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좀비가?(드라마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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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좀비가?

드라마 ‘킹덤’

 

윤민경(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이때 이름 모를 괴질이 서쪽 변방에서 생겨 한양 도성에 번지고 여러 도에 만연하였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심하게 설사를 하고 이어서 厥逆이 생기는데, 발에서부터 뱃속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열 명 중 한두 명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집집마다 전염되어 불똥 튀는 것보다 더 빨리 유행되었는데, 옛 처방에도 없어 의원들이 증세를 알 수 없었다. 卿宰 이상의 사망자가 십여 명이었고 일반 관료나 백성은 수를 헤아릴 수 없어 한양과 지방의 사망자를 합하면 수십만 명이나 되었다. … [『순조실록』 21년(1821) 8월 22일]

위 기사는 드라마 <킹덤>(시즌 1, 6부작)의 김은희 작가가 <킹덤>을 구상하게 된 계기라고 밝힌 『순조실록』의 괴질 관련 기사들 중 하나이다. 1821~22년 사이 조선을 휩쓸었던 이 ‘이름 모를 괴질’의 역사적 정체는 콜레라였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조선시대식 ‘좀비’를 상상해냈다. 조선시대와 좀비라니. 비슷한 설정이 없진 않았으나 여전히 한국 사극에는 몹시 생소한 소재임에 틀림없다. 브로콜리를 넣은 된장국 같달까. 아무튼 이 낯선 <킹덤>의 감상기를 써내려가기 앞서 대강의 줄거리부터 짚어보자.

미스터리스릴러 퓨전사극 <킹덤>은 괴질에 걸려 좀비가 된 국왕의 침전에서부터 시작한다(국왕이 좀비가 된 사실은 나중에 밝혀진다), 병을 앓는 국왕에게 탕약을 올리던 소년 단이가 국왕에게 물려 죽은 뒤 동석했던 이승희 의원은 단이의 시신을 자신이 진료를 보는 동래의 지율헌까지 싣고 온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지율헌 환자들을 보다 못한 영신(김성규 역)은 단이의 시신을 몰래 끓여 환자들에게 먹이고, 지율헌 의녀 서비(배두나 역)가 이를 말릴 틈도 없이 환자들은 구토를 하고 좀비로 변한다. 한편 한양에서는 세자 이창(주지훈 역)이 병환 중에 있는 국왕을 만나려 하면서 이를 철저히 막는 해원조씨 조학주 대감(류승룡 역), 그의 딸이자 중전인 계비 조씨(김혜준)와 대립한다. 중전은 임신한 상태인데(가짜 임신임이 나중에 밝혀진다), 조학주는 조씨의 아기를 세자로 세울 욕망으로 국왕이 사망하였음에도 이승희 의원을 시켜 국왕을 좀비로 살려낸다. 세자는 후궁의 소생이기 때문에 왕이 죽기 전 중전에게서 아들이 탄생할 경우 왕위가 아기에게 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왕의 병환이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챈 세자는 왕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자 입시했던 이승희를 찾아 동래 지율헌으로 내려가고, 영의정 조학주와 수렴청정을 선언한 중전은 유생들의 역모에 세자가 가담했다며 폐세자 전교를 내린 뒤 세자를 추적한다. 동래로 내려간 세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좀비 백성들을 목도하고 부친인 국왕이 좀비로 변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에 세자는 막강한 외척 가문인 해원 조씨로부터 목숨을 위협을 받으면서도 의녀 서비 등과 힘을 합쳐 백성들을 지켜내며 좀비들과 맞서 싸운다.

[사진1] 드라마 킹덤 포스터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킹덤>에 나타난 조선의 이미지

앞서 조선시대와 좀비물 조합의 생소함에 대하여 이야기했지만, 요약된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조합은 극에서 외려 자연스럽게 구현된다. 1화를 보고 느낀 즉각적 감상은 아이고 정말이지 너무 무섭네! 였지만, 정신을 차리고 복기한 감상은 좀비 백성들이 어색한 구석없이 사극과 들어맞는다는 거였다. 물론 이는 일차적으로는 괴성을 지르며 내달리고 자유자재로 관절을 꺾어내는 명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공일 것이다. 그렇지만 연기란 납득할 만한 배경이 주어질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갖는다. 드라마가 그리는 배경, 즉 조선이라는 공간은 극중에서 좀비들이 횡행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공간으로 묘사된다(구체적 왕대는 나오지 않고, 양란 이후라는 시점만 제시된다). 똥오줌이 널브러진 불결한 길거리, 허례허식을 좇는 양반층, 끔찍하게 가난하고 무기력한 백성들. 여기에 허수아비같은 국왕과 국정을 멋대로 주무르는 외척 해원 조씨까지. <킹덤>을 보지 않은 독자라도 이쯤되면 기시감이 들 것이다. 그렇다. <킹덤>은 오늘날의 대중매체가 조선시대를 소비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헬조선의 원조, 동네북의 숙명. 극 간간이 비춰지는 수려한 산하의 가을 풍광만이 조선에서 유일하게 고귀한 것이다.

