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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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수사학

정 용 욱

영어권 학계의 6.25전쟁에 대한 호칭은 ‘the Korean War’다. 영어권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서 ‘Korean War’와 ‘Korea’를 검색해보면 ‘Korean War’로 검색한 결과가 ‘Korea’로 검색한 결과보다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구미인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직도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로 연상되기보다는 전쟁과 관련한 기억으로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일까. 어쨌든 이방인의 눈에 한국은 여전히 안보상 위태한 나라이고 군사적으로 위험한 분쟁지역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6.25전쟁이라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의해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고, 사실은 그 이후 남북 분단과 남과 북,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대치와 갈등으로 강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방인에게 한 민족의 이산과 아픔으로 한반도 분단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사에 대해 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도 Korean War라는 용어는 그리 적절한 용어가 아님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남한 학계에서는 대부분 이 영어식 명칭을 그대로 번역해서 ‘한국전쟁’으로 호칭하지만, 일본만 해도 한반도 전체를 가리킬 때는 조선이란 단어를 쓰기 때문에 ‘조선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 한두 건이 아니었는데 유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과 베트남에서 일어났던 전쟁만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the Vietnamese War)으로 부를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한 역사학자의 얘기대로 일본전쟁, 중국전쟁, 미국전쟁 등의 호칭이 성립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외국인이 그런 용어를 만들어냈다면 한국을 그 외국의 ‘주변문제’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6.25전쟁은 내전인가 국제전인가, 사변.동란인가 혁명전쟁인가. 6.25전쟁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쟁의 성격에서부터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37개월 동안 20개 가까운 나라가 개입했던 전쟁으로서 참가자가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격도 복잡했다. 이러한 복잡성이 오늘날 호칭문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필자는 ‘6.25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미 1949년부터 38선을 둘러싸고 남과 북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쟁 개시일을 기준으로 한 이 용어 또한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외 학계가 모두 동의할 만한 다른 명칭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잠정적으로 이 용어를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6.25전쟁의 호칭 문제를 장황하게 끄집어 낸 이유는 최근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혈사태에 대한 국내외 언론, 특히 미국 언론의 보도태도와 미국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전쟁의 호칭과 전쟁을 합리화하는 레토릭의 관계에 대해 짚어보고 싶어서다.

최근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군은 무장요원만 공격하고 있고, 이번 사태를 야기한 시아파 지도자 알 사드르를 체포해서 처형해야 한다는 주장을 완강하게 계속하고 있다. 무장요원과 민간인을 구분해서 터지는 근사한 폭탄이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최첨단 군사기술을 가진 미국도 아직 그런 폭탄을 개발하지 못한 모양이다. 정작 필자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팔루자 사태를 보도하는 CNN의 화면 처리방식이었다. 팔루자 사태와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둘러싸고 미국의 공화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을 인터뷰하는 장면에다 CNN은 “The Fight for Iraq”라는 제목을 달았다. 미군의 군사작전으로 무고한 이라크인들이 죽거나 부상당하는 상황에서 “이라크를 위한 투쟁”은 도대체 어떤 투쟁이고, 누구를 위한 투쟁인가. 그런 투쟁이 부시와 미군을 위한 투쟁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라크와 이라크인을 위한 투쟁은 아니다.

