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가짜뉴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비담·염종의 난과 김유신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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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가짜뉴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비담·염종의 난과 김유신의 전략

 

양자량(고대사분과)

 

대왕이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과인에게 경이 있음은 고기에게 물이 있음과 같은 일이다. 만일 피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면 백성들을 어떻게 하며, 사직을 어떻게 하여야 좋을까?” (삼국사기43, 열전3, 김유신 )

 

삼국통일 완수에 주역인 김유신은 문무왕 13년(673) 7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문무왕은 김유신과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의 존재가 국가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지,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과 이 나라가 얼마나 의지를 하고 있는지를 표현하였다. 김유신은 15세에 진평왕 41년(609) 용화향도의 화랑이 되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진평왕, 선덕왕, 진덕왕 무열왕, 문무왕 총 5대 왕의 모셨으며, 삼국통일 등 격동의 시기를 해쳐나가는데 활약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보통 우리는 김유신을 장군으로서 정복 전쟁의 공로만을 생각하지만, 실제로 어느 누구보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왕이 나라와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측근에서 보좌하였다.

 

하늘의 이치로 말하면 양()은 굳세고 음()은 부드러우며,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거늘 어찌 늙은 할멈이 안방에서 나와 나라의 정사를 처리할 수 있겠는가? 신라는 여자를 세워 왕위에 있게 하였으니, 진실로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하였고, 역경(易經)파리한 돼지가 껑충껑충 뛰려한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 (삼국사기5, 신라본기5, 선덕왕 16史論)

 

『삼국사기』를 편찬한 유학자 김부식의 입장에서 여왕의 존재는 신라를 어지럽히게 만들었다며 비난의 대상이었다. 신라에서 여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폐쇄적인 신분제 사회에서 ‘성골’이라는 더 좁은 문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당시에도 여왕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선덕왕 16년(647) 발생한 비담·염종의 난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비단과 염종이 “女主不能善理(여왕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도모하여 병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傳에는 이 반란에 대해 김유신이 어떠한 전략을 세웠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어 흥미를 끈다.

 


[그림1] 「列傳 金庾信 上」, 『三國史記』

 

丙夜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 등이 병사들에게 말하길 “나는 별이 아래로 떨어지면 반드시 流血이 생길 것이라고 들었다. 이는 이미 여왕이 패전할 징조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병사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대왕이 이를 듣고 자기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였다.(삼국사기』 권41, 열전1, 김유신上)

 

왕이 사는 월성에 큰 별이 떨어졌다. 천재지변을 통해 왕의 입지를 점쳤던 사회에서 이 사건은 누가 봐도 비담의 편이었다. 비담은 이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10일 동안 반복된 공격과 방어로 지쳐있던 병사들에게 이 기상이변에 명분을 담아 격려하였고, 효과는 만점이었다. 선덕왕 자신도 이것에 자유로울 수 없었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김유신은 두려워하고 있는 선덕왕의 마음을 잡아주어야 했다. 김유신에게 있어서 왕의 안위가 곧 나라의 안위였기 때문에 선덕왕의 불안함을 불식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 김유신은 선덕왕에게 “길흉에는 항상성(恒常性)이 없으며 오직 사람이 초래하는 바입니다. … 즉 별의 변이함은 두려워할 바가 안 되니,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십시오.”라고 안심시켰다.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은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보는 김유신의 관점에서 그 임금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래(신하)로부터 위(임금)을 범하는 것은 천지가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며 비담과 염종을 비난하였다. 그리고 김유신에게 있어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상이변을 뒤집을 만한 ‘인간의 계책’이었다!

 


[그림2] 풍등(風燈)

 

이내 허수아비를 만들고 불을 붙여 연에 실어 날리니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 다음 날 사람을 시켜 길거리에 어제 밤 떨어진 별이 위로 돌아갔다.”라고 말을 전달하여 적군으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였다.(삼국사기41, 열전1, 김유신)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었다. 떨어진 별이 선덕왕의 안위를 위태롭게 했다면, 그 떨어진 별을 다시 하늘로 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간 무언가를 어제 떨어진 별이라고 믿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기상이변을 역이용하여 상황을 유리하게 만든 김유신의 전략은 탁월했다. 이러한 김유신의 ‘가짜 뉴스’는 비담과 염종의 병사들의 사기를 다시 꺾었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결국 비담·염종의 난은 진압되었다.

 

비담·염종의 난이 일어난 해인 647년은 선덕왕 16년이자 진덕왕 원년이었다. 즉 647년 정월에 비담·염종의 난이 발생하였고, 8일에 선덕왕이 죽었으며, 17일에 비담을 참수하였고, 연루된 자를 처형하였다. 김유신이 이 난을 완전하게 진압한 것은 진덕왕이 즉위한 이후였다. 또다시 여왕의 즉위였다. 어쩌면 당시 사회에서 비담과 염종의 명분은 어떠한 힘도 얻지 못했고, 그에 부응하여 김유신의 ‘가짜 뉴스’가 더욱 빛을 발한 것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