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진실] 방자와 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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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자와 천자문

오수창(중세2분과)

춘향전 한 대목, 이도령이 춘향이 집에 찾아가기로 하여 어두워지기만 기다리느라 책을 읽어도 정신이 하나 없이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방자의 놀림을 받는 장면이다. 마침내는 천자문을 집어 들었는데,

“하늘 천, 따 지”
방자 듣고.
“여보 도련님 점잖이 천자는 웬일이오”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의 본문이라. 양나라 주사봉 주흥사가 하룻밤에 이 글을 짓고 머리가 세었기로 책 이름을 白首文이라. 낱낱이 새겨보면 쎄똥 쌀 일이 많지야”
“소인 놈도 천자 속은 아옵니다”
“네가 알더란 말이냐”
“알기를 이르겠소”
“안다 하니 읽어 봐라”
“예 들으시오. 높고 높은 하늘 천, 깊고 깊은 따 지, 홰홰친친 가물 현(玄), 불타졌다 누루 황(黃)”
“예 이놈, 상놈은 적실하다. 이놈 어디서 장타령 하는 놈의 말을 들었구나. 내 읽을게 들어라”

이 중에서 ‘홰홰친친 가물 현, 불타졌다 누루 황’ 하는 대목은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몇번을 읽도록 고개만 갸웃거리면서 넘어가야 했다. 되는 대로 놀리는 방자의 헛소리로만 알았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담총외기(談叢外記)』라는 책을 접하면서 의문이 풀렸다.

그 책은 “천자문”을 모두 불태워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교과서로 배운 적은 없지만 천자문이 한문의 세계로 들어가는 중요한 문이라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뜻밖이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천자문”은 어린 아동들에게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와 괴리된 암기 위주의 문자 학습을 강요한다. “天地玄黃 宇宙洪荒”이라는 첫머리만 보아도 천문에서 색채로, 또 다시 우주로 개념이 급격하게 전환되어 아동들로 하여금 사물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이해를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는 그 글자가 생겨난 원리를 따르고, 사물의 범주에 따라 분류하고 음양 대비의 원리에 따라 배열하여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글은 교육학 쪽에서 매우 주목받는 주장으로서 “여유당전서” 보유편에도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정약용이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특히 내가 무릎을 친 것은, 아동들의 인식 수준을 무시한 교육을 비판하면서, 그 예를 들기를 아이들이 ‘검을 玄’을 외우며 하늘이 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자기들 나름대로 ‘감을’로 받아들이곤 한다는 서술에 이르러서였다.

춘향전의 바로 이 귀절을 듣고 쓴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문제는 간단히 풀렸다. ‘天地玄黃’의 깊은 뜻을 파악할 길이 없는 방자는 의미없이 되풀이되는 ‘검을 현’의 음을 ‘가물’로 들어 자기 나름대로 ‘감을’로 해석한 후, 거기에 ‘감다’의 부사가 되는 ‘홰홰친친’, 즉 ‘휘휘 칭칭’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黃’에 대해서도, 땅이 ‘누렇다’는 것이 선뜻 와 닿지 않으므로 ‘눋다’의 의미로 재해석하고, 그 동사와 뜻이 통하는 ‘불이 터졌다’는 표현을 덧붙인 것이다. ‘불이 터져 눌어붙었다’는 데서 한 바퀴만 더 돌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 뜻도 모르고 읊어대던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가 되는 것이다.


△ 출처 : © encyber.com

춘향전의 이 귀절을 그저 한바탕 우스개 소리로만 돌릴 수 있을까? 아니다. 이도령이 지배층 입장에서 천자문의 전통적 권위를 강조하였다면, 방자는 그 허점 투성이의 권위에 대해 촌철살인의 야유를 찔러댄 것이다.

요즘 ‘똥침’이라는 말이 일세를 풍미하고 있지만, 여기서 방자가 내지른 것만큼 효과적이고 강력한 것은 찾기 어렵지 싶다. 그 아픔을 견뎌내지 못해서일까, 이도령도 결국 ‘춘향 입, 내 입을 한데다 대고 쪽쪽 빠니 법중 여(呂)자 이 아니냐’ 하면서 방자와 함께 어울려 돌아가고 있다.

사실 조선시대의 교육 현장에서는 천자문의 이러한 문제점이 훨씬 일찍부터 극복되고 있었다. 이르게 잡으면 이미 15세기에 『유합(類合)』이라는 한자 교본이 만들어지고 16세기에는 유희춘이 그것을 수정하여 『신증유합(新增類合)』을 편찬하였다. 이 책에서는  숫자들끼리 모아 일괄적으로 가르치거나, ‘天覆地載’라 하여 ‘하늘은 덮고 땅은 (만물을) 싣는다’는 식으로 명료한 개념을 전달한다.

역시 16세기에 최세진이 편찬한 『훈몽자회』는 하늘과 땅에 해당하는 글자들을 한데 모으거나 ‘宇宙日月星辰’ 하는 식으로 같은 범주의 글자들을 모아 가르쳤다. 이밖에도 정약용이 지은 『아학편』등 많은 아동 교재가 만들어졌고, 또 교육 현장에서 활발히 사용되었다.

오늘날 노인들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천자문을 가르치는 일이 심심찮게 사회의 미담으로 소개되는 것을 보면서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이미 400년전에 교육현장에서 쫓겨나기 시작한 천자문이 다시금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다니! 방자의 야유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진땀을 빼던 놈이 어느 틈에 전통의 이름을 빼앗아 쓰고 윗자리에 앉았단 말인가.

차곡차곡 쌓아온 우리 힘으로 근대 사회와 근대 문화를 세워내지 못한 결과, 오랜 시간 힘들여 이룩해온 성취들까지 모두 함께 휩쓸려가고 말았다.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아픔은 정말로 생활 속속들이 배어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