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현대편 분석

0
225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현대편 분석

정병준(목포대 교수, 한국현대사)

1.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논쟁의 연원

동아시아 3국의 역사전쟁에 이제 한국이 뛰어들었다. 일본 휴쇼사의 ≪새로 쓰는 일본역사≫가 한일 역사전쟁의 서막을 열었고, 뒤이어 중국의 동북공정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리고 이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친북․반미적이라는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한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행한 발언은 일부 언론을 통해 집중적으로 보도되었고, 다시 정치권이 이 보도를 받음으로써 메아리효과를 내었다. 이미 올해 4월 ≪월간조선≫이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교과서를 친북․반미교과서로 지목한 바 있었다. 보도를 접한 국방부는 5월 교과서가 한미관계와 남북 실상을 편향적으로 기술했다며 군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했다. 국방부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정부 수립과정에서 남한쪽의 문제점만 집중 조명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 미국 관련 내용을 비판적으로 기술해 반미감정을 조장하고 있다”는 분석을 예하 부대에 내려보냈다.1) 당시도 고등학교 60%가 채택한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논쟁은 이미 올해 초 문제로 ‘만들어졌던’ 내용들의 재탕이었다. 이미 교과서 필자들과 교육부․국사편찬위원회․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의 반박과 해명이 있었지만, 문제는 이러한 ‘교과서소동’이 사실여부를 따지거나 결정적 오류를 밝히는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이는 명백한 정치적 선전이었고, 어세(語勢)와 단어를 꼬투리 삼은 아마추어적 비평이자 어설픈 비교․대조의 선동법이었다. 해당 의원 역시 자신의 발언이 ‘느낌’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다.

분명한 것은 사실 여부가 중시되지 않았고, 전문가들의 견해가 무시되었으며,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과 기구의 역할이 묵살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눈치를 챘듯이 이러한 소동은 정치적 목적 하에 교과서와 필자를, 나아가서 교육부와 현정부를 좌파로 포장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간직한 것이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청산논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2. 용감한 교과서 집필자들

현대사 전공자로 6종류의 교과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갖게될 것이다. 역사 교사․교수들은 교육적 목적을 위해 ‘용감하게’ 교과서 집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용감’하다는 이유는 유신체제 이래 한국의 국사교과서 집필은 손대야 덕볼 것 없고 오명을 뒤집어 쓰기 일쑤였고, 특히나 근현대사는 더말할 나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신체제 이후에는 국정체제가 문제가 되었고, 제대로 된 학문사회의 경향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세 교육을 위한 교과서 집필에 참가했다가 어용교수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고, 그 와중에 국정교과서는 학계와는 거리를 유지한 채 간신히 재생되었을 뿐이다. 특히 근현대사 부분은 거의 반공도덕교과서 수준이었고, 현정권을 찬양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곤 했다.

1970년대는 “천불 소득․백억 수출”의 시대였다. 모두들 1980년 천불 소득, 백억 수출이 되면 한국이 유토피아가 되는 줄 알았다. 1980년대 교실의 풍경은 천불 소득․백억 수출이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으로 바뀌었을 뿐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국사교과서는 선진조국 창조를 외치고 있었다. ‘국정’으로 배운 국사교과서에는 쿠데타의 주역과 광주학살의 주역들이 조국근대화의 혁명가와 ‘각하’로 묘사되었을 뿐이다. 유신체제 이후 만들어진 ‘국정 국사교과서’의 근현대편은 학교현장에서 무시되었다. 역사학자가 쓰지도 않았을 뿐더러 시험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중고등학교에서 근현대사는 학년말 시간때우기 정도로 넘어갔다. 선생님들도 현실과 전도된 교과서를 가르칠 마음이 별로 없었다. 서로 다 알고있었던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반공․반민주․친독재의 국사교과서나 도덕교과서가 서로의 영역을 다툴지도 모를 일이었다. 최근까지 국사교과서의 근현대편은 현실의 연구․인식수준과는 터무니 없이 동떨어져 있었다.

