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북3성 답사기①] 택시를 타고 달린 3,000km의 여정, 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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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북3성 답사기#1]

택시를 타고 달린 3,000km의 여정,

그 시작

이승호(고대사분과)

 

답사가 기획되기까지

답사 일시 : 2014년 8월 24일(일) ~ 30일(토)
답사 지역 : 중국 동북지방(심양ㆍ환인ㆍ집안ㆍ백두산ㆍ연길ㆍ하얼빈)
답사참여인원 : 윤선태(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 김근식, 김민수, 심정현, 오택현, 이규호, 이승호(이상 동국대 대학원 석ㆍ박사과정), 송진영(하얼빈대 대학원 석사졸업) 이상 총 8명


작년 8월 말 장마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그 무렵의 일이다. 당시 연구회 상임간사(연구위간사) 일을 하고 있던 필자는 다른 간사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고맙게도 7일 간의 여유를 얻어 중국 동북지역 일대로 답사를 다녀올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 당시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조금은 밋밋할 수도 있을 그 여름의 답사 이야기를 여기에 꺼내보고자 한다.

우선은 작년 여름의 일을 이제서 다시 구구히 꺼내는 이유를 먼저 밝혀야겠다. 부끄럽게도 이 답사기는 올해 초 웹진위원장 박준형 선생님과 약속한 글이었다. 필자의 게으름으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가 이제야 작년의 기억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 글을 통해 이번에 고대사분과에서 진행하고 있는 중국 환인(桓仁)ㆍ집안(集安) 지역 답사에 참여하지 못한 죄를 조금이라도 면해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다. 답사를 준비하고 계신 여러 선생님들께서 이 글을 통해 미리 여행 기분이라도 내실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작년 여름에 다녀온 답사는 동국대 역사교육과 윤선태 교수님(고대사분과)과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 고대사를 전공하는 몇몇 대학원생들이 의기투합하여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당시 우리가 세웠던 ‘답사 계획’이란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망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답사를 떠나기 보름 전 답사 일정 및 코스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문제의 대학원생 몇몇은 비좁은 강의실에 모여 답사 코스 관련 긴급회의라는 이름마저 거창한 모임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중국 동북지역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보자는,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엄청난 답사 코스를 6박 7일이라는 짧은 답사일정에 우겨넣고야 말았다. 더구나 우리가 선택한 교통수단은 무려 택시(Taxi)였다. 2014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의 불행은 바로 그 강의실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회의에 참석한 대학원생 모두가 그와 같은 살인적인 일정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필자 또한 ‘이정도 코스면 분명 큰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 환인(桓仁)과 집안(集安) 사이의 거리를 그저 택시로 한두 시간 달리면 될 만한, 대충 서울과 인천 정도의 거리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정도로 필자의 지리적 감각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리고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그 강의실 안의 다른 대학원생들도 대부분 내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하얼빈대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던 송진영만이 “오빠들, 중국은 넓어요. 무척 넓어요…”라며 아무도 듣지 않는 우려 섞인 말을 혼자 되뇌었을 뿐이다.

그리고 5일째 되는 날의 으슥한 야밤, 백두산을 내려와 사방에 인적이란 것은 도통 찾을 수 없는 캄캄한 장백산맥의 비좁은 산길을 ‘주유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 채 시속 120km로 내달리는 택시’ 안에서 난 이번 답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하게 된다. “이건 답사라기보다는 순례자의 고행 혹은 모택동의 대장정” 우리의 ‘만주 택시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림 1]  6박 7일의 답사 일정과 답사코스 원(O) 안의 번호는 답사 날짜 유적 위성 사진  ⓒ구글지도(http://www.google.co.kr/maps)


답사 첫날 : 심양공항에서 환인(桓仁)으로 가는 여정(①)

①번 경로 : 심양공항 → 이도하자구로성(二道河子舊老城) → 영릉진고성(永陵鎭古城) → 환인(桓仁) 상고성자묘군(上古城子墓群)

  2014년 8월 24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심양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5일간 우리와 함께할 세 분의 택시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세분 모두 안도현에서 택시 영업을 하시는 분들이었는데, 다행히 기사님들 중 두 분은 조선족으로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중국인보다 더욱 능통하게 중국동북지역 사투리를 구사한다는 하얼빈대학의 자랑 송진영 학우가 있었다. 기사님들과 첫날 코스에 대한 몇 가지 논의를 마친 후 택시에 몸을 실은 채 훈허(渾河)강을 옆에 끼고 동쪽으로 달렸다. 택시는 시속 100km이하로는 달리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듯 도로를 내달렸고, 덕분에 우리는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창 밖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위에서 들이쉰 뜨겁고 건조한 공기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메마르고 메케한 냄새가 났다.

