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한국사, 한 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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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한국사, 한 걸음 더』

(『한국사, 한 걸음 더』 서평)

 

유찬근

 

대학에 갓 입학한 많은 새내기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신청한 한국사 수업에서 큰 충격을 받곤 한다. 대입을 위해 열심히 외워온 고등학교 한국사의 상당 부분이 매우 낡고 오류가 많은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는 ‘진실’을 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의 많은 한국사 수업은 고등학교까지의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곤 하며, 삐걱대고 의심스런 부분이 많았던 기존의 설명을 대체하는 보다 그럴싸하고 세련된 설명들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은 마치 눈이 트이는 것만 같은 쾌감을 느끼는 한편, 그동안 잘못된 역사를 가르쳐온 학교와 교사에게 강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분노 다음에 밀려드는 감정은 조롱과 연민이다. ‘최신 한국사’의 세례를 받은 자신이 보기에 여전히 ‘구식 한국사’에 머물러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너무나 어리석고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새내기 시절이 지나고 학년이 차차 올라감에 따라, 솟구치던 감정은 어느새 잔잔해지고 다음과 같은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툭 튀어나온 배만큼이나 구닥다리의 한국사를 가르치던 고등학교 선생님은, 과연 나와 같은 시절이 없었을까? 그 역시 한때는 파릇파릇한 청년이었고, 나와 마찬가지로 대학에서 최신 한국사를 접했을 것이다. 다만 졸업 이후 생업에 치이며 자신의 지식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 순간, 몇 년 전의 우쭐함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남은 건 대학에서 배운 한국사는 몇 년 지나지 않아 구닥다리가 될 것이고, 이를 업데이트할 기회는 쉬이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불안감이다.

 

『한국사, 한 걸음 더』는 이처럼 불안에 떠는 청년들, 그리고 자신의 낡은 지식을 새롭게 할 기회를 애타게 갈구하던 한 때의 청년들에게 가뭄에 단비처럼 다가오는 책이다. “2018 한국사 최신 패치”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은 한국사의 전 시대를 아우를 뿐 아니라, 한국사라는 근대적 분과학문에 대한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 역시 던지고 있다. 총 70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어 결코 읽기 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광주리 속 곶감을 빼먹듯 관심 가는 주제부터 조금씩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2018년 한국사학계의 지형도가 그려질 것이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저자들의 이름이다. 지금까지 읽어온 역사서의 저자들이 굉장히 ‘예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었다면, 『한국사, 한 걸음 더』에는 1996년생인 평자 세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물론 소위 “역사덕후”라면 책을 사 읽었거나 최소한 들어는 보았을 중견학자들의 이름도 간간이 등장하지만, 63인의 저자는 대부분 갓 박사를 받았거나 박사를 밟고 있는 신진 연구자들이다. 누구라도 목차를 죽 훑다보면 한국사학계의 세대교체가 저자들의 이름에서부터 단적으로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젊은’ 이름의 저자들이 쓴 글이 훨씬 참신하고 재미있게 느껴졌기에, 이들이 앞으로 한국사학계의 주축이 되어 내놓을 연구와 저작들이 기대되기도 했다. 혹시 가까운 미래에 “에헴, 나는 이 역사학자가 대성하리라고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지”하고 친구들에게 잘난 척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당장 『한국사, 한 걸음 더』를 구해 목차를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고려사와 고대사, 북한사가 인기 있는 다른 시대에 밀리지 않고 동등한 발언권을 갖는다는 점 역시 이 책의 미덕이다. 부끄럽지만, 원래 평자의 관심은 시대를 아무리 거슬러 올라간다 해도 17세기를 넘어가지 않았다. 근대 일본의 중국사 연구를 주도한 나이토 고난이 이야기했듯 소위 ‘근세’ 이전의 역사는 오늘날과 별다른 관련이 없는 ‘낯선 나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평자에게 고대사와 고려사는 사실상 지루한 남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국사, 한 걸음 더』의 고대사와 고려사 파트에 실린 흥미로운 글들은, 이러한 생각이 어디까지나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고려의 현실주의적 외교정책과 독특한 통치구조에 주목한 박윤미와 정동훈, ‘유목제국으로서의 예케 몽골 울루스’라는 시각에 기초하여 몽골 치하의 고려를 새롭게 그려낸 오기승과 이영미, 고구려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라는 맥락에 발해사를 위치시키고자 하는 김순자, 박순우, 김종복 등 저자들은 고대사와 고려사를 소재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비록 변화의 조짐을 맞고 있긴 하지만, 오랜 시간 현대 한국인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던 북한(북조선)에 대한 글도 매우 흥미롭다. 사실상 북한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연안파”란 개념 속에 뭉뚱그려진 다양한 계층/지역/사상적 배경의 사람들에 주목한 문미라나, “리력서”와 “자서전”이라는 문서를 통해 북한 엘리트의 삶을 그려내고자 하는 김재웅의 글이 대표적이다.

 

근현대사의 경우에는 195~60년대 농촌에 정착한 난민을 실마리로 한국의 사회변동을 파악하고자 하는 김아람, 구한말 활동한 여러 집단과 단체를 조망함으로써 운동의 변경지대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자 하는 김현주, 식민지시기 조선에게 주어진 제3의 길로서 ‘독립’과 ‘동화’ 사이의 ‘자치’에 주목한 홍종욱의 글 등이 독자로 하여금 근현대의 복잡성과 다층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끔 도와준다.

 

조선사 파트에는 훈구와 사림이라는 대립구도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송웅섭이나 조선시대 불교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양혜원의 글처럼 주로 기존의 상식에 반기를 드는 도발적인 내용이 많다. 이 중 조선후기 고용노동의 진면목은 ‘시장경제로의 자생적 전환’이 아니라 ‘국가주도’에 있었음을 지적하며, 19세기 조선왕조의 위기가 역제의 변동에 따른 재정지출의 부담 때문일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는 최주희의 글은 낙성대 연구소의 ‘생태학적 위기론’을 보완 혹은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대를 뛰어넘어 한국사란 지금까지 어떠한 길을 걸어 왔고,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글들도 소중하다. 각각 ‘언어 체계’, ‘역사인구학’, ‘장애사’라는 키워드를 통해 근대적 분과학문으로서의 한국사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장지연, 손병규, 소현숙의 글은 한국사 이후의 한국사를 그려가기 위한 중요한 스케치이다.

 

물론 책에 수록된 70개의 글이 전부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식은 흥미롭지만 디테일이 부실한 글도 있고, 재밌는 이야기를 꼼꼼하게 풀어내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드는 글도 있다. 하지만 『한국사, 한 걸음 더』의 의의는, 개개의 글이 어떻건 간에 63명의 저자가 각자의 전문분야에 대해 쓴 글을 모아 2018년의 한국사에 대한 하나의 전체상을 제시했다는 데에 있다.

 

대학을 벗어나는 순간 한국사학계에서 요즘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분야의 연구가 주목받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수단은 현저히 줄어든다. 당장 논문DB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없고, 학술지도 구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사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설령 몇 걸음 뒤쳐질지언정 최소한 학계의 흐름을 따라가기라도 하는 것이다. 요컨대, 대중도 자신들의 한국사 이해가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2018년 기준 한국사 최신 업데이트 판이라는 점에서, 『한국사, 한 걸음 더』는 독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업데이트란 한 번으로 끝나면 안 되고 계속해서 이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이와 비슷한 책을 꾸준히 발행하거나 웹진을 통해 대중이 학계의 흐름을 빠르게 접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한국역사연구회가 대중의 한국사 업데이트를 위해 앞으로도 힘써주길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