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의 사회사] 삼족을 멸한다는 것은? : 조선의 연좌제①

0
1163

삼족을 멸한다는 것은? : 조선의 연좌제①

심재우(중세사2분과)

1. 전통시대의 낡은 악법, 연좌제

19세기 후반 근대화 과정에서 이전의 관행, 제도가 사라지고 새로운 근대적 개혁 조치가 마련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1894년 갑오개혁 때 과거의 낡고 불합리한 형률, 형벌이 폐지되고 근대적 형사사법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필자에게 이 때 금지된 대표적인 형률을 두 가지 제시하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능지처참 형과 연좌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형 집행 방법 중 하나인 능지처참이 참혹한 신체절단형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가까운 혈연이란 이유만으로 범죄자의 죄없는 가족들까지 처벌하는 연좌제 또한 폐기되어야 할 악법임에 분명하다.


<그림1> 1919년 고종 장례식 사진 고종시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연좌율 폐지를 비롯한 법제도에 대한 근대적 개혁이 이루어진 시기임은 분명하다. 『고종국장사진첩』 수록(장서각 소장).

굳이 연좌제의 연원을 따지자면 고대 중국에까지 소급할 수 있는데,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죄없는 사람까지 처벌하는 제도이다. 당시 연좌제는 가족·친족 등에 대한 혈연적 연좌(緣坐), 지역주민이나 동료 관리들을 연대책임을 물어 벌주는 연좌(連坐)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중 전자, 즉 조선시대 격렬한 정쟁의 과정에서 정치범의 친인척에게 가해진 연좌는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켰음은 역사 속에서 증명된다.

그런데 1894년 이후에 실제 연좌제는 완전히 사라졌을까? 연좌제가 형률로서 법전에서 사라지긴 했어도 연좌제의 망령이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의 삶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에서 이젠 대표적 보수 논객으로 변신한 소설가 이문열이 한국전쟁 때 월북한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시절 연좌제의 족쇄 속에서 불우한 유년을 보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림2> 공안사범 조회 리스트 2009년 촛불 시위 검거자 수사과정에서 자신이 아닌 가족에 대한 공안사범 리스트까지 조회함으로써 헌법이 금지한 ‘연좌제’를 적용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출처 : 『경향신문』 2009년 10월 12일 인터넷 기사

이 뿐만이 아니다. 2009년에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에 반대해 벌인 촛불시위에 참석한 한 인사를 기소하면서 그 배우자, 아버지 등 가족의 ‘공안사범 조회 리스트’를 활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까지도 연좌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과거 민주화 운동의 전력이 공안기록으로 분류되어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수사에 활용되고 있은 것은 사정당국의 ‘연좌제’식 수사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불행하게도 연좌제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2. 삼족을 멸한다는 것은?

그럼 조선시대에 대체 어떤 사람들이 연좌 처벌을 받았는지 법 규정부터 살펴보자. 먼저 『대명률』이다. 조선에서 일반법전으로 적용하여 사용하던 『대명률』에는 연좌 처벌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의 죄목과 처벌의 내용을 적고 있는데, 법전에 등장하는 혈연가족에 대한 연좌 규정은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모반대역(謀反大逆) 범죄에 대한 연좌이다. 모반대역은 오늘날로 치면 쿠데타, 반란, 국가전복 행위 등을 의미하는데, 이 때 대역죄인을 능지처참에 처할 뿐만 아니라 죄인 가족들도 연좌 처벌을 하였다. 연좌 대상을 보면 아버지와 16세 이상 아들은 교수형에 처하고, 15세 이하 아들, 어머니와 딸, 처와 첩, 할아버지와 손자, 형제, 자매, 며느리는 공신(功臣)의 집에 주어서 노비로 삼고 재산을 몰수하였다. 아울러 백부, 숙부, 조카는 3천리 밖에 안치(安置)하였다.

다음으로 모반(謀反), 즉 외국에 붙어서 본국에 대해 이적 행위를 한 경우에도 죄인은 참형(斬刑)에 처해졌고 가족들에게도 연좌제가 적용되었다. 죄인의 처와 첩, 자녀는 공신의 집에 주어 노비로 삼고 재산은 몰수하였고, 부모, 할아버지와 손자, 형제는 2천리 밖에 안치(安置)시켰다. 다만 이 경우 노비로 삼은 대상자는 처첩과 자녀에 한정하였고, 죄인 부자의 목숨을 부지시켜 준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모반대역보다는 연좌 내용과 범위가 다소 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3> 흉악범에 대한 능치처참 장면 중국 베이징에서 1904년 집행된 처형 사진. 처형된 왕 웨이친은 재산 소유권 분쟁과 관련하여 1901년 이웃 가족 열두 명을 살해한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독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사진을 흐릿하게 보여준다. 『능지처참』(박소현 번역, 너머북스, 2010) 31쪽.

마지막으로 위의 두 가지와는 조금 다른 범죄인 흉악한 살인범에 대한 연좌이다. 일가족의 3인 이상을 죽인다거나, 사람을 죽여 죽은 자의 신체의 일부를 약으로 쓰거나 절단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등 극단적인 패륜 살인행위를 저지른 자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연좌 처벌을 시행하였다. 즉, 이들 범죄 행위자는 능지처사나 참형으로 처형하였고, 재산은 몰수하여 피해자에게 주거나 관에서 거두었다. 그리고 그 처자 혹은 동거하는 가족을 연좌시켜 유배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상 『대명률』에 규정된 연좌제는 반역이나 역모와 같은 대역죄 혹은 패륜살인죄와 같은 일부 중대 범죄자에게 적용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연좌범위가 넓게 적용된 경우는 모반대역죄였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병들고 나이가 많은 사람, 시집간 딸, 양자간 아들이나 손자의 경우는 연좌에서 면제시켜 주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연좌하면 연상되는 ‘삼족을 멸한다’고 하는 삼족(三族)이 어떤 범위의 혈연을 가리키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개 삼족(三族)을 부족(父族), 모족(母族), 처족(妻族)이라 생각하여 연좌 범위가 친가 뿐 아니라 외가나 처가 집안 식구들까지 두루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대명률』 규정에서 알 수 있듯이 잘못이다.

