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뒷담화] 강태무, 창군이래 최대의 월북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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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뒷담화 #1


강태무, 창군이래 최대의 월북사건

김선호(현대사분과)

    1949년 5월 3일, 강원도 홍천의 38선에서는 한 무리의 군인들이 참호 구축공사를 시작했다. 이틀 동안 참호 공사를 마치고 부대원들이 잠들어 있던 5일 새벽 1시, 돌연 ‘집합’ 지시가 떨어졌다. 부대원들은 완전무장상태로 집결하였다. 대대장은 “이제부터 38선 고지에 있는 인민군 보안대를 공격한다”는 명령을 내리고, 부대원 293명을 대동해 북으로 향했다. 38선 현리 부근에 다다르자 갑자기 인민군의 사격이 개시되었다. 부대원들은 곧바로 인민군을 향해 반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 교전이 진행되던 중 갑자기 대대장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라”고 명령했다. 당황한 대대원들은 명령에 따라 투항했고, 일부 대원들은 교전을 계속했다. 300여명의 대원중 173명이 월북했고, 127명은 원대로 복귀했다. 이것이 창군 이래 최대의 월북사건이다. 이 부대는 국군 제8연대 제2대대로, 월북을 주도한 사람은 2대대장 강태무 소령이었다.


[그림1] 김정일로부터 팔순 생일상을 받은 강태무  연합뉴스, 2005.3.15

    강태무는 1924년 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졸업 후 학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46년 9월 육군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국군에 입대했다. 그 해 12월 육사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그 후 승진을 거듭해 1949년 초에는 춘천에 본부를 둔 제8연대에서 소령계급을 달고 제2대대장으로 근무하였다. 그런데, 1949년 5월 5일, 돌연 대대를 이끌고 월북했다. 같은 날 춘천에 주둔 중이던 제8연대 제1대대장 표무원 소령도 대대병력을 이끌고 월북했다. 워낙 큰 사건이라 별도로 명칭까지 생겼는데, 이름 앞자를 따 ‘강표부대 월북사건’이라 칭했다. 국군 2개 대대가 한꺼번에 월북하자, 이승만 대통령, 멘붕되셨다. 이응준 참모총장까지 좌천되었는데, 용케 신성모 국방장관은 살아남았다. 대통령 비위 잘맞추기로 이름났던 낙루장관(落淚長官)은 역시 다르다.

흥미로운 사실은 강태무와 표무원이 경남 고성에서 보통학교 때부터 어울려 다니던 소꿉친구라는 점이다. 2개 대대 모두 부대를 출발한 시간이 6월 5일 새벽1시로 같고, 월북방법도 인민군에게 투항하는 동일한 방식을 취했다. 두 사람이 합의해서 월북한게 틀림없다. 창군이래 최대의 월북사건이라 이들이 월북한 이유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둘다 남로당 출신으로 김창룡이 주도한 국군내 좌익숙청이 다가오자 월북했다는 설과, 북로당 남반부 정치위원회 총책인 성시백선에 포섭되어 월북했다는 설이 있다. 중앙정보부는 그들이 1946년 10월 평양학원 대남반 1기로 졸업한뒤 국군에 침투했다고 기록했으나, 이때는 그들이 군사영어학교에 다닐 때였다. 북한 고위급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1946년 북한 내무성 공작원 ‘김철’선에 연결되었다가 1948년 초에 ‘성시백’선으로 이첩되었다고 한다.

두 명 다 경남 고성출신, 조선공산당 재정부장 이관술은 경남 울산, 남로당 재정부장 성유경은 경남 창녕. 진정한 좌빨은 경상도 아닌가? 아. 남로당 당수 박헌영은 충남 예산,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은 충남 금산, 남로당 총책 김삼룡은 충북 충주니 가장 강직한 좌빨은 충청도다. 멍청도라 놀리지마세요. 순해 보이지만 한방 있어요.

월북사건

이들 2개 대대 월북을 좌우해 전쟁 전까지 대형 월북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1948년 11월 18일, 육군 항공대 소속인 백흠룡 중사가 몇 대없는 L-4비행기를 몰고 월북했다. 진짜 몇 대 없었고, 그걸 조종할 줄 아는 사람도 몇 명 없었다. 그는 일본 소년 비행병 학교 제15기 출신이다. 오전 10시 15분에 김포 비행장을 출발해 오후 11시 평양 비행장에 착륙했다. 사건 직후 백 중사의 인천숙소를 뒤져보니 남로당원증과 좌익 문건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남한신문에서는 그가 착륙 직후 총살당했다고 보도되었지만, 사실은 인민군 공군에 편입되었다.

당시 인민군 공군에는 백 중사와 같은 일본 소년비행병학교 출신들이 교관과 조종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친일파를 철저히 숙청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인민군은 일본군 조종사 출신들을 대거 등용했다. 6월 25일 개전 당일 처음으로 김 포비행장을 폭격한 인민군 추격기 조종사도 일본 소년 비행병 학교 출신이다. 게다가 1949년 11월 23일에는 국군 소속 이명호 소위가 다시 L-5항공기를 몰고 월북하였다. 그는 대북선전 전단 살포임무를 받고 강원도 화천지구를 향해 비행하던 중, 휴대중이던 권총으로 조종사 박용오 상사를 협박해 월북하였다. 두 차례 월북사건으로 공군은 발칵 뒤집혀졌고, 이때부터 공군내 좌익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벌어졌다.

