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과 민족의 교차로를 넘나드는 21세기형 신소설 서사(드라마 ‘미스터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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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보는 역사

계급과 민족의 교차로를 넘나드는 21세기형 신소설 서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김헌주(근대사분과)

 

들어가며

“청일전쟁의 전화(戰禍)가 평양 일대를 휩쓸었을 때, 일곱 살 난 여주인공 옥련(玉蓮)은 피난길에서 부모와 헤어지게 되고 부상을 당한다. 일본군에게 구출된 옥련은 이노우에라는 군의관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소학교를 다니는데, 뜻밖에 이노우에가 전사하자 의모(義母)는 변심하여 옥련을 구박한다. 옥련은 갈 바를 모르고 방황하던 중 구완서를 만나 함께 미국으로 간다. 워싱턴에서 공부하던 중 옥련은 극적으로 아버지 김관일을 만나게 되고, 구완서와 약혼한다. 한편, 평양에 있는 옥련의 어머니는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의 편지를 받고 꿈만 같이 생각한다.”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의 줄거리이다. 필자가 미스터 션샤인(이하 션샤인)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것은 바로 『혈의 누』 였다. 션샤인을 한 번이라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드라마의 전체 서사구조는 위와 같은 신소설의 전개와 매우 유사하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선 드라마 서사구조에 관한 분석을 시도하고, 역사적 고증에 대한 검토를 진행한 후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메시지와 각종 논란에 관한 의견제시를 하면서 글을 맺도록 하겠다.(이 글은 미스터 션샤인1~17회까지를 시청한 후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1. 흥미로운 상상력 : 얽혀있는 계급과 민족 그리고 근대

먼저 드라마 서사구조에 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 노비 신분으로 눈앞에서 부모가 죽는 모습을 목격한 유진 초이(이병헌 분)는 신미양요(1871년)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 군인이 되었다가,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온다. 복수심을 안고 조국에 돌아온 유진은 밀명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고애신(김태리 분)을 알게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그 와중에 고애신이 의병 조직과 관련된 것을 알았고 음지에서 그녀와 의병을 돕게 된다. 한편, 백정의 아들로 역시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낭인집단인 무신회의 두목이 된 구동매는 조선에 대한 배신감과 어릴 적 자신을 구해준 고애신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유진과 고애신 사이에 번번이 개입한다. 친일파의 거두인 이완익의 딸로 어릴 적 일본인 부호와 결혼한 쿠도 히나(김민정 분), 유진의 주인집 아들로서 고애신의 정혼자인 한량 김희성(변요한 분) 역시 서사구조의 관찰자이자 매개자로 등장한다.

 