한국현대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고, 한국현대사를 강단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도 불과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교과서의 한국근현대사 부분이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6차 교육과정에 따라 1996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할 국사 교과서의 서술 지침이 되는 ‘국사 교육내용 준거안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1994년 서중석교수는 한국현대사 부분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출했다가 보수언론들의 사상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역사학계에서 한국현대사 연구를 시작한 첫 세대인 서중석교수는 준거안 관련 학술토론회에서 제주 4․3항쟁, 10월 항쟁 등의 용어를 제안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교과서에 소개하자고 제안했다가 집중포화를 당했다. 당시 보수언론들은 ‘교과서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라!’ ‘교육의 핵심부에까지 불순 세력 침투’ 등의 제목을 뽑아 대서특필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정부는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에게 공식사과를 했고, 현행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모두 북한의 주체사상을 교과서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의 초점은 여전히 10년전과 동일하다.

참고로 말하자면 2003년 한국근현대사 검정교과서가 채택되기 전까지 한국현대사를 집필한 것은 비전공자이거나 정치학자들 뿐이었다. 검정교과서에 들어서야 현대사연구자가 처음으로 교과서 집필에 참가할 수 있었다.

1990년대의 국사교과서 근현대편 역시 많은 문제점을 지닌 것으로 지목되곤 했다. 서중석교수는 한국현대사 부분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첫째는 분단국가주의의 과잉노출, 둘째는 왜곡․부정확한 기술과 오류였다.2) 특히 분단국가주의 부분에 대해 서교수는 1) 정부․관 중심의 서술 2) 서술의 불균형 3) ‘민족’ 등의 과다사용 4) 극우 권위주의 정권 미화 5) 반공․반북이데올로기에 의한 제약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한 바 있다. 서교수는 현대사 지면 확대, 북한사 기술, 민주화운동 중시, 사회사․문화사 중시, 세계사와의 연관관계 중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근현대사 교육강화에 대한 사상․이념적 색깔공세가 빈번하게 제기되었고,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필자들은 기꺼이 교과서 집필을 택했다. 현행 교과서 집필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먼저 교육부가 짜놓은 상세한 준거안에 따라 목차․용어를 사용해야 했다. 이 준거안은 중립적이고 보수적인 학자․관료의 합의로 도출된 것이었다. 1차 관문이다. 또한 집필자들은 근현대사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보수언론들의 색깔론을 염두에 두고 자기검열을 해야했을 것이다. 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는 것보다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빌미로 시비하는 목소리에 신경을 써야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자기검열과 외부검열의 이중 고통을 감당해야 했음이 분명하다. 출판사들 역시 교육현장에서 쓰여질 교과서의 질적 우수성과 보편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2차 관문이다. 다음으로 교육부의 검정과정이 남았다. 학계의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준거안과 학자적 전문성에 기초해 ‘검열’하고 검정하는 절차를 밟았다. 적지않은 수정작업이 이루어졌다. 3차 관문이다. 마지막 관문은 교육현장에서 활동하는 현역교사들의 선택기준이었다. 물론 교과서의 내용 전반을 비교․검토하지는 못했겠지만, 집필진과 출판사에 대한 평가와 입소문이 있기 마련이다. 시장의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4차 관문이다.

적어도 현행 검정교과서 발행체제는 최소한 전문적인 4차의 검열과정을 거쳐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친북․반미․반국가적 교과서의 발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제도적 시스템을 거쳐 교과서가 발행되었지만, 색깔론의 위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도대체 무엇을 문제삼고자 하는 것인가? 검정시스템, 집필자, 출판사, 교육부 및 관련기관, 검정담당자, 교사 등 수많은 전문가들의 공든 작업은 ‘아님 말고’식의 여론선동으로 비난받을 수는 없다.

