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 30년사] 개경연구의 터를 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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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 30년사

개경연구의 터를 닦다

– 지난 20여년 동안의 개경반 활동을 돌아보며 –

 

박종진(중세1분과)

 

개경사연구반(이하 개경반)에 대한 논의는 1995년 3월 24일 홍영의 선생이 중세 1분과총회에서 ‘개경연구반’을 신설하자고 제안한 데서 시작되었다. 다만 그 때는 중세1분과에서 신입회원 학습반으로 ‘고려묘지명학습반“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개경반은 묘지명학습반이 마무리된 1996년 중반부터 학습반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개경반이 시작될 때 나는 연구회 창립 이후 참여하였던 ’원간섭기 연구반‘에 이어 ’무인집권기 연구반‘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활동을 한 개경반이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개경사 연구의 터를 닦았다고 자부한다.

 

개경반 첫 모임에 누가 참석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부터 활동한 회원으로는 반장을 맡은 홍영의를 비롯해서 김기덕, 박종진, 서성호, 신안식, 정학수 등 6명이었는데, 김기덕은 계속해서 개경반 활동을 함께 하지는 못하였다. 그해 가을 중세1분과 신입회원인 윤채영이 개경반에 들어와서 활동하였고, 그 다음해 쯤 윤채영과 동기인 중세2분과 장지연이 개경반에 들어왔는데, 이들이 초기 개경반의 구성원이었다. 초기 개경반의 활동은 다른 학습반이나 연구반과 마찬가지로 관련자료를 정리하여 읽고, 선행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였다. 그 활동을 토대로 1999년에 「개경사연구동향」을 정리하였고, 2000년 5월에 「고려시기 개경의 구조와 기능」이라는 주제로 첫 공동연구 발표를 하였다. 이어서 강호선, 정요근이 합류하여 2002년 초에 첫 번째 책 『고려의 황도 개경』(창작과비평사)을 마무리하였다. 이때는 개경반원이 아닌 도현철과 처음 연구반을 만들 때 활동하였던 김기덕이 개경반원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었다.

 

『고려의 황도 개경』을 출판한 후인 2002년부터는 『고려도경』 역주작업을 하였는데, 이때 이혜옥, 오영선, 임명주가 개경반에 새로 들어 왔다. 그 때 『고려도경』 강독은 2003년 중반쯤 마쳤지만 역주작업은 아쉽게도 마무리하지 못하였다. 『고려도경』 강독을 진행하면서 틈틈이 도시사 이론서와 새로 나온 개경관련 연구 성과를 같이 읽는 한편 개경 관련 자료도 찾아서 공유하였다.

 

일본 연수 후 개경반에 합류한 한정수의 도움으로 2004년 1월 일본의 오사카․나라 등을 방문하여 일본 고대 도시유적을 답사한 것도 개경반 활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때 쯤 개경반에서는 새롭게 개편된 한국역사연구회 웹진에 「개경과 개경사람」이라는 주제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두 번째 연구발표회를 준비하였다. 개경반의 두 번째 연구발표회는 2005년 9월 3일 대우재단빌딩에서 「고려시대 개경의 공간기능과 시설」이라는 주제로 열렸고, 연구회 웹진에 연재한 글들은 2007년에 개경반의 두 번째 책인 『고려 500년 서울, 개경의 생활사』(휴머니스트)로 결실을 맺었다.

 

개경반 활동을 하면서 가장 큰 추억은 2005년의 개성답사이다. 2005년 11월 18일부터 3박 4일의 일정으로 「개성 역사지구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남북공동 학술토론회와 유적답사」가 있었는데, 그 때 남쪽 주최를 맡은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안병우의 배려로 개경반에서 박종진, 신안식, 서성호, 홍영의, 정학수가 참여하는 감격을 누렸다. 개경연구를 시작하면서 꾸던 꿈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특히 개성답사 때 개경반의 책 『고려의 황도 개경』의 인기가 좋아서 개성 답사의 즐거움은 더 컸다. 물론 이 때는 일부 반원만 개성를 방문했지만 그 후 개성관광 때 개인 자격으로 또는 만월대남북공동발굴의 자문위원 자격으로 많은 개경반원들이 개성을 방문하였다.

 

개경반은 2007년 『개경생활사』를 마무리한 후 한 때 지역사학습반과 통합운영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현재 개경반은 2010년부터 조선시대에 쓰여진 개성유람기 역주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워낙 큰일이어서인지 아직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개경반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은 반장인 박진훈을 비롯해서 이혜옥, 안병우, 박종진, 서성호, 신안식, 김순자, 홍영의, 정학수, 전경숙, 정요근, 장지연 등 모두 12명이다. 지금은 개경반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개경반에 참여하였던 많은 회원들이 있다. 초기부터 함께 활동했던 김기덕, 윤채영을 비롯해서 강호선, 김대식, 한정수, 안지원, 임명주 등이 개경반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얼마 전 세상을 뜬 오영선은 지방근무 할 때를 빼고는 개경반 모임에 참석한 회원이었기에 이 글을 정리하면서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개경반 활동을 하면서 개경연구에 관심이 있는 건축사학자, 역사지리학자, 일본 연구자들과 교류한 것은 개경반 활동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 연구반 초기에 안지원의 주선으로 개성출신 작가 박완서를 방문한 것은 여러 곳을 답사한 것과 함께 개경반 활동을 더욱 즐겁게 하였다. 다만 개성 관련 인사들을 폭넓게 만나려던 처음 뜻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했다.

 

직접 개경반 활동으로 넣을 수는 없지만 넓은 범주에서 개경반 활동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먼저 2000년 6월 남북공동선언이후 개성에 공단이 들어서게 되면서 한국역사연구회는 역사민속학회, 역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중세사학회 등 모두 15개 학회와 함께 「개성지역 문화유산 대책협의회」를 만들어 2000년 9월 25일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개성공단 예정지의 문화재 보존에 관한 학계의 의견서」를 발표하였고, 11월 10일에는 대우재단빌딩에서 「개성공단 예정지의 문화재 현황과 보존방안」이라는 학술보고회를 가졌다. 이 때 나는 한국역사연구회 연구위원장의 자격으로 개경반원의 도움을 받으면서 실무에 참여하였다. 또한 개경반원이 주축이 되어 「한국사상 개경 관련 기초자료 정리와 경관 연구」(2008년 –2011년, 한국연구재단)와 「개성사기초용어사전」(2014년-2017년, 한국학진흥원) 편찬 사업을 지원 받은 것도 개경반 활동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하였다. 개경관련 기초자료 정리과제를 수행하면서 2차례의 연구발표회를 열었고, 개성관광에 다녀왔으며, 서안․낙양․개봉 등 중국고대도시유적 답사를 다녀왔다. 그 과제를 수행할 때 개경반원이 중심이 되어서 「개경사연구동향2」도 정리하였다. 또 개경사기초용어사전의 원고는 대부분 개경반원들이 집필하였다.

 

앞으로 개경연구가 개성답사와 함께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아울러 지금까지 개경반에서 활동한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