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진실] 쇠젓가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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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젓가락 이야기

김대식(중세사 1분과)

1. 아시아의 상징, 젓가락

지구상에서 반수 이상의 사람들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효모를 넣은 빵이나 난(naan)과 같이 빵류의 건조한 음식을 주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빵을 나눌 때는 칼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먹을 때는 도구 없이 손으로 음식을 집는다. 이들도 국이나 수프(soup)와 같이 액체이거나 밥과 같이 작은 낱알로 흩어지는 음식을 옮겨 담거나 떠먹을 때는 국자나 숟가락과 같은 도구를 사용한다. 정식(定食)에서는 칼이나 포크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주식인 빵을 먹을 때는 손으로 집는 것이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동아시아의 음식은 식재료를 삶거나 찌거나 기름에 볶으면서 습기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방식의 조리법을 주로 사용한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의 식탁에서 젓가락이나 숟가락과 같은 도구가 사용된다. 그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젓가락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젓가락 문화(Chopsticks Culture)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화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인기를 끌었던 ‘쿵푸펜더’에서 만두를 빼앗기 위해 젓가락으로 싸우는 ‘젓가락 쿵푸’ 장면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원래는 성룡 주연의 ‘취권’을 리메이크 한 것이지만, 젓가락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젓가락’하면 몇 년 전 줄기세포 조작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아무개의 ‘쇠젓가락론’이 연상된다. 논문조작이 드러난 후 그의 쇠젓가락론은 바로 잊혀졌지만, 쇠젓가락으로 상징되는 우리 문화의 개성 찾기가 그렇게 쉽게 망각되는 것은 아쉽다.

  젓가락은 중국․한국․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지만, 나라마다 모양과 재질이 다르다. 재질에서 우리는 거의가 스테인리스제 쇠젓가락을 사용하는데 반해, 일본의 음식점에서는 주로 중국에서 수입한 뾰족한 1회용 대나무 젓가락을 사용하고, 중국에서는 끝이 무딘 대나무 젓가락이 주로 사용된다.

  요즘은 플라스틱 젓가락을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의 젓가락은 <그림 1>처럼 삼국시대로부터 사용하여 온 청동젓가락과 조선 중기무렵부터 사용된 놋쇠젓가락, 197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스테인리스젓가락이나 은젓가락까지 금속제 젓가락을 주로 사용하여 왔다. 요즘은 일식집이나 우동집에 가면 나오는 칠기젓가락과 대나무젓가락, 중국집에 가면 나오는 플라스틱젓가락 혹은 자기(瓷器) 젓가락도 쓰고 있고, 짜장면을 시킬 때 혹은 컵라면에 세트로 딸려 나오는 플라타너스 나무젓가락을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젓가락질을 배우기 위한 유아용 플라스틱 젓가락까지 우리는 많은 종류의 젓가락을 사용하며 살고 있다.


<그림 1> 각종 젓가락

2. 쇠젓가락의 기원

젓가락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기원이 중국인 것은 분명하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상아로 된 젓가락을 사용하여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대체로 춘추전국시대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고있다.


<그림 2> 안휘성 귀지(貴池) 출토 청동젓가락

  중국의 젓가락은 호남성 장사의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견된 한나라 때 것과 같은 대나무젓가락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이 때부터 대나무젓가락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유물로서 가장 오래된 젓가락은 이것보다 훨씬 앞서고 재질도 청동으로 되어 있는 <그림 2>의 청동 젓가락이 있다. 이 청동젓가락은 1977년에 중국 안휘성 귀지(貴池)에서 발굴되었다. 춘추시대 말에서 전국시대초인 기원전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길이가 20.3㎝이고 직경이 3㎜로 <그림 3>의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젓가락과 크기와 모양이 거의 같다.


<그림 3> 무령왕릉 출토 청동젓가락

  중국에서 청동젓가락은 몇 곳의 한나라 때 유적에서 발견된 예가 있지만, 이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한다. 그 이유는 중국의학의 기초를 놓은 진장기(陳藏器)가 본초습유(本草拾遺)에서 ‘동기(銅器)는 독이 있어서 악창과 종기를 일으킨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고대 중국의 청동기에는 5~10%의 납성분과 미량의 수은과 카드늄 등의 중금속이 들어있었다. 이 때문에 청동기가 식기로서는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실제로 중국에서 남북조시기 이후 발견되는 금속제 젓가락은 대부분이 은젓가락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그림 4>의 강서성 파양호에서 발견된 은젓가락이다. 이 젓가락은 길이가 23㎝이고 손잡이 부분이 사각으로 처리되어있고 하단부가 원주형으로 되어 있어 고려에서 사용된 젓가락과 닮은꼴이다. 그밖에도 상아젓가락 등의 재료와 특이한 형태의 젓가락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중국에서 금속제 젓가락은 발견되는 사례가 극히 드물어 실용적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4> 북송 강서성 출토 은젓가락

  반면 우리나라의 청동기는 아연과 주석이 첨가되어 중국 청동기에 비에 독성이 적어 식기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금속제 젓가락은 중국보다 훨씬 늦은 삼국시대 부터로 보이지만,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 때에 이르면 일반화된다.

