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건청궁(乾淸宮) : 고종의 자립과 피압박의 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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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乾淸宮) : 고종의 자립과 피압박의 징표

홍순민(중세사 2분과)

자경전을 지나 경복궁의 안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면 북쪽으로 담장이 보이는 지점 쯤에 이르러 커다란 연못을 만나게 된다. 궁궐에서 보는 여늬 연못들과 같이 사각형에 한 가운데에 둥그런 섬이 떠 있다. 가운데 섬에는 육모 지붕을 한 이층짜리 정자가 하나 서 있다. 남쪽에서 섬으로 건너가는 취향교(醉香橋)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여 있으나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가로막고 있다.

먼발치에서 보아도 상당히 호사스러운 정자이다. 서북 모퉁이에 있는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고하는 샘에서 솟아나온 물이 연못을 채우고 있어서 비교적 수질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공해 탓인가 예전에 못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연은 없어지고, 대신 서양종 수련이 몇 포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연 없는 연못이기는 하나 이 일대는 팍팍한 경복궁에서 그런대로 정취가 있는 곳이다. 다리쉼을 하며 사진이라도 한 장 박을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좀 쉬었다가 돌아나오면 경복궁 구경은 끝난다. 대개들 그렇게 끝낸다.

그러나 그것으로 경복궁을 구경했다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답사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답사라면 긴장을 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연못을 한 바퀴 도노라면 우선 저 안의 섬에 무언가 이상한 부분이 눈에 띈다. 섬의 북쪽 가장자리에 웬 화강암 돌이 서너 단, 높이 약 1미터 남짓, 넓이 약 3-4미터 가량이 되게 쌓여 있다. 저런 곳에 아무 필요도 없어 보이는 석축이 왜 있을까. 다시 반 바퀴 돌아 남쪽 취향교 앞으로 다시 와보니 120년이 넘은 다리치고는 너무 새것이다. 6.25때 원래 다리가 폭격을 맞아 없어진 것을 1953년에 다시 세운 것이란다. 원래 다리는 북쪽의 저 석축에 걸쳐 있었던 것이요, 북쪽에서 섬으로 건너다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취향교가 북쪽으로 연결되었다면 그곳에 무언가 중요한 건물이 있었다는 뜻이다. 지금도 그곳에 건물이 있기는 있다. 얼마전까지 민속박물관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전통공예관인가로 쓰이는 누런 색 타일을 붙인 건물이다. 그 건물을 보고 궁궐에 걸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1915년 이른바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 당시 박물관으로 지은, 서양식을 바탕으로 한 왜식이기 때문이다. 그 왜식 건물이 들어서기 전 그곳에는 건청궁(乾淸宮)이 있었다. 건청궁이란 이 일대에 있는 몇 채의 건물들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중국 북경의 자금성에 있는 것을 빌어온 듯하다.

건청궁은 1873년(고종 10)에 지었다. 경복궁 중건 사업을 주도한 사람이 흥선대원군이라면 건청궁을 지은 사람은 고종이다. 고종은 재위 10년으로 접어들면서 친정(親政)을 내세웠다. 당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생부 흥선대원군을 밀어내고 스스로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그러한 의지의 실험인 듯 고종은 조정의 관료들은 물론 흥선대원군조차 모르게 건청궁을 짓는 공사를 벌였다. 나중에 관료들이 알고 반대 의견이 빗발쳤지만 고종은 끝까지 자신의 뜻을 고집하였다. 처음 건청궁은 왕으로서, 정치가로서 스스로 서려는 고종의 자립의지의 징표라고 할 만하다.

1894년, 고종이 일본의 압력을 피해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다시 경복궁으로 오가던 끝에 임어한 곳이 바로 이 건청궁이다. 그 이듬해 경복궁의 뒷편 구석진 이곳에서 고종은, 왕실은, 우리 민족은 참으로 치가 떨리는 험한 일을 겪는다.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명성황후 시해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끝에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새벽 왕태자와 함께 변복을 하고 궁녀의 가마를 타고 신무문을 빠져나와 정동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하였으니,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그렇게 해서 건청궁은, 경복궁 전체는 더 이상 왕이 살지 않는 빈 궁궐이 되어 버렸다. 고종이 외세의 압박을 피해서 또 다른 외세의 그늘로 옮겨간 마지막 장소 건청궁. 고종의 자립의 좌절, 피압박의 징표로 남았다. 아니 제모습은 거의 잃어 버리고 겨우 흔적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