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회 20년과 『역사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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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역사연구회 20년과 『역사와 현실』

하일식(고대사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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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가 창립된 것은 1988년 9월 3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1970년대, 80년대를 거치며 젊은 연구자들, 대학원에서 수학하는 예비 연구자들은 ‘역사와 현실’·‘역사학과 현실’이라는 문제를 크게 느끼고 있었다. 스승 세대는 현실을 떠나거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순수한’ 자세로 과거를 탐구하는 것이 기본 자세인양 생각했다. 그러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경험은 젊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이런 태도에 회의를 갖게 하였고, 당시 현실 속에서 한국사 연구자 스스로의 위상을 성찰하게 만들었다.
 
 1980년 8월, 광주민주화 운동 : 시위대를 ‘진압’하는 공수부대원

1980년대 후반에는 여러 방면의 사회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개별 대학 단위를 넘어 모여서 망원한국사연구실, 한국근현대사연구회를 만들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과 ‘관계’하며 실천을 지향하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1987년에 6월항쟁을 경험한 것을 계기로 대통합을 통해 연구자 ‘대중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퍼졌다. 1988년 5월부터 새 연구단체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전근대사 연구자들까지 포함하는 준비모임이 결성되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이런 과정을 거쳐 생겨났다.


 한국역사연구회가 보관중인 이전 단체의 간판들

한국역사연구회는 창립취지문에서 “역사 연구에서 과학성과 실천성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회칙에서는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의 수립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표방했다. 또 그 목적을 위하여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연구 성과를 대중화하기 위하여 회지 및 출판 보급 활동에 노력한다고 명기하였다. 한국사 분야에는 여러 학회들이 있지만, 한국역사연구회만이 가진 특징이 이런 측면에서 잘 드러난다.


 대중강좌를 운영할 때 배포했던 포스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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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와 현실』은 1989년 5월에 창간되었다.
   ‘역사와 현실’이라는 이름은, 한국사 연구자의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담은 논문을 싣는 학술지로는 조금 파격적인 것이었다. 현실과 유리(遊離)된 채 과거만을 탐구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의 연구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였다. 편집 구성과 글의 내용들도 그런 지향을 반영하며 출발하였다.

   연구반을 꾸려서 상당한 기간 동안 공동연구하고 심포지엄이나 발표회를 거친 뒤에 결과물을 ‘특집’으로 실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편집위원회에서 특별한 주제를 기획하고 팀을 꾸려서 작업한 결과물을 기획하여 묶었다. 따라서 『역사와 현실』의 편집 구성은 ‘공동연구’와 ‘기획’·‘연구동향’·‘서평’·‘자료소개’·‘시론(時論)’등으로 매우 다채롭게 꾸며졌다. 개인 연구물로만 채워지던 여느 학술지와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었다.


『역사와 현실』: 70호를 훌쩍 넘었다

   창간 초기에는 1년에 2회를 발간하였다. 그리고 기획과 편집을 연구회에서 책임지고, 발행은 한울출판사에서 맡았다. 연구회 자체의 재정이 넉넉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3호부터는 출판사를 역사비평사로 옮겨서 10호까지를 반년간으로 발행하였다. 그러나 회원이 늘어나면서 연구회의 규모가 커졌고, 공동연구 못지 않게 개인 연구물의 투고가 늘어나면서 지면 부족에 대한 아쉬움이 커져갔다.

  『역사와 현실』의 연4회 발간이 실현된 것은 1994년부터였다. 이 해에 『한국고대사문답』을 내었는데, 이 책은 연구회뿐만 아니라 역사학계 전체에서 대중적인 책을 전문 연구자들이 기획 집필한 첫 시도였다. 이를 계기로 연구회와 출판사 모두가 재정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다는 전망이 생겼기 때문에 회지 계간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역사비평사에서 회지를 발행한 것은 1998년 6월, 28호까지였다. 연구회로서는 8년 넘게 신세를 졌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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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에 나온 『역사와 현실』 29호부터는 발행인이 연구회 회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발행 비용 전부를 연구회에서 부담하였다. 명실상부하게 독립된 학술지를 발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에 따른 변화도 있었다. 초기에는 논문 필자에게 얼마간의 원고료를 주었고, 90년대 후반부터 기획 청탁한 경우에만 지급하는 방식으로 범위를 좁혔다가 이 무렵부터는 원고료를 완전히 없앨 수밖에 없었다.

