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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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평】

중국의 동북공정이 남긴 것

임 기 환(고대사분과)

1. 고구려사의 환기

  요즘 고구려사가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고구려의 영웅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고구려에 대한 기억들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이런 드라마들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다름아닌 중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위 ‘동북공정’이다. 그만큼 중국의 동북공정은 한국 사회와 역사학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


(사진 1) 출처 : OSEN

위 고구려 관련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 연구자들 대부분이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란 상상력으로 구성된 픽션일 수 밖에 없지만, 그 상상력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역사관과 이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의 심성이 지극히 ‘민족중심적’이란 데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올 9월 언론이 다시금 동북공정과 고구려사를 두고 한바탕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동북공정만이 아니라 ‘백두산공정’이니 ‘인삼공정’이니 하면서 한층 위기의식을 부각시켰다. 그런데 사회적 반향은 예전같지 않았다. 특히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고 할 정도였다. 어느 언론 기자가 이 중요한 시점에 왜 학계가 두손 놓고 가만히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고 불평할 정도로 차분했다. 이는 몇 년 전 조금은 부끄러울 수 있는 동향에 대한 자기 성찰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2003~4년에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귀속시켜 빼앗아가려고 한다는 점이 부각되는 데에는 언론의 힘이 컸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각종 보도 기획들이 이루어지고,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대대적으로 촉발시켰다. 당시에는 시민단체의 활동도 활발하여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나 ‘고구려 지키기 범시민연대’ 같은 기구 등 수많은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정부는 처음에 이 문제를 학술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으나, 언론과 여론에 등이 떠밀려 이를 정치 외교적 현안으로 다루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와 학계가 주도하여 학술연구기구로서 고구려연구재단이 설립되었다(2004.3). 고구려연구재단은 출범과정에서 동북아 역사분쟁 등을 전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결국 동북공정의 학술적 대응기관으로 그 성격을 한정하여 출범하였으며, 주요한 학술적 과제도 당시 주된 관심사였던 고구려사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현실 정치적인 성격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외견상 역사문제, 학술차원의 일로 한정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동북공정’으로 인하여 점화된 만큼 전반적인 학술연구의 내용도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적 성격이 두드러졌다. 물론 관련 학계가 총동원되고, 문제의식의 확대에 따라 나름대로 학술적 문제 제기의 방향도 일정한 맥락을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양적인 팽창만큼의 질적인 성과를 거두었는가에 대해서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렇게 애초에 언론을 통해 동북공정의 실체가 부각되고 또 그 초점이 ‘고구려사 지키기’에 맞추어지는 선정성을 드러내면서, 초기 한국역사학계 내에서 이루어진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의 기조도 고구려 역사왜곡 문제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사회 일반에서부터 불어닥치는 바람에 학계가 흔들린 바가 적지 않다는 측면을 드러낸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은 역사귀속 문제로 축소되어 여전히 그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동향을 보면 학계조차 ‘고구려 붐’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따르는 조급증과 중압감에 시달린 흔적을 느낄 수 있다. 현실 문제에 대한 실천적 대응이라는 진지한 자세와 현실의 붐에 편승하는 안이한 태도 사이의 거리는 사실 그다지 멀지 않다. 그 사이를 벌려 놓는 것은 문제의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러한 문제의식과 자신에 대한 성찰이 그리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반성의 여지가 적지 않았다.

동북공정이 우리 사회에 불러온 그 소란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많은 정치적 견해들과 관점들, 그리고 현실의식이 교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이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들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의외이다. 마치 일부러 이를 되돌아보지 않으려는 듯한 태도들이다. 어쨌든 동북공정은 별관심없이 묻혀 있던 고구려사를 대중들 눈 앞에 소환해왔고, 그 고구려를 통해 새삼스레 민족의식을 뜨겁게 환기시키고 확장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고구려는 단지 삼국시대의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한차례 전사회적 차원에서 민족적 정서와 결합한 역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성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고구려사 지키기로 환원된 동북공정은 우리의 민족의식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매우 유용한 자극제였던 셈이다.
2. 동북공정과 국가주의

  고구려사가 중국과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환기되고 있는 현상은 일면 비슷하지만, 그 내면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 중국의 동북공정이 우리에게 남긴 하나의 과제이다.

잘 알고 있다시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은 동북변강지역(만주)의 역사와 현실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2002년 2월 28일에 공식적으로 출범시킨 국가 비준 프로젝트로서, 5년간의 사업기간을 거쳐 오는 2007년 2월에 완료될 예정이다. 이 동북공정은 단지 고구려사를 비롯한 ‘과거’에 대한  ‘학술문제’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중국 내부의 사회변화 및 동북아 국제질서 변화에 대응하는 ‘현실’의 ‘정치문제’로 시작되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을 서부대개발의 핵심 대상인 신강 지구의 ‘반분열투쟁대책’에 대한 연구 및 운남의 ‘금독공작(禁毒工作)’과 같은 수준에 올려 놓고 대비한다는 점에서도 시사받을 수 있다. 따라서 동북공정에 의한 역사 연구의 방향은 학술적 문제제기와는 별도로 국가 전략적 입장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는 셈이다.


