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포청천과 구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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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청천과 구양수

하원호(근대사 1분과)

지금은 한물갔지만 대만에서 수입한 TV 드라마로,서울시장의 선거과정에서 조순씨가 순발력있게 써먹어 재미를 본 ‘포청천’의 본명은 포증(包拯)이다. 중국 안휘성 회녕현인 합비출신으로 자를 효인(孝仁)이라 하고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한 때 송나라의 서울인 개봉부를 맡았는데 TV 드라마는 개봉부시절 포증의 활동을 가공으로 꾸며 만든 것이다. 드라마식의 활약상은 몇편을 빼놓고는 과장정도가 아니라 드라마작가가 완전히 새로 만들어낸 창작물이지만, 인물의 캐릭터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포증은 개봉부를 다스리는데 워낙 엄하고 사정을 두지 않아서 염라대왕같은 인물이란 의미로 포염라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 개봉부 시절 말과 웃음이 적어서 사람들이 그의 웃음을 천년에나 한번 맑아진다는 황하에 비유했고, 그래서 얻은 별명이 철면대인이다.

중국사서를 일상적으로 보고 있던 우리나라에 이미 명성을 떨친지는 오래되어 조선시대 이후 웬만한 사대부라면 그의 행적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이처럼 근엄과 청렴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포증도 그 밑의 아전배의 농간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떤 백성이 법을 어겨 등에 곤장을 맡을 일이 있었다. 아전이 그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고 약속하기를, “사또께서 반드시 나에게 맡겨 너를 곤장치게 할테니 너는 곤장을 치기 전에 먼저 소리지르면서 변명해라” 고 했다.

포증이 그 죄수의 차례가 되어 끌어내어 심문할 때 죄수가 아전의 말대로 하자, 아전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곤장이나 맞을 일이지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포증은 아전이 권세를 부린다면서 오히려 아전을 때리고 특별히 그 죄수를 관대하게 처분해 아전의 술수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 대목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실려있는데 정약용은 이 아전의 짓을 병법의 반간(反間)이라 했다. “빼앗고 싶을 때 주기를 청하고 가두고자 할 때는 풀어놓기를 청하며 서쪽을 원할 적에는 동쪽을 건드리는” 수법이라는 것이었다. 상관의 성질이 편벽되면 아전이 이를 엿보고 그편벽된 쪽을 따라 충동질해 농간을 피운다는 것이라해서 포염라같은 명철한 인물도 속아넘어갈 정도였다고 정약용은 경계하고 있었다.

원래 아전은 행정의 실무자다. 무능력한 상관이라면 술수를 부릴 것도 없이 가지고 놀지만 능력있는 상관이라 해도 이같은 빈틈은 있는 법이고 아전배는 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 행정적으로 훤한 인물만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되는 시절이 아닌 요즘, 이 <<목민심서>>의 지적은 온고지신이 될 것이다.

더구나 요즘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그 지역 출신이 대부분이다.포증이 명성을 떨치기는 개봉부를 맡았을 때만이 아니라 그이전부터였다. 벼슬에 오른 초년에는 고향을 다스리는 자리를 맡았는데 친척들이 그위세를 믿고 세도를 부리자 친족중에서 법을 어긴 자를 잡아 심한 곤장을 때려 벌을 주었다. 그 바람에 친척들이 모두 기가 죽어 버렸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상피제라 해서 고향에는 사또자리를 주지 않고 처자도 데리고 가지 못하도록 해 아예 이같은 일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친족들이나 친구가 이쪽저쪽으로 줄을 달아 그벼슬아치의 임지에서 이권을 챙기고 위세를 부리는 일이 비일 비재했다. 임지에 부임할때 친지를 비장으로 삼거나 친구를 데리고 가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이 문제는 지금도 ‘낙하산’으로 표현되는 인사방식이 보여주듯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선거때 신세진 사람들에게 빚갚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있는 한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쪽은 당연히 목에 힘도 주고 서리발같은 위엄도 부리고 싶지만, YS처럼 의리의 돌쇠같은 인사방식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위엄은 웃지않는 얼굴이 아니라 행정에 사적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때 제대로 선다.

그런데 포증은 추상같은 엄격함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포증의 후임으로 개봉부를 맡은 구양수(歐陽修)는 관대한 정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법적용을 이치에 맞는 정도로만 간략하게 해 포증만큼 위세를 떨치지는 않았다. 간혹 포증의 정치를 권하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대개 사람의 재능과 성품은 서로 달라서 자기의 장점을 살리면 일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고, 자기의 단점을 억지로 하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네”라고 했다. 대문호로 이름을 떨친 구양수다운 여유가 있는 대답이었다.

구양수가 다스리는 고을은 부임한지 보름이 지나면 그마을의 송사가 열중에 대여섯이 줄어들고 한달후면 관청이 절간과 같이 조용해 졌다. 어떤 사람이 “정사는 관대하고 간략하게 하는데 일은 해이하거나 퇴폐되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인가”하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다스리는 사람이 방종한 것을 관대한 것으로 알고, 생략하는 것을 간략한 것으로 알면, 모든 정사가 해이하고 퇴폐해져서 백성이 폐를 입는 법이다. 내가 말하는 관대하다는 것은 가혹하게 급히 서둔다는 것이 아니고 간략하다는 것도 작은 일까지 법을 번거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였다. 한 마디로 일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형식에 구속되어 원래의 일마저 망치는 속인들은 감히 흉내도 못낼 경지이다. 형식은 일을 위한 것이지만 일의 속내용을 제쳐놓은 형식주의는 일을 망치기 십상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포증의 엄격함과 구양수의 관대함 중 어느 쪽이 낫다고 판단내리기는 쉽지 않다. 행정권만이 아니라 사법권을 함께 가졌던 전근대사회의 관리로서 포증은 사법권의 행사에서 엄격하기 그지 없었지만, 행정쪽을 중시했던 구양수는 요즘말로 행정의 간소화에 앞장선 셈이다.

하지만 각종 사업의 허가권이 지방자치단체로 상당히 넘어간 우리 실정에서 구양수의 관대함이 반드시 낫다고 볼 수는 없다. 지방행정의 관대함은 토호와의 야합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에 따라 엄정함과 관대함은 달라져야 하고, 지금의 지방단체장은 구양수의 온화한 품성만이 아니라 포청천의 서리발같은 위엄도 함께 가질 수밖에 없다.

구양수의 봄볕같은 온화함이 돋보이는 것은 포증의 서릿발이 이미 개봉부의 앞마당에 퍼렇게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만 터지면 덮기 바쁜 요즘 같은 세상에 오히려 구양수의 봄볕보다는 포증의 서릿발이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들여다 봐도 싸구려 무협영화나 다름없는 3류 드라마 ‘포청천’의 의외로 높았던 인기의 배경은 이같은 세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