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 ‘역사 속의 민주주의’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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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회 전국역사학대회 ‘역사 속의 민주주의’ 참관기

김효성(현대사분과)


‘이제는 새롭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중요하다. 우리가 마치 공기를 무심코 마시면서도 그 공기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이번 역사학대회의 발표일정을 받아보고 들었던 내 생각이었다. 대선을 앞둔 현재 유신과 민주주의만큼 화두인 주제가 또 있을까? 유명 서점에서는 대선 후보들의 자서전을 표방한 책들이 봇물처럼 나오고 인터넷이나 신문들은 연일 후보들의 행보에 플래시를 터뜨리지만, 그 속에 과연 후보의 필모그래피 외에 향후 우리나라의 5년의 삶과 방향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정작 묻혀있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내 느낌이다. 그래서 이번 역사학대회에서는 적어도 유신과 민주주의 등 정치사를 고찰하는 것을 넘어 작금의 현실에 대한 어떤 ‘답’을 찾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 하고 대전으로 향하는 고속철에 몸을 기대어 이번 역사학대회가 열리는 카이스트로 향했다. 대전의 대중교통은 역사학대회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요소였다. 어찌나 불편하던지 타 지역의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택시에 몸을 맡기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이번 역사학대회에서는 본인이 소속한 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가 주관하여 진행되는 만큼 편하면서도 으레 진행되었던 월례 발표 느낌으로 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에는 역사학대회의 주제나 여기까지 온 노고가 자칫 아까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첫날 일정은 기조 발표와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역사학대회를 몇 차례 다녀온 경험에서 볼 때 첫날 기조 발표 외에 언제 타 지역의 학회 발표를 들을까 하는 점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다루어질 때 ‘주체적’ 입장으로서의 접근이 자칫 ‘특수적’ 입장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의 ‘시선’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동양사, 서양사를 통해 한국사를 보다 ‘넓게’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동양사, 서양사 선생님들의 발표는 상당히 유익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점은 민주주의 개념의 ‘다층성’이었다. 단일한 개념으로 파악되는 민주주의가 각 지역, 시대마다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한국사 외 역사 영역에서 다루어준 덕분에 좀 더 다양하게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접근할 수 있었다.


<사진 1> 제 55회 역사학대회 기조발표 후 종합토론 시간

이윽고 종합토론이 이루어지면서, 기조 발표 때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정 후보에 대한 개인적 의견에서부터 카이스트의 불행한 이야기 등 다양한 발언들이 나왔다. 종합토론을 들으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어떤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그것이 사회적, 경제적 평등을 담보하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상정한 것인지, 한국현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독재의 유산에서 자유로워야할 인식론적인 민주주의를 상정한 것인지 등 복잡하고 결론이 잘 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작금의 우리 현실이 적어도 다수(국민으로 규정된)에게는 행복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1960-70년대를 관통하여 살아온 필자의 부모님들은 아직도 경제적 행복을 위해서 정치적 권리를 기꺼이 내줄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 선택이나 포기를 떠나 그만큼 민주주의라는 것이 제도로서, 사상으로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우리 사회에서는 충실하게 하지 못했다는 점으로 이해되었다. ‘밥’과 ‘정치’가 결코 분리할 수 없음에도 이러한 시각이 기능했던 우리 역사를 보며, 나는 더욱 이번 역사학대회에서의 첫날 발표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였다.

지인들과 선생님들과의 저녁과 뒤이은 뒷풀이를 마치고, 둘째 날 각 학회마다의 섹션 발표 일정에 참가하였다. 전날 우중충한 하늘은 연신 비를 쏟아내고 있었고, 좁은 발표 장소는 도서판매대와 뒤엉키면서 혼잡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발표가 시작되자 진지함과 침묵으로 시간은 흘러갔다.


<사진 2> 역사학대회 둘째 날 발표(한국역사연구회 일정)

내가 참가한 섹션은 한국역사연구회가 기획한 ‘한국 역사 속의 民과 국가권력’이었다. 총 다섯 개 주제로 발표되었는데, 유형원과 정약용의 사상, 일제 시기 도시 개발을 둘러싼 민족 갈등과 유신 체제, 5․18 민주항쟁을 다루었다. 본인의 관심주제가 아무래도 현대사 영역이어서 자연스레 후반부 주제에 많은 집중을 하고 발표를 들었다.


<표 3> 세 번째 발표자인 염복규 선생과 토론 중인 고태우 선생

‘유신’에서 강조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다. 그것은 어떠한 보편적 원리로 작동하는 측면에서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한국적 민주주의가 주류로 작동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장치’들은 역사나 전통 같은 것에서 차용하였다는 점이다.


<사진 4> 발표와 토론을 경청하고 있는 발표장

기실 보편성이나 특수성이 고정적인 위치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개념들을 선점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자기 논리’ 속에 상대적으로 하부에 속한 이들이 수용한다는 점이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유신 체제를 정당화하고, 대의제 정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논쟁과 비판을 ‘기회비용’으로 간주하였다는 점이 나에게는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일까라는 점을 곱씹어 보게 하였다. 개인으로서의 나라는 사람은 이러한 역설(혹은 자기모순)에 빠져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내 부모님들과 조금 더 배웠다는 나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내가 이해하고 생활화한 민주주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나에게 질문한 ‘답’을 이번 역사학대회에서 찾아왔냐고 묻는다면, 나는 “못 찾아왔다.” 역사학대회를 통해 이제껏 내가 알고 있었던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좀 더 다르게,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 자체가 답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 같다.
결론적으로 역사학대회를 마치며, 그동안 ‘건축물’처럼 생각했던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 것만으로 나에게 위안을 삼는다. 어느 토론자의 표현처럼 지금의 민주주의가 일면 ‘앙시앵 레짐’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고정적인 것이 아닌 항상 변화, 변용하였고 그 답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그 것을 사용하는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 다소 장황한 참관기였지만, 지면을 허락해준 한국역사연구회에 감사드리며, 이번 역사학대회를 주관, 진행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필자소개>
– 소속 : 연세대학교 사학과 현대사 석사 과정
– 전공 : 1960년대 경제사
– 관심분야 : 경제학자들의 경제개발에 관련한 인식 틀의 형성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