이 다섯 인물의 얽히고설킨 서사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다섯 인물의 신분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유진과 구동매는 각각 노비와 백정 부모를 둔 천민 출신이고, 쿠도 히나는 역관의 딸로 중인 신분이라 볼 수 있다. 고애신과 김희성은 양반이다. 신분 출신에 따라 유진과 구동매는 조선(대한제국)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고 쿠도 히나는 국적을 초월하여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 선다. 고애신은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유의미한 활동을 하길 원하고 민족적 대의와 결합한 의병활동에 인생을 건다. 김희성은 고애신과 다르게 전형적인 한량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각자의 입장 차이는 서로의 대화와 독백 속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어릴 적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애신에게 구동매가 고애신의 고운 한복 끝자락을 움켜쥐고 노려보면서 “호강에 겨운 양반계집”이라고 일갈하는 장면이다. 유진은 고애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녀의 대의에도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그건 왜 하는 거요? 조선을 구하는 거”,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것이오? 노비는 살 수 있소? 백정은?”. 유진의 조선에 대한 적개심은 고종과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극 중에서 유진은 조선인을 살해한 일본군을 물리친다. 고종이 이를 치하하는 자리에서 유진은 자신은 미국인이며 조선인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자신을 향한 구동매와 유진의 계급적인 적대감에 대해 고애신은 나라꼴이 이런데 누군가는 싸워야하지 않느냐고 강변하지만, 유진의 신분을 안 뒤 실망하고 충격 받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난 내가 다른 양반과 다른 줄 알았소. 그러나 아니었소. 내가 품은 대의는 모순이었고 난 그저 호강에 겨운 양반계집일 뿐”이었다고 자괴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애신은 이런 과정을 이겨내면서 결국 유진을 택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포수이자 평민 출신 의병인 장승구를 스승으로 깍듯하게 모셨던 것을 감안하면 고애신은 대의와 명분 앞에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런 점만 보면 계급과 민족을 대립구도로 놓는 서사구조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회차가 진행할수록 계급과 민족은 좀 더 중층적으로 배치된다. 조선에 대해 적대감만 가지고 있던 유진은 사랑하는 고애신, 어릴 적 자신을 구해준 도공 황은산이 의병 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음지에서 이들을 돕게 된다. 그런 심경의 변화에 대해 구동매가 왜 힘이 있으면서 복수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유진은 힘이 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답변한다. 그의 심경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시종일관 염세적으로 사태를 관망만 하는 쿠도 히나 역시 구동매가 평민 출신으로 의병활동을 하는 이들을 가리켜 지게꾼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의아해하자 “칼로도 벨 수 없는 게 있지. 의롭고 뜨거운 마음 같은 거..”라고 대답한다. 한편, 한량 캐릭터인 김희성은 “항일을 하자니 몸이 고단할 것 같고, 친일을 하자니 마음이 고단할 것 같고..”라고 언급하는데 이 대목은 민족 문제에 관한 당대인들의 인식이 상당히 중층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드라마는 여러 장치들을 통해 전통과 근대를 끊임없이 교차하여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가풍을 지키는 고애신 집안의 구성원들이 전차가 돌아다니는 한성 시내를 가마를 끌고 다니는 모습은 이 시대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남편에게 구박받는 전통적 며느리인 고애순이 시종일관 신식호텔인 글로리아 호텔에 드나들면서 커피와 도박을 즐기는 모습 또한 흥미롭다. 조선인의 얼굴을 한 쿠도 히나가 일본어와 영어, 불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펜싱을 통해 검술을 익히고 펜싱 검을 숙소 안에 배치한 장면 역시 상징적이다. 아울러 어전 회의에서 고종에게 충성하는 근왕파들이 전통적인 복색으로 입회하고, 친일적 색채를 가진 대신들은 양장을 하고 있는 모습 역시 흥미로운 배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유진이 입고 있는 미국 군복, 구동매의 유카타, 김희성의 양장 역시 각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렇듯 션샤인은 대한제국과 의병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다양한 캐릭터를 가진 인물들을 통해 계급, 민족과 근대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가히 21세기형 신소설 서사라고 할만하다. 아울러 이러한 구도 위에 김은숙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대사가 가미되면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서사구조 분석에서 드라마 대사를 많이 인용한 것은 대사 안에 이 드라마의 문제의식이 많이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2. 고증의 문제 : 상상력의 과잉과 시대 뛰어넘기

고증에 관한 비판은 이미 다양한 지면을 통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고증 부분은 생략할까도 고민하였다. 그러나 역사드라마를 표방한 이상 이 문제를 건너뛰기는 힘들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미세한 부분에 대한 검토보다 개항 이후 대한제국에 이르는 시기의 역사상을 심각하게 왜곡한 부분과 드라마의 주제인 의병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전개에 관해서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우선 고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드라마가 1870년대 초반 시기를 친일파와 의병의 대립 구도로 잡았다는 점이다. 1875년에 친일파인 이완익(김의성 분)을 처단하기 위해 의병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암살을 시도하는 부분은 드라마적 상상력으로만 포장하기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주지하듯 조선과 일본이 근대적인 외교 관계로 전환하는 시기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이후였다. 따라서 그 이전에는 ‘친일파’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의병 역시 1895년 전후 최초로 봉기한 점을 감안하면 1875년 시점에서 친일파와 의병의 대립 구도를 잡은 것은 드라마적 상상력을 고려하더라도 문제시할 수밖에 없다.

 

