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북3성 답사기⑤] 백두산 천지의 물은 송화강으로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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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북3성 답사기#5]

백두산 천지의 물은 송화강으로 흐르고

이승호(고대사분과)

 


[그림 1]  6박 7일의 답사 일정과 답사코스 원(O) 안의 번호는 답사 날짜 유적 위성 사진  ⓒ구글지도(http://www.google.co.kr/maps)

 

답사 5일차 : 백두산(⑤) → 연길 → 하얼빈(⑥)

⑤→⑥ 경로 : 백두산 → 연길 → 하얼빈행 야간열차

 

  답사 다섯째 날 새벽 모처럼 숙취 없는 시작을 바랐지만, 지난밤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 되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마법을 체험하면서 그러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답사 내내 숙취는 풍토병처럼 내 몸을 괴롭혔다. 술을 끊어야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나마 고량주에 적응한 나의 간은 맥주가 물과 같이 느껴졌던 것인지, 새벽 공기를 몇 차례 들이마시자 제법 몸이 가벼워졌다. 또한 백산시에서 백두산 입구까지는 차로 5시간을 달려야 하는 여정이었기에 달리는 차 안에서 부족한 수면 시간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다.


[사진1]
  백두산 입구 전경  ⓒ이승호

택시를 타고 5시간을 달려 백두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기상이 좋지 않아 천지를 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산의 중간 기점까지 운행하는 버스에 탑승하자 곧 천지가 열렸다는 소식이 차 안에 전해졌고 사람들은 모두 환호했다. 백두산 천지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천지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에 돌아가면 좋은 술 한 병을 사들고 할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는 행여나 모습을 보인 천지가 금방이라도 달아날까봐 조바심을 내며 등반을 서둘렀다. 필자는 아침부터 등산복에 등산양말, 등산화 등을 꺼내며 부산을 떨었고 에베레스트 등반이라도 할 태세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자못 비장한 마음으로 등반 준비를 마친 내 앞에 작은 봉고차 한 대가 섰고, 우리는 그 봉고차를 타고 천지까지 앉아서 오를 수 있었다. 단 15분 만에. 그 해 겨울 나는 백두산 등반을 위해 야심차게 구입했던 등산화를 인터넷 중고시장에 내놓아야만 했다. 오늘날 백두산 등반은 슬리퍼를 신고도 가능하다.



[사진2]
  백두산의 명물 ‘빵차’(상)와 천지를 오르는 인파들(하)  ⓒ이승호

  일명 ‘백두산 빵차’라고 불리는 그 작은 봉고차는 산의 중반기점에서 천지 바로 턱밑까지 운행하는데, 무려 RPM5000을 넘나드는 곡예운전을 하며 그 거리를 단 20분 만에 주파한다. 빵차를 타고 산을 오를 때에는 안정장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사실 백두산 등반에는 등산화보다는 안전한 여행자보험과 멀미약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멀미가 심하신 분들은 ‘빵차’를 타기 전 반드시 멀미약을 복용하시기 바란다. 어쨌든 20분 간의 곡예운전을 마친 차량은 우리를 정말 천지 코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걸어서 천지에 오르는 데에 들인 시간은 10여 분이 채 되지 않았다.



[사진3]  백두산 천지  ⓒ이승호

  천지에 오르자 날씨는 정말 거짓말처럼 좋았다.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보던 천지가 내 눈앞에 펼쳐졌을 때의 감동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사실 당시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우리 할아버지 만세” 소리만 연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사진도 정말 여러 장을 찍었는데, 한 장 한 장이 모두 그림처럼 담겨졌다. 막 찍어도 예술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천지를 보고나서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백두산의 주변 풍경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정말 자연의 광활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곳, 이곳에서 산맥은 사방으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사진4]
  백두산 주변 산세(상)와 인증 사진(하)  ⓒ이승호

  그렇게 한 시간 가량 천지를 감상한 다음 하산을 시작했다. 사실 백두산 천지 부근은 기온이 낮고 바람도 많이 불어 상당히 춥다. 8월 만주의 여름 더위도 천지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조금 더 천지를 보고 싶었지만 흐르는 콧물과 떨리는 몸은 하산을 재촉하였다. 그렇게 다시 우리를 태운 ‘빵차’는 굽이진 내리막길을 미친 듯이 내달렸고, “여행자 보험을 조금 더 비싼 걸로 들어둘걸 그랬나…”라는 뒤늦은 후회를 할 때쯤 중간기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장백폭포로 가는 또 다른 버스에 탑승했다.


