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진실] 『목민심서』가 국민 교양도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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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가 국민 교양도서인가?

오수창(중세사 2분과)

『목민심서』가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서점에는 일반 번역본은 물론 밑으로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대상으로 한 각양각색의 『목민심서』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진열되어 있다.

  인터넷에는 이 책과 관련한 숙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심하는 학생들의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필독도서 목록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으니, 그 고전의 향기와 권위 앞에서 학생들은 달리 고충을 하소연할 곳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림 1>  목민심서(출처 :  교보문고)

  학생들 뿐이랴. 민주화 도상에 있던 시절 대통령 자리에 있던 이가 미국 출장길에 나섰었다. 그 바쁜 여정의 비행기 안, ‘대통령 집무석 책상에 자리잡은 『목민심서』가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열의를 보여주고 있었다’는 보도가 기억에도 생생하다. 한편,

  ‘부천 세도(稅盜) 사건’이라 하여 경기도 부천시에서 한 공무원이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세금을 횡령하여 국민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그 공무원의 책상에도 『목민심서』가 꽂혀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책을 내세워 자신의 청렴함과 올바른 처신을 가장했다는 것이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그 책은 조선후기 고을의 통치를 맡은 수령이 어떻게 직무를 수행할 것인지를 설명한 지침서이다. 수령이 백성을 사랑하고 몸과 마음을 올바로 가지는 일들, 지방행정의 난맥상을 파악하고 그것을 바로잡을 구체적인 방도들이 담겨있다. 특히 지방 행정 실무를 맡은 향리들을 다스릴 방도 등이 생생하게 실려 있다.


<그림 2>  목민심서 (출처; 다산학연구소 http://www.edasan.org)

  글 읽는 모든 사람이 국가 통치에 참여하기를 열망하고, 국가 통치의 기본은 수령의 군현 통치라고 설명되던 조선후기에는 『목민심서』가 모든 독서인의 필독서였다고 할 수 있다. 『목민심서』는 조선후기 사회의 실상을 파악해야할 역사학자들에게 두말할 나위가 없는 핵심자료이다. 시대의 모순에 온몸으로 맞섰던 정약용의 치열한 현실인식을 익히고자 하는 시민이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을 말릴 이유는 없다.

  하지만 『목민심서』가 과연 어린 학생들로부터 세금 징수를 맡은 공무원까지, 그리고 위로는 대통령까지 읽어두어야 할 책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우선, 민주사회의 대통령 직무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대통령이 되어서 과거 군현 차원의 지방 통치 실상을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뒤늦게 수령 수준의 ‘애민정신’을 되새겨야 하는 것이 총칼로 권력에 도달한 사람의 현실일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기자들에게 광고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차라리 세금을 훔치던 공무원이 『목민심서』를 가까이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수령이 향리를 통제하는 방법을 살피는 것은, 감독자들에게 들키지 않고 공금을 횡령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행동을 널리 선전하려 했다는 점이 비록 이해가 안 되지만…

  하물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보통의 학생과 시민들이 『목민심서』를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지식인 정약용의 치열한 현실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겹겹의 전제 조건과 사전 지식을 뚫어야만 한다. 특히, 지금은 모든 엘리트 지식인이 수령직을 거치거나 수령의 군현 통치가 사회 운영의 기본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지배자가 민을 자식처럼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민주사회의 학생과 지식인이 우선 익혀야 할 내용일 수는 없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조선후기를 연구한다는 전공을 떠나서는 내가 보기에도 재미를 느끼기 힘든 내용을 가지고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은 교사와 선배가 된 사람들로서 차마 할 짓이 아니다. 『목민심서』를 중학생 필독 도서 목록에 올린 사람은 과연 그 책을 모두 읽어 보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고전과 전통을 이해하는 우리 학계의 역량은 어디에 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