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를 통해 본 고려인의 삶] 고려도기, 청자의 단점을 보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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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를 통해 본 고려인의 삶

고려도기, 청자의 단점을 보완하다

 

한혜선(중세1분과)

 

‘고려시대 그릇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청자’를 이야기할 것이다. 청자는 고려시대에 관련된 책, 영상, 전시 등에서 가장 앞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의 청자 2점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봤던 것 일만큼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매김하였다.<그림 1, 2> 특히 화려한 문양을 장식한 상감청자는 고려를 대표하는 문화재 가운데 하나로, 소위 독창적인 고려의 기술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양을 파낸 후 다른 색을 가진 흙을 넣어 만든 상감기법은 고려의 독창적인 기술이라기 보다는 중국도자기에서 이미 활용되었던 기술 중 하나였다. 다만 고려의 상감청자 기술이 상당히 우수하여 당시 중국 송과 원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고급품으로 취급될 만큼 높은 수준이었고 명품으로 인식되었다. 청자는 주로 음식을 담아 먹는 소형의 완·발·접시·병이 대부분이며, 중대형의 항아리나 동이는 재질의 특성상 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림 1] 국보제95호 청자투각칠보문향로(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2] 국보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간송미술관 소장)

청자가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시기에 청자 이외의 다양한 재질로도 그릇들이 제작되었다. 동기(銅器), 목기(木器), 칠기(漆器), 도기(陶器)가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목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으며, 칠기도 나전칠기 중심으로 소량으로만 전해지고 있어 고려시대 그릇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역할 등에 대해서 정확히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동기와 도기는 고려시대 관련 유적에서 다수 출토될 뿐만 아니라 각 박물관의 소장품으로도 많이 남아 있어 고려청자 외에도 다양한 재질의 그릇이 사용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고려시대에 사용된 다양한 재질의 그릇 중에서 ‘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청자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고려시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한 그릇은 도기였다. 그렇다면 고려도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쉽게 말해 저장용 항아리를 중심으로 한 저장용과 동이와 같은 운반용 그릇을 말한다. 통일신라시대까지 ‘토기’로 부르던 그릇을 지칭한다고 보면 되겠다. 고려의 도기의 바탕흙은 점토이며, 대부분 유약을 바르지 않았다. 도기의 종류는 동체가 풍만하고 구연부가 넓은 항아리뿐만 아니라 병, 동이, 시루, 향완, 장고 등 흙으로 제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그릇 형태가 망라되어 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병은 같은 시기에 제작된 청자병과 거의 유사하며, 시기적인 변화과정까지도 비슷하다.

 

현재 고려시대 유적에서 출토되는 도기 중 다른 재질의 그릇으로는 제작되지 않고 도기로만 주로 제작되는 것으로 항아리, 동이, 시루를 들 수 있다. 항아리는 시기에 따라 세부적인 모양이 변화할 뿐만 아니라 용도에 따라서도 다양한 형태와 크기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선박에서 식수 저장용 항아리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도기가 실제 유적에서 확인되어 주목을 끌었다. 장거리 이동이 불가피한 선상생활에 필요한 먹거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물과 곡식일 것이다. 곡식은 도기가 아니더라도 가마니와 같은 다른 재질로 만든 저장용기를 사용할 수 있지만 물은 도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다른 재질, 특히 구리 및 철 등과 달리 원료를 쉽게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형으로 만들기 쉽고 크기에 비해 무게도 가볍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내용은 12세기 전반 고려의 모습을 비교적 상세히 서술한 서긍의 『고려도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의 기록을 보자

 

물항아리는 도기이다. 몸체는 넓고 목쪽으로 가면서 줄어드는데 그 주둥이가 약간 넓다. 높이는 6자이고, 너비는 4자 5치인데, 3섬 2되가 들어간다. 관사 안에서는 구리 항아리를 쓴다. 섬들 간에 배로 물을 실어 나를 때 이 물항아리를 사용한다.(『고려도경』 권32, 기명3 수옹)

 

이처럼 배에서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크기가 담보되어야 하고 무게도 무겁지 않아야 하는데, 마도 1호선과 2호선에서 인양된 높이 80cm 크기의 대형 항아리가 이러한 조건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한다.<그림 3~5> 무엇보다도 여러 점이 아니라 배 1척에 꼭 필요한 만큼인 1점 또는 2점인 것도 대형의 도기 항아리에 물을 담아 저장하였던 것을 뒷받침한다 하겠다.


[그림 3] 태안 마도 1호선 인양 대형 도기항아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발굴)


[그림 4] 태안 마도 1호선 인양 대형 도기항아리1(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발굴)

[그림 5] 태안 마도 1호선 인양 대형 도기항아리2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발굴)

[그림 6] 용인 마북리사지 저장용 도기항아리(한신대학교박물관 발굴)

도기로 만든 대형 항아리는 고려시대 유적에서 실제 저장용으로 사용되었던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러한 예는 사지와 건물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출토 도기의 대부분은 아래쪽을 땅에 매립하여 사용했다. 용인 마북리사지 1호 유구에서 출토된 도기 대형 항아리는 전체의 반 이상을 땅에 박아서 사용했던 모습이 그대로 발견되었다.<그림 6> 이 항아리는 높이가 77cm나 되어 그 크기가 작지 않은데, 40cm 정도를 땅에 묻어 사용했다. 또한 평택 동창리유적은 9세기 후반~고려 중기까지 사용된 곡물 저장용 구덩이가 50기 이상 조사되었다. 구덩이에 도기로 만든 대형 항아리를 묻고 그 안에 다양한 종류의 곡물을 저장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유적 출토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형 항아리를 저장용으로 사용할 때는 기물의 고정과 사용의 편리성을 위해 땅에 절반 또는 그 이상 매립하여 활용하였다. 대체로 저장용으로 사용된 대형 항아리는 동체의 윗부분이 풍만한 반면 아래쪽은 좁아서 지표면에 놓았을 때 안정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묻어서 사용하는 것이 훼손을 방지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또한 온도 조절이 필요한 경우에도 매립하여 사용한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곡식이나 식품의 보관을 위해서 대형의 저장용 도기항아리가 이용되었던 사실은 다음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과일 중에는 밤의 크기가 복숭아만한 것이 있으며 맛이 달고 좋다. 옛날 기록에 여름에도 잠시 밤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잘 익은 밤을 질그릇에 담아서 흙속에 묻어두면 해가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고려도경』 권23, 잡속2 토산)

 

이 기록에 따르면 도기는 제철과일을 장기간 보관할 때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냉장고가 따로 없던 시절, 도기 항아리는 그에 준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실제 유적에서의 출토 사례와 문헌기록을 통해 도기로 된 대형 항아리를 땅에 묻어 저장용으로 사용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사지(寺址)와 건물지에서 대형의 저장용 항아리가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사찰에서 이루어졌던 술의 생산과 소비가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시대 사찰에서는 일반인의 방문이나 불교행사에 비교적 많은 양의 술이 필요했는데, 이를 제조하거나 저장하는 용도로 도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술을 제조하여 유통까지 하는 사찰이 있었을 정도였으므로 물과 곡식 뿐만 아니라 술의 저장에도 도기가 이용되었을 것이다. 대형의 그릇을 제작하기에는 청자나 목기, 동기와 같은 재질은 그리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대형 그릇 제작에 적합한 도기가 많은 양의 식품을 저장하는 용도로 특화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