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 30년사] 한국역사연구회, 사료강독반에서의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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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 30년사

한국역사연구회, 사료강독반에서의 4년

나용재(고대사분과)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필자는 재학 중인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중심으로 한 답사팀과 함께 중국 답사를 다녀왔다. 일주일이라는 일정은 몸을 고되게 하였지만, 공부를 시작한 이래로는 처음 방문하는 중국인만큼 피로함보다는 기쁨이 훨씬 컸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일은 항상 발생하는 법이다. 필자에게는 창사(長沙)에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발전한 현대과학문명은 황해라는 자연 해자 정도는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전화의 내용은 한국역사연구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30년사 편찬 작업의 제3부, 즉 ‘회고로 본 30년’ 파트의 한 꼭지를 작성해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이었다. 주변에서 시끌시끌하게 들려오는 중국어의 홍수 한가운데서 ‘거절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지만 공부를 시작한 이래 연구회를 통해 얻은 많은 것들, 그리고 직접 전화를 주신 이규철 선생님께 분과총무 시절 받았던 많은 도움을 떠올린 뒤 한 꼭지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이제 문제는 ‘어떤 내용의 회고를 작성해야하는가’였다. 흔쾌히 글을 쓰겠다고 하였지만 연구회에 제대로 나가기 시작한지 5년도 채 되지 않았으며, 나이도 이제 갓 서른을 조금 넘긴 만큼 ‘회고’라는 표제어가 주는 무게감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나름의 고민 끝에 회고라 하기는 부적절하지만, 필자가 연구회에서 활동을 시작한 고대사분과의 사료강독반에 대한 짧막한 소감을 적어보고자 한다.

 

사료강독반은 필자가 한국역사연구회에 가입한 이후 처음 참여한 학습반으로서, 현재는 반장을 맡고 있는 곳이다. 사료강독반은 학습반이라는 특성상 주로 갓 대학원에 진학하였거나, 연구회에 처음 가입한 연구자 선생님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필자 역시 모교의 후배들에게 연구회를 소개시켜줌과 동시에 사료강독반을 추천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질문 중에는 “선배는 어떤 이유로 참여하게 되었나요?” 가 있었다. 필자는 이에 대한 대답을 항상 그럴듯하게 꾸며서 말했다. 예컨대 “공부를 함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될 수 있는 사료를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서였지”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이는 선배로서의 체면을 지키고 싶었던 것에 기인한 미화(美化)였다.

 

필자가 사료강독반에 참여하게 된 것은 2014년도 초를 계기로 하여서였다. 당시 한국역사연구회에는 2013년도의 “한국사교실”을 시작으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다만 재학 중이던 단국대학교에 소재한 석주선기념박물관 조교도 겸하고 있었던지라 거의 대부분의 연구회 활동에 참석치 못하였다. 이후 박물관 조교 업무가 끝나감에 따라 시간적 여유가 생겨 연구회 분과총회에 참석하였었다. 왕래를 거의 하지 않았던 터라 아는 사람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 속에 참석한 뒷풀이 자리에서 모 선생님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필자는 말주변이 없고 낯가림도 있는 편이라 그 자리에서도 소심하게 맥주잔만을 홀짝였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며, 연구회 내 학습반과 연구반에 대한 이야기를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그 중 사료강독반에 대해 끌렸었는데, 두 가지 점이 끌렸었다. 첫 번째로는 필자와 비슷한 상황, 즉 연구회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막 시작하려는 연구자들이 주로 모이는 학습반이라는 점, 두 번째로는 기존에 활동하신 선생님들께서도 함께 하시며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그때까지는 낯설게 느껴졌던 연구회 내에서의 첫 활동을 시작하기에는 사료강독반이 적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하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선생님께 밝혔다. 어쩌면 저 두 가지 이유도 있거니와 어색한 자리에서 어물쩍 어물쩍대는 필자에게 손을 내밀어준 모 선생님도 해당 학습반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에 더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후배들에게 했던 거창한 이야기는 허상에 가까웠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상과 같이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 사심(?)에 의해 시작된 강독반에서의 활동은 지난 5년여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사료강독반에서의 활동 이전까지는 모교 안에서만 공부를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당시 단국대학교에는 한국 고대사를 전공하는 연구자가 지도교수님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번이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 하에 연구의 기본이 되는 사료를 읽고 분석하며, 토론할 수 있는 사료강독반에서의 활동은 부족한 필자가 계속해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다만 사료강독반에서의 활동이 마냥 즐겁기만 했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별개로 강독반에서의 세미나는 늘 치열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료강독반을 나가기 시작하였을 무렵은 본격적으로 학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던 때인지라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런데 생업이라든가 그 외의 개인적인 시간과 학업을 위한 시간의 분배에 서툴렀던 당시의 필자는 세미나에서 오고가는 많은 이야기를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이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아도, 그럴 때만큼은 세미나에 나가는 날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던 것 같다. 다른 반원들은 다들 잘 하고 있는데 나 혼자 아무것도 못 따라가는 느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반원이었던 여러 선생님들의 조언이나 함께 공부하기 시작한 반원 선생님들의 격려가 필자의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메우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점차 세미나는 스트레스를 주는 곳이 아닌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장소로 변해갔다. 물론 여기에는 세미나가 끝난 날이면 진행되는 뒷풀이에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도 이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연구회의 많은 선생님들을 알게 된 것 역시 이곳을 통해서였다. 사료강독반에서의 만남은 물론이고 이후 분과총회에의 참여나 발표, 그리고 타 학습반에의 참여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각양각색의 시각을 가진 선생님들과 교류함에 따라 넓은 시야에서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양을 갖출 수 있었다. 특히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함에 정말 큰 도움을 많은 분께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필자에게 사료강독반은 비단 연구자로서의 기초적인 능력을 기를 수 있게끔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의 삶의 태도 역시 재정비해주는데도 도움을 준 소중한 공간이었다.

 

어느덧 사료강독반에 참여한지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첫머리에는 짧은 것처럼 말하였고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생각해보면 20대 중반을 거쳐 30대 초반으로 들어선 세월인만큼 그 기간 동안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박사과정으로의 진학도 이루어졌으며, 분과 총무로서의 일을 거쳤다. 또한 현재는 강독반의 반장을 맡고 있다. 왜 사료강독반에 참여하게 되었냐는 후배의 물음에, 멋있게 보이고 싶어 적당히 꾸며내었던 대답이 강독반에서의 활동을 통해 실제로 이루어져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필자와 같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연구회 내의 모임을 통해 조금이나 성장할 수 있었듯, 한국역사연구회라는 큰 나무가 30년을 넘어서 50년이 되어서라도 흔들림 없이 존재하고 발전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필자 역시 스스로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언제나 도움을 주는 사료강독반의 모든 반원 선생님들, 나아가 한국역사연구회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30년사 편찬을 위한 짧은 소회를 마치고자 한다.

 

P.S: 덧붙여 해당 원고를 작성할 사람으로 필자를 추천하였다고 추정되는 N모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처음에는 살짝 원망스럽기도(?) 하였는데, 지금의 자신을 잊게 해준 소중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N모 선생님이 이제 사료강독반의 새로운 반장으로 선출되기도 한 만큼 힘찬 격려 역시 함께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