[사진5]  장백폭포 전경  ⓒ이승호

천지도 천지이만 장백폭포의 위용 또한 대단했다. 마주한 폭포의 거센 물보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 물안개가 되어 날아왔다. 피부에 닿는 물의 촉감은 너무나 상쾌했고 황량한 계곡 사이를 유유히 흘러 떨어지는 폭포수가 전달하는 청량감에 여행의 피로가 모두 가시는 듯 했다. 또한 장백폭포로 들어가는 입구 주변에서 파는 요깃거리도 일품인데, 온천수에 삶아진 계란과 소세기, 옥수수 등 갖가지 음식들을 먹다보면 소박하지만 제법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유쾌한 기분이 나게 한다.

산을 내려온 우리는 하얼빈으로 이동하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연길로 방향을 잡고 출발했다. 여기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3대의 택시를 나누어 탄 우리 일행은 어느 순간 서로 길이 엇갈렸다. 앞서가던 1호차와 2호차는 고속도로가 아닌 지름길인 지방도로를 가로질러 연길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마지막에 따라 붙던 3호차는 앞서가던 두 대의 차량을 시야에서 놓치고 갈림길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물론 서로 간에 도착시간이 30분에서 한 시간 가량 차이가 나겠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는 연길시의 북한음식전문점에서 저녁을 먹는다는 생각에 모두 들떠있었고 그때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4일 간의 택시 여행은 그 사건 전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방도로로 접어들었던 1호차와 2호차에 문제가 생기면서 조금씩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였다. 깊은 산속 지방도로를 1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으슥한 어느 산길, 얼마 전 장마 때 발생한 산사태로 도로는 붕괴되어 있었다. 이미 사방이 어둑해진 시간 주변에 마을은커녕 인적조차 전혀 보이지 않은 백두산 깊은 산자락에서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바로 몇 km 앞에 우리가 쉬어갈 수 있는 마을이 있었고 한두 시간만 더 달리면 연길시에 진입하지만 길이 끊긴 상황에서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약 2시간가량을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려온 외길을 다시 돌아나가야 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주유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기름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던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었다.

날은 이제 완전히 어두워졌고, 우리 차는 주유경고등에 불이 들어온 채 시속 100km의 속도로 밤중 산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연길시에서 먹을 북한음식 메뉴는 이미 안드로메다 저 멀리 던져 버린 지 오래였고 이제는 우리가 탈 열차 출발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사방에 불빛이라고는 우리가 탄 택시의 헤드라이트밖에 존재하지 않는 어두운 산길, 곧 눈 벌건 곰이나 멧돼지가 나오면 딱 어울릴만한 그런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여기서 달리던 차마저 기름이 바닥나 서버린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백두산 자락 어딘가에서 그렇게 난생 처음 야생 곰을 볼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할 때쯤 다행히 우리 차(2호차)는 처음 진입한 지방도로를 빠져나왔고 고속도로 입구 앞 주유소에 들를 수 있었다. 연료를 채우고 난 후 택시는 120km 이하로는 달리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듯 내달렸고, 기차 출발 7분을 남겨두고 간신히 연길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한 3호차 인원들이 미리 기차표 끊어두고 있었기 때문에 역에 도착한 우리는 출발 1분전 가까스로 기차 탑승에 성공한다. 간담이 서늘한 순간이었다. 시간에 쫓겨 4일간 우리와 함께해준 택시기사님들과 같이 사진 한 장 못 찍고 작별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사진6]  하얼빈행 야간열차 침대칸 전경  ⓒ이승호

  우리가 탄 하얼빈행 야간열차 객실은 3층의 침대칸으로 되어 있었다.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내 자리는 맨 위의 3층 칸이었는데 침대에 누우려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침대칸에 누워 맥주를 홀짝이며 옆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 우리는 처음 접하는 침대칸에 신기해하며 미리 사 놓은 맥주를 들이키기 시작했고, 그렇게 말 많고 탈 많았던 하루를 마감했다.

답사 6~7일차 : 하얼빈(⑥) → 심양(⑦)

⑥→⑦ 경로 : 하얼빈 역 → 안중근 의사 기념관 → 하얼빈 사범대학 게스트하우스 → 흑룡강성 박물관 → 731부대 유적지 → 송화강변 / 심양공항으로 이동 → 귀국

 



[사진7]  하얼빈역 전경(상)과 안중근 기념관(하)  ⓒ이승호

  눈을 뜨자 열차가 곧 하얼빈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객실에 흘렀다. (씻지도 못했다) 부랴부랴 짐을 정리한 후 열차에서 내린 우리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부터 찾아갔다. 기념관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열차에서 내릴 때 까지만 해도 우리가 아직 의식하지 못했던 사실, 기념관은 이곳이 우리 근대사의 결정적 한 장면이 연출된 역사적 현장임을 담담히 상기시켜 주었다. 아담한 2층 규모 건물 안에 전시된 안의사의 유품과 몇 장의 사진 및 자료들을 잠시 둘러본 우리는 숙소로 이동을 서둘렀다. (일단 씻고 싶었다)


[사진8]  하얼빈 사범대학교 안 게스트하우스  ⓒ이승호

  하얼빈에서 우리가 묵을 숙소는 하얼빈 사범대학교 게스트하우스였다. 이곳에서 유학 중인 송진영 학우의 아이디어로 선택한 게스트하우스는 시내와 가깝고 시설도 청결했으며 무엇보다 저렴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개인 정비를 마친 우리는 흑룡강성 박물관으로 향했다.



