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뒷담화] 한 소대장의 운수좋은 날, 1950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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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뒷담화 #2

한 소대장의 운수좋은 날, 1950년 7월 23일

김선호(현대사분과)

   이 이야기는 억세게 운이 좋은, 한 인민군 소대장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23일. 주인공은 조선인민군 제315군부대 2연대 통신중대 2소대장 리국제다. 제315군부대는 인민군 제9사단의 위장부대명이다. 제9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예비부대로 투입되어 7월에 서울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여름 뙤약볕이 쨍쨍하던 이날, 리국제는 서울시내로 출장을 나갔다. 상관인 통신참모가 사단과 연대사이의 무전을 12시까지 연결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리국제는 통신기재를 운반하기 위해 기동분대장 김순천과 함께 사이드카를 타고 아침에 시내로 출발했다. 리국제의 운수좋은 날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그림1]  현진건의 소설,『운수좋은 날』  현진건의 소설은 일제강점기 가난한 인력거꾼 김첨지의 하루를 그리고 있다. 김첨지는 이날 왠일인지 횡재가 거듭되어 좋아하지만, 결국 아내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은 일제강점기 도시 빈민의 비참한 삶에 대한 반어적 표현이다.

한창 시내를 달리던 중 길옆에서 왠 처녀가 배를 잡고 쓰러져 있었다. 사이드카를 길옆에 멈추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이 처녀가 ‘맹장염’이라는 것이다. 소대장 리국제이기 전에 청년 리국제였던 그는 흔쾌히 선심을 베풀었다. 그 처녀에게 병원까지 사이드카로 태워주겠다고 한 것이다. 무전연결도 해야 하는데. 오지랖도 넓어도 참 이렇게 넓기가. 이리하여 그는 처녀를 사이드카 뒷자리에 태우고 서울시내를 달렸다.

   리국제의 오지랖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처녀를 태우고 조금더 가다보니 여전사 한명이 눈에 띄었다. 여자가 이뻤나? 리국제는 운전하던 기동분대장 김순천에게 다시 정지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기세좋게 ‘야타’를 해서 이 여전사까지 사이드카에 태웠다. 2인승 사이트카에 총 4명 탑승.

   이때까지는 운수가 좋은 정도가 아니라 운수가 대통한 날이었다. 민간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출장길에 어여쁜 처녀를 두 명씩이나 만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쫄따구가 모는 멋진 사이드카에 태우고 서울시내를 질주하는 기분이란. 캬! 리국제의 운수는 여기까지였다.

휘파람을 불며 호기롭게 병원으로 가는 도중, 그만 사이드카가 고장이 나 버렸다. 2인승에 4명이 타니 고장이 안난게 이상하다. 그래도 청년 리국제, 의리있게 병원까지 처녀를 데려다 주었다. 사이드카는 길에 두고 말이다. 처녀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서 부리나케 통신설비를 하러 떠났다. 병원 가다가 시간 까먹고, 걸어가느라 길에서 시간을 다 까먹은 리국제. 통신설비작업을 마친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었다. 통신참모는 12시까지 마치라고 했는데. 아. 떠오르는 고참의 얼굴. 헐~ 지옥이 따로 없다.

   그는 고장난 사이드카를 끌고 저녁 무렵에야 겨우 부대로 복귀했다. 그사이 부대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시에 출장나간 부대원 2명이 9시간이 지나도 안돌아오니, 탈영을 한 건가, 사고가 난건가, 연대가 발칵 뒤집어졌다. 전쟁터에서 통신연결은 생명줄과도 같다. 하물며 통신소대장이라면 암호나 대호같은 군사비밀을 아는데 탈영했거나 납치라도 됐다면 보통일이 아니었다. 겁을 잔뜩 먹은 리국제는 참모부를 찾아가 통신참모에게 어찌어찌 정신없이 복귀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그의 운수좋은 날은 계속되었다.


[그림2]  인민군이 한국전쟁때 사용하던 사이드카   당시 명칭은 모터사이클로, 오토바이 옆에 조수석이 붙어있는 2인승이다. 위 사진은 전쟁 당시 인민군 제105탱크여단에 소속된 모터사이클대대가 남하하는 장면이다. 인민군의 모터사이클은 모두 소련제로, 기동력이 뛰어나 주로 정찰용과 연락용으로 사용되었다. 모터사이클부대 중에서 인민군 제12모터사이클 정찰연대는 1949년 중국에서 입북한 조선족 병사 2,000명으로 편성되었다.

   다음날 고장난 사이드카를 수리소에 맡겼다. 헌데 수리비가 대박. 남한 화폐로 33,500원이라는 거액이 나온 것이다. 전쟁때 인플레를 감안해도 지금 돈으로 300만원이 넘는 수리비. 얘, 어쩌냐. 리국제는 결국 사단 대열정치보위부에 끌려갔다. 그는 이곳에서 무려 13일동안 조사를 받았다. 남한으로 치면 국군 기무사령부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정치보위부. 게다가 전시라 즉결처분권까지 부여된 그곳에 끌려간 리국제.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 기분이었을 것이다. 정치보위부는 리국제를 조사한 후, 사단 참모부에 다음과 같은 조사결과를 올렸다.

“소대장은 전쟁시기에 상부명령 집행을 에누리하며, 군대차에 무리하게 성분도 알 수 없는 여자들을 승차시킨 관계, 전투사업에 많은 지장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임으로 재료를 이관하오니 참고로 하심을 바람.”
(제315군부대 대열정치보위부장 대리 이두황, 1950년 8월 7일)

리국제의 잘못은 두 가지였다. 전시에 상부명령을 어긴 점과 군용차량에 정체불명의 여자를 태운 점. 정치보위부는 조사결과를 사단으로 보내고 처벌은 사단의 재량에 맡겼다. 이제 리국제의 운명은 사단지휘부의 손으로 넘어왔다. 대열정치보위부를 보고를 받은 사단 참모장은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리국제를 다시 심문하는 한편, 연대 간부들을 불러 전후 상황을 조사했다. 참모장은 다음날인 8월 8일 사단장에게 다음과 같은 「구신서」를 올렸다.

“본인과 심문한 바 그 반성정도가 심각하며, 이미 연대 지휘간부들로부터 많은 주의들이 있었으므로 사단장 이름으로 주의조치하고, 현직 그 자리에서 공작시키려 하오니 비준하여 주심을 바랍니다.”
(「구신서」, 제315군부대 참모장, 1950년 8월 8일)

그래도 평소에 고참들한테 잘했나보다. 많이 반성하고 있고, 연대지휘부가 따끔하게 혼냈으니 보직을 유지해 주자는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평상시 고참들에게 찍혔더라면 영창에 가고도 남을 행위다. 운수 없던 그 여름날, 소대장 리국제에게 온 마지막 운수가 그를 살렸다. 처녀에게 선심 쓰려다 호된 하루를 보낸 20대 청년 소대장, 리국제의 운수좋은 날은 그렇게 대충 수습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 문서이름 :『非行登錄簿』, 조선인민군 제315군부대 간부과, 1950년

– 문서출처 : 미국국립문서보관소, 문서군 242, 선적번호 2010, 상자번호 1, 문서번호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