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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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만들어 갈 것인가

정  태  헌

19세기 들어 전지역이 서구 침략의 대상이었던 동북아는, 19세기 말~20세기 전반기에 그 내부에서 일본이 침략자로 대두하면서 전장터로 바뀌었다. 20세기 후반기에는 냉전체제 하에서 조선-중국-소련, 한국-미국-일본의 적대적 대립 형국을 이루었고, 그 귀결은 처참한 전쟁이었으며 각 진영 내에서는 종속적 관계가 관철되었다. 그리고 지난 세기 후반기 동안 동북아를 짓누르던 냉전체제는 무너졌건만 21세기의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한국은 30여 년간의 성장가도의 허상이 드러난 이후 변화를 위한 몸부림 속에서 수구세력이 직선으로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등 과도기적 진통을 겪고 있고, 일본은 침략에 대한 과거를 정리하지 못한 채 극우적 사회분위기가 팽배해져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기저로 대북 경제제재조치 법안까지 의회에서 통과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은 동북 3성의 사회과학원과 대학 및 연구기관을 총동원하여 ꡐ동북공정ꡑ이란 프로젝트를 통해 패권주의적 중화사상-대국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한반도를 대살륙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전쟁의 불씨를 계속 환기시키고 있다.

역사학자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하듯이 쉽지는 않지만 길은 있게 마련이다. 17-18세기 몇 차례 쇄신의 기회를 놓친 결과 강제로 개항을 맞고 식민지시대, 분단시대를 지나는 동안 굽이굽이 휘몰아치는 격동의 세계사 흐름에 수동적으로 휩쓸렸던 한반도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풀어가는 경험을 이제는 만들어 갈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는 많이 성숙해졌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3․1운동 기념집회가 따로 열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역시 반세기 동안 강하게 응어리진 우리 역사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이 왜곡을 서슴치 않고 역사를 새로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원로학자는 사회주의 이념을 대신하여 거대한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통일을 유지할 수 있는 정체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남북공조 기운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일정한 성과 위에 중세시대의 조공체제와 다른 현대적 패권주의로서 중화주의를 회복하려는 야욕과 한반도의 공조 기운이 맞물리면서 고구려사 빼앗기 공작으로 나타난 점을 말한다. 차분한 실증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일부의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과 달리, 중국의 고구려사 강탈 시도는 역사전쟁으로 포장된 냉혹하게 이기적인 국제정치의 현실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다.