[사진9]  흑룡강성 박물관 전경(상)과 전시 유물(하)   ⓒ이승호

  흑룡강성 박물관 내 전시유물을 둘러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말갈문화와 관련된 유물들이었다. 특히 돼지모양 토우와 흑요석으로 제작된 돌화살촉은 옛 중국 문헌에 전하는 읍루-말갈의 습속을 떠올리게 한다.

“그 습속이 돼지를 기르는 것을 좋아하여 그 고기는 먹으며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겨울에는 돼지기름을 몸에 바르는데, 두께는 몇 푼이나 되어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 그 활의 길이는 4척이며 위력은 쇠뇌와 같다. 화살은 호시(楛矢)를 쓰는데 길이는 1척 8촌이며, 청석(靑石)으로 촉을 만든다.” (『삼국지』 동이전 읍루조)


[사진10]  731부대 유적지 앞 전경  ⓒ이승호

  다음으로 우리가 찾은 곳은 731부대 유적지였다. 유적지는 입구에서부터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기구와 실물자료, 영상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사람을 묶어두고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군의 모습을 실감나게 복원하고 있었다. 마루타 관련 영상자료에서 들려오는 괴로운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귓가에 맴돌아 스산한 전시관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엄숙하고 숙연했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사진11]  마지막 저녁식사, 하얼빈 양고기 요리집에서  ⓒ이승호

  유적지를 나온 우리는 다시 하얼빈 시내로 이동해 중국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가졌다. 남은 경비를 모조리 털어서라도 정말 제대로 된 현지식을 경험해보자는 의견에 여러 식당을 물색하던 중 근처 가장 유명하다는 양고기 요리집에 들어갔다. 식탁에서 양다리를 통째로 숯불에 구워 기다란 칼과 포크로 떼어 먹는 요리였는데, 상당히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요리는 거들뿐. 또다시 고량주를 들이키며 반주를 빙자한 흥청망청 음주가 시작되었고 그것이 마지막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모두들 거나하게 취하자 우리는 술도 깰 겸 송화강변을 걷기로 하였다. 하지만 걷는 것도 잠시 곧 비 내리는 야밤에 강가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2차가 시작되었고 더 이상 우리 일행 중에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에 몸을 싣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며 하얼빈 시내를 배회하기 시작한 우리는 급기야 쏟아지는 폭우 속에 하얼빈 번화가에 위치한 클럽에 들어서고 말았다. 밥 말리의 음악에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이 가득 찬 클럽, 러시아 여인이 내게 던진 비수와도 같은 말 한 마디… 그곳에서의 일들을 차마 여기에 기록할 수 없음을 용서해 달라. 그저 잊고 싶은 기억이다. 우리가 클럽을 나온 시간은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분명한 것은 심양으로 가는 열차 시간은 아침 9시였다.


[사진12]  차창 밖으로 바라본 송화강  ⓒ이승호

지난 밤 광란의 시간을 보낸 우리는 보기 좋게 심양으로 가는 아침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하얼빈 시내의 러시아워를 미리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전날 밤의 지나친 음주가 이 사태의 진짜 원인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우리 중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하얼빈에서 심양까지 2시간 만에 주파하는 고속철도가 있었기에 비행기를 놓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열차를 타고 차창 밖으로 흐르는 송화강을 바라보면서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답사가 끝났다는 아쉬움에서일까.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물은 북으로 달리고 달려 송화강으로 흐른다. 물이 달리는 길이 마치 우리의 여정과 닮아 있었다.

압록강에서 송화강까지, 6박 7일간 3,000km를 쉬지 않고 달려왔던 우리들의 대장정을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그저 웃음 밖에 나오질 않는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무언가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었던 (답사를 빙자한) 여행이었다. 사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우리가 계획한 답사 일정을 대충 전해들은 내 주변의 몇몇 이들은 나를 말리기 바빴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 코스를 열흘 안으로 끊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이건 미친 짓인데?” 혹은 “제발 몸 성히 살아만 돌아와라” 등의 걱정스러운 말들. 하지만 철없는 몇몇 대학원생이 계획한 그 여름의 재앙은 이제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천금 같은 추억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