3.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현대편의 특징

검정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이전의 국정교과서보다는 양적으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내용구성에 있어서도 질적으로는 진척되었다. 2003년부터 한국근현대사가 선택으로 바뀌었고, 국정대신 검정 교과서가 사용되었다. 현재 6종의 검정 근현대사 교과서가 학교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최초에 제7차 교육과정(검정)의 <근현대사 준거안>이 마련되었을 때, 학계에서는 이것이 제6차 교육과정(국정)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이 있었다. 장․절단위의 제목은 물론 서술항목조차 비슷하다는 지적이었다.3) 또한 근현대사 검정에서 관료주의 등이 작용하여 이름만 검정이지 현행 교과서와 차이가 없고, 획일성을 지닌 교과서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존재했다. 특히 구체적인 소절제목을 제시하며 서술하라는 요구가 ‘관료주의’에 입각한 것이며 ‘당국이 기피하는 부분이나 극우언론에 의해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을 배제하기 위한 예방이라는 지적이 있었다.4)

사실 근현대사 준거안은 이전의 국정교과서와 다를 바 없는 내용목차를 가지고 있었다.

1. 대한민국의 수립

  (1) 제2차 세계대전이후의 세계

  (2) 8․15광복과 분단

  (3) 5․10총선거와 대한민국의 수립

  (4) 6․25전쟁

2.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1) 4․19혁명

  (2) 5․16군사정변

  (3) 민주주의의 시련과 민주회복

3. 통일정책과 평화통일의 과제

  (1) 북한체제와 북한의 변화

  (2) 통일정책과 남북대화

  (3) 국제정세의 변화와 평화통일의 과제

4. 경제의 발전과 사회․문화의 변화

  (1) 경제혼란과 전후복구

  (2) 경제성장과 자본주의의 발전

  (3) 사회의 변화

  (4) 현대문화의 동향

그런데 현재 출판․간행된 6종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상당부분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교과서 필자들의 노력과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많은 자료와 활용방안 등을 통해서 현대사에 대한 이해폭을 넓히려고 한 점은 분명한 업적이다. 또한 근현대사 부분이 독립 교과서가 됨으로써 같은 체제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과 질의 두 가지 면에서 이전의 교과서보다 내용적인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근현대사 검정교과서의 현대편을 이전의 국정교과서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는 성과이자 진전으로 평가될 수 있다.

(1) [제1장 대한민국의 수립]에서는 이전 국정교과서들이 다루지 못한 사실, 사건, 인물 등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루려했다. 이전의 국정교과서가 반탁․반공만을 중심적으로 다룬 데 비해 냉전체제의 성립과 변화, 독립운동세력들의 건국준비 활동, 38선 분할과정, 좌우합작운동, 남북협상, 친일파 청산 등의 주제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교과서 분량의 확대로 많은 사실들이 서술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전 국정교과서에서는 다룰 공간․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던 사건․사실․인물․주제․평가 등이 다루어질 수 있게된 것이다. ([표1] 검정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6종의 내용구성 비교 참조)

(2) [제2장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에서는 독재와 민주화운동이 대조적으로 서술되었다. 특히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이 주요 주제로 다루어졌다. 지금까지의 국정교과서는 해당 정권을 미화할 뿐만 아니라 역대 권력자들의 반민주주의적 독재를 미온적으로 다루어왔다. 그러나 검정 근현대사 교과서는 전면적으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의 폐해와 민주화운동의 긍정적 가치에 대해 본격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3) [제3장 통일정책과 평화통일의 과제]에서는 북한체제의 형성․변화과정, 통일정책, 향후 과제 등을 다루었다. 검정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이 현대사 전체 4개 장 가운데서 한 장을 북한사 및 통일운동에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준거안에 제시된 것이었다. 문제가 된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6종의 교과서 가운데 가장 북한체제의 형성․변화과정을 상세히 기술했다. 다른 교과서들이 모두 북한을 1개의 소주제로 다룬 반면 금성출판사는 <사회주의 경제건설과 김일성체제의 확립> <주체사상과 김정일 후계체제> <변화를 모색하는 북한> 등 3개의 소주제로 다루었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북한․통일 부문에 대해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북한에 대해 총9쪽을 할애했다. 이는 대한 2쪽, 법문 3쪽, 두산 4쪽, 천재 5쪽, 중앙 7쪽 등 다른 교과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북한사 서술에 중점을 둔 것이다. 아마 보수언론이 가장 관심을 갖고 흥분했을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었으리라고 판단된다. 이전의 교과서들이 북한체제에 대해 빠트리지 않았던 ‘1인 독재’, ‘세습체제’, ‘왕국’, ‘경제파탄’ 등의 용어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중앙’만 ‘김일성독재체제’라고 했을 뿐 나머지 교과서들은 ‘김일성1인체제’ ‘김일성유일체제’ ‘김일성중심체제’로 서술했다.

