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회 30년사] 정권을 뒤흔든 역사 투쟁,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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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 30년사

정권을 뒤흔든 역사 투쟁,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

 

김정인(근대사분과)

 

2004년에 뉴라이트가 등장하면서『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친북․좌편향 프레임을 씌우며 역사전쟁을 도발했다. 이후 연구회는 역사전쟁의 결정적 시기마다 무기로서의 역사적 논거를 제공했고 연대적 실천 활동에 적극 나섰다. 2008년 건국절 파동이 일어났을 때였다. 연구회를 포함한 역사학계가 내놓은 한 장의 성명서가 뉴라이트의 주장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1949년 9월 국회에서 국경일 제정을 검토할 때에 정부는 독립기념일을 제안하였으나, 국회는 이를 광복절로 명칭을 바꾸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과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을 동시에 경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광복절의 명칭은 해방과 정부 수립을 동시에 경축하는 의미를 갖고 탄생한 것이다.

 

이 성명서에 뉴라이트가 한 발 물러서는 것을 지켜보면서 역사 논쟁에서는 과도한 해석이 명백한 사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일어난 자유민주주의 파동 때는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성을 꼼꼼히 따지며 싸웠고 2013년에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 일어났을 때는 해당 교과서가 낡은 학설에 오류 투정이라는 점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2004년 이래 10여년에 걸친 역사전쟁에서 연구회는 학자로서, 학회로서 할 수 있는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자 연구회와 연구회원들은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 거리에서 국정 교과서 반대를 외치며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정권의 일방적 독주가 결국 역사학자들을 거리의 정치투쟁의 장으로 끌어낸 것이었다.

국정화 반대 국면에서 연구회의 기민한 대응과 적극적인 활동은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2015년 10월 15일 연구회는 일반 회원들도 참석한 가운데 전․현직 회장과 운영위원들이 비상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는 JTBC 뉴스룸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발표한 지 오늘(15일)로 닷새가 지났습니다. 오늘 이 관련 소식의 키워드는 ‘불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각 대학과 학회 소속 역사학자들이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잇따랐는데요, 현재 국내 최대 역사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가 국정 교과서 집필 참여 거부를 놓고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결론이 나더라도 그 결과는 내일 발표한다는 것인데, 그 결과에 따라서는 파장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윤졍식 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이 자리에서는“정부 여당이 끝내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연구회는 국정 교과서 제작과 관련된 연구 개발, 집필, 수정, 검토를 비롯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을 결의했다. 예상대로 파장은 컸다. 이후 전국적으로 집필 거부 선언이 이루어지면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들의 결의를 시민에게 알릴 수 있었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집계한 집필거부 선언 역사학자의 숫자가 매일 언론에 소개되었고 나중에는 집필 거부 선언에 참여하지 않는 소수의 역사학자를 추려 분석한 기사까지 등장했다. 다급해진 정권은 10월 30일 역사학대회장에 우익단체를 보내 난동을 부리도록 조장했다. 며칠 후인 11월 3일에 박근혜 정부는 국정화 강행을 발표했지만, 이미 여론은 싸늘했다.

위기가 기회라고 했던가. 2015년 가을의 국정화 반대 운동은 연구회에 있어 조직적 역량을 다시금 확인하고 배양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만인만색의 등장이 상징하듯 세대별로도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나아가 연구회의 학계 내 위상과 사회적 명성은 한층 높아졌다. 2015년 총회 자료집에서는 국정화 반대 운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한국사 전문 연구자 단체인 저희 연구회는 그동안 다른 역사 연구 및 교육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정부와 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연구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것은 그것이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역사 교육의 목적, 그리고 UN 인권이사회 보고서가 명시한 역사교육의 세계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저희의 노력에 대해 역사학계, 역사교육계는 물론 시민사회도 지지와 성원으로 화답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기억이 새롭다. 하나는 강원도 지역에서 집필거부선언을 조직한 일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기민하게 연락하고 빠진 사람 없나 챙기고 혹시나 하며 미리 성명서를 써놓은 학자가 있어 불과 이틀 만에 강원지역 대부분의 역사학자를 포괄하는 집필거부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역사학대회에서는 주관단체인 역사교육연구회 연구이사로서 행사 당일 아침까지 여러 학회와 성명서 내용을 조율해야 했다. 그리고 대회장에서 난생 처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으며 학자들에게 달려드는 사람들을 목도해야 했다. 당황하거나 분노하기보다는 서글픔이 앞섰다. 정치가 학문을 능멸하면 학자들도 테러를 피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화 강행 이후 1년 간 서서히 무너져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졸속 합의,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강행 등의 행보를 이어가면서 민심이반은 더욱 심해졌고 마침내 국정농단이 폭로되면서 시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연구회는 ‘박근혜의 국정농단 규탄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위한 역사학계 공동성명’을 제안했다. 국정 교과서 검토본이 나올 즈음에는 전열을 가다듬고 국정화 반대를 위한 연대 활동에 적극 나섰다. 국정교과서 제도의 반민주성과 반역사교육성을 부각시키는 일에 중점을 두고“역사 국정교과서를 즉각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처음부터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서 추진된 것임은 당시 교육부 장관이 공언한 바와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정화 문제의 해결을 애써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교사 및 시민들과 더불어 국정교과서에 대한 불복종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정부 여당은 즉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를 선언하고 그에 다른 법률적 행정적 후속조치를 마련하라.

 

마침내 2017년 1700만 촛불시민혁명의 성과로 국정교과서가 폐기되었다. 시인과 촌장이 부른‘풍경’이라는 노래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가사처럼 연구회도 다시 일상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국정화 반대 운동이 남긴 숙제를 안고 돌아왔다. 국정화 반대 운동이 일단락된 이후 역사 대중화 현상이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역사학이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을 위한 역사교육을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다수는 역사 대중화를 비판하면서 전문성의 골방에 틀어박혔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거리에서 시민과 함께 국정화 반대를 외친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전문성과 대중성의 길을 동시에 고민하고 모색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