사진 2) 중국 지안시가 고구려를 자국사로 기술한 홍보책자 (출처 : 동아일보)

또한 동북공정과 관련해서는 근래 중국정부가 국가주의 고양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인 역사 프로젝트로인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과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中國古代文明(中華文明)探源工程]’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들 프로젝트의 이념적 배경에는 전근대적인 중화주의를 근대의 중화민족주의로 변용시키려는 중국 역사학계의 동향이 깔려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즉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 이후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해 가면서 경제 발전을 통한 급속한 국력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민족적·문화적 자신감이 고무되면서 문화 보수주의가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적인 사회주의 이념에서의 애국주의 및 중화민족의 민족주의가 결합되어 국가적 차원의 체제이데올로기로 등장하게 되는데, 중국 전통문화의 문화적 우월성을 전제로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신중화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진다. ‘통일적 다민족국가론’과 ‘신중화주의 문명사관’에 입각한 ‘동북공정’의 추진은 중국이 근대 국민국가의 시각에서 과거 역사를 국가주권으로 재단하는 오류를 잘 드러낸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처럼 중국의 동북공정은 비록 역사연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내면에서는 현실 전략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측 대응의 범주와 수준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구려사를 중심으로하는 역사의 귀속문제, 즉 역사분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여기에는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방식이 한국역사학계 자체의 문제 의식에서 시작되지 못한 데에 따른 점도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다.

왜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였으며, 또 중요 논점을 고구려사로 잡았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적지 않은 연구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이를 장황하게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002년 동북공정의 시작은 사실상 고구려사 부분에서만 본다면 새로운 시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최종 정리해가는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구려사의 귀속을 기초로 다시금 전사(前史)로서 고조선이나 후사(後史)로서의 발해사 등 고구려사와 관련된 역사적 맥락에 대한 본격적인 재검토 작업이 이루어지고 이들 역사를 중국사로 완전히 귀속시키기 위한 새로운 문제제기와 논리개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동북공정에 이르기까지 고구려사 귀속 문제를 둘러싼 중국학계의 논리가 변화되면서 점차 정교화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중국측 자신의 논리를 개발하고 있지만, 각각의 논거 사이에는 논리적 구조에서 서로 상이한 비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평면적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배경에는 국가주의와 중화민족주의가 뒷받침되고 있다.

중국학계가 고구려사를 한국사와 완전히 단절하기 위해서 가장 많은 비중을 둔 것은 族源 문제와 조공·책봉관계론이었다. 이들 주제는 결코 고구려사의 핵심주제일 수 없지만, 그것이 중심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 바로 국가주의 역사관이 작동한다. 그런데 족원론은 실증적인 부분에서 취약성을 드러내고, 조공·책봉론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에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학계는 영토론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하였다. 그런데 영토론에서도 ‘통일적다민족국가론’으로는 현재의 영역과 고구려의 영역의 불일치가 문제로 된다. 따라서 현재의 영토가 아닌 ‘역사상의 불특정한 시기의 판도’를 기준으로 설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즉 동북공정 내에서의 논리 전개가 오히려 중국 역사학계 일반의 기준인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내용을 변화시킬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중국학계가 중시하는 족원론이나 영토이론 부분은 사실상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상당히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이 아니더라도, 국내의 민족사 중심의 연구와 기술에서 혈연적 계통성에 비중을 둔 민족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의당 종족과 민족 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될 터인데, 이에 대한 기왕의 연구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영토이론으로 들어가면 심각성은 더 커진다. 중국과는 다른 역사적·현실적 환경에서 한국역사학계가 그동안 영토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측의 ‘역사상의 영토’론을 거꾸로 한국측의 입장에서 적용할 경우 역사귀속 문제는 영토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근자에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 논리로 운위되고 있는 간도영토 회복론 등의 동향이 그것이다.
그동안 고구려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귀속 논쟁이 벌어지면서, 한국역사학계의 논거는 주로 종족론과 역사계승론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 근대역사학은 ‘민족사’의 구성이라는 범주에서 전개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민족사를 구성하는 이론적 틀을 갖추고 있지 못한 셈이다. 민족사, 또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의 기술이 타당하냐의 여부를 떠나서, 그러한 기술의 이론적 틀과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 역사분쟁과 민족주의, 그리고 동아시아

