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원 높아진 ‘평화ㆍ번영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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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원 높아진 ‘평화ㆍ번영 설계’

                                       안병욱(현대사 분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년 만에 다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 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상당한 부담을 안고 진행되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회담은 만남 그 자체로 역사적인 충분한 의미를 갖게 되지만 이번에는 논의되고 합의되는 내용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또 회담이 진행되기 이전부터 정치적인 입장에 따른 여러 시비가 제기되었다.


노문현 대통령 내외가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하지만 이번 회담은 기대 이상의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앞으로 남북관계 변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논의하고 합의한 것들을 담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 발표했다. 이번 회담이 갖는 여러 의미 가운데 다음의 몇 가지에 국한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공동선언 가운데는 다소 의외의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6항에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부분이다. 언론들조차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이 항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통일에 대비한 학술 문제가 반드시 의제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상회담에서 학술협력 문제를 논의하고 그 결과를 공동선언문에 담는다면 앞으로 남북교류의 질적인 수준이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특별수행원으로 마침 동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남북간의 평화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일은 특정한 사업, 특정한 시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건설하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의 역량을 기초로 그 위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창조적 도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장기적인 기획과 준비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 출발은 학문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 남북이 협력해서 미래세대 양성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번 선언이 그런 인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을 나타낸다.

 

  다음으로 남북의 두 지도자는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ㆍ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합의하고 이를 선언하였다.

  곧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문 2항에서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으며, 또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정비하기로 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란 바로 국가보안법 등을 말한다. 그동안 분단을 위해 날조된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은 필수적이고 시급한 과업이 되었다. 그러한 장애물을 철폐하지 않고는 민족공동체 건설이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선언을 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유지되는 한 민족통일의 대의를 아무리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천명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구두선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지난날의 7·4공동 성명과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가 나무랄 데 없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0년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으로 획기적인 이정표가 세워졌음에도 평화체제를 향한 성과가 여전히 미흡한 것은 다름 아닌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통일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이 추구할 미래 협력방안으로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를 합의한 일이다. 이는 관광특구, 공업지구 등으로 개별적이고 분절된 사업들이 갖는 성격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한반도 미래전망을 제시한 획기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하는 정치 경제 화해 협력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평화번영 구상이라 하겠다. 이번 정상 회담이 2000년 이후의 제반 논의들을 바탕으로 그려낸 새로운 차원의 통일 설계라 할 수 있겠다. 기존의 남북관계 논의가 안고 있던 제한성을 뛰어넘은 발상이라고 할 것이다.

  2박3일간의 회담 일정에서 확인된 남북관계의 변화된 모습 또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그동안의 적대적인 남북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군최고통수권자라는 위상을 가지고 평양에서 20분간 수십만 인파 속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둘러싸였다. 아리랑을 관람하면서는 적대적으로 인식돼 온 북한의 5만여명 주민들과 한 시간 반을 함께 박수치고 즐기면서 어울렸다.


노문현 대통령이 2일 오전 북쪽이 제공한 무개차로 갈아탄 뒤 김영남 북쪽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평양시내를 지나며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양/ 청와대사진기자단)

  그 뿐만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북핵문제를 논의하는 가운데 김계관 부상을 불러 6자회담 성과에 대한 보고를 아예 한자리에서 받았다. 이는 마치 통일국가의 남북 최고위대표가 남북연합의 행정을 처리하는 듯 한 모습이다. 이런 일만으로 본다면 남북간에는 이미 통일이 다 된 듯하다.

  냉전시대의 남북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2000년에는 파격이었을 지라도 이제는 파격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 어떤 평화선언보다도 의미가 더 크고 실제적인 평화정착의 확인이다. 노대통령이 몸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증명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007년 정상회담의 가장 큰 난제는 어쩌면 남북 사이의 이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북한을 바라보는 남한사회 안의 시각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자 이해관계의 차이가 남북문제로 연장되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데는 상대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해보는 자세로 설득한 노대통령의 의지가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그동안 남북간에는 수차례에 걸쳐 성명서와 합의문서가 작성됐다. 그때마다 북측은 ‘자주’와 ‘우리민족끼리’라는 전제를 내세웠다. 외세의 간섭이나 영향력을 배제하자는 요지였다. 북으로서는 체제유지를 위한 이념적인 것이었고, 남으로서는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요소였다. 이것이 회담 때마다 논의 전개를 어렵게 해왔다.

  노대통령은 그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돌파했다. 주변의 국제관계를 외세라는 차원이 아니라 도움이 될 수 있게 변화시키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득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의 이해를 이끌어 낸 것이다.

  국제관계를 주도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이를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도력이라는 점에 두 정상이 인식을 함께한 데서 평화번영의 공동선언에 합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