사실, 문제는 일제 식민지시기의 역사상을 이 시기에 투영한 것과 많은 관련이 있다. 실제로 드라마 곳곳에서 식민지시기와 유사한 설정을 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일단 일본군의 행패가 너무 과장되어 있다. 한성 시내에서 일본군이 마구잡이로 민간인에게 총을 쏘면서 휘젓고 다니는 장면, 열차 안에서 일본군이 총을 들고 조선인을 위협하는 장면 등은 흡사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처럼 느껴지는 효과를 주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대한제국 안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잡은 것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한 1905년 이후였다. 1905년 이전에는 일본과 러시아, 미국 등이 복잡하게 경합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 드라마가 주로 1902~190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이러한 맥락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특히 정계에서 친러파의 위세와 역할에 대한 묘사가 빠지고 일방적으로 친일파들만 부각한 점 역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아울러 이러한 인식에 따라서 의병의 모습도 식민지시기 무장투쟁, 특히 의열단처럼 묘사한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1875년 이완익을 암살하려 했던 의병의 모습은 옷차림과 총, 암살 방식에서 의열단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1900년 이후의 의병 역시 점조직처럼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면면히 이어지는 조직으로 그리고 있으나, 이 또한 의병의 본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의병은 드라마에서처럼 점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의병은 1896년 전후, 1905년 전후, 1907년 고종황제 강제퇴위 이후 세 차례 봉기하였다. 을미사변, 을사조약, 고종황제 강제퇴위 등의 큰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각 지역의 유력한 유림을 중심으로 의진을 결성하고 격문을 곳곳에 배포하면서 싸움을 공식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07년에는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면서 13도 창의대진소라는 의병 총본진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즉, 의병은 드라마에서처럼 비밀리에 결사하는 방식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모습은 식민지시기 지하결사 단체나 대한제국기 화적 무장집단인 활빈당을 연상케 한다. 결국 의병을 중심으로 다루면서도 의병의 실체에 대해서는 너무나 왜곡된 상을 가지게 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3. 친일미화 논란과 미스터 션사인이 남긴 것들

드라마는 방영 초반 친일 미화 논란에 시달렸다. 요컨대 당시 조선의 문화가 미개하다는 연출이 보이며, 주인공의 한 사람인 구동매가 을미사변의 당사자인 흑룡회 한성지부장으로 있는 설정이 문제라는 것이다(‘미스터션샤인’, 역사 미화 논란에 국민청원 등장 “강력한 조치 필요”, 『스포츠서울』 2018년 7월 17일). 아울러 개항 이후 병합 이전까지의 망국 책임을 모두 조선(대한제국) 내부의 모순으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미스터 션샤인’ 속 역사 왜곡… 모두 ‘이것’ 때문이었나, 『오마이스타』 2018년 7월 28일). 제작진은 흑룡회를 가상단체인 무신회로 바꾸는 등 진화에 나섰다.

 

이 논란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드라마가 정말로 친일을 미화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비판에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일단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지고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박탈당하기 이전 친일과 식민지가 된 이후의 친일은 개념부터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개항 이후 한반도는 청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의 제반 열강들이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이권을 놓고 각축하던 장이었다. 대한제국의 정계에도 친청, 친러, 친미, 친일세력들이 존재했다. 물론 일본은 그 중에서도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에 민감하고 침략의지가 적극적인 국가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1905년 이전 일본에 대한 인식은 지식인 사회 내에서도 다양하게 갈렸다. 특히 계몽운동 계열의 지식인들은 1900년 무렵 동양주의 담론을 추종하여 한·중·일 삼국을 동방민족으로 인식하거나, 러일전쟁 시기에는 일본의 승리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일본을 비판하는 담론이 대세가 된 것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침략의지가 본격화된 이후였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1905년 이전의 ‘친일’에 대한 인식을 단순화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식민지가 되었더라도 당대 치열하게 고민했던 맥락을 거세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또한 비판론의 전제에 동의하더라도, 구동매의 캐릭터가 과연 단순하게 친일 일변도였는지 의문이다. 사실 구동매는 친일적이라기보다 조선에 적대적인 캐릭터이다. 그는 백정 출신으로 부모를 잃고 일본에 건너간 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전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일본이나 조선보다는 철저히 자신과 무신회 식구들의 이해에 복무한다. 이것은 구동매가 일본공사관과 대립하고 조선 경무청에서 고문을 받는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극 중 하야시가 이완익과 구동매를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존재로 묘사한 것은 구동매의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구동매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조국 조선에 대한 복수도, 일본에 대한 인정욕구도 아닌 고애신의 사랑이었다. 17화에서 구동매는 총을 맞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암살하려한 의병이 고애신이 아닌 것을 알고 안심했다. 그의 대의는 오직 한 여인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비록 자신만의 짝사랑이었을지라도.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아서 결론을 내기 쉽지 않지만, 미스터 션사인은 여러모로 아쉬움과 흥미로움이 공존하는 드라마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시대상을 건너뛴 수준으로 고증이 허술하였고, 역사적 상상력은 풍부했으되 역사 인식은 부족했던 한계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전형적인 왕궁 중심의 무대를 뛰어넘어 참신한 캐릭터들을 발굴한 점, 기존 역사극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던 개항 이후 근대사를 다룬 점, 멜로드라마 못지않은 톡톡 튀는 대사들로 극을 이끌어간 점 등은 사극 장르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