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진실] 선사(先史) 시대인가 역사(歷史) 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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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先史) 시대인가 역사(歷史) 시대인가?

송호정(고대사분과)


“1983년에 프랑스 학자 투르날(Tournal)은 기록이나 고문서가 나오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역사의 일부 시대를 지칭하기 위하여 ‘선사(Prehistory)’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이에 비하여 역사 시대는 문자에 의한 기록이 나타난 이후를 지칭하게 된다. 최초의 문자 기록이 대략 5,000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선사 시대는 인류의 출현에서부터 약 5,000년 전까지의 장구한 시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27쪽)

선사시대’라는 개념은 역사 연구가 문자로 기록된 자료(資料)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자 기록 여부를 기준으로 편의적으로 구분한 개념이다. 과거 인간들이 남긴 흔적을 발굴이라는 방법을 통해 복원해 내는 고고학계에서는 문자가 사용되기 이전 시기의 역사를 복원해 내는 데 매우 유용했기에 선사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사시대’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다.

역사 연구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자(文字)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자는 주장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나조차도 ‘선사’라는 용어를 큰 고민 없이 강의 시간 등에 습관적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역사의 어원(語源)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선사시대’라는 용어가 역사의 본질적 의미와 배치되는 개념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진 1) 요동 해성시 석목성 고인돌-탁자식고인돌은 청동기시대 고조선 사회에서 지배자의 무덤이자 신성한 제단으로 사용되었다.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는 역사의 의미를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선사시대의 전개에 대해서는 “선사 시대에 인류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연 환경에 따라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면서 역사를 이루어 갔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선사시대에도 인류가 역사를 만들고 그들의 생활양식인 문화를 형성해나갔음을 그대로 반영하는 설명이다. 교과서 날개 주에는 “우리나라는 철기 시대부터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사는 청동기시대까지 선사시대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논리라면 청동기시대에 국가를 세웠던 고조선사도 선사시대로 서술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청동기시대 지배자의 대표적 상징물인 고인돌이 선사시대의 대표적 조형물로 인식되어 있는 것도 선사시대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라 생각한다. 필자는 오래 전에 전남 화순에서 열린 고인돌 축제에 참여해, 고인돌 쌓는 과정을 재현하는 의식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운동장 한 켠에 마련된 재현식장은 마치 신석기 시대 암사동 유적을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원시 시대 부족의 추장이 죽자 새로운 추장을 뽑고, 죽은 추장의 무덤을 만들고, 중간 중간에 “우가 우가” 하는 부족 사람들의 춤과 주문외우기. 부족 사람들은 모두 화려한 짐승 가죽을 몸에 두른 원시인들이었다.

재현식을 보는 동안 잘못된 역사상이 일반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지배자들의 무덤이고, 우리 겨레가 처음으로 세운 나라인 고조선과 삼한 사람들의 상징적 건축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만일 재현식대로라면 고조선 사람들은 전부 원시 상태의 부족 사회서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진 2) 심양 정가와자박물관 6512호무덤 주인공 유물-청동검과 청동거울, 가죽신발 등을 착용한 정가와자 주인공은 기원전 6-5세기 고조선 지배자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이것을 증명하듯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화순 고인돌 무덤에 가 봐도 귀여운 원시인 인형이 안내 그림판 앞에서 웃고 있다. 원시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움집도 그 옆에 지어 놓았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의 고조선에는 왕과 관료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흰색 베옷을 많이 입고 부유한 사람들은 금이나 구슬 같은 것으로 잘 꾸며 입었다. 그리고 호피같은 물건을 중국과 교역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역사의 어원은 이시오도루스의 말을 빌리면, ‘그리스어로 히스토리아(historia)인데 히스토리아란 「본다」 또는 「인식한다」에서 온 말이다…히스토리아는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난 일’이다. 한 마디로 역사는 인간들의 삶의 흔적이다. 역사가들이 역사책에서 다루는 것은 지나간 인간의 활동이다. 그렇다면 국사교과서에서 말하는 선사시대라는 것도 역시 인간들의 흔적을 기록한 것이고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것이므로 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 또한 역사시대라 불러야 할 것이다.

사실 지구상에 영장류가 등장하여 생활한 시대는 모두 역사시대인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선사시대는 지구상에 영장류가 출현하기 이전의 공룡과 삼엽충이 살던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문자 기록을 기준으로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하나의 분류 기준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 온 긴 시간의 역사를 시대구분 하는 명칭으로 적절한 개념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 사용하는 ‘선사시대’라는 개념은 역사의 본래 의미에 맞지 않는 개념이며 그것이 적용되는 것도 나라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따라서 교과서 및 일반 개설서 서술에 선사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재고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문자 기록 대신에 자신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 즉 1620년까지 새 세계와의 만남 이후 1585년~1763년의 식민지 건설과 정착시대 이전시기를 선사(prehistory)시대로 부르고 있다.

이처럼 선사시대의 개념이 문제 있다면 어떤 시대 명칭을 써 주는 것이 좋을까. 우리 역사에서 삼국시대 이전을 시대구분 할 경우,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는 고대 이전 시기를 나타내는 ‘원시시대’라는 용어를 쓰거나 또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라는 명칭을 그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청동기 시대 이후에 형성된 국가로서 고조선, 부여, 삼한은 고대 한국의 나라들이므로 ‘고대사회’에 포함시켜 시기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