 

   그 직후에 중요한 변화가 또 있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학계의 모든 학술지를 평가하여 등재후보지·등재지로 분류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스스로의 평가가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계량화된 평가에 응하는 것이 온당한가”를 둘러싸고 약간의 논란이 있었지만, 평가에 응하기로 결정한 뒤에 준비과정을 거쳐 등재후보지로 심사를 신청하여 선정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등재지가 되어 한국사 방면의 학술지로는 앞선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학진의 등재지 여부가 학술지 발행비를 지원하는 기준, 연구자 개인의 연구실적을 계량적으로 평가하는 잣대가 되면서 『역사와 현실』의 위상은 조금 달라졌다. 학진의 지원을 받아 발행비 부담이 조금 줄어든 반면, 투고되는 논문의 수는 이전에 비해 늘어났다. 논문게재를 위한 심사과정이 더욱 엄격해진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이런 변화는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 학진의 등재지 정책에 뒤이어 2002년부터 인문학 방면의 여러 프로젝트들이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연구회의 공동연구가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공동연구반 활동에 활기가 줄어들면서 개인연구에 치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학진의 정책은 이런 분위기를 더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대개의 프로젝트가 개별 대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연구회의 공동연구반 구성에도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학진의 등재지 정책으로 인하여 연구자 내면의 깊은 성찰이 담긴 질적 수준보다는, 등재지·등재후보지에 몇 편의 논문을 실었는가 하는 계량적 잣대가 대학의 교원 임용이나 승진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당장 연구자의 눈앞에 보이는 ‘글 쓸 소재를 찾아간 연구’, ‘연구를 위한 연구’가 학계 분위기를 압도하였다.

   특히 1년을 단위로 결과를 산출해야 하는 학진 프로젝트로 생산된 연구물들은 양적 팽창을 선도했을 뿐, 질적 수준을 높이는 역할과는 거리가 있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학진 지원을 받은 경우는 결과보고일 뿐, 깊이 천착된 제대로 된 학설이라 하기 어렵다”는 자조적(自嘲的)인 이야기까지 나오는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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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역사와 현실』은 매호당 게재된 논문의 수가 늘어나서 책이 두꺼워졌다. 그러나 그에 따라 질적으로도 향상되었다고 자평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학적 역사학을 추구했던 초기의 문제의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졌다. 그리고 실천을 고민하는 방법론이나 주제 선택의 결과로 작성된 연구라고 내세울 만한 경우도 적다.

   물론 이 모두가 주관적인 측면 또는 객관적인 배경이나 조건 어느 한 쪽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과거 역사의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해석할 때 늘 ‘복합적인 파악’을 강조하고, 그 가운데서 지배적이고 규정적인 요인과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것들을 분간하려 하지 않았던가? “역사학에서는 실천적인 ‘연구자’는 곧잘 찾을 수 있을지라도 실천적인 ‘연구’는 나오기 어렵다”는 말도 듣는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역사학이란 학문을 한다는 것과, 현실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차원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20여 년간의 이런저런 변화를 앞에 두고서 연구자 모두에게 자기 성찰이 엄격히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이라는 창립 초기의 지향을 실현하거나 지켜왔는가 하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동안의 변화에 올바른 자세로 임해 왔는가 하는 점이 자기 성찰의 최소한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학이란 학문은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다. 또 개별 인간보다는 구체적 현실에 처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더 나아가 그들 인간이 이루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사회란 개별 인간의 단순한 집합체, 그 이상의 메카니즘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분석하고 더 정확히 이해하는 인식론적 방법론에 대한 끊임없는 개발이 뒤따라야 하고,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실증적 소재에 매달리는 노력을 넘어서, 연구회 안에서 이런 움직임이 작은 차원에서나마 집단적으로 가시화된 적이 있는가 묻는다면 대답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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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현실에 대한 인식 문제, 현실을 마주하는 연구자의 태도가 열쇠가 될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수학하며 연구회를 창립했던 세대들이나, 그 이후에 연구자로 성장하며 연구회에 몸담게 된 세대들이나, 본질이 크게 달라진 사회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연구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지옥과 같은 현실이 20년 만에 유토피아가 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달라짐으로써 스스로 ‘체감하는’ 주관적 현실에서 약간의 차이가 존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에 종사하는 연구자라면, 또 ‘바람직한 현실’을 추구하는 시민이라면, 우리 현실의 현상적 변화가 갖는 문제점을 직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를 낳을 것이며, 과거를 살펴보는 문제의식으로 다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의 현실은 억압에 대한 저항과 인간다움에 대한 투쟁을 새삼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창립 초기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변화와 함께 그 변화의 결과를 제대로 정리하는 실천적 인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에서 생산된 글들을 『역사와 현실』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하겠다.

   또한 “연구 성과를 대중화한다”는 초창기의 의욕도 사라져서는 안될 소중한 목표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연구자가 대중을 떠나서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점을 흔히 잊기 쉽지만, 연구자가 쓰는 글은 그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면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단순히 대중용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에 실리는 논문들도 일반인이 읽어서 쉽게 이해하는 수준을 지향했으면 한다.

   사료 속에 나오는 용어를 그대로 옮겨쓰는 난해한 글쓰기로 인하여 전공시대, 전공분야를 조금만 벗어나면 연구자들끼리도 이해하기 힘든 글에 파묻힌 것이 우리가 처한 상태이다. 틀에 박힌 논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고 쉬운 문체를 쓰면서도 깊은 내용을 담은 논문의 본보기를 『역사와 현실』에서 더러 찾을 수 있도록 회원 모두가 노력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실천은 작은 것에서 비롯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