남북한의 정부를 비교해 ‘독재’라는 용어를 썼느냐의 유무로 따지자면 거의 모든 교과서가 친북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대부분 교과서들은 이승만을 ‘독재’로 묘사한 반면 김일성체제에 대해서는 ‘유일체제’ ‘1인체제’로 묘사했다. 그러나 내용구성을 살펴본다면 북한이 우리와는 다른 폐쇄적 1인 지배체제라고 기술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왔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독재’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북한체제와 비교해 열등하다는 것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한편 3-3 <국제정세의 변화와 평화통일의 과제>와 관련해 모든 교과서들은 남북화해․협력, 평화통일은 물론 6․15 남북정상회담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4) [제4장 경제발전과 사회․통일정책과 평화통일의 과제]에서는 대부분의 교과서들이 한국경제의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다루고 있다. 금성출판사본이 한국경제성장의 부정적인 측면과 반재벌․반자본․반미적 정서를 다루었다고 주장되지만, 모든 교과서들이 한국경제가 이룩한 경제성장의 성과와 문제점을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성적 사고를 지녔다면 ‘빛과 그림자’를 설명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현대편의 아쉬움

이상과 같이 이전의 국정교과서와 비교할 때 검정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는 여러 측면의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검정교과서의 현대편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교과서문제에 책임을 외면한 현대사연구자로서 송구함을 금할 수 없으나 검정교과서의 긍정적 변화․발전을 위해 몇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교과서가 전반적으로 체계화되고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국정으로 편찬되는 전근대교과서와 비교해볼 때 매끈하지 못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단일한 국정교과서와 다양한 검정교과서 간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으며, 검정교과서가 이제 첫 선을 보인 시제품이라는 점에서 나타나는 미숙함일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많은 노력이 투자되었지만, 단일한 국정교과서가 오랜 기간에 걸친 집중적인 수정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무난함’, 혹은 문제 비껴가기 방식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셈이다. 보수언론 등의 집중공격을 당한 가장 큰 이유도 내용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교과서 집필 테크닉의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주관성이 강한 편집 및 서술의 형평성, 어세․어감 등은 서술의 내용․본질과는 상관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둘째 현대편과 관련해 주로 비전공자들이 작업․집필을 담당한 점을 들 수 있다. 6종 교과서 가운데 현대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필자는 단 한 사람이었다. 물론 반드시 전공자가 작업․집필해야한다는 법은 없으나 작업․집필과정 혹은 이후 교열과정에서 전공자들과 협의․협력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교과서는 한정된 지면에 엄정한 사실과 공정한 평가를 기술해야 하므로 연구하며 서술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보수언론의 지적과는 달리 검정교과서 현대편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평가․학설의 시간지체’ 현상이다. 해방3년사와 관련해서는 1980년대 후반이래 수십 편의 박사학위논문들이 제출되었지만 중요한 성과들이 반영되지는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연구성과들은 전반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연구사의 교과서 반영은 당연히 시간지체를 보이게 되지만 전공자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간격을 좁히고 중용의 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6종 교과서 현대편 모두 여러 군데에서 사실관계의 오류, 학설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실관계의 오류는 한글맞춤법의 오류에서 시작해, 인명․조직명․사건명․일시․연도․출처의 오류, 부정확하거나 근거없는 사실의 기술, 시간적 선후관계의 오류, 사진설명의 오류, 다이어그램의 오류, 주관적 평가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북한과 관련한 서술에서 이러한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북한사 연구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교과서는 정확하게 기술해야 하지만, 기존의 보편적 인식을 반영해 부정확하게 쓰여진 대목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한 교과서는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남과 북에 진주하여 군정을 실시함으로써 38도선은 민족과 국토를 둘로 가르는 분단선으로 변해”(대한교과서 248쪽)라고 기술했다. 사실관계를 따지자면 미군은 주한미군정사령부라는 조직기구를 통해 군정을 실시했으나 소련은 ‘군정청’을 설치한 바 없다. 소련25군은 위수사령부를 설치하고 ‘사실상의 군정’이나 ‘지배’를 한 것은 진실이지만 명목상 군정은 아니었다. 미소진주로 38선이 분단선이 되었다는 기술도 잘못된 것이다. 38선의 법적 근원은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군사적 편의를 도모한다는 데 있었을 뿐 그것이 한국인들의 교통․통신․이동․경제활동의 중단과 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미소 점령기에 한국인들에 대한 38선 월경금지는 법률로 제정되지 않았고 제정될 수도 없었다. 분단은 1948년에 남북한에 각각 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시작된 것이다.