[사진2] 드라마 킹덤의 좀비떼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세자와 백성들의 성장기

이처럼 <킹덤>의 배경은 다소 진부하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몹시 흡인력 있다. TV세대라 그런지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한편 한편씩 아껴 봐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데, 늦저녁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가 한자리에서 <킹덤> 시즌1의 6화를 모조리 보고 나니 깊은 새벽이었다. <킹덤>의 핵심 줄거리는 세자 이창의 성장담이다. 시즌1은 세자가 한양에서 동래로 내려가 좀비들을 맞닥뜨리고 늘어난 좀비들을 경상도 상주에서 방어하다가 끝이 난다(작가는 앞으로 제작될 시즌2도 한양까지의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초반부에 이승희 의원을 찾아 궁궐을 나섰던 세자는 한양 거리의 일상적 악취도 잘 견디지 못하는 온실 속 화초다. 동래에 다다른 초기에도 좀비들로 참혹한 지율헌을 목도하나 백성들을 위해 실상을 파헤치기보다는 이승희 의원부터 수소문한다. 전환의 시점은 3화에 마련되는데, 바로 좀비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자 동래부 이방과 군사들이 군영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백성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때다. 신분을 숨기고 잠행중이던 세자 이창은 백성들과 함께 군영 벽을 오르려다가 군영 안에 있던 군사들로부터 화살까지 맞는다. 지배층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백성을 해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겪은 세자는 비로소 각성한다. 이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동래 백성들을 두고 동래부사 무리가 떠나버리고, 세자는 적극적으로 나서 백성을 구하는 영웅으로 화하게 된다.

이같은 세자의 성장에 다양한 색깔의 인물들이 함께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의녀 서비와 호랑이 부대 출신 영신 같은 하층민에서부터 호위 무사 무영, 영남의 거물 안현대감까지. 노약자를 제외하고는 양반마저도 총칼을 들고 힘을 합쳐 상주를 지킨다. 평시라면 평생 얼굴도 마주할 일 없던 사람들이 좀비의 공격이라는 거대한 위기에 맞서 광범한 연대를 이뤄낸 것이다. 무책임한 지배층이 제거된 그 연대란 일시적이지만 순수하고 단단하게 그려진다.

[사진3] 드라마 킹덤의 의녀 서비 (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배고픔과 권력욕

세자를 필두로 한 反좀비 연대가 궁극적으로 맞서게 될 상대는 상주를 봉쇄하여 한양을 지키려는 영의정 조학주이다. 좀비가 된 왕을 둘러싼 세자와 조학주의 대립은 <킹덤> 시즌1 내내 팽팽하게 전개된다. 조학주는 공식 회의석상에서 대제학의 얼굴을 책상에 처박고 중전에게 반말로 위협하며 문약한 조선 지배층을 혐오하는 무소불위의 캐릭터이다. 조선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같은 설정이 국왕이 좀비가 되었다는 설정만큼이나 영의정으로서 터무니없는 설정임을 잘 알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렴 어떤가. 필자는 창작의 영역인 사극을 다큐로 받아들이며 고증에 분개하는 그런 쿨하지 못한 역사학도이고 싶진 않으니. 아무튼 이 조학주는 다소 평면적인 인물이자 권력욕의 화신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지닌 권력의 핵심을 정확히 알고 있는 자다. 조학주는 국왕에게 물린 시신들이 몰래 버려진 궁궐의 연못을 바라보며 중전에게 여기 시신이 얼마나 있든 누구도 자신에게 아무 말 못하는 것이 권력이라고 말하는데, 이 대사는 다수 인민에 대한 직접적 생사여탈권을 지닌 전근대 정치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제작진은 <킹덤>에서 배고픔과 권력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기실 그 배고픔과 권력욕이 좀비를 창조한 셈이다. 민초들의 배고픔과 조학주, 세자의 권력욕이 맞닿는 지점은 어디일까. 둘다 일종의 허기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허기에는 목숨이 걸려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굶주린 병자들에게 감염된 인육을 제공한 영신을 의녀 서비가 비난하자, 영신은 당신이 모르는 세계에서는 다들 암암리에 이렇게라도 연명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킹덤>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극단적 굶주림의 상황에서 먹을 거라곤 시신의 인육뿐이라면, 나는 과연 내 목숨을 포기하면서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 뒤에 떨리는 손을 대지 않을까?

한편 시즌1에서 정황이 자세히 나오진 않지만, 세자는 해원조씨인 중전이 아들을 낳기에 앞서 왕위에 올라 살아남고자 역모를 꾀한다. 조학주 역시 중전을 종용하여 세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이상 세자가 왕위를 잇는다면 목이 날아갈 것은 자명하다. 민초들의 배고픔과는 일견 전연 다른 것처럼 보이는 세자와 조학주의 권력투쟁의 근저에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추락하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킹덤>은 27개 언어 자막 및 12개 언어 더빙으로 세계 190여 개 나라에 동시에 제공된다고 한다. 제작비도 한국드라마 최고 수준의 제작비이지만 서비스도 전에 없던 규모인 셈이다. 좀비라는 서구적 소재를 접목했으나 의상, 배경, 유교적 가치관까지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요소들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하다. “身體髮膚受之父母”같은 대사를 이해는 할까 염려도 되고. 하기야 서양 역사는 하나도 모르면서 중세 유럽 배경의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들이 필자 곁에도 많으니 이런 걱정이야말로 我와 彼我의 구분에만 익숙한 고루한 사람의 기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