ꡐ동북공정ꡑ은 한반도가 일본 세력에 편입되어 만주-중국 침략의 발판이 된 지난 세기의 경험을 되새겨 북한 지역이 한-미-일 세력에 흡수되는 상황을 가정한 중국 정부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국제관계 인식으로, 그리고 스스로가 패권국화하면서 21세기의 동북아사를 전망하는 이러한 사고는 다목적 스펙트럼을 띤다.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려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은 두 범주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만주 지역의 영토 관할권을 못 박기 위한 전제로 중국사의 일부로서 북한 지역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강변하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대격동이 일어날 경우, 그것이 현재 중국 영토인 만주 지역에서 월경한 북한 주민과 합세한 조선족의 독립 기운으로 비화되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 타격을 줄 가능성에 대해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방어적 공세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패권주의적 침략 발상으로서 한반도가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 아래 통일되는 상황이라면 북한 지역을 자국의 영향권 아래 포섭하겠다는 적극적 공세의 측면을 담고 있다. 실제로 북한을 지원하지 말고 무너지도록 놔둔 뒤 북한지역을 중국의 자치구로 만들자는 중국 한 사이트의 주장은 노골적인 한반도 침략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방관하는 중국 정부의 ꡐ동북공정ꡑ 의도는 그만큼 다목적이고 섬짓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실제로 중국공산당은 과거 한국전쟁의 와중에 티벳을 침략하여 자국 땅으로 편입한 전력이 있다. 그리고 명백히 다르게 진행되어 왔던 티벳의 역사와 문화를 부정한 채 당(唐)의 원성공주가 티벳 왕과 혼인한 것을 계기로 두 민족이 하나가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반도 전체가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된다면 대만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자체가 근저에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가장 바람직스럽지 않은 이러한 상황을 가정할 때 중국은 그만큼 위기의식을 크게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정세 추이에 따라 위의 스펙트럼은 현실화될 가능성을 모두 안고 있다. 다만 둘째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과의 전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한창 경제개발 무드에 젖어 있는 현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의 수가 될 수는 있다. 남한과 마찬가지로 분노의 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북한이 중국의 고구려사 강탈과 관련하여 남북 역사학계가 공조하는 공식적인 대응 방식에 소극적이거나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이는 것은 둘째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본다. 또 동북공정 자체가 남쪽 중심의 통일을 전제로 한 것인데 이를 두고 남과 북이 공조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북한의 이러한 자세는 중국이 외교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라는 현 상황도 큰 이유일 것이다. 거꾸로 보면 중국은 북한의 고립된 처지를 알고 과거의 조-중관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패권주의적 역사 왜곡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늘날 일본의 사회 분위기는 과거의 군국주의적 망령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북한 수뇌부의 외교방식을 탓하기에 앞서 몇 명의 납치자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수백만 인명을 앗아간 과거사를 제쳐두는 일본 사회의 미성숙한 분위기는 심히 우려할만하다. 이처럼 낮은 수준의 역사의식은 서가에 걸린 시사잡지마다 반북 정서를 부채질하는 기사가 끼어있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북한을 적으로 설정하여 기득권, 또는 기존의 지배담론을 확산하려는 움직임에 의해 끌려가고 있다. 즉 ꡐ경제강국ꡑ 일본은 21세기의 평화적 동북아를 이끌어가기는커녕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우려가 다분하다.