  근자에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북한·중국·일본 사이에 소위 ‘역사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2001년에는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의 기술과 검정 통과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에서 거센 비판이 일어난 바 있으며, 2003년에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한국에서 전사회적인 차원의 반발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5년도에는 한일(韓日)간에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분쟁이 다시 재현되었다. 즉 일본에서 교과서의 재검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2001년에 논란이 되었던 ‘새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가 채택율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시민 사회와 한국의 시민단체 등이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일단은 일본 극우세력의 의도를 좌절시킨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연속되는 일본 교과서 사태에서 보듯이 향후에도 여전히 일본의 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다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2006년도에는 언론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다시 문제삼으면서 비판의 여론이 비등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교과서 문제와는 전혀 다른 상황임을 재삼 확인할 뿐이었다. 일본에는 폭넓은 시민사회가 형성되어 있고, 일본교과서 문제에 대응할 때에 이러한 시민사회에 힙입은 바가 적지 않다. 그러한 중국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정부와 학계가 동북공정을 주도하고 있으며,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은 전혀 열려져 있지 않다. 그러기에 한중간의 역사분쟁에 대한 해결의 통로는 정부차원으로, 혹은 학술적 차원의 논의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러한 면이 아니더라도,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기 위한 역사 왜곡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사건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요즘 한참 기세좋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한민족의 생존권과도 깊이 연관되고 있는 면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공교롭게도 한국은 이 두 차례의 ‘역사 전쟁’에서 모두 당사자가 되고 있으며,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상대국의 역사 기술에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에 서있게 된 셈이다. 물론 이 두 사건은 논란의 내용이나 성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들 당사국들이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를 만들어온 주체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역사에 대한 서로간의 인식이 충돌할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에 벌어진 이 몇 차례의 역사 전쟁은 향후 올바른 동아시아 역사상을 정립하기 위해서 치루어야할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이러한 역사분쟁을 통해 우리 학계가 어떻게 문제의식을 새롭게 하고 자기 성찰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한중 역사분쟁 과정에서 한국내의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지만, 분위기는 양극단으로 조성되었다. 한편에서는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탈민족주의론이나 동아시아론이 제기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주의 강화론이 나타났다. 그런데 민족주의 강화론의 경우 일본이나 중국이 민족주의 내지는 국가주의적 역사관을 강화시키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벗어던질 경우에 오히려 역사인식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상황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뿐 새로운 논의의 수준으로 전개된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하여 주로 서양사, 동양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탈민족주의론과 동아시아론은 각국사 즉 국민국가의 역사 인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역사 인식을 모색하려는 주장으로 눈길을 모았다.  민족과 국가의 틀을 깨지 않는 한 역사분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 한국사·중국사·일본사가 아니라 이를 묶어내는 동아시아 역사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애국주의와 한국의 국수주의를 모두 비판하면서 국사와 동아시아사의 화해를 강조하는 관점이다. 물론 동아시아론의 주장에도 여러 층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역사주권’ 논쟁으로 비화하는 한중 역사분쟁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하였다는 점에서는 귀를 기울여야할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탈민족주의론과 동아시아론은 구체적인 역사인식의 관점과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의 담론에 불과하며, 역사상의 실증적 연구를 전제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안적 관점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사론의 모델이 되었던 유럽과 달리 현재의 동아시아 각국은 각종 역사분쟁이나 영토문제로 대립의 각을 높이고 있으며, 특히 중화세계질서와 대동아공영권 전략이 촉발한 부정적인 경험을 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성급하게 국사를 동아시아사 속에 해소시키는 작업을 경계하는 시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리고 한중간의 관계에서 본다면 동아시아론이 과연 중국학계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중국사의 인식 범위는 아시아 전지역과 연관하여 확장될 수 밖에 없고, 실제로 근래 중국의 국제적 활동 범위는 아시아 전체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중·일을 주요 범주로 하는 동아시아론은 한국 중심의 관점이라는 비판에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동아시아론이 한국과 중국·일본의 지역적 집합이라는 범주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동아시아라는 범주가 설정될 수 있는 이론적·실증적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동아시아론은 탈민족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한 관점이지만, 일면에서는 아직 한국적 관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적지 않다.

이와같은 한국역사학이나 역사교육에 팽배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일련의 연구 동향은 한국 역사학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물론 주로 원론적인 비판에 머물러 있거나 각론을 제시하였더라도 실제 한국사 연구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실증적으로 적지않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본격적인 연구는 좀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이 한국의 민족주의 역사학에 대한 본격적인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 한국사 인식 기반의 확대에 기여하리라 기대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한국 사회, 좁게는 한국 역사학계에 불러온 파문은 적지 않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역사학계가 한국사에 대한 인식의 기반을 다원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사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역시 결코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한국의 역사인식의 기본 골격 역시 한민족과 국민국가를 위한 역사관으로 기능하는 면모가 두드러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중국의 동북공정이 중화주의적 민족주의나 팽창주의적 면모가 부각되면서 한국의 대응 역시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강화라는 입장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보여준 한국 사회의 반응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입각한 역사관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향후 한·중 역사분쟁은 피차 민족주의·애국주의의 과잉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적지않다고 하겠으며, 실제로 학계 외곽에서는 그러한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매우 경계해야할 일이며, 앞으로 그러한 경계의 논거를 마련하는 것도 한국역사학계가 해야할 의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