간판이 일본어로 바뀌어버린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은 식민지 현실에서 일상어가 식민지배자의 언어로 변해가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운 장면들도 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류정환’이 경성역에서 조선 아이가 조선말을 전혀 못하고 일본말만 하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다. 아마도 식민지에서 조선어가 사라지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식민지에서는 식민지배자의 언어가 일상 언어로 침투하는 언어포식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완전히 모국어를 망각하고 식민지배자의 언어를 온전히 사용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어 습득률은 1940년 말이 되어서야 15%를 넘겼다. 영화적 각색이라고 넘어가기에는 과장이 지나쳤다. 당시 일본어 교육이 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본어로 대화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놀라는 장면으로 대신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조선어학회를 추격하는 일본 경찰이 극 중 최고 친일파인 경성제일중학교 이사장을 총으로 쏘는 장면이나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경성역의 경찰들이 김판수에게 총을 쏘는 장면 등은 식민지배의 억압성을 너무 강조하려다가 오히려 물리적 폭력만이 강조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모습이었다.

 

3.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은 비밀작전?

무엇보다 제일 아쉬웠던 것은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 작업을 비밀작전으로 묘사한 것이다. 영화 속 조선어학회는 서점 뒤에 몰래 건물을 만들어 그곳에서 비밀리에 사전을 편찬하고 있었다. 영화 초반 <말모이> 원고를 들고 경찰들의 추격을 피해 조선으로 몰래 들어오는 ‘류정환’의 모습이나 경성역에서 처음 ‘김판수’를 만나 싸우다가 경찰을 피해 소매치기인 ‘김판수’보다 먼저 도망간 ‘류정환’의 모습 등은 학술연구단체였던 조선어학회를 <암살>이나 <밀정>에 나왔던 의열단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굳이 조선어연구회를 의열단처럼 묘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영화의 극적인 긴장감을 위한 각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모습이었다.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비밀 작전이 아니었다. 조선어사전 편찬은 식민지배 초기에 만들어진 조선광문회(1910)의 사전편찬 작업을 시원으로 한다. 이때 만들어진 사전 원고가 바로 영화 오프닝에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해 국내로 반입하는 것처럼 묘사한 주시경, 김두봉의 <말모이> 원고이다. 이후 사전 편찬 작업은 계명구락부의 조선어사전편찬 사업과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사전 편찬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사전 편찬 사업은 1936년 조선어학회가 언어규범에 대한 사업을 마무리하고 이어 받게 되었다.

영화와 달리 조선어학회는 1939년 사전원고 작성을 마치고 조선총독부 도서과에 출판 허가를 받기 위해 원고를 제출했다. 실제 역사와 영화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조선총독부는 몇 가지 수정지시 사항을 내리고 수정지시 사항을 지키는 것을 조건으로 1940년 출판을 허가했다. 하지만 곧 이어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나면서 사전 출판은 해방 이후로 연기되었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에 대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어학회가 주최하는 강습회가 취소되는 일도 있었고,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요주의 단체 리스트에 조선어학회가 올라가기도 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어학회의 활동에 대한 감시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1938년이 지나면서 조선총독부는 조선어 연구와 교육을 극도로 제한했다. 조선어학회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양동호회와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조선어학회 6명 간부 중 이윤재, 김윤경, 이만규, 최현배가 검거 당했다. 이처럼 1930년대 말부터 활동 영역이 많이 축소되었지만 사전편찬 작업은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사전 편찬 작업을 비밀작전으로 설정하면서 영화는 추격전, 내부의 배신, 목숨을 건 사전 원고 사수와 같은 장면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이러한 각색이 식민지시기 합법적인 공간에서 전개되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3]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 모인 조선어학회 인사

 

4. 영화가 보여주지 못한 일상에 강제되는 식민지배자의 언어

영화는 조선어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체벌을 가하면서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는 교사를 제외하면 등장인물들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는 존재는 식민권력의 폭력성을 대변하는 일본 경찰들뿐이다. 막상 등장인물들은 일상생활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요받거나 조선어 사용을 금지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1938년 이후의 언어지배정책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공공기관에서 조선어를 완전히 배재한 것과 일상생활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제한 것이다. 원래 공공기관에서는 일본어 사용이 원칙이었지만 관청 등에서는 지배의 효율을 위해서 조선어도 사용했었다. 하지만 잡지 朝鮮(1937 2월호)에 실린 「국어를 상용하자」라는 글을 보면 관청 내에서는 상호간에 일체 일본어를 사용할 것, 상대방이 일본어를 몰라서 조선어를 사용해도 일본어로 응대할 것, 각자 가정에서도 일본어 사용의 기회를 많이 가질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방침은 1937년 3월 문서과장 명의로 관공서 직원들에게 일본어만을 사용하라는 통첩 발송으로 이어졌다.

1938년에 열린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회에서 논의된 내용 중에는 “일상생활의 내선일체화를 도모할 것”의 하위 항목으로 “국어 생활에 힘써 의식주에 관한 일상생활 풍습 습관의 내선혼화를 도모할 것”이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일본어 사용을 확대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정책 기조는 더욱 강화되어, 부주의하게 조선말을 할 경우에 서로 주의를 주거나 ‘국어 상용의 집’을 표창하여 ‘국어 상용의 집’이라는 문패를 걸어 이 집에서는 조선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 일본어를 생활용어로 만들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사진4] 조선어학회 한글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지점은 일상생활에서 일본어 상용화가 강제되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김판수’의 아들인 ‘덕진’은 계속해서 “‘순희’가 학교가니까 조선말 알려주면 안돼요”라고 하지만 당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면 “이제 집에서도 일본어 써야한다니까 한글 배우지 말고 일본말 쓰세요”라고 말해야했다. 아니면 일본말을 할 줄 모르는 김판수의 친구들이 일본어 사용을 못해서 곤경에 처하는 장면들이 나왔다면 영화가 1940년대라는 시대의 특성을 더 잘 반영했을 것이다.

 

5. 다양한 민족운동을 기억할 다양한 방식

영화 <말모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전편찬을 비밀작전처럼 묘사하고, 1940년대라는 시대적 특성을 잘 반영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말모이>에 대해서 “이야기가 달라져도 화술은 달라지지 않는 한국영화 또 하나의 풍경”이라고 평가했다. 이 말은 조선어학회라는 새로운 소재와 194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도 이전과 비슷한 식민지 독립영화를 만들어냈다는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어학회와 같이 식민지시기에 합법적으로 활동했던 민족운동단체를 어떻게 재현할까라는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독립운동에 우열은 없지만 무장투쟁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무장투쟁만이 독립운동의 모든 것이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에도 공감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말과 글, 민족문화를 지키려고 했던 민족주의자들,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웠던 사회주의자들. 이들은 식민지에 남아서 식민지의 현실 속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합법’이라는 틀 속에서 활동했지만 운동의 목표가 ‘민족독립’을 지향하는 이상 필연적으로 ‘불법성’을 내포하는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일반 근대 국가에서 전개되었던 체제 내적인 개혁운동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다. 그래서 조선어학회와 같은 민족운동단체들은 식민권력의 감시와 검열 속에서 활동하면서 조선총독부와 보이지 않는 갈등과 대립을 했던 것이다.

처음에 영화를 보러갈 때 기대했던 것은 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아쉽게도 영화 <말모이>에서는 이러한 긴장감 대신에 전형적인 일본 경찰의 폭력과 사전 원고를 둘러싼 추격전만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독립운동에 대한 영화가 제작되어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다양한 접근방식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