학설사적으로도 1945년 신탁통치논쟁, 한국농지개혁 등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으로 잘못을 범하고 있다. 많은 교과서들이 1945년 12월 신탁통치논쟁을 거론하며 카이로회담에서 한국을 ‘적절한 절차’를 거쳐 독립시키겠다고 썼다. 영어로 in due course는 과정이나 절차가 아닌 시간적 의미인 ‘적절한 시기’이며 루즈벨트가 구상한 수십년간의 신탁통치기간을 의미했다. 최근의 연구성과들은 모스크바결정의 국내왜곡보도, 반탁운동의 전개 등에 대해 주목할만한 분석을 해왔다. 특히 1942년 이래 미국의 대한정책이 다자간 국제신탁통치였으며, 카이로-얄타-포츠담회담에서 먼저 신탁통치제안을 했고, 모스크바3국외상 회담에서도 한국인들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는 최장 10년간의 신탁통치안을 주도했다는 것이 명백하지만, 교과서에는 그러한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 회담결과 (1) 미소 점령군 대표로 구성되는 미소공동위원회가 남북한의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 임시정부를 수립하며 (2) 임시정부가 남북한 정당․사회단체와 협의해 5년간의 4대국의 신탁통치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결정되었다. 회담결과는 한국시간 12월 28일에 발표되었고, 주한미군사령관 하지는 12월 29일 늦게야 모스크바3국외상회담의 한국관련 결정문을 받아보았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이미 12월 27일부터 미국은 즉시독립 주장, 소련은 1국 신탁통치 주장이라는 허위보도를 유포했다. 국내 반탁진영은 모스크바에서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반탁운동을 했다. 찬반탁론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사실관계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것이다.

넷째 참고자료 활용 및 편집․서술의 주관성 등이다. 특히 필자들의 주관성이 강하게 드러나 보이는 대비법은 그 적절성과 의미 등이 배가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된 금성출판사의 미군․소련군 포고문의 대비는 본질적이라기 보다는 현상적이고 표피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해당 교과서는 ‘38도선 이남과 이북에 각각 들어온 미군과 소련군의 포고령을 통해 두 나라 군대의 주둔정책을 알아보자’(257쪽)고 했는데, 포고령을 통해 양점령군의 주둔정책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미군은 ‘현상유지정책’ 즉 기존의 권력기관을 그대로 활용하는 정책을 취한 반면 소련군은 ‘현지화정책’ 즉 한인들을 활용해 자신의 이해를 반영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미군은 군정을 실시했고, 소련군은 기구상의 ‘군정’을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의 군정을 실시했다. 양국의 목표는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의 수립, 우호적인 정치세력의 육성이라는 면에서 동일했다. 또한 미국의 대한정책은 군사점령-군정실시-신탁실시로 방향이 정해져 있었는데, 미국이 ‘신탁’을 선호한 이유는 국제적인 우위(미국․영국․중국 대 소련, 혹은 유엔내 미국의 지지세력) 때문이며 소련이 ‘즉시독립’을 선호한 이유는 국내적인 우위(한반도내 공산주의세력의 우위, 1과 1/2전략)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때문에 미국은 신탁통치-미소공위-한국문제의 유엔이관을, 소련은 즉시독립-미소공위-미소양군 철수를 대한정책의 목표로 주장하게된 것이다.

현재 교과서가 다양한 사진․도표․문헌․연표․해설 등을 활용하고 있으나 사료적 가치가 있는 중요문헌들에 대한 소개나 활용은 부족한 면이 있다.

