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교훈]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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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제

박태균(현대사 분과)

최근 북미관계에 관한 세미나를 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논쟁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북한에서 핵실험까지야 하겠느냐고 하시면서 최소한 올해 안에는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올해 안에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맞는 쪽이 상대방에게 점심을 사기로 결정했다. 실로 위험한(?) 문제가 내기가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필자가 내기에서 이겼고, 다른 분들이 곧 필자에게 점심을 살 운명에 처하셨다. 점심을 사기로 한 분들은 기왕이면 통일전망대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하신다. 점심을 사기 전에 북한에 가까운 곳에 가서 왜 핵실험을 했느냐고 한 번 하소연이라도 하시겠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를 갖고 점심사기 내기를 한데 대해 독자 여러분들께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한갓 저잣거리의 내기는 아니었다. 북한 핵실험의 중대성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핵실험의 시기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올해 안에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판단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미사일 실험을 강행했던 북한 정권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야 북한 정부가 미사일 발사하지 않음으로써 동북아시아에 더 이상 갈등이 고조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국과 중국이 북한에게 많은 원조를 하고 있는데, 양국을 고려해서라도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미사일이 발사되기 전날까지도, 핵실험이 있었던 전날까지도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해 누구 하나 강행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미사일과 핵실험의 문제가 남북관계나 북중관계의 차원을 넘어선 북미관계의 문제였다는 점을 직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보란 듯이 미사일도 발사했고, 핵실험도 강행했다. 이에 대비하지 못했던 우리 정부는 당황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북정책을 재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다가, 이제 다시 기존의 대북정책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다른 한 쪽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전쟁까지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 이런 혼선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상대방 국가의 정책에 대해서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 왔던 한국 사회의 고질병에서 비롯된다. 한국현대사를 통해 이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상대국의 정책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면밀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책이 진행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우리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정책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 시기를 통해 한국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또 다른 일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한국이 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모든 정책에 있어서 한국은 예외가 될 것이며, 미국의 한국에 대한 기존의 정책이 변화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의 예상과는 다르게 자신들의 세계전략 하에서 국가이익에 맞추어 대한정책을 추진했다. 한국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의 감축을 추진했으며, 한국 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한미일 삼각 동맹을 강화시키는 전략을 추구했다.


<사진 1>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이 신임 매카나기 주한미국대사의 신임장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는 장면. 한국이 또 다른 일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기념촬영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매카나기 대사로부터 사퇴 권고를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

이와 관련하여 닉슨 독트린 직후에 있었던 한국 정부 및 언론의 대응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닉슨 독트린은 지역문제의 지역화를 표명했고, 명백하게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슨 독트린 직후 한국 정부와 국내 언론들은 한국이 베트남에 전투부대를 파명하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분단국가라는 점을 고려하여 한국에 대해서는 닉슨 독트린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1969년 8월에 열린 박정희와 닉슨의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의 안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한미 정상이 확인했다는 보도를 통해서 주한미군이 감축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도가 국내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결과는 한국 정부와 국내 언론이 판단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1970년 닉슨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감축을 결정한 이후 일방적으로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에게 주한미군 감축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고, 1970년 7월 21일에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베트남에 있는 한국군을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으로 인해서 많은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었던 한국 정부는 베트남으로부터 군대를 철수시킬 의사가 없었고, 미국 역시 한국 정부의 이러한 대응에 대해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미국의 정책을 잘못 읽고 있었던 한국 정부는 뒤늦게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위기는 과장되기 시작했고, 1971년 12월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이어 이듬해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미국의 정책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부적절한 대응은 곧바로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사태로 연결된 것이다.


<사진 2> 1969년 8월 한미 정상회담의 모습. 이 사진에 나타난 박정희 대통령의 심각한 표정은 닉슨 대통령의 여유있는 표정과 대조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회담을 통해 미국의 대한정책이 존슨 행정부 시기와는 다를 것이라는 점을 예측했을 가능성도 있다.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

다른 나라의 정책과 관련해서 우리는 한국의 국가 이익에 맞게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이 잘못되었을 때에는 상대방의 정책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다.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통해 상대방의 정책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여 미래 지향적인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이럴 때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향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분명 한반도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사태임에 분명하다. 비록 초기의 오판으로 인해서 혼란된 상황을 맞이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좀 더 객관적이고 치밀한 정세분석을 통해서 위기에 대해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주장들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