3. 고려의 쇠젓가락

 우리나라 금속제 유물 가운데 수량이 너무 많아 웬만한 박물관에서는 유물 취급도 못 받는 것이 고려의 청동제수저이다. 인사동이나 답십리의 골동품상을 둘러보면 어디에서나 한 두개 정도는 눈에 띌 정도로 흔한 유물이다. 수저일 경우 복제를 하는 값이 유물 값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복제품도 없다.

고려 때는 제작된 청동젓가락은 <그림 5>와 같이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그 중 상당수는 원주형이고, 몸통부분을 대나무 마디모양의 장식이 표현한 것이 주종을 이룬다.


<그림 5> 고려 청동젓가락

  손잡이 부분이 사각형으로 시작해 집는 부분으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지게 만든 것도 많다. 원주 표면에 꽃과 나무 덩굴이나 나비와 벌 등의 무늬를 새긴 것도 종종 발견된다. 손잡이 끝에 구멍을 뚫거나 고리를 단 것도 흔히 발견된다. 고려 청동젓가락은 길이가 20~25cm 정도가 가장 많지만, 40cm가 넘는 것도 발견된 예가 있다.


<그림 6> 거란 장공유 청동젓가락


<그림 7> 고려 초기 청동젓가락

   몇년 전부터 중국에서 북방민족들의 무덤들이 발굴되면서 우리와 중국말고 다른 지역에서도 쇠젓가락을 사용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그 한 사례로 북경 북서쪽의 장가구(張家口)에서 발견된 거란[遼] 귀족 장공유(張恭誘, 1069~1113)의 묘에서 <그림 6>과 같은 청동젓가락이 출토되었다. 이 젓가락에 대해서는 사진과 함께 길이가 24㎝라는 정도의 정보만이 전해진다.

  유물을 직접 확인할 수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중국에서 청동제 도구는 독성으로 인해 식기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즉 다른 지역에서 청동제 젓가락을 만들었다는 사례는 아직 알려진 바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젓가락은 <그림 7>의 고려 초기 청동젓가락의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다. 장공유의 묘가 만들어진 때는 예종 12년(1117)으로 이 무렵까지 고려와 거란은 빈번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장공유의 묘에서 출토된 청동젓가락은 고려에서 제작되었거나 이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무덤에서는 대부분 청동제 수저가 발견된다. 그 중에는 여러 벌의 수저가 나오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대부분이 숟가락이 젓가락보다 많다. 그 중에서 일부는 아예 젓가락이 없는 경우도 있다. 청동젓가락은 몇 번 사용하고 버리는 대나무젓가락이나 옻칠한 나무젓가락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청동은 부러지더라도 땜질을 하거나 어렵지 않게 재활용이 가능한 재질이다. 이처럼 청동수저는 환경 친화적인 재질인 동시에 멋스런 자신만의 개성을 갖는 도구였다.

  젓가락은 국수나 라면 등의 면을 먹을 때가 아니라면, 집어먹을 반찬이나 요리가 여러 가지라는 것을 전제한 도구이다. 즉 집어먹을 것이 거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젓가락은 그렇게 유용한 도구가 아니다.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거의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았고 젓가락질을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즉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젓가락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요즘은 식구들이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지만, 예전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 앞에서 허락 없이 함부로 젓가락질하는 것은 철저히 금기시되었다. 특히 며느리가 시부모 앞에서 젓가락질하는 것을 보이는 것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과 젓가락을 끼고 숟가락을 드는 것 같은 것은 버릇없거나 무례한 짓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젓가락은 법도이자 식사의 의례였다.


<그림 8> 『기산풍속화』 농부의 점심

  우리에게 금속제 젓가락이 모든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게 된 것은 스테인리스 젓가락이 보급된 때부터이다. 그 배경에는 누구나 쌀밥을 먹을 수 있게 되고, 경제적 풍요로서 반찬의 가짓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젓가락의 수요가 늘어났고 이 때 금속제 젓가락의 전통을 이어받은 스테인리스젓가락이 우리 생활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