5. 어떤 현대사 교과서가 필요한 것일까?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교과서는 있을 수 없다. 다수가 이해하고 합의․인정하는 교과서를 지향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근현대사과정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의무교육의 마지막 단계에서 받게되므로 보편적 연구경향을 대변하고 무난한 서술방식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 세대 일반 국민의 역사관․역사의식의 주류적 경향이 고등학교 역사교육에서 형성된다는 점에서도 중요성은 더하다.

문제는 여전히 국가의 개입범위와 기능․역할의 문제이다.

일본교과서문제․중국동북공정에서 동일하게 해당 국가는 민간의 역사교과서나 역사인식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도리어 우리의 국정 교과서 체제를 문제삼은 바 있다. 유신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국정교과서제도는 국가주의의 산물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국정’으로 ‘국사(national history)’를 교과서로 제작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는 국가가 ‘단일한 역사관’으로 역사적 사실․사건․인물․경과에 대해 유일한 평가와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국사’라는 명칭이 국수주의적이거나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이후로 국사교과서 문제의 핵심은 ‘국정’이 아닌 ‘검인정’으로 교과서 체제를 바꿔야한다는 것이 초점이었다.

현행의 검인정 체제는 분명 학계와 시민사회의 요청을 수용한 것으로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 현행 검인정 체제는 ‘준거안’에 기초한 소목차와 용어 사용까지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국가의 제약 하에 놓여져 있다. 때문에 근현대사 교과서의 태생적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현행 검정 근현대사 교과서는 필자들의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맡겨진 것이 아니다. 교과서의 파급효과를 생각한다면 점진적이고 보다 개방적인 논의틀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근현대사, 혹은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투자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연구 없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현재와 같이 한국현대사가 학계는 물론 한국사회에서 정당한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좋은 교과서는 불가능하다.

또다른 문제는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가 ‘한국’사에만 집중하고 있는 점이다.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위치, 동아시아 속에서 한국사의 객관적 위치 등을 비교사적이고 문명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다. 특히 현대사의 경우 남한을 중심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그나마 반국(半國)적 인식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세계사 또는 동아시아 지역사의 맥락 속에서 한국근현대사를 파악하도록 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와도 직결된 문제라고 생각된다. 교과서의 ‘한국’ 집중문제는 현재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일반적 경향과 연구수준을 반영한 것이자, 한국사교육 전반에 두루 해당되는 문제점이다. 그 밖에서 여전히 과도한 정치사 중심의 서술, 통치․지배자 중심의 시대구분 및 서술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최근의 논쟁은 교육이나 근현대사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니다. 보수적 주장은 다시 국가가 단일한 사관, 단일한 ‘국정교과서’로 학생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나아가 근현대사를 교단에서 가르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근현대사를 사상검열하겠다는 이러한 태도는 유치한 아마추어리즘이고 건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러한 주장이 정치적 선전이 아니라 진정성을 반영하고 있다면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하면 될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반영하는 교과서를 만들면 될 일이다. 국가주의의 분명한 부활, 독재정권을 미화하던 국정교과서로의 회귀가 목표가 아니라면 검정 근현대사 교과서 하나 만드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뜻에 맞는 전문가를 모아 연구하고, 교육부 준거안에 맞춰 검정교과서를 잘 만들어, 다수의 고등학교들이 그 책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의 실현이자 성공의 길일 것이다. 현행 교과서 검정시스템이 비합리적이라면,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방안을 제시해야 할 일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집합적 기억의 취사선택 문제를 둘러싼 기억투쟁에 휩싸여있다. 이 시기는 해방이후 겪어온 긴 과도기의 끝이며, 무수한 논쟁들은 긴 과도기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진통을 반영한 것이다. 권력의 이동, 과도기에 발생하는 이러한 기억투쟁은 여러 측면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한국현대사를 둘러싼 여러 논쟁은 한국사회 내부의 긴 과도기를 지나야 안정될 수 있고, 종국적으로는 한반도가 통일될 때에야 비로소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갈등과 이견의 존재가 불안과 부조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사회의 덕목은 다양한 견해를 상호존중하고 조정해가는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