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사람들이 살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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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던 자리

홍순민(중세사 2분과)

경복궁의 자경전을 지나 향원정 연못에 이르는 일대는 특별히 눈에 띄는 옛 건물이 없다. 향원정 연못 앞, 휴게실 북쪽에 집경당(緝敬堂)과 함화당(咸和堂)이, 민속박물관 앞에 혼자 뚝 떨어져서 제수합(齊壽閤) 정도만이 남아 있다. 이 건물들도 본래는 행각이나 기타 부속건물을 거느렸을 터인데 지금은 거두절미하고 본채만이 덜렁 서 있어 눈길 한 번 옳게 받지 못하고 있다.

옛 건물들이 없어진 자리에는 현대식 건물이나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자경전의 동북쪽에는 현재 민속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서 있다. 1966년에 착공해서 1972년에 국립박물관으로 개관된 그 건물은 여러 채가 이어져 있는 모습인데, 남쪽 정면의 아랫 부분은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에서, 윗 부분은 법주사 팔상전에서, 들어가는 입구의 2층 지붕 모양은 화엄사 각황전에서, 맨 동쪽 부분의 3층 지붕 모양은 금산사 미륵전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름있는 우리 전통 건물 가운데 높은 것들을 모두 모은 셈이다. 듣고 보면 그렇구나 하고 수긍이 되기도 하다가도 과연 저렇게 모아서 시멘트로 저렇게 지으면 한 채의 건물로서 조화와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그런 생각에 다시 전체를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전통 건물의 심상이나 아름다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 아니면 중국, 혹은 동남아시아의 어느 건물을 보는 것같이 낯설기만 하다. 참 묘한 건물이다.

민속박물관의 서쪽, 경복궁의 서북쪽 모퉁이 거진 1/4에 해당되는 구역에는 군부대가 들어서 있었다. 제3공화국 시절부터 청와대 경호를 위해서 들어선 부대인데, 1979년 12월 12일 이곳에서 이른바 신군부가 모여서 제5공화국을 세우는 데 출발점이 되는 모임을 가졌던 곳이기도 하다. 작년 말인가 군부대는 철수하고 지금은 뒷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직 들어가 볼 수는 없다.

그 동쪽, 그러니까 지금 휴게실 건물 남쪽, 관람객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는 연못이 하나 있다. 궁궐에서 흔히 보는 연못들은, 그 뒤의 향원정 연못이 그렇듯이 네모난 모양에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데 비해, 이 연못은 특이하게도 모양이 아주 꼬불꼬불하다. 자세히 보면 연못 주위에는 낯선 모양의 탑들도 몇 숨어 있다. 일본식이다. 민속박물관이나 군부대나 일본식 연못이나 온통 본래의 경복궁과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경복궁이 훼손되기 전에는 자경전 동북쪽, 향원정과 민속박물관 앞 일대에는 ‘전(殿)’자나 ‘당(堂)’자 이름을 지닌 건물만 해도 수십 채가 행각에 행각을 맞대고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왕실 가족들과 그들을 시중들던 궁녀들, 내시들이 생활하던 구역이었다. 민속박물관 자리는 왕의 가까운 조상들의 초상화 ―어진 (御眞)을 모셔 놓고 왕이 수시로 들러서 다례(茶禮)를 올리던 선원전(璿源殿)이 있었다. 지금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는 서북 모퉁이에도 태원전(泰元殿), 회안전(會安殿), 문경전(文慶殿) 하는 큼직한 건물들이 널찍널찍하게 부속건물을 거느리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식 연못은 대왕대비가 살기도 했던 흥복전 (興福殿)이라는 건물을 헐어 없애고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전각들은 1915년의 ‘시정오년조선물산공진회’를 계기로 헐려 없어져 버렸다. 그 이후 두어 차례 더 이곳 경복궁에서 박람회가 열리면서 이곳은 놀이터가 되어 갔다. 해방 후 군사정권 시절에는 다시 우리 손으로 이곳에 저러한 “현대식” 건물들과 군부대를 들여 세웠다. 근년에 이르러서야 군부대를 철수시키고,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간교한 계산이라는 일제의 선창에 무지와 무관심이라는 우리의 복창이 척척 호흡을 맞추어 가며 길게는 90년, 짧게는 50 년 가까이 이어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