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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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

송호정(고대사분과)

※ 이 글은 『역사와 현실』 100호에 실린 송호정 선생님 특집논문 ‘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과 그 대응’을 칼럼 형식으로 재정리한 것입니다. 원문은 웹진 ‘간행물’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상고사 서술 문제가 크게 논란이 된 것은 국정교과서를 편찬해 사용하기 시작한 1970년대 말부터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조선사, 즉 한국상고사 문제는 이데올로기 논쟁의 표적이 되었고, 학문적인 차원을 넘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가 되었다.

한국 상고사 문제 논란의 진원지는 학계가 아니라 역사를 국수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일반 시민단체나 유사 역사학자들이다.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은 대개 10년을 주기로 활발하게 제기되다가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 편찬을 추진하면서 역사교과서에 상고사 부분을 대거 보완하겠다는 논리와 함께 재등장하였다. 나아가 현 집권 세력들과 연결되어 극단적 반공논리와 함께 웅대한 상고사를 교과서 서술 내용으로 담아야 한다는 논리로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유신 말기인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상황의 복사판이라고 할 수 있다.

유사역사학자들은 항상 단군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를 표방한다. 현재의 국가적 상황이 매우 큰 위기이기 때문에 단군을 구심점으로 한 민족 공동체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식민지시대의 민족주의 역사학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식민지 시기 민족주의 사학은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한국사의 발전을 민족의 정신적 측면에서 설명하고, 한국사 발전의 관건을 민족의 혼이나 정신에서 찾았다. 그러나 유사역사학자의 경우 민족주의라는 미명 하에 특정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반민중적 역사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단군과 고조선사를 둘러싼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역사 발전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기원전 4천 년 전의 요하문명을 고조선문명으로 해석하는 것을 보면 역사의 발전 단계에 대한 기본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세계 역사에서 신석기 말기에서 청동기시대 초기에 거대한 고대 제국을 형성한 나라는 없다. 역사는 세계사의 발전과 더불어 보편성과 합리성을 띠어야 그 역사로서 의미가 있다. 우리 역사만이 웅대하다고 주장하고, 주변 역사와 비교하거나 세계사 속에서 그 위치를 자리매김하지 못한다면 그 역사학은 존재 의미가 없다. 그 단계는 이미 국수주의, 아니 역사학의 영역을 벗어나고 만 것이라 할 수 있다.

단군조선 시기의 찬란한 역사, 웅대한 고대 역사를 부르짖는 유사역사학자들은 오히려 과거 우리 역사의 모습에 자신이 없는, 어찌 보면 우리 역사에 대해 자기 열등감에 사로잡힌 국수주의자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사군이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고 중국 영토에 있었다는 유사역사학의 주장은 이민족 식민통치의 부끄러운 역사를 한반도 밖으로 밀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 주장은 근대에 식민 경험을 한 것에 대한 피해 의식일 뿐, 한사군의 위치가 만주에 비정된다고 해서 우리 역사가 자주적인 역사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이는 일종의 반도사관이자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나온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유사역사학자의 주장과 기존 학계에 대한 공격은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서 전문 연구를 하는 강단 연구자들에 대한 도전이자 그 권위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일부 시민과 유사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해석이 더 민족적이고 웅대한 역사를 복원했다고 자부하면서 기존 학계를 공격한다. 이러한 기존 학계에 대한 공격은 일반 시민들이나 비전문가에게도 자신들의 생각에 자신감을 갖게 하고, 우리 역사에 대한 환상과 함께 기존 학계의 권위를 무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덕일 같은 유사역사학자들은 역사학계를 애국과 매국, 식민사학과 민족주의라는 도덕적 평가 틀 위에 올려놓고 자신들은 거대 권력에 맞서는 영웅이자 의병으로 포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동안 학계의 연구 성과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게 되고, 전문가의 견해에 대한 신뢰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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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2015년 6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아직 작업 중이던 동북아역사지도 내용을 국회의원을 통해 입수한 뒤 지도 편찬사업이 식민사관에 입각해 낙랑군을 한반도에 비정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뉴스1, 2013.09.27)

애국과 매국의 논리를 앞세워 기존학계를 공격하는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은 맹목적 애국주의를 앞세우는 현 정부 집권 세력들의 논리와도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다. 유사역사학자들의 한국고대사에 대한 국수주의적인 주장은 보수적이고 정권 연장을 생각하는 정부로부터 일정한 역할을 요구받고 정부의 보이지 않는 배경 하에 양성화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현 집권 세력은 환상적 고대사 인식에 기대어 우리 내부의 갈등과 모순을 호도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활용하고 있다.

유사역사학자들은 학계의 연구 성과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나 객관적인 평가가 배제된 상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 성과가 중국 동북공정이나 일제 식민사관과 유사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최근 유사역사학자들은 오늘의 학계를 ‘조선사편수회=중국 동북공정=한국 식민사학’의 삼각편대가 유린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이병도와 신석호 제자들의 식민사학 카르텔’, ‘사피아(=사학 마피아)’ 등의 용어를 사용하면서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 이는 학계의 연구 성과를 정 반대로 해석하고 호도하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일제 식민사학자처럼 우리 역사를 정체되고 타율성에 입각한 역사로 보지 않는다. 우리 역사를 자료에 입각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보며, 발전적으로 해석하고자 노력한다.

역사는 사실에 근거하여 해석하고 감동하는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기 힘든 우리만의 국수주의적 주장은 인접 국가와의 갈등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왜곡된 내용으로 자기만족과 정치적인 이익을 도모할 경우 결국엔 양심적인 국민과 사회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문헌 자료가 부족한 고대사를 권력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강조할 경우 엄격한 사료 해석을 본령으로 하는 역사 연구의 퇴행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전문 역사학자들이 용감하게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유사역사학이 설 자리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대사학자들은 그 동안처럼 침묵하지 말고 유사역사학을 믿는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일반 사람들이 유사역사학에 빠져 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