이같은 오해는 조선후기에도 있었던 듯한데,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삼족(三族)이 위로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백부·숙부 등 조족(祖族), 옆으로 형제와 그 소생인 조카 등을 포함한 부족(父族), 아래로는 아들과 손자 등을 의미하는 기족(己族)을 의미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법규에 연좌 범위가 무한정 넓은 것은 아니라는 것에 주의를 요한다.


<그림4> 유배인 명부 1895년 3월부터 1896년 4월간에 유배된 자의 죄목과 유배지 등이 기록된 책이다. 연좌되어 처형을 면한 사람들의 상당수도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출처 : 『정배안』(규장각, 규 17290-9)

한편, 조선에서는 『대명률』 규정 이외에도 필요에 따라 『경국대전』, 『속대전』 등에서 별도의 연좌제 관련 규정을 일부 마련하여 시행하기도 하였다. 강도 등 특정 범죄를 저지른 자의 처자식을 노비로 삼는다거나, 가족 전체를 함경도와 같은 변경 지역에 유배보내는 전가사변형(全家徙邊刑)을 시행한 것은 모두 조선에서 새로 추가한 규정이었다.

특히 상하 신분질서가 엄격한 조선에서 윗사람을 시해한 자들에 대해서는 가족 뿐 아니라 고을 수령까지 연좌시키는 규정을 별도로 마련하기도 하였다. 『속대전』에 실린 규정에 의하면 부모나 남편을 죽인 자, 주인을 살해한 노비 등은 강상죄인(綱常罪人)이라 하여 본인을 처형한 후 그가 살던 집은 부수어 연못을 만들고 처자식을 노비로 삼았으며, 이에 더하여 범인이 살던 고을의 격을 강등시키고 수령도 책임을 물어 파직시켰다.

3. 연좌제의 남용, 풍비박산된 가문

앞서 살펴본 것처럼 조선시대 특정 죄목에 따른 연좌 범위와 연좌 처벌의 내용 등이 법전에 명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당시 죄인의 주변 친인척을 마구잡이로 연좌 처벌하게 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법의 집행 과정에서 법에 정해진 규정을 넘어서 연좌제가 남용되곤 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정치적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연좌제로 인해 이른바 ‘멸문(滅門)의 화(禍)’를 당하는 가문이 종종 발생한 것도 규정과 달리 가혹하게 친인척을 연좌 처벌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같이 연좌제가 남용된 대표적인 시기를 꼽자면 단연 연산군 재위 기간을 들 수 있다.

특히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는 매우 혹독한 연좌 처벌이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자신의 생모이자 성종비였던 윤씨(尹氏)의 폐비 조치에 대한 원한을 품고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사건이었다.


<그림 5> ‘왕의 남자’ 포스터 2005년 개봉된 영화로 연산군대를 배경으로 한 궁중광대극.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연산군 대에는 두 차례의 사화(士禍) 등으로 많은 인물들이 화를 입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왕의 남자’

갑자사화에서 과도한 연좌 처벌 사례를 두 가지만 꼽자면 이세좌(李世佐) 집안과 성종의 후궁 엄씨(嚴氏)·정씨(鄭氏) 집안에 대한 연좌를 들 수 있다. 성종 때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운반했던 이세좌의 경우 연산군은 당초 거제에 유배시켰다가 사사(賜死)의 명령을 내려 죽게 하였다. 아울러 그의 네 아들과 동생은 목을 베어 죽이고, 연좌 대상이 아닌 사위들까지 모두 먼 변경지역에 유배형에 처했다.

이와 동시에 어머니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연산군은 성종의 후궁이었던 엄씨와 정씨를 때려 죽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아들, 부모, 동생들에게 형벌을 가하여 변경 지역에 안치시켰다. 심지어 연좌 면제 대상인 80세가 넘는 자, 출가한 자매들까지도 연좌에 포함시켰다.

연산군의 폭정은 사실 특수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연산군 전후 시기에도 중요한 정치적 사건 때 간혹 연좌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연산군의 뒤를 이어 즉위한 중종 즉위년에 있었다. 즉 중종 즉위년(1506) 9월에 연산군대의 중신(重臣) 신수근(愼守勤) 일파를 처형하면서 신수근의 일족들을 유배보냈는데, 연좌된 일족의 범위가 법전 규정을 훨씬 넘어서는 동성 4-5촌, 이성 3-4촌에까지 미쳤다고 한다.


<그림6> 장서각 소장 『대전통편』정조 때 간행된 법전인 『대전통편』 형전(刑典)의 일부분. 법전 규정과 달리 연좌제가 남용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근대형법의 경우 범죄에 대한 형사상 책임은 행위자 자신에게만 묻는 형사처벌 개별화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자신과 무관한 사건으로 처벌받는 연좌제 규정은 전근대적 낡은 형률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연좌제가 조선시대 정치문화와 관련하여 어떤 기능과 역할을 수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해볼 여지가 많다. 연좌인들의 실제 삶의 모습도 복원해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규장각과 장서각에 『연좌안(連坐案)』이라는 책자가 전해지고 있어, 조선후기 연좌제가 실제로 어떻게 시행되었고 어떤 사건에 어떤 범위의 친인척이 연좌되어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 다음 원고에서는 조선시대 연좌인의 실제 모습에 좀더 다가가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