CNN의 제목 붙이기는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하던 2003년 4월 각국의 TV방송을 떠올리게 한다. 첨단 전자기술의 발달로 이제 시청자들은 안방에 앉아서 전투장면을 생중계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는데, 미국의 CNN과 공중파 방송들이 미군의 이라크 공격을 보도할 때 화면 제목으로 뽑은 것은 한결같이 ‘War Of Iraq’였다. 국내 방송 가운데 일부가 ‘War In Iraq’를 화면 제목으로 뽑았으며, 아랍권의 알 자지라 방송은 ‘War On Iraq’를 보도 제목으로 뽑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 개의 제목은 각각 전치사만 다르지만 그 뉘앙스의 차이는 크다. War Of Iraq는 이 전쟁이 이라크인들 간의 전쟁인지, 아니면 타국에 의한 침공인지 알 수 없고, 말 그대로 ‘이라크 전쟁’이라는 애매한 호칭이다. War In Iraq는 ‘내전’의 뜻이라기보다 교전 주체와 대상을 밝히는 것을 피하는 대신 교전이 일어난 장소를 특정한다는 의미가 있다. War On Iraq는 이 전쟁이 이라크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공격임을 암시한다. 보도 제목에서부터 보도 태도와 방향의 차이를 느낄 수 있고, TV방송이 시청자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건대, 특히 CNN을 비롯한 미국 방송의 전세계적 영향력, 또는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바그다드 시민들이 집안에서 크루즈 미사일의 폭발음에 떨고 있던 그 순간 한국의 시청자들은 집안에 앉아서 TV라는 폭탄의 무차별 공습을 받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이었던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 은닉 주장이 허위였음이 이미 판명되었지만 미국은 9.11 이후 전세계적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대(對)테러전쟁’을 거둘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잘 알다시피 미군은 이라크가 은닉한 대량살상 무기와 사담 후세인 이라는 ‘깡패 정권’(Rogue State)이 미국과 전세계에 심각한 테러 위협이 되고 있으므로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 하에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은 그러한 잠재적 테러 위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희생인 셈이다. 미군 중부사령관은 팔루자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알 사드르는 이라크의 자유와 질서를 위협하는 만큼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미군의 팔루자 공습으로 죽어가는 것은 이라크 민간인들이지만 미군의 레토릭대로라면 미군이 지금 이라크에서 싸우는 상대는 이라크인들이 아니라 ‘테러리즘’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군과 ‘허수아비’의 싸움은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25전쟁기에 미군이 작성하여 북한군과 중국군에게 뿌린 삐라는 한결같이 중국과 북한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묘사했다. 남한군을 향해 뿌린 북한의 삐라 역시 이승만을 ‘미국의 주구’로 묘사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꼭두각시론’이야말로 6.25전쟁기에 한반도에서 냉전의 ‘적’이 어떻게 주조(鑄造)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인데 삐라에서 교전 쌍방은 왜 그렇게 꼭두각시론에 집착했던가. 우선 남과 북이 각각 상대방의 정권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과 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된 때부터 각자는 상대방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상대방을 괴뢰로 취급했다. 또 미군이 북한과 중국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공격하는 데에는 적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라는 측면 외에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이해관계가 있었다.

미군 심리전 담당자들은 2차대전기 나치군대와 싸워 얻은 경험을 토대로 이데올로기적 상징에 대한 정면 공격이 비이데올로기적인 호소보다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극구 칭찬하거나 강한 이데올로기적인 용어로 공산주의를 공격하는 대신 ‘김일성 가짜설’ 같이 김일성의 실재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군은 미국인들과 전세계를 향해 그들이 아시아의 작은 변방에서 싸우고 있는 진짜 상대는 더 이상 아시아인들이 아니라 소련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점을 선전할 필요가 있었다. 즉 미군의 입장에서 볼 때 전선에서 그들이 대면한 상대는 북한군과 중국군이었지만 오늘날 미군이 이라크에서 싸우고 있는 진정한(?) 적이 테러리즘인 것처럼 6.25전쟁에서 미군이 싸운 진정한 ‘적’은 소련 공산주의와 소련의 세계적화 야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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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중국, 북한을 소련의 앞잡이로 묘사한 미군 삐라

 

북한은 올해에도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테러 지원국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자신의 ‘적’을 ‘창조’하는 나름의 긴 역사적 전통을 가진 미국에 의해 북한은 탈냉전 이후 소련의 꼭두각시에서 테러 지원국으로 그 위상이 바뀌었다. 2관왕인 셈이다. 용천역 폭발로 발생한 참사에 미국은 10만 불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들린다. 한편 한국은 이라크의 전후 복구비로 2,600만 불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어쨌든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나라이고, 미국은 테러로 인해 ‘금세기 들어 가장 고통받는 나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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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이승만을 미국의 주구로, 일본을 침략의 앞잡이로 묘사한 북한군 삐라