그러나 모든 사물에는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중국의 패권주의적 대외정책이나 일본의 심화되어 가는 우경화는 거꾸로 한반도 구성원들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계기로 전환될 수 있다. 정상적 관계로 시작될 수 있는 조건이 아닌 남북관계를 두고 퍼주기라는 비난으로 딴죽을 걸거나 북한 정권이 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동북아 정세의 움직임은 북한이 망한다고 해서 북한 땅이 남한 땅이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대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심각한 경종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즉 가공할만한 부산물을 생각하지 않은 채 제기되는 흡수통일론의 망상을 떨쳐버리도록 하는 외적 조건이 되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근자의 국제환경은 6ㆍ15 선언 이후 어렵사리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고 있는 남과 북의 공조 방향이 결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준다. 즉 한-미-일 블록과 북-중-러 블록이라는 제국주의 시대와 냉전시대 이래의 대립관계에 구속되거나 여전히 이를 적대적 선택 또는 양자택일적 선택 범주로 제한하고 남북관계를 그에 종속시키는 전통적 사고로는 더 이상 21세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추구하는 실마리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현실은 이러한 기존틀에 얽매이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공존과 공영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동북아 환경의 급변은 남과 북이 적대적 대치에서 벗어나 평화적 공존 공영 관계로 나아가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한 지나간 제국주의 시대 이래의 관성적 인식에 따른 반응이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 보면 남과 북의 주체적 의지에 의한 한반도의 평화적 분위기 조성과 확산은 제국주의 시대의 동북아 관계를 지양하고 제어할 수 있는 완충 역할이 가능함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풀어가는 유일한 정답은 없고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실마리를 푸는 출발은 역시 사람과 물자와 돈, 그리고 반세기 이상 단절된 채 각자 사회에서 형성되어 온 문화와 학술이 오고 가는 남과 북의 끊임없는 교류 협력에 의한 신뢰 구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필요한 전제 조건이 하나도 구비되지 못한 현재 상황에서는 영토와 제도가 하나 된 통일을 논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준에 있지도 않다.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나는 교류 협력 없이 감성이나 민족정서에만 의지하는 것은 곧 한계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정주영의 대북교섭은 여러 가지를 타산한 끝에 내린 결론일 것이다. 비록 단기적으로는 대차대조표 수지가 적자로 나타났고 남은 이들은 아들의 죽음까지 목도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돈 버는 일에 도가 튼 그가 북에 목돈을 줬을 때에는 궁극적으로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ꡐ큰 장사ꡑ 셈을 하고 난 후였을 것이다. 모두가 정경유착의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시의 시대적 한계 속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행하여 6․15 선언의 길을 닦아 놓은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만 투명성을 요구하거나 정경유착의 전형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평화적 전환을 부정하는 사고의 산물이다. 교류 허가의 주체인 정부의 책임이 있다면 평화 구축의 제 비용에 대한 부담을 국민도 함께 안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교류는 노무현 정권 들어 여러 차원의 좌고우면 때문에 본격적인 경제협력 단계로 들어가지 못한 가운데 민간 중심으로 이뤄지는 수준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대중 정부가 이룩한 성과가 확산되었다기보다 사실상 후퇴했다. 한반도의 남과 북에는 여러 차원의 외압이 늘 작용해 왔지만 분명한 것은 어렵더라도 남과 북이 스스로의 의지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언제나 외부 변수에 의해 운신의 폭이 구속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즉 각 부문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통해 한반도에 작용하는 한-미-일, 북-중-러의 관계를 중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반세기 이상 적대적 관계 속에서 두절되어 온 남과 북은 확실히 서로의 사회 작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 ꡐ문법ꡑ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때문에 아직은 오해와 불협화음이 잦을 수밖에 없는 초보적인 교류 협력 단계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교류의 과제는 한반도에서 한-미-일 블록과 북-중-러 블록이 대립되거나 적대적 관계로 작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오히려 이들의 이해관계가 일정하게 합치되도록 기반을 쌓는 것이다. 이는 지난 세기의 한반도 역사를 반추할 때 당연히 추론되는 답으로서 특히 중국이 대국주의적 패권주의화할 빌미를 줄일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한다. 일차적으로 그 출발점은 남북간의 경제협력으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나진-선봉지구나 신의주 지역에 대한 북한의 외자도입 특구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현재, 개성특구는 배경 여하를 떠나 남한 자본을 주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여전히 미적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동북아의 평화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이 이를 스스로 만들어갈 때 평화의 대가로 외부자금도 유입된다. 윈-윈 게임인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지면 대북투자 뿐 아니라 남쪽에서의 투자도 둔화되게 마련이다. 불안정한 요인을 외부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남과 북 스스로가 줄여가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원수 사이도 자꾸 보면 웃는 얼굴로 대할 때가 오는 법. 더구나 한반도의 남과 북은 싫건 좋건 정치적 이념 문제를 떠나 또 다시 전화(戰禍) 속에 빠지면 폐허의 ꡐ공동체ꡑ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공유하게 된 상황이다. 개성특구가 성공적으로 활성화되면 향후 북한은 일본과 대만,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자본이 유입되어 경제적으로 각국의 이해관계가 혼합되는 지대가 되어야 한다. 이는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그만큼 줄일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를 경유하는 육로와 철로가 일상화되면 어느 누구든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그만큼 적어지고 평화체제는 확고해질 수 있다. 교류 협력의 수준이 높아지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북측 체제 역시 변화의 길을 걷겠지만 그의 유지 또는 개선 방식은 북한의 지도부와 인민들이 고민하고 선택할 문제이다.

현대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최악의 비인간적 모순은, 냉전체제 하에 급성장하여 끊임없이 전쟁을 부채질하는 집단이 미국과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때에 따라서는 군수자본과 금융ㆍ산업자본의 이해관계로 대립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부시정권은 전형적으로 군수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권력으로서 세상을 선과 악으로 일도양단하는 극단적으로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으로 전쟁과 침략을 포장하는 세력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악화되면 중국의 군수산업과 일본의 군수자본이 급팽창하게 되고 이들이 주도권을 잡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논하기 전에 자본간의 이해관계에서 군수자본의 영향력부터 축소시켜야 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한반도의 구성원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 해서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간은 우리 편이고 결국 얼마 안 가 북쪽은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사고는 뒤 이어 다가 올 재앙을 간과한 것이다. 지나치게 좌고우면하면서 우물쭈물하다 기회를 놓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