    2개 대대가 월북한 넉달 뒤인, 1949년 9월 20일에는 소금 1,800톤을 싣고 군산항으로 가던 ‘스미스호’가 선원 58명을 태운 채 월북했다. 당시 스미스호의 선장 안관제는 좌익선원들로 월북투쟁위원회를 구성해 미군 고문 2명까지 그대로 태우고 월북했다. 나머지 선원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채 월북. 지못미.^^;

스미스호는 원래 미군함정으로 미군이 국군에 대여한 초계정 중 가장 좋은 함정이었다. 이들은 인민군 해군의 모항인 평남 진남포항에 상륙했다. 월북 후 스미스호는 북한 해군에 편입돼 남포호로 명명되었고,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선장 안관제는 남포호 함장으로 임명되어 전후에는 해군 수로부장과 청진항 항무장까지 승진했다. 입북 후 일부 선원들은 1949년 11월 17일 함경남도 회령에 있는 제3군관학교에 입교해 유격훈련을 받은 뒤, 1949년 말 유격대에 편입되어 강원도 인제군으로 남파되었다. 1950년 4월 14일에는 강원도 동두천 부근까지 진출했다가 국군에 괴멸되었다. 기껏 월북했더니 다시 남파시키다니. 헐~ 대박.

이때 스미스호 5등 수부였던 서재석(인천시 창영동 출신)이란 사람이 부대를 이탈해서 자수해 『경향신문』에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기구해도 이렇게 기구한 인생도 드물고, 이렇게 명줄이 길기도 쉽지 않다. 1949년에 육군ㆍ공군ㆍ해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월북사건은 모두 북조선로동당 남반부위원회 총책 성시백이 펼친 월북공작의 결과였다. 희대의 간첩, 명동백작 성시백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으므로 다음 기회에.

월북이후

강태무는 월북하자마자 평양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입북한 대대 전체가 인민군에 편입되었다. 6․25 전쟁때는 함께 입북한 표무원과 함께 인민군 해병대인 766부대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전쟁중에 남한에서 부인과 형제들을 찾아내 북한으로 데려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개전직후 ‘국민보도연맹학살사건’으로 좌익가족들이 죄다 죽었는데, 오히려 살아남은게 미스테리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형제들은 객지에 나가있던 형 빼고 전부, 조선의용군 대장 김원봉의 형제들은 시집간 여동생 빼고 전부 끌려가 학살당했다. 강태무가 월북하자 고향을 떠서 객지로 나간 것 같다.

    강태무는 휴전 직후 28세의 젊은 나이로 인민군 소장으로 전격 승진했고, 군 제대후인 1961년도에는 양강도 풍산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출신 성분이 문제가 되어 한때 좌천되기도 했으나, 1977년 김정일의 지시로 양강도 행정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국군 1개 대대를 이끌고 월북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김정일로부터 고급주택과 고급승용차를 선물받았고, 자녀들은 김일성 종합대학과 평양의학대학에 입학했다는 후문.

1996년부터는 인민군에 다시 복귀해 중장까지 승진했고, 사망 전까지 표무원과 함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활동하다, 2007년 6월 18일 82세로 사망했다. 강태무야 말로, 월북해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하겠다. 함께 월북한 표무원도 인민군 중장까지 진급했고, 강태무보다 1년 앞선 2006년 4월 15일에 사망했다.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고 자라, 입대도 같이, 월북도 같이, 진급도 똑같이 하고, 말년에 강사도 같이 하다 죽은 두 사람. 진정한 친구일세.

육사 2기

강태무와 표무원은 공교롭게도 둘다 육사 2기다. 육사 2기는 유독 파란만장한 인물이 많고, 동기끼리 악연도 많다. 박정희 대통령도 육사 2기다.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도 육사 2기이다. 게다가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북 선산 고향 후배이기도 하다. 좌익척결의 1등공신이자 남로당원이었던 박정희를 처형의 문턱까지 끌고간 김창룡도 육사 2기다. 김창룡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은 강문봉도 육사 2기다. 4․19혁명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강문봉은 그후 박정희 대통령의 군정반대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참, 동기들끼리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다.

    1982년 6,000억원대 어음사기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영자ㆍ이철희사건’의 그 이철희도 육사 2기다. 강남의 빨간바지 이순자 여사의 부친 이규동도 육사 2기다. 전두환 대통령이 소위시절 이규동 장군의 직속 부하 장교였다. 지금 살고 있는 연희동의 500평짜리 대저택도 이규동 장군이 물려준 것이다. 얼마전 전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이 건물 세입자를 보상금 한푼 안주고 내쫓았다는데, 이 집안 돈이 없긴 없나보다. 그 화수분같은 29만원도 떨어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