1시간 30분 정도를 내달려 도착한 첫 답사지는 이도하자구로성(二道河子舊老城)이었다. 구로성(舊老城)은 청태조(淸太祖) 누르하치가 1587년부터 1603년 혁도아납성(赫圖阿拉城)으로 거점을 옮기기 전까지 머물던 곳이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의 축성 형태나 입지 조건 면에서 고구려 산성으로 주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2현도군(영릉진고성)을 무순 방면으로 몰아내고 이 지역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해나가던 고구려는 소자하 유역으로부터 진입하는 적에 대한 방어를 목적으로 이곳에 거대한 산성을 축조하였던 것이다.


[사진 1]  이도하자구로성(二道河子舊老城)  ⓒ이승호


[사진 2]  이도하자구로성(二道河子舊老城) 내부 석축 구간  ⓒ이승호

  구로성에 대한 답사를 마친 우리는 제2현도군의 군치(郡治)로 잘 알려진 영릉진고성(永陵鎭古城)을 찾아 이동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영릉진고성의 정확한 위치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가지고 간 지도와 책자 등도 무용지물이었다. 도중에 마주친 현지인들에게 도움도 청해보았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 가량을 헤매다 간신히 책에서 본 영릉진고성 전경 사진과 비슷한 곳을 발견했다. 우리는 기뻐하며 그곳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게 된다. 사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사진을 다시 보니 그곳은 영릉진고성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마도 오랫동안 유적을 찾아 헤맨 결과 누적된 피로와 배고픔이 우리로 하여금 그곳을 영릉진고성으로 믿게끔 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

  그렇게 사진의 영릉진고성과 지형이 매우 비슷한(?) 신빈현 어느 허허벌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음 예정된 답사지는 고검지산성(高儉地山城)이었다. 사실 답사를 출발하기 전부터 이 코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처음에는 영릉진고성을 본 다음 부이강변으로 향하여 흑구산성(黑溝山城)과 부이강 일대를 답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이동 경로상 고검지산성을 보고 환인으로 넘어가는 쪽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다음 코스는 고검지산성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영릉진고성을 찾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것이다. 거기에 숙소 문제가 겹치면서 결국 고검지산성 답사를 포기하고 환인으로 곧바로 이동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기막힌 답사 첫날의 일정이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계속된 시행착오에 낙담한 채 환인에 도착한 우리는 아직 해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상고성자무덤군(上古城子墓群)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곳에서 또다시 방황하기 시작했다. 사방은 수풀과 밭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 어디에도 군집된 돌무더기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상고성자묘군은 어디에 있는가?


[사진 3]  상고성자무덤군(上古城子墓群)  ⓒ이승호

  답사 인원 전체가 집단 패닉상태에 빠져있을 때 즈음 누군가 가져온 책자 속 사진에 우리 주변과 비슷한 지형과 건물 구도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우리가 헤매고 있던 그곳이 바로 상고성자무덤군이었던 것이다. 수풀들을 손으로 휘저어 헤집고 보니 몇 기의 무덤떼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서있던 밭이 일구어진 개인 사유지 한 가운데에 멀리서 보면 그저 얕은 둔덕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돌무지무덤이었다. ‘풀이 무성한 계절에는 답사를 떠나지 말라’라는 격언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다.


[사진 4]  환인 시내 야경  ⓒ이승호

그렇게 간신히 유적의 전경을 확인한 우리는 조금은 조급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택시에 몸을 싣고 숙소가 있는 환인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배고픔과 알콜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환인 시내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답사 첫날 겪은 여러 시행착오에 다들 마음이 무거웠고 그만큼 빈 술병은 늘어만 갔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우리의 탈 많던 첫날 일정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